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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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의 위기
작성일 : 20-09-02     조회 : 257     추천 : 1     분량 : 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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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번, 3번 뽀뽀해.”

 봉감독이 왕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1번은 동훈이, 그리고 3번은... 고릴라다. 그렇다! 우린 지금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왕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동훈이와 고릴라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빨리 해라. 꼼장어 탄다.”

 봉감독이 위엄어린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러자, 고릴라가 굳은 표정으로 소주를 입에 털어넣었다.

 “오르르르~~”

 헉! 소주로 가글을 한다. 진짜로 하려나보다!

 그때, 동훈이가 얼굴이 사색이 되며 벌떡 일어났다.

 “차라리 소주 열잔 마시겠습니다!”

 “좋아, 소주 열잔 마시고 뽀뽀해.”

 “감독님, 제발!”

 동훈이는 봉감독의 손을 붙잡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그 순간, 고릴라 조감독이 왠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훈이를 노려봤다.

 “에잇! 이렇게 단합이 안 돼서야. 이래가지고 영화 되겠어?”

 봉감독이 젓가락을 탁! 놓으며 소리쳤다.

 “우린 한 식구야. 식구는 같이 살을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거라고!”

 봉감독의 날카로운 일갈에 실내가 숙연해졌다.

 동훈이와 고릴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로 눈치만 보고, 양미씨와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후, 고릴라가 동훈이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자.”

 고릴라가 벌떡 일어나 동훈이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왜... 왜 이래요? 나한테 이러지 마세... 흡!”

 헉! 이런 충격과 공포의 광경이라니...

 고릴라가 양 손으로 동훈이의 볼을 붙잡더니, 소세지같이 두터운 입술로 동훈이의 얼굴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쪽!

 소리와 함께, 고릴라가 입술을 떼었다. 동훈이와 고릴라는 잠시 그렇게 서로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이제야 좀 식구 같구만. 으하하!”

 봉감독은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뜨렸고, 고릴라는 수줍은 듯 고개를 돌렸고, 동훈이는 지렁이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소주로 입을 헹궈냈다.

 “자, 그럼 2라운드 돌아간다잉~~”

 봉감독이 다시 소주병을 돌렸다. 다들 침을 꼴깍 삼키며 테이블 위에서 회전하는 소주병의 향방에 집중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양미씨를 힐끗 쳐다봤다.

 ‘내가 왕이 되면 어쩌지? 양미씨랑 뽀뽀를...? 아냐, 그건 너무 노골적이야. 차라리 양미씨가 왕이 돼서 날 선택해주는 게...’

 이런 고민을 하던 즈음, 핑그르~ 돌던 소주병이 멈췄다.

 이런! 왕은... 또 봉감독님이다.

 “좋아, 이번에는... 2번, 4번!”

 앗! 내가 2번이고, 4번은 양미씨다. 드디어 우리 차롄가? 으흐흐...

 그때, 양미씨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봉감독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요, 감독님. 호호호...”

 “영화에 안 되는 게 어딨나? 자, 2번, 4번 준비하시고.”

 ‘이럴 줄 알았으면 가글이라도 챙겨올 걸...’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때, 봉감독이 꼼장어를 씹으며 말했다.

 “2번, 4번은... 계산해.”

 “에? 계산이요?”

 “여긴 니들이 쏴. 2차는 내가 책임진다. 이모! 여기 꼼장어 4인분 추가요!”

 ‘뭐야? 좋다 말았잖아!’

 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 주변이 갑자기 환해졌다. 어디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켰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문어준 대표의 머리가 포장마차 안으로 쑤욱 들어온 것이다.

 “어라, 왕문어가 도착하셨네? 잡아먹자!”

 봉감독이 장난치듯 문대표의 머리를 꽉 깨물었다. 그런데 문대표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왜 이리 심각해? 오다가 바지에 똥 쌌어?”

 “봉감독... 우리 이 영화 못 들어가게 생겼다.”

 “왜? 괴수가 한강에 빠져 죽었대? 푸하하하!”

 봉감독은 여전히 장난을 치며 문대표의 뒤통수를 두들겨댔다. 그러자 문대표가 진지한 눈으로 봉감독을 쳐다봤다.

 “CG고스트가 망했어.”

 순간, 봉감독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걔들이 왜 망해?”

 문대표가 테이블을 쾅! 치며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박대표가 부도내고 해외로 튀었어. 그 사기꾼 새끼가 내 돈 20억을 먹고 날랐다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봉감독은 차가운 눈으로 문대표를 쏘아보다 고개를 돌렸다.

 “여기 얼마죠?”

 “감독님, 여긴 제가...”

 “아냐, 오늘 회식은 여기까지만 하자.”

 봉감독은 지폐를 내려놓고 굳은 얼굴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문대표는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 연출팀 식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고, 꼼장어는 불판 위에서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난 재빨리 봉감독을 뒤따라 나갔다. 하지만 봉감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참...’

 

 ***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침묵이 회의실 공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우린 아무 말 없이 봉감독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때, 옆방에서 쾅! 소리와 함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 문어대가리야. 뇌는 찜 쪄서 국수 말아 먹었냐? 내가 그 돈으로 CG회사 하나 차리자고 했어, 안했어?”

 “니가 백두산만 고집 안했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 아냐!”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얘긴데!”

 “지난달 얘기다. 이 닭대가리야!”

 쾅! 퍽! 켁! 으악!

 제대로 한판 붙는 모양이다. 회의실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CG 고스트’는 영화 <괴수>의 컴퓨터그래픽을 맡은 회사다. 문어준 대표는 이미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계약금으로 지급했는데, 그 회사가 부도를 내고 튀어버린 것이다.

 어억...!

 옆방에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양미씨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무사하실 거예요.”

 “네...”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또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봉감독이 부러진 안경테를 한쪽 귀에 걸치며 들어왔다. 그리고 의자에 털썩 앉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사태가 그만큼 심각한 것이다.

 봉감독은 깨진 안경을 닦으며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영화는 스무고개 넘기다. 우린 지금 세 번째 고개에서 암벽을 만난거야. 하지만 난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까짓 암벽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다.”

 ‘스무고개 넘기’

 영화는 실제로 그렇다. 영화판에 돌아다니는 시나리오는 수천, 아니 수만 편이 넘는다. 그런데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1년에 겨우 백여 편. 즉, 대부분의 영화들이 제작 과정에서 갖가지 이유로 엎어진다. <괴수> 역시 그 위기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자, 이제 각자 생각을 얘기해보자. 조요한, 너라면 이 암벽을 어떻게 뛰어넘겠나?”

 훗! 웃음부터 나왔다. 난 이미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웨타로 가시죠?”

 “뭘 타?”

 “뉴질랜드의 웨타 스튜디오 말입니다. 반지의 대왕 만들었던 데.”

 원래, <괴수>의 CG는 ‘웨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었다. 그 과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결과적으론 그렇다. 난 이미 나와있는 결론을 해답으로 제시한 것이다.

 “웨타라... 걔들이 좀 끄적거리긴 하는데, 일당이 비싸. 우리 예산으로 무리야. 다음!”

 이런... 한방에 까이고 말았다. 난 순간 멘붕이 왔다. 과거가 꼬여버렸으니 뭐가 정답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때, 고릴라 조감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뭔데? 말해 봐.”

 “우리 영화에 꼭 CG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괴수는 어떻게 만들건데?”

 고릴라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탈을 쓰면 됩니다.”

 “탈?”

 “사람이 괴수 모양의 탈을 쓰고 연기하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오!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그럼 니가 괴수해라.”

 “제가요?”

 “넌 생긴 것부터 괴수잖아. 탈이 필요 없어.”

 고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감독님! 맡겨만 주시면 충정을 다 해서...”

 “닥치고 앉아!”

 고릴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때, 동훈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 닭대가리! 뭐 바삭한 아이디어라도 있나보지?”

 “있죠. 이거 어차피 돈 문제 아닙니까?”

 “맞아, 핵심은 돈이지.”

 “그럼 돈만 있으면 다 끝나는 거 아닙니까?”

 “맞아, 돈만 있으면 괴수 백 마리도 만들 수 있지.”

 동훈이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말했다.

 “카지노로 가시죠.”

 “카지노?”

 “영화는 어차피 도박입니다. 남은 제작비 털어서 카지노에 올인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그런데...

 짝! 짝! 짝!

 봉감독이 박수를 쳤다.

 “드디어 내 영화철학을 이해하는 녀석을 만났군. 안실장! 우리 제작비 얼마 남았지?”

 안병태 실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2억 정도...”

 “그렇게 많아? 그럼 열배만 튀기면 되겠구만.”

 동훈이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튀기는 건 제가 전문입니다. 바삭하게...”

 “좋아! 우린 지금 당장 카지노로 간다. 안실장, 제작비 현금으로 다 뽑아 와!”

 그때, 안실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됩니다!”

 “뭐가 안 돼?”

 “감독님에게 영화는 모험일지 몰라도, 저한테 영화는 철저한 계획이고 계산입니다. 제작비는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습니다.”

 “허투루?”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봉감독이 안실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문어대가리 오라 그래.”

 “문어대가리 와도 제 선에서 안 됩니다. 회계는 제 책임입니다.”

 지금 제작비를 놓고 창작자와 관리자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봉감독과 안실장의 눈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지며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봉감독이 입을 열었다.

 “안실장, 그렇게 안 봤는데 물건이네. 내가 훌륭한 제작실장을 만난 것 같아. 앞으로 크게 되겠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봉감독이 부러진 안경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역시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구만. 그럼 지금부터 내가 이 암벽을 어떻게 넘을지 계획을 얘기해주겠다.”

 감독님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 그럼 그렇지.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봉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괴수>를 웹소설로 쓸거다.”

 '웹소설?'

 “오래 걸리지 않는다. <괴수>는 한 달 안에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될 거고, 그럼 전 세계의 제작자들이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와서 제발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애걸복걸 하겠지.”

 아... 웹소설이라니? 이건 또 뭔 소리냐?

 “감독님,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닥쳐! 니가 영화에 대해 뭘 알아?”

 난 닥칠 수밖에 없었고, 봉감독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난 그 중에 제일 돈 많고, 말 잘 듣고, 멍청한 놈을 골라 엉덩이 툭툭 두드려주며 이렇게 말할 거다. 당신은 전 세계 70억 인구가 보는 단 한편의 영화에 제작자로 당첨되셨습니다. 가문의 영광인 줄 아세요.”

 봉감독은 카리스마 넘치는 눈길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제군들, 정상에서 다시 만나자.”

 봉감독이 쾅! 문을 닫으며 자신만만하게 나가버렸다.

 그 순간, 나를 비롯한 모든 스텝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영화, 엎어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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