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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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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오디션
작성일 : 20-09-02     조회 : 263     추천 : 1     분량 : 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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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수는 어리벙벙하게 눈을 깜박였다. 녀석의 멍청한 눈빛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라고?’

 봉감독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자기를 소개하는 건 표현의 기본이다. 개성 있게, 설득력 있게, 그리고 기억에 남게 한번 해봐.”

 봉감독의 무심한 목소리가 무거운 다그침으로 들려왔다.

 옆에 앉은 문어준 대표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디션 처음이시죠? 편하게 하세요. 심호흡 한번 하시고. 허허...”

 난감하다.

 그냥 생김새랑 움직임 몇 개 보여주려고 한건데. 이분들이 뭔가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하하... 얘가 로보트거든요. 자기소개 기능은 탑재하질 않아서...”

 “장난해?”

 봉감독이 매섭게 나를 쏘아보았다.

 “CG없이 간다면, 우린 전적으로 괴수의 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자기소개도 못하는 저 흉측한 인형을 데리고 영화를 찍으라구? 넌 관객이 우습냐?”

 하긴, 들어보니 맞는 말 같다.

 “괜히 시간낭비만 했군.”

 봉감독이 실망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어디선가 모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괴수입니다.”

 괴수가 자기소개를 시작한 것이다.

 문대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괴수가 말을 하네?”

 “얘가 인공지능이라서요. 그새 배웠나 봐요. 하하...”

 난 대충 얼버무리고는 재빨리 괴수에게 뛰어가 속삭였다.

 “야! 사람 말을 하면 어떡해? 자꾸 아마추어 티낼래?”

 괴수가 짜증난다는 눈으로 날 노려봤다.

 “자기소개 하래며? 저 안경 쓴 곰탱이 새끼 뭔데?”

 “저분이 봉만오 감독님이야. 널 캐스팅할 사람.”

 “아, 그래?”

 괴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봉감독을 눈여겨보았다.

 “무조건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해. 그래야 주인공 할 수 있다구.”

 “할 수 없지... 알겠어.”

 난 녀석을 토닥거리고는 자리로 돌아가 봉감독의 표정을 살폈다.

 봉감독은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생긴 건 조악하고, 목소린 나약해. 저거 불량품 아냐?”

 순간, 괴수의 눈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불량품’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다. 그때, 봉감독이 조롱 섞인 말투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에잇! 갖다 버려라.”

 “안 돼, 요샌 쓰레기 버리는 데도 돈 들어. 반품을 하던가...”

 문어준 대표가 내 눈치를 보며 얼버무렸다. 바로 그 순간,

 “크아악! 크악! 크아아악~~!”

 천둥같은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괴수가 갑자기 똥침맞은 야수처럼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끈적끈적한 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볼링공같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는 게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밀려왔다.

 

 쿵!

 이런! 문대표가 또 기절하고 말았다.

 “대표님! 정신 차리세요!”

 난 문대표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얼굴이 허옇게 뜨고 입에 거품을 문 게... 아무래도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감독님, 병원에...”

 그때, 봉감독이 문대표의 얼굴에 찬물을 쫘악! 끼얹었다. 그러자, 문대표가 번쩍 고개를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샤워 끝났어. 금방 갈게!”

 봉감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괴수를 보며 빙긋 웃었다.

 “흐음, 발성이 좋네. 공기 반 소리 반... 느낌 있어.”

 칭찬은 괴수도 웃게 한다지?

 녀석은 입을 헤벨쭉 벌리며 강아지같은 미소를 지었다.

 봉감독은 잠시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짓을 했다.

 “뒤로 돌아봐.”

 괴수는 봉감독의 손짓에 따라 뒤뚱뒤뚱 자세를 바꿨다.

 “으음... 피지컬이 밸런스가 안 맞네. 꼬리가 짧아.”

 그 순간, 괴수의 꼬리가 쑤욱 길어졌다. 그리고는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문대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거... 변신도 되나?”

 “네, 혹시 몰라서 옵션으로 넣어놨어요.”

 짝! 짝! 짝!

 봉감독이 흐뭇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브라보! 완벽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괴수야!”

 합격인가?

 그런데, 봉감독이 안경을 고쳐 쓰며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움직임이 쫌...”

 문대표가 봉감독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거기까지는 무리 아냐? 사람이 아니잖아.”

 “사람이건 괴수건 연기자인 건 똑같아. 기본을 무시할 수는 없어.”

 “하긴, 그러네.”

 문대표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지?’

 봉감독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춤 춰봐.”

 엥?

 괴수가 벙찐 표정으로 입을 턱 벌렸다.

 “연기의 기본은 움직임이다. 움직임이 유연하고 중심이 잡혀야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있지.”

 괴수는 어리벙벙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고개를 돌려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니가 알아서 해라.’

 그때, 문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악도 없이 어떻게 춤을 추나? 자, 여기.”

 문대표가 리모콘을 눌러 TV를 켰다. 벽에 걸린 대형 TV에서 5인조 여성 아이돌그룹이 섹시댄스를 추는 장면이 나왔다.괴수는 멍한 눈으로 TV를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직 상황파악 못하고 있는 거다. 봉감독이 그런 녀석을 보며 달래듯 말했다.

 “그냥 느낌 가는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순간, 괴수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뱀처럼 유연한 웨이브, 리듬을 털어주는 꺾기, 거기에 섹시한 골반댄스까지. 여성 아이돌그룹의 춤을 정확하게 따라하는 게 아닌가? 괴수의 춤이 어찌나 기괴하면서도 신이 나는지,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봉감독이 TV를 끄며 말했다.

 “오케이, 거기까지.”

 괴수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동작을 멈췄다.

 동시에, 문대표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오! 대단해! 이거 우리끼리만 보긴 아까운데? 하하하!”

 내가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자, 괴수가 꼬리로 물통을 빼앗아서 자기 입에 통째로 넣더니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크아~~!”

 괴수는 찌그러진 플라스틱 물통을 뱉어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봉감독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학습능력이 좋네. 좋은 배우가 되겠어.”

 괴수의 입가에 성취감의 미소가 흐뭇하게 번져나갔다.

 그때, 봉감독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말했다.

 “좋아, 그럼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시작하겠다.”

 본격적으로? 그럼 여태까지 한 건 뭔데?

 봉감독은 괴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신인이 하기에는 좀 어려운 건데... 될려나?”

 괴수가 헐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다.

 봉감독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문어대가리 먹어봐.”

 문대표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왜 이래?”

 “사람 잡아먹는 게 괴수 연기의 핵심이잖아!”

 “아니, 그건 CG로...”

 “CG 예산 니가 다 날려먹었잖아. 이 멍청아!”

 문대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문대표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어물쩍 말했다.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

 “난 감독이고, 요한이는 괴수의 주인이야. 영화를 찍을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지.”

 “하... 하지만...”

 쿵! 쿵! 쿵!

 괴수가 다가왔다.

 끈적끈적한 침을 뚝뚝 흘리며, 낮은 숨소리로 크르렁거렸다.

 문대표는 기겁을 하며 뒷걸음 쳤다.

 “저리가! 저리가, 임마!”

 그때, 봉감독의 눈이 흥분에 들떠 반짝였다.

 “레디... 액숀!”

 “크아~~!”

 괴수가 입을 쩍 벌리며 문대표에게 달려들었다.

 ‘앗! 저건 연기가 아니다. 진짜로 먹으려는 거다!’

 “안 돼!”

 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늦었다!

 문대표의 동그란 머리가 괴수의 입 속으로 한 번에 쑤욱 빨려들어간 것이다.

 “으아악!”

 단말마 비명소리와 함께, 괴수는 문대표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난 눈앞에서 펼쳐진 살육의 광경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대표의 가슴팍이 괴수의 입 속으로 막 들어갈 무렵... 봉감독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컷! 오케이!”

 그 순간, 괴수가 마네킹처럼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돌려 봉감독을 쳐다봤다.

 “아주 좋았어. 합격이야.”

 “크아아~~~!”

 괴수는 문대표를 뱉어내고는 기쁨의 함성을 질러댔다.

 난 재빨리 뛰어가 문대표가 무사한지부터 확인했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탁! 문대표가 내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솔직히 말해. 저건 로봇이 아냐!”

 아... 들켰다.

 하긴, 괴수의 배속까지 들여다봤으니 로봇이 아니란 것쯤은 눈치 챘겠지. 난 재빨리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대표님, 그게......”

 “저건, 예술이야!”

 문어준 대표는 그 말을 끝으로 털썩 기절해버렸다.

 난 괴수의 침으로 범벅이 된 문대표의 얼굴에 조용히 손수건을 덮어주었고, 봉감독은 한껏 달아오른 흥분을 가라앉히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방금 건 아주 좋았어.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

 괴수는 숨을 헐떡거리며 비장한 눈으로 봉감독을 바라봤다. 사람까지 삼켜본 이상, 두려울 게 없다는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봉감독은 슬로우모션으로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왜... 배우가... 되려... 하는가?”

 엥? 뭥미?

 괴수의 눈빛이 이내 멍해졌다.

 나도 이 질문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봉감독이 책상을 쾅! 치며 다그치듯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난 신념과 철학이 없는 배우하고는 일하지 않아! 도대체 배우를 하겠다는 이유가 뭐야?”

 괴수는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봉감독이 경멸에 가득 찬 눈으로 괴수를 쏘아보며 독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흥!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거겠지. 고민도 없고, 이유도 모른 채, 마냥 인기만 얻고 싶은 거겠지. 너같이 연예인병 걸린 놈들을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 썩은 고깃덩어리... 넌 배우가 아냐. 악취만 풍기는 썩은 고깃덩어리야!”

 그 순간, 괴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이, 짱 나서 못해먹겠네. 니가 감독이면 다야? 야이... 골룸똥구녕에서기어나온조카신발끈같은새끼손가락처먹다시베리안허스키한테잡아먹혀버러지만도못한배불뚝이오크세발가락 XXXXX........"

 아! 이건 이 세상 욕이 아니다. 욕지옥에서 욕대결로 1등 먹은 괴수의 처절한 욕절규다. 귀에서 피가 난다. 고막이 터질 것 같다.

 “그만! 제발 그만!”

 나는 귀를 틀어막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삐이~~~ 이명이 잦아들며 사방이 정적에 휩싸였다.

 괴수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대며 봉감독을 노려보고 있었고, 봉감독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깜박이며 안경을 벗었다.

 난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파국이다!’

 잠시 후, 봉감독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내 평생 들었던 것 중에 가장 솔직하고 명쾌한 답이었어.”

 봉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뚜벅뚜벅 밖으로 나가버렸다.

 괴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뭐야?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난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한 녀석이 원망스러웠다.

 “이 바보야. 넌......”

 그때, 봉감독이 문을 쾅! 열고 들어와 괴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너야!”

 그 순간, 괴수의 눈에서 타조 똥같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러더니 쿵쾅거리며 뛰어가 봉감독을 덥썩 껴안았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이 영화에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어디 숨어있다 이제 온 거야? 내가 너같은 배우를 만나려고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이 바보 녀석아!”

 괴수와 봉감독은 서로를 뜨겁게 부둥켜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난 그 희한한 광경을 보며 허탈한 미소가 나왔다.

 어쨌건... 이로써... <괴수>가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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