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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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귀신을 보았다
작성일 : 20-09-02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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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만오 감독이 괴수를 자상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괴수는 눈에 한가득 고인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카이저요.”

 “음... 요한아, 뭐 괜찮은 이름 없을까?”

 “글쎄요, 전 카이저 좋은데요?”

 “아냐, 전 세계 70억 인구가 보게 될 영환데, 주인공 이름이 글로벌해야 되지 않겠어?”

 봉감독은 주변을 서성거리며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괴수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름은 왜?”

 “원래 스타들은 다 가명을 써. 그래야 인기가 더 많아져.”

 “아, 가명? 하긴, 그게 필요하긴 하지.”

 그때, 봉감독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생각났다!”

 “뭔데요?”

 “너의 이름은... 한강이야.”

 “한강이?”

 괴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 노려봤다. 이름이 맘에 안 드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한강이는 너무 토속적이잖아요. 이름이 글로벌해야 된다면서요?”

 “흥,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 이 영화를 통해 한강은 전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거야. 한국어는 지구 공통어가 될 거고. 따라서, 한강이보다 더 글로벌한 이름은 없지.”

 또 앞서가시네...

 난 고개를 갸웃하며 괴수에게 물었다.

 “카이저, 니 생각은 어때?”

 “카이저가 누군데? 나 한강이야.”

 괴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봉감독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감독님, 짱!”

 “역쉬! 감이 있는 배우로군. 좋아, 나만 믿고 따라와. 한강이 널 글로벌 스타로 만들어 줄 거니까. 으하하!”

 봉감독님과 괴수... 아니, 한강이는 서로를 껴안으며 깔깔 웃어댔다. 감독과 배우가 하나 된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질투도 나고 또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천만관객을 넘어 진짜 글로벌 흥행영화가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때, 안병태 실장이 다급하게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투자사에서 당장 들어오랍니다.”

 “뭐?”

 기절해있던 문어준 대표가 벌떡 일어났다.

 “투자사에서 갑자기 왜?”

 “CG예산 날려먹은 것 때문에... 향후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당황한 문대표가 봉감독의 손을 붙잡았다.

 “봉감독, 가자.”

 “내가 왜?”

 “감독이 직접 설명해줘야 될 거 아냐?”

 “그럼 지들이 와야지. 어디서 거장을 오라가라야?”

 봉감독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요한아, 니가 가라.”

 “제가요?”

 “우리 영화에 대해서는 니가 제일 잘 알잖아. 시나리오도 니가 썼고, 한강이도 니가 데려왔고.”

 “하지만...”

 “너 어차피 감독 데뷔하려면 투자사랑 안면 터야 돼. 가서 그놈들 코빼기 좀 눌러주고 와.”

 맞는 말이다.

 영화는 어차피 투자 싸움이다. 때문에 신인 감독들은 투자사와 안면을 트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봉감독님이 내게 그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난 자신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잘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문대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봉감독을 쳐다봤다.

 “안 돼, 오유미 성격 알잖아?”

 “유미?”

 순간, 봉감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걔 생각하니까 속이 다 뒤집힐라 그러네. 에잇, 쭈꾸미 볶음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한강아, 너 쭈꾸미 좋아하냐?”

 “없어서 못 먹죠. 머리 똥그란 애들은 다 좋아해요.”

 한강이가 문대표의 머리통을 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문대표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 쳤다.

 “어어... 왜 이래, 또?”

 한강이가 문대표에게 다가서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이게 한번 맛을 보니까, 자꾸 생각난단 말이야.”

 “오... 오지 마. 오지 마! 으악!”

 문대표는 행여나 잡아먹힐까봐 부리나케 도망치고 말았다.

 안병태 실장이 재빨리 서류를 챙기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오시죠. 이러다 늦겠습니다.”

 

 ***

 

 <뉴턴 엔터테인먼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서 거대한 LED 불빛이 총천연색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난 호화로운 환영인사가 왠지 반갑지 않았다. 창작자를 기죽이려는 돈 많은 투자사의 허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흥! 겨우 이까짓 거 같고? 나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이야!’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복도로 들어섰다. 그 순간,

 “뜨악!”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길게 뻗은 레드카펫 복도 양쪽으로 으리으리한 대리석 조각상이 줄지어 서있고, 천장에서는 유명한 영화의 장면들이 LED 입체영상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복도 곳곳에 영화소품과 의상, 카메라들이 세련된 배열로 전시되어있다. 이건 마치 최고급 영화박물관에 들어온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쪼그라들며 걸음이 느려지고 말았다.

 문대표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쫄 거 없어. 얘들 돈지랄 해봤자, 나한테 쪽도 못써.”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천재작가는 그냥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면 돼. 허허...”

 문대표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안병태 실장이 내 옆으로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입니다. 오유미 팀장이 각오 단단히 하라고 했는데...”

 “그게 누군데요?”

 “뉴턴 엔터테인먼트 투자 총괄인데요. 별명이 얼음귀신이에요.”

 “얼음귀신?”

 “한방에 다 얼려버립니다. 피도 눈물도 없어요. 후......”

 안병태 실장이 길게 심호흡을 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실장이 저렇게 긴장하는 모습은 처음이다. 확실히 뭔가 있긴 있나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사람의 속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악마의 눈을 가졌으니. 후훗!

 

 ***

 

 길쭉한 회의테이블에는 멍청한 표정의 고봉수 본부장과 이지적인 느낌의 오유미 팀장이 앉아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하하하!”

 문대표가 활짝 웃으며 다가섰다. 그런데, 오유미 팀장은 문대표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으세요.”

 널찍한 회의실에 갑자기 얼음물을 끼얹은 것 같은 냉기가 흘렀다.

 우린 교무실에 끌려온 학생처럼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난 서류를 뒤적거리는 오유미 팀장을 보며 내심 놀랐다.

 광택이 흐르는 갈색 단발머리, 몸에 착 달라붙은 깔끔한 정장,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적인 미모에 각진 뿔테안경까지. 드라마에서 봤던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 그대로다.

 ‘와우! 엄청난 미인인데?’

 그 순간, 오유미 팀장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이때다!

 난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이런! 오유미 팀장이 이내 고개를 숙이더니 서류를 뒤적거린다.

 “처음 본 분이 계시네? 성함이... 조요한 작가님?”

 “네...”

 “감독은 어딜 가고 이런 자리에 작가가 왔어요?”

 “아, 그게...”

 안병태 실장이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봉감독님은 지금 연출 구상중이라 못 오셨습니다. 오팀장님께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인간이 내 안부 궁금할 리가 없잖아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죄... 죄송합니다.”

 와! 엄청난 카리스마다. 단 몇 마디로 우리 세 사람 모두를 압도해버렸다. 이대로라면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고, 결국 영화의 운명은 투자사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무당눈깔 문어준이 있다. 업계 30년 경력의 고독한 승부사, 그는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궁금해하며 옆을 봤는데...

 ‘이런! 꾸벅꾸벅 졸고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유미 팀장은 문대표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서류만 보며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계약서 28조 3항, 을의 과실로 영화제작이 중단될 경우, 갑에게 손해배상과 함께, 투자금의 세배를 돌려줘야 한다. 보이시죠?”

 안병태 실장이 침착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영화제작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CG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제작비의 일부가 손실 처리되기는 했지만, 그건 소송으로 돌려받을 거고...”

 “그게 그거죠. CG없이 이 영화 어떻게 만들 건데요?”

 오유미 팀장이 냉랭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그러자, 안실장이 주춤하며 나를 쳐다봤다.

 “자세한 계획은 조요한 작가님께서 말씀해주실 겁니다.”

 ‘헉! 내가?’

 안실장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는 작가님이 끌고 가셔야 합니다. 우리 영화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니까요.”

 하긴, 그렇다. 내가 이 자리에 온 이유가 그거니까.

 난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괴수는... 로보트로 만들었습니다.”

 “로봇?”

 “미국 나사에 우리 큰아버지가 계시는데... 괴수 로봇을 만들어서 얼마 전에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요? 그래서 지금 그 로봇은 어디 있는데요?”

 “봉감독님이랑 쭈꾸미 먹고 있습니다.”

 ‘아차! 입이 방정이다. 증말...’

 순간, 오유미 팀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쭈꾸미? 문대표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문대표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대답했다.

 “봉감독이 워낙 쭈꾸미를 좋아해서. 게다가 요즘이 쭈꾸미 철이야. 이때를 놓치면 신선하고 알이 꽉 찬 쭈꾸미는 먹을 수 없거든.”

 그때, 맞은편의 고봉수 본부장이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하려고 했다.

 “어딥니까? 그 쭈꾸미집이?”

 “회의 끝나고 같이 가시죠.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하하하!”

 오유미 팀장이 책상을 쾅! 치며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장난해요? 일을 이런 식으로 하니까 영화가 이 꼴이 되는 거 아닙니까?”

 “미안해. 알이 꽉 찼다고 해서....”

 고봉수 본부장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오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사람만 믿고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지금은 철저한 기획과 관리를 통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는 계산이 아니라 꿈이야. 꿈은 사람이 꾸는 거고. 사람한테 투자해야 그들의 꿈이 더 크게 빛나지 않겠나?”

 문대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다.

 ‘아! 영화에 대한 철학이 있는 분이구나.’

 새삼 문어준 대표가 존경스러웠다.

 오팀장도 설득이 된 걸까? 그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좋습니다. 그럼 그 꿈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제안 드리죠.”

 “뭐든지 환영일세.”

 “제작사를 바꾸겠습니다.”

 “아니, 그건...”

 “사람이 중요하다면서요? 대표님을 제외한 모든 스텝들의 고용을 보장하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추가계약도 가능하구요. 자, 이제 결정하시죠. 제작사 변경에 동의하던지, 아니면 법적 절차를 밟던지.”

 “끄응...”

 문대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건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걸 알아챘는지, 오유미 팀장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피어났다.

 문대표는 잠시 고민하더니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그렇게는 안 됩니다!”

 난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나 소리쳤다.

 오유미 팀장이 거만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작가님하고는 따로 계약할 거니까 조용히 입 다물고 앉으세요.”

 ‘뭐? 돈이면 단 줄 알아?’

 난 오유미 팀장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잠시 후, 상태창이 켜졌다.

 

 <오유미>

 역할 : 투자 전문가

 분석력 : ★★★★★

 설득력 : ★★★★★★

 실행력 : ★★★★★

 특성 : 끝없는 야망.

 약점 : 겁이 많음. 내면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더 냉철하고 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음.

 

 ‘흥, 겁쟁이 주제에 일부러 센 척 하고 있었던 거로군. 그럼 오늘 아주 무서워서 바닥을 기게 만들어주지.’

 난 재빨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버튼을 눌렀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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