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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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가 춤 춘다!
작성일 : 20-09-02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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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괴수 ‘한강이’는 보이지 않았다.

 카이저도 보이지 않았다.

 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카이저! 어딨어?”

 내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다 이내 사라져버렸다.

 ‘이런! 어떻게 된거야?’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맞은편을 쳐다봤다.

 정지된 시간 속에, 고봉수 본부장과 오유미 팀장이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마네킹같은 자세로 앉아있다.

 그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카이저가 오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어떻게 다시 움직이지?’

 시간을 움직이는 건 카이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난 정지된 시간 속에 이대로 갇혀버린 것 아닌가?

 “으악! 큰일이다!”

 난 카메라를 이리저리 흔들어보았다. 조리개도 돌려보고, 이것저것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그때, 어디선가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카메라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했잖아...”

 탁상시계 형태의 카이저가 내 발밑에 탈진한 상태로 쓰러져있다.

 ‘휴...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카이저를 재빨리 안아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카이저가 몸서리 치며 말했다.

 “으으...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지.”

 “무슨? 감독님하고 쭈꾸미 먹으러 갔던 거 아냐?”

 순간, 카이저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쭈꾸미는 개뿔! 골방에 가둬놓고 연기 연습 시키더라. 발성훈련에, 자세, 표정, 동작... 완전 똥개 훈련 당하다 왔음.”

 “아, 그랬구나. 그래서 이렇게 힘이 다 빠진 거구나.”

 “암튼 탈출시켜줘서 고마워. 나 좀 쉴게...”

 카이저는 엉금엉금 기어서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난 재빨리 녀석의 다리를 붙잡았다.

 “잠깐! 나 좀 도와줘”

 “뭘 또? 썅!”

 카이저가 죽일 듯 노려보며 발길질을 해댔다.

 난 맞은편의 오유미 팀장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한강이 보고 싶대. 괴수로 변한 모습을 한번만 보여줘.”

 “됐다고! 안한다고!”

 “그럼 계약 위반 아냐? 나 감독으로 성공할 때까지 뭐든지 다 도와주기로 했잖아?”

 “니가 감독할 거 아니잖아? 감독 데뷔할 때 얘기해.”

 “감독 데뷔하려면 꼭 필요한 단계야. 니 도움이 필요해. 제발...”

 최대한 간절하고 처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감정이입이 제대로 됐는지, 울컥하며 눈물까지 배어나왔다.

 카이저는 그런 내 얼굴을 한참 째려보더니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괴수로 변신만 하면 되는 거야?”

 “응, 그거면 충분해.”

 “딴 건 시키지 마. 그럼 나 진짜로 화낸다. 내 성질 알지?”

 “알다마다.”

 “에휴... 이게 뭔 고생이냐? 쓰리, 투, 원...”

 

 펑!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괴수, ‘한강이’가 책상에 걸터앉은 채, 오유미 팀장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잠시 후,

 “꺄아악~~!”

 “으아악~~!”

 오유미 팀장과 고봉수 본부장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고봉수 본부장은 의자를 넘어뜨리며 벌렁 자빠지고, 얼굴이 사색이 된 오유미 팀장은 온몸을 벌벌 떨며 꼼짝도 하지 못한다.

 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한강이를 가리켰다.

 “우리의 괴수, 한강이를 소개합니다!”

 한강이가 거만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와썹!”

 오유미 팀장이 겁먹은 얼굴로 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저... 저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죠?”

 “아, 그게... 순간이동...”

 “순간이동?”

 그래, 순간이동은 너무 나간 거다. 좀 더 현실적인 대답이 필요하다.

 “좀 전에 퀵서비스로 도착했어요.”

 “퀵서비스?”

 오유미 팀장이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그때, 바닥에 엎드려있던 고봉수 본부장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근데, 저거 고장 난 것 같은데...”

 한강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늘어뜨리며 자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게, 진짜 고장 난 로보트같다.

 아니나 다를까? 오유미팀장이 이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딱 보니까 애들 놀이동산에나 갖다놓으면 되겠네요. 저런 모조품을 가지고 어떻게 영화를 찍겠다는 겁니까?”

 “잠시만요.”

 난 재빨리 한강이를 흔들어 깨웠다.

 “한강아, 일어나. 웨이크 업!”

 하지만 녀석은 진짜 죽은 것처럼 고개를 늘어뜨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문어준 대표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왜 이러는 거래?”

 “봉감독님한테 연기훈련 받다가 왔대요.”

 “아! 그 지옥의 연기교실? 그거 한 시간 받으면 다들 탈진해서 쓰러지지. 쯔쯔...”

 “어떡하죠? 빨리 깨워야 되는데...”

 그때, 오유미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 <괴수>건은 법적으로 처리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회의 이만 끝내죠.”

 “잠시만요! 밧데리만 갈아 끼우면 됩니다.”

 “됐거든요? 저 흉측한 물건 빨리 치우세요.”

 그때, 고봉수 본부장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밧데리만 갈면 된대잖아. 잠깐 기다려보지, 뭐.”

 오유미 팀장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좋아요, 1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강이의 눈꺼풀을 조심스레 뒤집어보았다.

 녀석의 커다란 흰자위가 꿈틀하는 게 보였다.

 ‘이 놈... 안자고 있는 것 같은데?’

 휴대폰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봉감독님한테 잠자는 연기도 배웠나보지?”

 순간, 한강이의 한쪽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런 얍삽한 녀석!’

 난 휴대폰을 한강이 코앞에 들이밀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근데 아직 어설퍼. 봉감독님한테 연락해서 연습 더 시키라고 해야겠다. 아주 많이.”

 휴대폰 볼륨을 한껏 올리고 버튼을 꾹꾹 눌렀다.

 “감독님! 한강이 저랑 같이 있는데요. 얘 연기가 아직...”

 탁!

 한강이가 내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슬며시 눈을 떴다.

 “죽고 싶냐?”

 “죽으면 지옥밖에 더 가겠냐?”

 난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강이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녀석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기지개를 켰다.

 “아우! 피곤해. 그래, 뭐하면 되는데? 뭐? 뭐?”

 씨익 웃으며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댄스타임.”

 “댄스?”

 동시에, 휴대폰에서 여성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빠져빠져빠져 네게 빠져~ ♬ 좋아좋아좋아 너만 좋아~

 한강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마디 했다.

 “노래가 좋아서 하는 거야.”

 그리고 녀석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그새 한강이의 춤 실력이 늘었다!

 수천 개의 관절이 물결처럼 꺾이는 팝핀댄스, 꼬리를 이용한 힙합 백덤블링, 그리고 헤드스핀에 풍차돌리기까지. 고난이도의 동작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야말로 댄스괴수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한강이는 꼬리로 몸을 지탱하는 공중부양 자세로 화려한 비보잉을 마무리했다.

 “프리즈!”

 한강이의 저 세상급 텐션이 뿜뿜 뿜어나오는 순간이었다.

 쿵!

 고봉수 본부장이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기절해버렸다.

 ‘흥, 기절 안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오팀장은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그녀의 영혼이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 같다.

 난 별거 아니란 투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됐죠?”

 “저... 저게 로봇이라구요?”

 “네, 한강이는 미국 나사에서 개발한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으로서...”

 그때, 한강이가 발가락으로 내 등을 콕 찔렀다.

 “됐지? 나 이제 간다잉...”

 “아직 안 돼. 잠깐만 기다려!”

 붙잡을 새도 없이 한강이는 연기처럼 사라지며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순간,

 “꺄아아아아악!”

 오유미 팀장이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마치 정신 나간 여자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팀장님, 진정하세요.”

 “저리 가! 저리 가!”

 오팀장은 귀신 보고 놀란 표정으로 허겁지겁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난 재빨리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

 “많이 놀라셨죠? 저거 홀로그램이에요.”

 “홀로그램?”

 “네, 우린 첨단로봇공학과 홀로그램 입체영상을 결합해서 전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괴수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느는구나? 이번엔 좀 설득력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오유미 팀장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물었다.

 “저런 기술은... 도대체 누가 개발한 거예요?”

 “저희 큰아버지요.”

 그때, 문대표가 나서며 한수 거들었다.

 “아까 말했잖아. 천재 작가에 천재 과학자에... 집안이 온통 천재야. 허허허...”

 오유미 팀장이 날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조요한 작가님, 시나리오 써 놓은 거 있죠?”

 “엄청 많죠.”

 “저희랑 계약하시죠. 원하는 조건, 금액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엥! 계약? 심지어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하... 하지만, 제가 감독으로 데뷔하려고 쓴 거라...”

 “그럼 감독 하세요.”

 “네?”

 “당신같이 뛰어난 사람이 왜 남 밑에서 고생을 합니까? 바로 감독 데뷔하시죠. 모든 걸 다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앗! 이럼 얘기가 달라진다!

 이 완벽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봉만오 감독 밑에서 노하우를 배우긴 해야 하는데... 아냐, 더 이상 학습은 필요없어... 아냐, 섣불리 데뷔했다 실패하면...’

 난 길게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렸다.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충분히 검토 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언제쯤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오팀장님께서 영화를 돈으로만 생각하지 않으실 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꿈과 가능성을 보는 안목을 가졌을 때, 그때 답변 드리겠습니다.”

 오유미 팀장은 놀란 눈으로 날 한참 쳐다봤다. 그리고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감독이네.”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오유미’가 ‘조요한’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오유미’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 변화로 인해 향후 ‘오유미’의 역할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오유미 팀장은 이내 냉정한 표정을 짓고는 문대표에게 다가갔다.

 “대표님,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어떻게...?”

 “영화 <괴수>는 저희 뉴턴에서 전액 투자하겠습니다.”

 “저.. 전액을? 100억이 넘을 텐데?”

 문대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오유미 팀장은 나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요한 작가님, 아니 조요한 감독님의 데뷔작은 저희랑 같이 하는 걸로 해 주시죠.”

 “그건 나중에 따로 얘기하시는 게...”

 “아뇨, 지금 약속해주세요.”

 오유미 팀장은 단호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의 꿈과 가능성을 볼 줄 아는 사람... 저도 지금부터 그런 제작자가 되보려고 합니다. 저한테 기회를 주시죠.”

 그때, 문어준 대표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한다고 해. 한다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조요한 감독님.”

 오유미 팀장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깊은 눈동자가 맑게 빛나고 있었다.

 난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조요한’의 경험치가 축적되었습니다.]

 [‘조요한’의 리더쉽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리더쉽 : ★★★ → ★★★★]

 

 그리고,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괴수가 한강에서 출현하는 광경이 떠오르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한강변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거대한 환호와 박수소리가 밀려왔다.

 “와아아아~~~!”

 그건, 영화감독으로 향하는 내 미래의 스타트를 알리는 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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