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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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를 부탁해 (1)
작성일 : 20-09-02     조회 : 266     추천 : 1     분량 : 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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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승진하셨나 봐요.”

 “아뇨, 뉴턴은 그만 뒀습니다. 집 팔고 대출 받아서 제가 회사 차렸어요. 저도 영화 제작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미래가 보장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꿈을 택하다니... 이분도 역시 타고난 영화인이다.

 오유미 대표가 샴페인 잔을 입에 슬쩍 가져다대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얘기 좀 해보죠?”

 “우리 얘기요?”

 “감독님 데뷔작 저랑 하기로 약속했잖아요. 설마 잊으신 건 아니죠?”

 오유미 대표의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난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감독님하고 꼭 영화를 같이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있어요.”

 오유미 대표가 내 뒤쪽을 가리켰다.

 “아! 저기 오네요.”

 뒤를 돌아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여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전시연이다!’

 붉은 파티드레스를 입은 배우 전시연이 도도하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사뿐사뿐 걸어온다. 난 온몸에서 아우라를 뿜어내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양팔을 벌려 날 껴안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헉! 이렇게 황송할 수가...’

 난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팔을 벌려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그 순간!

 “언니! 한참 찾았잖아.”

 전시연은 날 지나치며 오유미 대표와 포옹을 했다.

 뻘춤해진 나는 한껏 벌린 양팔을 수습하기 위해 허공에 대고 박수를 쳤다.

 “야! 별이 예쁘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다행히도 오유미 대표가 내 어색한 1인극을 얼른 끝내주었다.

 “인사해. 내가 말했던 조요한 감독님이야.”

 “시연씨,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

 “푸흐흡...!”

 전시연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느라 눈을 질끈 감는 게, 말 안 해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냥 크게 웃으세요.”

 “푸하하하하!”

 시원한 웃음소리가 왈츠 음악처럼 신나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환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참을 웃던 전시연이 숨을 들이키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드려요. 네티즌이 뽑은 역대 수상소감 1위 차지하셨어요.”

 “가문의 영광이네요. 하하...”

 나는 악수를 하며 그녀의 초승달같은 눈 속으로 빠져들었다.

 배우 전시연. 10대 시절 친구 따라 오디션 갔다가 5천대 1이라는 경쟁을 뚫고 한방에 주연배우로 발탁된 깜짝 신화의 주인공. 영화 <엽기적인 떡볶이>로 국민여동생으로 발돋움, 이후 10년 동안 영화, 드라마, CF를 종횡무진하며 흥행의 여왕으로 등극.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최고의 여배우.

 난 지금 그런 슈퍼스타와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으하하!

 “손아귀 힘이 세시네요. 운동 하셨나?”

 “아... 죄송합니다.”

 난 재빨리 그녀의 손을 놓고 허리를 굽혔다.

 그때, 오유미 대표가 내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말했다.

 “감독님 데뷔작, 나랑 같이 하기로 했어.”

 “어머, 잘됐다. 무슨 내용인데요?”

 전시연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흐흠, 그게... 무협액션...!”

 그 순간, 오유미 대표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멜로... 하나 준비하고 있어.”

 순간, 전시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진짜? 왜 말 안했어?”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갑자기 별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감독님, 저 시나리오 한번만 볼 수 있을까요?”

 “아... 그게......”

 그때, 봉만오 감독이 성킁성큼 다가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 시연아, 축하한다. 너 살쪘다.”

 “감독님도 축하드려요. 살찐 괴수가 온줄 알았어요. 호호호!”

 “그게 내 매력이지. 출렁이는 뱃살. 하하하!”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오유미 대표가 날 잡아끌며 귓속말을 했다.

 “시연이 당분간 액션은 안하기로 했어요. 저번에 사극 찍다가 다리를 다쳐서.”

 “아, 그렇군요.”

 “시연이가 요즘 찐한 멜로를 찾고 있거든요. 감독님, 시나리오 중에 멜로 있어요?

 “네, 있죠.”

 사실은 없다.

 하지만 전시연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오유미 대표가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오유미 대표는 고개를 돌려 전시연을 향해 활짝 웃었다.

 “시연아, 그럼 시나리오는 언제쯤 보내줄까?”

 “나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감독님은 언제가 편하세요?”

 “그게... 예전에 쓴 거라 좀 고쳐야 돼서요.”

 그때, 봉감독이 또 끼어들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오래 안 걸릴거야. 얘, 괴수 시나리오도 사흘 만에 썼거든.”

 “정말요? 와! 진짜 천재시구나. 그럼, 사흘 뒤에는 볼 수 있는 거네요. 그쵸?”

 전시연이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영롱한 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 취하고 말았다.

 “네...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

 

 큰일이다!

 연애도 한번 못 해본 내가 멜로 시나리오를 사흘 안에 써야하다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일단 뭐라도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나마 연애를 많이 해봤을 것 같은 놈을 찾아갔다.

 “어디서 자랑질이야? 쳇!”

 동훈이가 날 시큰둥하게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녀석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호소했다.

 “나 급해. 너 여자랑 사귀어봤을 거 아냐? 말해줘,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어?”

 “하! 이 양반이 우사인 볼트한테 걸음마 가르쳐달라고 하네? 좋아, 자세 똑바로 하고 잘 들어.”

 난 재빨리 차렷 자세를 취하며 동훈이의 가르침에 집중했다.

 “맘에 드는 애가 보인다? 일단 다가가. 그리고 손을 딱 잡아.”

 “바로 잡아? 초면에?”

 “초면이니까 잡지. 구면이면 뽀뽀했지.”

 “아...”

 “손을 꽉 잡은 다음에... 그냥 달려.”

 “달려? 왜?”

 “그게 핵심이야! 궁금하거든? 이 놈 누구야? 나한테 왜 이래? 신경 쓸 거 없어. 뒤도 보지 말고 무조건 손잡고 뛰는거야. 아주 그냥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막 뛰어!”

 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무 함축적인데?”

 “그게 핵심이야! 궁금하거든? 이 미친놈은 누구지? 막 얼굴 보고 싶어서 미치고 환장하거든? 그때! 딱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동훈이가 무릎을 털썩 꿇으며 느끼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당신과 함께 지구 끝까지 달리고 싶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손을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또 뭔가 설득이 되려고 한다.

 그런데, 이거 어디선가 본 장면 같다.

 “이거 무슨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그럴거야, 아마.”

 “뭐야? 너도 연애 안 해본거야?”

 동훈이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꼭 해봐야 아냐? 어차피 영화에 다 나와 있어. 그냥 성공한 영화에서 따와서 섞어. 키스 몰라? 들어왔다 나갔다 막 비비라고. 그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거야. 오케이?”

 아... 또 설득이 되려고 한다.

 그래, 성공한 영화라... 내가 죽기 전에 성공한 멜로영화가 뭐였지?

 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한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 그거다!”

 “그거 맞다니까. 가서 얼른 써.”

 “고마워. 나중에 술 살게.”

 난 동훈이를 꽉 안아주고 재빨리 집으로 뛰어갔다.

 이미 성공한 영화, 나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영화.

 내가 <괴수>를 사흘 만에 썼듯이,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 된다!

 

 ***

 

 탁탁탁! 탁탁탁탁!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빛의 속도로 날아다닌다.

 지금 난 2000년대 최고의 멜로영화 시놉시스를 작성 중이다.

 

 <식물학 개론>

 ‘식물원으로 첫사랑을 찾아온 서연, 결혼을 앞둔 승민에게 자신의 집 앞마당 조경을 부탁하며 사건은 시작된다. 함께 잔디를 깎으며 어쩌면 사랑이었을지 모르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고.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내가 죽기 전 가장 흥행한 멜로 영화.

 ‘당신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습니다.’ 라는 유명한 카피를 남기며 전국적인 ‘첫사랑 찾기’ 운동을 불러일으킨 불후의 명작.

 <식물학 개론>이 바로 내 데뷔작이 되는 것이다. 으흐흐...

 난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시나리오를 쓸 차례다.

 난 천천히 감정을 조절해가며 안단테의 속도로 키보드를 눌렀다.

 ‘한 여인이 푸른 초목이 가득한 식물원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아련한 눈빛...’

 어느새 손가락이 빨라진다.

 남녀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이제 막 키스를 하려고 한다. 숨이 가빠지며,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난 지금 이 완벽한 사랑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탁탁탁! 탁탁탁탁!

 사흘밤낮을 쉬지 않고 시나리오만 썼다.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도 없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첫사랑의 아련한 감정에 빠져들었고, 남녀 주인공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싸우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눈물마저 펑펑 쏟아냈다.

 ‘시나리오는 완벽하다!’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며 이메일 전송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침대에 벌렁 누워 눈을 감았다.

 차곡차곡 쌓여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 순간, 어디선가 향긋한 꽃향기가 올라오며, 눈앞으로 붉은 꽃이 가득한 정원이 펼쳐졌다.

 전시연이 식물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난 히아신스에 물을 주다 문득 뒤돌아본다.

 그녀가 천사같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사뿐사뿐 발걸음 하나하나에 작은 멜로디가 흐르고.

 우린 아련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마침내, 그녀가 내 품에 안기는 순간...

 띠리리리리~~~

 전화벨이 울린다.

 “으악! 어떤 놈이야? 전시연 꿈꾸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아!”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 못하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오유미 대표다.

 “네... 대표님.”

 “감독님, 주무셨어요?”

 “네...”

 “아, 죄송해요. 보내주신 시나리오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시연이한테 바로 보냈는데...”

 갑자기 잠이 확 깬다!

 “시연씨가 뭐래요? 좋대요? 싫대요? 한 대요? 안 한 대요?”

 “우선 만나자고 하네요. 저녁에 시간 되세요?”

 “네, 24시간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그럼, 저녁 7시에 그랜드 호텔 커피숍에서 봬요.”

 “네, 이따 봬요.”

 난 전화를 끊고 벌떡 일어나 거울을 봤다.

 피곤에 찌든 깡마른 원시인이 쾡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런데, 그 원시인이 흐물쩍 웃음을 짓는다.

 ‘전시연이 내 첫 영화의 주인공이다.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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