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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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그녀 (2)
작성일 : 20-09-02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4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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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전시연이 말을 멈췄다.

 사감선생님이 간식거리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고 내 옆에 앉았다.

 “큰 소리 내서 죄송합니다. 지금부턴 저랑 얘기하시죠.”

 “그런데 누구신지...?”

 “제 소개가 늦었네요. 시연이를 지도하고 있는 최욱희라고 합니다. 최선생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새삼 최선생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집사 같기도 하고, 매니저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전시연과 매우 끈끈한 사이임에는 분명하다.

 그때, 전시연이 마카롱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좋겠네요. 전 체중관리 좀 하고 있을게요.”

 전시연은 마카롱을 한입 베어 물며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최선생이 시나리오를 내 앞에 가져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야겠네요. 야구입니까? 시연입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죠.”

 “네에?”

 ‘뭔 소리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최선생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가지로 검토해봤지만, 시연이와 야구는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감독님이 선택하셔야 합니다. 야구와 전시연, 둘 중에 누굴 선택하시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그때, 주방에서 전시연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

 핑크색 마카롱을 입에 살짝 문 채, 아련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절 선택해주세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저 도발적인 매력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난 숨을 크게 들이키고 어려운 결심을 내뱉었다.

 “전... 야구를 선택하겠습니다.”

 파사삭!

 핑크색 마카롱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등골에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연이 얼음같이 차가운 눈으로 날 쏘아보고 있다.

 ‘윽! 지금이라도 바꿀까?’

 최선생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감독님의 선택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까짓 야구 때문에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셔야 되겠습니까?”

 “그까짓 야구라뇨? 도대체 야구가 무슨 문제라고...”

 최선생이 턱을 부르르 떨며 날 노려보았다.

 “야구는...”

 그때, 전시연이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야구는 너무 이상해요!”

 “네?”

 전시연이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저기 봐요! 일주일동안 잠도 못자고 야구 공부만 했어요.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구요.”

 돌아보니, 책장에 야구 관련 서적들이 수십 권 꽂혀있다. 어떤 책들은 하도 많이 봤는지 표지가 너덜너덜해져 있다.

 ‘아... 지난 일주일동안 야구 공부 하느라 연락이 없었던 거구나?’

 전시연이 쿵쾅거리며 걸어와 책 한 권을 내 앞에 펼쳤다.

 “이거 봐요. 도대체 날아오는 공을 방망이로 때려서 뭘 어쩌자는 거죠?”

 “그건 원래 규칙이...”

 전시연이 다음 페이지를 넘기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도 이해가 안돼요. 히트 앤드 런! 때리고 도망가는 법이 어딨어요? 그건 범죄잖아요!”

 “그건 작전...”

 최선생이 내 말을 자르며 위엄있는 목소리로 다그쳤다.

 “도루가 가장 문제입니다. 훔쳤는데, 사람들이 잘 했다고 박수를 치잖습니까? 이게 법치국가에서 가능한 일입니까?”

 “기습번트는 어떻구요? 이건 사기잖아요!”

 두 여자가 번갈아가며 야구에 대한 한 맺힌 절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난 그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

 최선생이 책을 탁! 덮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이런 끔찍한 스포츠로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겁니까? 우리 시연이는 절대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없습니다!”

 “풋!”

 최선생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숨을 들이키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야구장 그녀>는 남녀가 썸타는 과정을 야구의 각종 작전에 비유해서 표현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야구의 규칙도, 용어도 모르니 이해가 안되는 게 당연할 수밖에. 하지만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작품의 중심을 바꾸자고 하는 건 월권이다. 이제 공격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배우를 캐스팅 해야겠군요.”

 난 냉정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전시연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배우, 누구요?”

 “배우야 많죠. 하주원도 있고, 손애진도 있고...”

 일부러 전시연과 라이벌 관계인 배우들의 이름을 흘렸다.

 역시 효과가 있다.

 그녀의 얼굴이 이내 붉어지며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최선생 역시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난 슬슬 어깨를 풀며 다음 작전을 생각했다.

 초구는 뭘로 던지는 게 좋을까?

 그래! 그게 좋겠다.

 “시연씨는 편견에 너무 갇혀있어요. 전 마음이 열려있는 배우를 원합니다.”

 “편견? 제가 무슨 편견이 있다는 거예요?”

 전시연이 눈을 치켜뜨며 벌떡 일어났다.

 스트라이크!

 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하나, 둘, 셋, 넷...

 상태창이 열렸다.

 

 <전시연>

 역할 : 배우

 외모 : ★★★★★★★

 매력 : ★★★★★★

 연기력 : ★★★★★

 특성 : 어린아이의 순수함.

 약점 :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로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음. 달콤한 맛에 중독되었음.

 

 흐음... 그런 거였군.

 내 눈은 저절로 벽에 걸린 전시연의 대형사진으로 향했다.

 티끌하나 없는 순백의 청순발랄함.

 저건 전시연이 데뷔 때부터 시종일관 유지해 온 이미지다. 저 모습으로 데뷔했고, 저 모습으로 지금까지 사랑받아왔다. 그런데, 저 이미지를 벗어나면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두려움이겠지만, 전시연의 경우는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아마,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생긴 상처 때문이겠지.

 그럼 이제 어쩐다? 살살 구슬려야 하나? 아니면...

 그래, 일단은 무조건 직구다!

 “이건 기본적으로 사랑이야기입니다. 사랑은 국경도 없고, 나이도 초월하고, 세상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이죠. 그런데, 고작 야구 때문에 작품을 안 한다는 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그... 그건......”

 “자기 이미지에 대한 편견. 시연씨는 야구가 싫은 게 아니라 대중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의 편견에 자신을 가둔 겁니다. 저 사진처럼요.”

 벽에 걸린 전시연의 대형사진을 콕 집어서 가리켰다.

 전시연은 내 손가락이 지시하는 방향대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의 긴 속눈썹에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스트라이크 투!

 이제 승부구를 던질 차례.

 난 그녀가 좋아하는 마카롱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에 공기를 반쯤 넣어 부드럽게 말했다.

 “시연씨, 사진 속에서 그만 나오세요. 그래야 자유로운 배우가 됩니다.”

 그녀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카롱을 바사삭 깨물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우리 두 사람 곁을 맴돌았다.

 잠시 후, 전시연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술을 열었다.

 “선생님, 저 사진 좀 치워주세요.”

 “시연!”

 최선생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전시연은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나만 바라보며 말했다.

 “감독님, 제가 뭘 하면 되죠?”

 ‘스트라이크 아웃!’

 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에 마카롱을 쥐어주었다.

 “일단 이거 하나 드시죠.”

 바사삭-

 전시연이 마카롱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녀의 입가에 달콤한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요한’의 경험치가 레벨을 넘어섰습니다.]

 [특정인물에 관한 히스토리 일람이 가능합니다.]

 [‘전시연’에 대한 히스토리 일람을 시작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전시연의 삶의 역사가 빠른 동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겪게 된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방황. 친구들의 괴롭힘과 따돌림...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좁은 방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 한 소녀가 보였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나 역시 그 시절 왕따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누군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연, 연극을 해보지 않을래?”

 최선생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연극반 선생님이었고, 전시연을 배우의 길로 이끈 은사였다.

 최선생을 따라 무대에 선 전시연은 이내 빛을 발했다. 억눌렸던 열정을 무대에서 맘껏 발산하며 그녀 특유의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그리고, 최선생의 손을 잡고 참가한 영화 오디션. 그곳에서 그녀는 순수한 매력과 최고의 연기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번에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최선생은 그 후로 지금까지 그녀 곁에 머물며 오로지 전시연에게만 헌신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며, 어머니였다. 전시연은 최선생의 철저한 보호 아래,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수나 스캔들도 없이 최고의 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영상이 사라지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한 사람의 삶의 역사는 그 자체로 감동적인 영화다.

 그때, 전시연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감독님, 지금... 우세요?”

 “아뇨, 그냥... 시연씨 보고 있으니까 좋아서요. 헤헤...”

 크게 숨을 들이키며 씩 웃었다. 전시연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나니,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순간, 난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

 “시연씨, 같이 야구 보러 가실래요?”

 “네, 좋아요.”

 1초의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대답이 나왔다.

 생에 첫 데이트를 전시연과 하게 되다니... 이게 웬 행운인가?

 그런데, 최선생이 고개를 저으며 다가왔다.

 “시연, 안 돼! 야구장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다가 괜히 사진이라도 찍히면...”

 “선생님, 시연씨가 선택하게 해주세요.”

 난 부드러운 눈으로 최선생을 쳐다봤다.

 “시연씨를 위한 선생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연씨도 이제 성인이에요. 그리고, 제가 옆에서 시연씨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생의 턱이 떨려왔다.

 “시연, 꼭 가야겠어?”

 “네, 책으로 배우는 건 한계가 있어요. 직접 눈으로 봐야겠어요.”

 최선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원을 붙일 겁니다. 소속사에도 알려야 되고. 준비해야할 게 많아요. 일정 잡히는 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목례를 했다.

 최선생이 눈가에 잔주름을 일으키며 인자하게 웃었다.

 “정말 대단하신 감독님이네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세요.”

 “그럼요. 조요한 감독님은 천재에요, 천재!”

 전시연이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순간, 온몸이 떨려오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디선가 경쾌한 나팔 소리가 들여왔다.

 빰빠라밤-

 그래,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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