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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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제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작성일 : 20-09-03     조회 : 458     추천 : 1     분량 : 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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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식과 악수를 나눈 기태가 용식의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노란색 차는 처음 보는데? 요즘 신차는 이런 칼라도 나오나봅니다?”

  “아... 이건 제가 직접 칠한 겁니다.”

  “어이쿠. 손재주가 좋구만요."

 

 기태가 차로 다가가 페인트 자국을 살폈다.

 균일하게 잘 칠해진듯 보였다.

 하지만 일부분은 덧칠이 되어 있었다.

 기태가 몸을 일으켜고 용식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용식이 살짝 인상을 썼다.

 

  "아, 기분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직업병인지라 뭐가 궁금하면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요. 허허."

 

 오지현이 나섰다.

 

  “용식이 이 친구도 레포츠 강사입니다. 저기 근데 형사님, 저희가 시간이 좀 없어서요.”

  “미안합니다. 두 분 다 급하게 어딜 가나보군요?”

 

 오지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오늘 이사를 했어요. 용식이가 짐정리도 도와주고 제 사무실 짐도 실어다주기로 했거든요. 지금 새 집에서 아내 혼자 정리중이라 가봐야 해서요.”

  “윤선미 씨 고생하시겠구만. 얼른들 가보시고. 아참 그리고 윤선미 씨한테 건강 잘 챙기라고 안부 좀 전해주시고.”

  “예. 형사님 그 말씀 꼭 전하겠습니다. 조만간 아내랑 한번 찾아뵐게요. 꼭 식사대접 하겠습니다.”

 

 기태가 됐다고 손사레를 쳤다.

 용식이 지현의 짐가방을 들어 차 트렁크에 실었다.

 오지현은 기태에게 꾸벅 인사한 후 차에 탔다.

 

 문용식의 차가 빠져나가자 기태는 곧바로 생각에 잠겼다.

 덧칠된 노란 색 차에는 앞 범퍼와 운전석 차문에 스크래치가 여러 군데 있었다.

 그만큼 같은 사고가 여러번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덧칠 된 일부는 바위 높이와 거의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곳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건가.'

 

 베스트드라이버인 상수도 피하지 못했던 바위.

 오지현의 후배 문용식이 아무리 능숙한 드라이버라 해도 골프장에 오고가다 사고를 당했을 위험이 높았다.

 

 기태가 관자놀이를 검지로 눌렀다.

 딱 한가지가 걸렸다.

 차에 난 흠집 대부분은 바위 크기와 일치했지만 한군데가 맞지 않았다.

 바로 운전석쪽 타이어 휠 위쪽이었다.

 그 근처에도 페인트 덧칠 자국이 있었다.

 

  ‘바위에 부딪쳐서 생긴 스크래치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 일어난 접촉사고?’

 

  ***

 

 상수가 진술실에 들어섰다.

 박 검사가 일어나 상수에게 다가왔다.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

 

 최혜영의 집 앞에서 화염병을 들고 경찰들을 위협하던 놈에 대해 묻는 것이다.

 상수는 최혜영이 보란듯이 일부러 크게 답했다.

 

  “병원에 옮겼습니다. 진술 가능해서 들어봤는데, 모르는 사이랍니다.”

  “모르는 사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해 제몸에 불을 붙였단 말야?”

  "그렇다는군요."

 

 의아해하는 박 검사를 두고, 상수는 최혜영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최혜영 씨. 이 불미스런 사고에 대해 하실 말씀 없습니까?”

 

 잠시 상수를 응시하던 혜영이 따뜻하게 물었다.

 

  “형사님은 괜찮으신가요?”

  “예?”

  “달걀이랑 밀가루를 뒤집어 쓰셨잖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상수는 몹시 당황했다.

 게다가 갑자기 혼란스런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 때문일까.

 허스키하고 낮은 저음때문인지 묘한 울림이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조금 전 집앞에서 화염병을 들고 경찰을 위협했던 남자 말입니다. 그 분에 대해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글쎄요. 딱히.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요."

  "모르는 사람이라구요?"

 

 마치 40대의 그 남자와 입을 맞춘 듯, 혜영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네. 다행히 형사님들이 잘 제압해주셨고 그 남자는 가벼운 화상만 입은 거 아닌가요?”

 

 상수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위해 화상을 입은 남자를 이 미망인은 웬지 경시하는 느낌이었다.

 

  “그 남자, 정말 모릅니까”

  “네.”

 

 깔끔한 답이었다.

 그때였다.

 노크소리와 함께 막내가 들어와 상수 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상수가 서류를 읽어본 뒤 박 검사에게 보였다.

 박 검사도 서류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류 한 장을 상수에게 다시 줬다.

 그 서류를 상수가 최혜영 앞에 내밀었다.

 

  “최혜영 씨. 집앞에서 시위를 한 40대의 그 남자는 물망초의 회원이었습니다.”

 

 물망초는 최혜영의 팬 카페 이름이었다.

 여지껏 담담히 있던 혜영이 몸을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몹시 관심이 생긴 듯 꼼꼼히 서류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최혜영 씨. 이 남자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까?”

  “네. 정말 놀랍군요."

  "뭐가 놀랍죠?"

  "이렇게 오랫동안 제 팬클럽 회원이었다니. 그런데 저는 금시초문이니까요."

  "그런가요?"

  "네. 서류를 봐도 명백히 모르는 사람입니다. 실은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팬들을 일일이 기억해드리지는 못해요. 더군다나 남편과 결혼한 뒤에는 쭉 내조만 해 와서 팬 카페와 접촉한 적이 없습니다.”

 

 상수가 잠시 최혜영을 응시했다.

 그녀에게서는 몸의 흔들림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혜영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시종일관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딱 필요한 말만 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박 검사가 가지고 있던 나머지 서류를 최혜영 앞에 내밀었다.

 

  “최혜영 씨.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죠. 토요일 밤 11시경 별장에서 차를 돌려 따님에게 가셨다고 진술했는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별장에서 발견된 골프채에서 방금 전 최혜영 씨 지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박 검사가 친절하게 서류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유감스럽게도 별장 침실에서는 따님인 미란양의 지문과 의원님의 체액이...”

  “그만하시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혜영이 갑자기 말을 막자 박 검사가 놀라봤다.

 지금껏 침착하고 고고했던 표정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상수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최혜영 씨!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군요?"

  "네."

  "어떻게요?"

 

 혜영이 가만히 상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가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상수가 다시 물었다.

 

  "사건 당일 밤, 별장에 가셨군요."

  “네. 그날 밤 김 기사가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이 미란일 데리고 갔다고 알려주더군요.”

 

  ***

 

 피살자 돈종률 의원이 살해되기 직전, 토요일 밤 11시.

 

 고급 세단이 골드 골프장 별장뒷문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급정거 한 차에서 최혜영이 내렸다.

 혜영은 차 트렁크를 열고, 골프가방 속에 놓인 골프채 한 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으악-----------!

 

 혜영의 몸이 굳었다.

 별장 안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은 연속해서 계속 들렸다.

 혜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비명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지난 20여 년간 똑같은 고통을 당하며 똑같은 비명을 지르며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이제 더는!’

 

 자신에게서 끝내야 할 일이었다.

 그걸 못해 이 지경까지 왔고, 딸에게 그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준 것이다.

 

 혜영은 골프채를 단단히 거머쥐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열린 침실 문을 통해 끔찍한 모습을 목격했다.

 

  ***

 

 이제껏 나즉하고 담담했던 최혜영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그 순간... 그때는 정말...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혜영이 제 두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가느다랗게 드러난 여자의 목덜미가 창백했다.

 

 상수가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이 나실 때까지 천천히 진술하셔도 됩니다.”

 

 혜영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골프채로 제가... 남편의 뒤통수를 제가... 제, 제가...”

 

 상수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혜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골프채로 제가 내리쳤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남편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어요. 딸애는 놀라 마구 비명을 질렀어요. 저는 딸애에게 달려가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미란일 부축해 제 차에 태웠어요. 그런데!”

 

 혜영이 다시 두 손을 바들바들 떨며 제 어깨를 감싸 쥐었다.

 상수가 물었다.

 

  “최혜영 씨? 괜찮으십니까?”

 

 혜영이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뒤쫓아 왔어요. 죽은 줄 알았는데 피를 흘리면서 침실에서 튀어나왔어요. 미란인 패닉 상태였어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공포에 떨었죠. 그래서 전!”

 

 혜영이 다시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상수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혜영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엄마예요. 미란일 보호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딸애에게 말했어요. 차문을 잠그고 안에 있으라구요. 저는 골프채를 다시 가지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다가갔어요. 놀란 남편이 이번에는 절 보고 뒷걸음질 치더군요.”

  “그래서요? 따라가셨습니까?”

  “네! 이번에는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남편을 뒤따라갔어요.”

 

 그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긴장한 상수와 박 검사가 빠르게 눈길을 주고받으며 혜영을 응시했다.

 그 밤의 기억이 선명히 재생되는지 혜영의 눈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치 모노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골프장 그물막을 헤치고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 미친 듯이 그를 쫓아갔어요. 도망가던 그가 깃대에 걸려 넘어졌어요. 깃대가 부러진 순간 저는 다시 한번 골프채를 힘껏 들어 올렸어요!”

  [여, 여보.. 제발! 제발! 여보! 미안해!]

  “그이는 두 손으로 싹싹 빌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하지만 저는 소리쳤어요! 이 나쁜 놈! 죽어, 죽어! 죽어!!”

 

 털썩.

 혜영이 힘이 빠지는 듯 갑자기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제 정신이 돌아온 눈빛으로 상수에게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맞아요, 형사님. 이 두 손으로 제가 내리쳤습니다.”

 

 상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 검사에게 말했다.

 

  “검사님. 당장 구속영장 신청하겠습니다.”

  “잠깐. 박 형사.”

 

 검사가 제지하자 상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검사는 아주 미심쩍은 표정으로 혜영을 응시하며 물었다.

 

  “최혜영 씨. 좀 전에 깃대가 부러졌다고 하셨습니까?”

 

 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묻죠. 분명히 그곳의 깃대가 부러졌습니까?”

  “네. 분명히 부러졌어요. 그곳에서 제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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