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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워드릴까요, 폭군님?
작가 : 복숭아맛탄산수
작품등록일 : 20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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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생방 빙의 실화냐?
작성일 : 20-09-06     조회 : 611     추천 : 4     분량 : 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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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1. 인간 자장가

 (1) 생방 빙의 실화냐?

 

 

 "후후."

 

 아름다운 그녀의 입술이 돌연 일그러졌다. 하얀 얼굴 위에 드리운 것은 미소였다.

 

 길게 늘어뜨린 칠흑빛 생머리. 짙은 와인색 눈동자. 귓가에서 흔들리는 핏빛 이어링. 상복을 연상케 하는 새까만 드레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가 했던 통쾌한 복수가 떠올라 희열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완벽하군."

 

 그녀로 완전히 변신한 나를 보고 있자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끼이이.

 

 방음실의 문을 닫고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고 카메라로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자장가, A… S… M… R…… Pure 입니다."

 

 오른쪽 왼쪽 마이크에 번갈아 속삭이고 카메라 저 너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생방송 시작부터 대기하고 있던 구독자들의 채팅이 비처럼 쏟아졌다.

 

 -퓨님~ 퓨하!

 -헐 오늘 뭐예요? 대박

 -미쳤다 퓨님ㅠ 너무 이뻐요 ㅠㅠ

 -마녀 컨셉인가? 완전 걸크ㅠㅠ

 

 "의상 퀄리티 장난 아니죠? 오늘 화장도 잘 먹어서, 개인적으로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개인적인 만족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폭발적이었다.

 화장도 그렇고 무엇보다 출판사에서 정식 제작해 준 의상이라 싱크로율이 엄청났다.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작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ASMR Pure'라는 이름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ASMR 전문 방송인이다.

 

 본명은 심청아. 여기서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 다시 말하겠다. '심청'이 아니라 심'청아'다.

 목소리가 맑다 해서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 청아.

 갓난아기 때부터 그렇게 맑게 울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소리로 울었던 걸까.

 

 "아주 효녀시겠는데요?"라며 장난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효녀는 개뿔. 효도하기도 전에 벌써 두 분 다 돌아가셨다.

 

 일찍 부모를 여윈 나는 친척 집을 전전하며 학업과 알바를 병행해왔다.

 그러다 낭독대회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책 읽기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ASMR로 연결되어 지금은 이렇게 전업으로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다.

 

 "이 코스프레, 누군지 아실까요?"

 

 -처음 보는데 완전 매력 터져여!!

 -나 본 적 있는 듯?

 -북카페 웹소 아님?

 

 "어, 아시는구나! 짜잔~ 이번에 제가 좋아하는 로맨스판타지 소설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었답니다!"

 

 나는 마이크에 소곤대며 숨겨둔 책을 꺼내 들었다.

 표지에는 밝은 표정의 은발 여자와 무심한 표정의 금발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제가 코스프레한 건 여기 2권 표지에 나오는 여주 흑화 버전이에요."

 

 1권을 잠시 내려놓고 2권을 카메라 앞에 내밀었다.

 그림자에 파묻힌 듯한 여주인공의 모습이 아주 맘에 들었다.

 

 -마시돌! 저도 읽었어요!

 -저거 완전 꿀잼. 초반은 고구만데 중반쯤 가면 스프라이트 샤워 터짐.

 

 마시돌, 『마녀의 시간은 돌아간다』

 순수한 여주인공이 흑화해서 복수극을 펼치는 사이다 전개로 인기가 높았던 작품이다.

 

 나는 연재 초기부터 이 소설의 엄청난 팬이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오늘,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 콜라보 생방을 진행하고 있다.

 

 "정식 콜라보 생방 기념으로 15화까지 쭉 읽어드립니다. 뒷내용이 궁금하시면 북카페에서 마시돌로 검색! 하단 링크에서 종이책 구매도 가능해요!"

 

 나는 1권을 얼굴 옆으로 들어 올리고 마이크 가까이 가져갔다.

 표지를 손끝으로 따다닥 두드리고 휘리릭 책을 넘기다가 종이를 스윽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시돌의 여주가 된 것처럼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그럼, 마녀의 시간은 돌아간다… 책 읽기 ASMR. 시작할게요."

 

 나는 아주 천천히 책을 펼쳤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마이크에 울렸다.

 

 "나는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행복했다. 그의 영원한 반려가 되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흘렀다."

 

 속삭이는 볼륨도 정확한 발음도 완벽했다.

 300만 구독자를 가진 ASMR 크리에이터로서, 나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그의 이름은 '카를.' 마르세유 제국의 5대 황제, '카롤루스 프레데리크 르 루주 드 라 마르세유.' 카를에게는 부인인 나, '루나 마리옹 드 블루아'도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실시간 반응을 체크하려 눈을 살짝 치켜떴다.

 

 -목소리 너무 좋아요ㅠㅠ

 -이름 뭐야ㅋㅋㅋ 완전 길어ㅋㅋ

 -코스 진짜 역대급이다ㄷㄷ

 

 '이상하네…….'

 어쩐지 모니터가 평소보다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어떤 약도 어떤 마법도 그의 불면증을 치료하지 못했다."

 

 '응…?'

 글씨가 흐릿하게 보여 눈꼬리를 살짝 비볐다. 갑자기 왜 이래.

 

 "결국 그가 택한 방법은 지칠 때까지 누군가와 살을 맞대어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헐 ㅁㅊ 남주가 쓰레기네.

 -내용 완전 막장이다

 -흥미진진한데 이상해요. 자꾸 잠이 ㅇ……. 쿠울.

 

 그러니까요. 아, 이상하게 잠이 오네.

 순간 그렇게 말할 뻔했다.

 '어후, 나 미쳤나 봐. 생방 중인데 왜 이렇게 졸려!'

 나는 시청자들이 의아해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며 낭독에 집중했다.

 

 "황궁에는 황제의 밤시중을 들기 위해 준비된 수많은 시녀가 있었다. 카를은 단 한 번도 내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밤마다 이름 모를 시녀들과 쾌락에 빠져, 부인인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눈을 크게 떠봐도 자꾸 눈꺼풀이 내려왔다.

 귓가에 들리는 내 목소리가 멀어질 때마다 자지러지듯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나는 시녀한테조차 무시당하는… 그저 황궁에 살고 있을 뿐인 여자가 되어있었다……"

 

 볼때기를 후려쳐서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녹화 방송이었으면 편집할 수라도 있지, 생방은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루나 진짜 완전 불쌍 ㅠㅠㅜ

 -방송 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졸림 ㅋㅋ

 

 "모든… 것을…… 끝내버리기로……"

 

 -역시 퓨님은 세계 제일입니다

 -진심 인간 자장가임ㅋㅋㅋ

 -인간 자장갘ㅋㅋㅋㅋ

 

 '인간 자장가… 흐흐… 그런 칭찬 처음이야…….'

 

 기분 좋은 채팅에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

 

 

 두둥실.

 온통 새까만 세상에서 내 몸만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으응…."

 

 나는 무심결에 눈을 뜨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 목소리에 제가 잠들어 버렸네요. 하하…."

 

 흐릿한 눈을 비비려고 팔을 뻗었는데 이상하게 얼굴까지 닿지 않았다.

 양어깨가 하늘로 떠올라 마치 헤엄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응? 뭘까요? 무중력인가…? 하하항…"

 

 웃음을 흘리며 양팔, 양다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런데도 둥실둥실 몸이 떠다녀서 신기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날뛰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까부터 뭘 그리 혼자 떠들어? 조용히 해!"

 

 그 목소리에 흐릿했던 시야가 한 번에 맑아졌다.

 양옆에서 나를 노려보는 시선에 돌아보니 험악하게 생긴 남자들이 있었다.

 두 사람 다 번쩍번쩍한 은빛 갑옷을 입고, 내 양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뭐, 뭐야… 누구세요?! 이, 이거 놔요!"

 "입 닥치라고!"

 

 왼쪽 남자가 윽박지르며 내 입을 막았다. 차갑게 식은 갑옷의 감촉이 입술 위에 선명하게 닿았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야, 이게. 나 지금 끌려가고 있잖아?'

 나는 그제야 나를 둘러싼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다. 마치, 죄인을 이송하는 듯한.

 

 "으으읍!"

 

 나는 몸을 비틀며 남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하지만 한 덩치 하는 남자 두 명이 붙잡고 있어 전혀 소용이 없었다.

 

 고개를 흔들다 내 뒤에서 걸어오는 3명의 그림자를 보았다.

 메이드복 차림의 주황 머리 여자가 끌려오고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갑옷을 입은 남자들에게 잡혀서.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까까지 생방하고 있었는데? 여긴 어디야? 이게 뭐야?

 꿈……?

 

 "읍읍읍!"

 

 큰 소리로 살려 달라 외쳐보았지만, 내 목소리는 갑옷을 뚫지 못하고 먹먹하게 울릴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끌려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문 앞이었다.

 방을 지키는 병사들과 남자들은 서로 소곤대기만 할 뿐,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때, 복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검은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였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남자들에게 묵례한 그녀는, 곧장 이쪽으로 다가왔다.

 

 "앤 양. 고개를 들어요."

 

 메이드복 여자는 축 늘어져 있는 주황 머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앤이라 불린 여자가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금방… 금방 지나갈 겁니다."

 

 그녀는 여자, 앤의 주황 머리를 쓰다듬으며 걱정 어린 투로 말했다.

 

 "그리고, 소피아 양."

 

 그녀는 내 쪽을 돌아보더니 처음 듣는 이름을 말했다.

 

 '소피아 양? …누구지?'

 그녀는 나와 앤의 뺨에 손을 올리고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오늘 밤이 처음이니 금지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어요."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앤이 다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첫째. 폐하의 허락 없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둘째. 폐하의 허락 없이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셋째. 폐하의 명에 무조건 복종한다. 폐하의 침실로 들어가면 이 세 가지는 무조건 지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녀는 가까이 고개를 들이밀며 대답을 요구했다. 앤이 눈을 꽉 감고 정신없이 끄덕였다.

 하지만 도저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소피아 양!"

 

 그녀가 돌연 양손을 내 뺨 위에 올리고는, 날 선 눈빛으로 노려봤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알겠어요?"

 

 갑자기 다그쳐져 무심결에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오늘 밤이 처음? 폐하의 침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내용인데…?'

 

 그녀가 눈짓하자, 남자들은 우리를 끌고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폐하! 끌고 왔습니다!"

 

 우릴 잡은 남자 중 한 명이 문 너머로 던지듯 말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귀찮은 듯한, 나른한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들여라."

 "예!"

 

 대답과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문을 열었다.

 

 남자들은 우리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가 억지로 무릎을 꿇렸다.

 바닥에 세게 부딪혔지만,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어 아프지는 않았다.

 내 입을 막고 있던 남자가 드디어 손을 뗐다.

 

 "허억…."

 

 나는 답답했던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윽고 남자들은 누군가에게 경례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윽고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앤이었다.

 앤은 엎드린 채로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흑, 살려, 흐윽… 살려 주세요……."

 

 절박하게 울먹이는 그 모습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저 애원은 누구를 향한 말일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은 아니겠지…?

 표지에 그려진 그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그때, 눈앞으로 뭔가가 날아 들어왔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예리한 아픔이 왼쪽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와 앤 사이에 와인 잔 파편이 뒹굴고 있었다.

 

 "……."

 

 뺨을 만져보니 손끝에 붉은 액체가 묻어나왔다.

 피….

 소름이 쫙 돋았다. 피 묻은 손끝이 서서히 떨려왔다.

 

 그 순간,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럽군."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차가운 음성이었다. 나는 무심코 목소리의 주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그는 차갑게 빛나는 붉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그 얼굴을 보고나니 실감이 났다.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말았다.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선명한 아픔이 꿈일 리가 없다.

 이렇게 생생한 위압감이 꿈일 리가 없다.

 

 빙의해버린 거다.

 오랜 기간 팬이었던 그 로맨스 소설 속으로.

 

 그렇다.

 짜증스런 얼굴로 서 있는 남자는 『마녀의 시간은 돌아간다』의 폭군,

 '카롤루스 프레데리크 르 루주 드 라 마르세유'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용히 한마디 뱉었다.

 

 "……ㅈ됐다."

작가의 말
 

 이젠 하다하다 생방 중에 빙의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라리 20-09-14 13:33
 
재미있어요!!! 오프닝이 흡입력이 있네요^0^
  ┖
복숭아맛탄산… 20-09-14 14:41
 
라리님, 재미와 흡입력 ㅠ 너무 기쁜 코멘트네요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잠 20-09-16 00:29
 
* 비밀글 입니다.
  ┖
복숭아맛탄산… 20-09-16 10:00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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