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첫회보기
 
그놈 찾기 프로젝트
작성일 : 20-09-09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5177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300,000,000’

 에헥!

 삼억?

 게다가 수익 지분 20프로 인센티브 지급?

 난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오유미 대표를 쳐다봤다.

 ‘신인감독한테 뭘 이렇게까지...?

 오유미 대표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펜을 내민다.

 “검토 끝났으면 서명하시죠.”

 당장 서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허나...

 봉만오 감독께서 어젯밤 이런 말씀을 하셨지.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돈은 땡겨야 맛이야. 얼마를 주건 무조건 더 달라고 해. 상대가 거품 물고 쓰러질 때까지 계속 줄다리기를 하란 말이야. 주머니를 탈탈 털어먹으란 말이야.”

 거장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삼억 받고, 삼억...”

 “저랑 협상 하시려구요?”

 “네?”

 오유미 대표가 같잖다는 듯 피식 웃는다.

 이런! 전술을 간파 당한 것 같군.

 다행히도 봉감독께서 대비책을 주셨으니...

 “그럴 땐 그냥 일어서. 상대를 당황하게 하란 말이야. 혼란스럽게 만들란 말이야.”

 난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 순간,

 “봉감독한테 못된 거 배우셨네요.”

 “네?”

 오유미 대표가 무표정한 얼굴로 계약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명 안하실 거면 찢겠습니다.”

 “잠시만요!”

 깜박했다.

 이 분이 피도 눈물도 없는 얼음귀신이라는 사실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대표의 맘이 변하기 전에 재빨리 서명을 했다.

 ‘삼억이 어디냐? 게다가, 관객 수 천만 넘으면 인센티브가 50억이야. 으흐흐...’

 태어나서 억 단위로 돈을 벌어본 건 처음이다.

 이 돈으로 뭐하지?

 집을 살까? 차를 살까? 확! 주식에다 묻어버려?

 이런 쓸데없는 고민에 빠질 무렵, 오유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실까요? 팀원들 만나셔야죠.”

 “팀원들이요?”

 로비로 나와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날 맞이했다.

 “형, 감독 되더니 얼굴 작아졌다. 아니다, 어깨가 펴진 거구나?”

 그래, 넌 동훈이고.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이쪽은 안병태 실장.

 “감독님,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호호호...”

 안 불렀는데...

 어쨌건, 고양미씨가 날 보며 귀엽게 웃는다.

 “아휴, 반가워요. 다들 어쩐 일로?”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우리 팀입니다.”

 오유미 대표가 한사람씩 소개했다.

 “안병태 프로듀서, 신동훈 조감독, 고양미 스크립터. 감독님이랑 호흡이 잘 맞는 분들인 것 같아서 제가 얼른 스카웃했어요.”

 추진력 짱!

 실제로 이들은 모두 나한테 필요한 사람들이다.

 일단, 양미씨는 일처리가 엄청 꼼꼼하다. 감독이 놓친 부분을 정확히 포착해서 디테일을 잡아낸다.

 동훈이는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능수능란한 주둥이로 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무엇보다, 안병태 실장과 같이 일하게 된 건 행운이다.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며,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성품은 언제나 큰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난 안실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실장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장 아닙니다. 덕분에 피디로 입봉했습니다. 하하!”

 “근데, 봉감독님은 어쩌시구요?”

 “봉감독님이 헐리웃이랑 합작영화를 만들기로 해서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서 이쪽으로 왔습니다.”

 역시 그렇군.

 봉만오 감독은 헐리웃 최고의 제작진들과 함께, 초유의 단맛 블록버스터 <설탕열차>를 만들게 될 것이다. 전 지구가 설탕에 뒤덮여버린 종말론적 세계관. 그 안에서 살아남고자 치열하게 설탕을 퍼먹어대는 비만인들의 사투! 알고 보니, 그 설탕의 재료는 바로... 아! 이건 스포일러니까 말하면 안 되고.

 그때, 동훈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낮술이라도 한 잔 해야 되는 거 아냐? 형이 감독으로 입봉한 역사적인 날인데.”

 “고럼, 영화의 시작은 낮술이지.”

 오유미 대표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 앞에 골뱅이집 괜찮던데, 거기로 가죠.”

 “맥주에 골뱅이 파무침! 크아~~”

 시시덕거리며 다 같이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전시연과 김주호 대표가 들어왔다.

 “어! 시연씨!”

 “안녕하세요, 감독님.”

 전시연이 날 보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왠지 모를 그늘이 져있다. 아니나 다를까, 김주호 대표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오유미 대표에게 다가갔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여기 좀 보시죠.”

 김주호 대표가 태블릿을 열어서 기사를 보여줬다.

 - 전시연, 의문의 남자와 야구장 데이트♥

 - 전시연, 모 영화감독과 열애설♥

 - 전시연, 드디어 스캔들 터졌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인터넷에 온통 전시연 열애설에 관한 추측성 기사가 도배되어 있다. 문제는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

 “이거, 박하일 기자가 퍼뜨린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사진 한 장 없이 여기저기 게시판부터 들쑤신 게, 전형적인 그 인간 스타일입니다.”

 ‘하이에나같은 자식, 다음에 만나면 괴수 입 속에 처넣어버리겠어!’

 김주호 대표의 얼굴에 근심이 더욱 무거워졌다.

 “대응팀을 돌리고는 있는데, 소문이 워낙 빨라서요.”

 “그냥 반박자료 내고,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요. 영화 사전조사 차원에서 야구장 간 거라고.”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오유미 대표가 내 말을 자르며 나섰다.

 “그럼 여자 주인공이 먼저 캐스팅됐다고 알리는 건데, 투자사 쪽에서 반기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죠?”

 “이건 멜로 영화잖아요. 남녀주인공을 같이 오픈해야죠.”

 “아니, 여자 주인공부터 오픈해도 되잖아요.”

 “그럼 시연씨가 남자주인공을 선택하는 모양새가 돼요. S급 남자배우 캐스팅 하는 게 힘들어져요.”

 하긴, 캐스팅은 미묘한 힘겨루기다.

 투자사에서는 남녀 주인공 모두 유명한 배우를 원한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건 아니다. 서로의 이미지와 연기 스타일을 고려해야 하고, 스케줄도 맞춰야 하고, 소속사 간 비즈니스도 정리해야 하고, 무엇보다 멜로영화의 주요 관객이 여성인 걸 감안하면, 남자배우를 먼저 공개하는 게 순서상 맞긴 하다.

 김주호 대표가 태블릿을 덮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남주 캐스팅을 최대한 빨리 확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까지 진행됐을까요?”

 안병태 피디가 재빨리 캐스팅 자료를 꺼냈다.

 “하형우는 내년까지 스케줄이 꽉 찼다고 합니다.”

 오유미 대표가 매의 눈으로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젊은 배우로 가는 게 좋겠어요. 박계형이 요즘 핫하지 않나?”

 “사생활이 더 핫하죠.”

 김주호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계형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에요.”

 “그럼 이병원은?”

 “미국 가있죠.”

 “송우석은?”

 “유뷰남이잖아요.”

 “오영민은?”

 “조울증 치료중이고.”

 “박아름?”

 “커밍아웃...”

 에휴......

 배우 캐스팅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이럴 때 감독이 나서서 한방에 팍! 해결해버려야 되는데.

 봉만오 감독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텐데...

 그때, 전시연이 나섰다.

 “됐어요. 까짓 거 내가 뒤집어쓰죠, 뭐.”

 여배우에게 스캔들이 치명적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녀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가에 진 그늘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역시나 김주호 대표가 고개를 젓는다.

 “당장 CF 끊길 수도 있어. 계약해놓은 것도 어찌 될지 모르고.”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오유미 대표는 전시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선뜻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난 화가 났다.

 ‘그냥 여배우 캐스팅 됐다고 발표하면 그만이잖아! 아니, 여주가 남주 선택하면 안 돼?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야? 이슈몰이도 되고 좋잖아!“

 그래! 이슈몰이!

 갑자기,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뭔데요?”

 다들,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판을 뒤집죠?”

 “어떻게요?”

 내 계획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오! 좋은 생각인데?”

 “난 찬성.”

 “나도 찬성.”

 “역시 천재감독님, 최고!”

 여기저기서 칭찬이 쏟아진다.

 그런데, 오유미 대표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될까요? 투자사 입장도 들어봐야 되고.”

 “투자사에 가서 이렇게 말하세요.”

 난 목에 힘을 주고 제법 감독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작은 바람을 크게 키워서 태풍으로 만들겠다고.”

 

 ***

 

 <야구장 그녀> 제작발표회.

 호텔 컨퍼런스 룸에 기자들이 개미떼처럼 우글거린다.

 전시연과 난 무대 뒤쪽에 서있고, 오유미 대표가 단상 앞에서 제작계획을 브리핑 중이다.

 “영화 <야구장 그녀>는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첫사랑이야기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얻기 위한 남녀의 치열한 작전이 실제 야구경기와 더불어...”

 개요설명도 끝나기 전에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진다.

 “전시연씨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감독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야구장에서 데이트 한건 인정하시죠?”

 오유미 대표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건 당사자가 설명하는 게 좋겠네요. 전시연님, 앞으로 나와 주시죠.”

 전시연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파바박! 파박!

 플레쉬가 빛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전시연은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영화보다는 제 사생활이 더 궁금하신 것 같네요. 지난주에 야구장 간 거 맞습니다. 제가 야구에 대해 잘 몰라서 감독님이랑 야구 공부하러 간 거구요. 이에 대해 흥미진진한 소설 써주신 기자님들, 악플 릴레이 펼쳐주신 댓글러들,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고 법적으로 끝까지 책임을 묻겠습니다.”

 또다시 플레쉬가 터지며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사귀는 분은 없는 겁니까?”

 “이상형은 누구입니까?”

 “평소 몸매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전시연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야구장 그녀>의 감독, 조요한입니다.”

 아쒸... 플레쉬 하나도 안 터져.

 “흐흠...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마음속으로 전시연씨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시연씨를 찾아가서 부탁했습니다. 제 첫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파박!

 그제야 몇 군데서 플레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남자 주인공은요?”

 “남자 주인공은 누구를 생각하셨습니까?”

 자, 이제 하이라이트다.

 난 목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남자주인공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바로... 접니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다들, ‘감독님, 미쳤니?’라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연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배우를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진 찍으라고. 사진!

 “야구장 그녀의 남자주인공은... 공개오디션으로 뽑겠습니다!”

 어라! 반응이 왜 이리 미지근해?

 좋아, 그럼 막 질러보는 수밖에.

 “야구장 그놈! 넌 누구냐? 전시연의 남자, 넌 누구냐? 멜로영화에서 커플 맺어지는 거 자주 있는 일인 건 알고 있지? 나보다 잘난 놈들, 다 나와 보라고 그래!”

 파바박! 파박! 파바박! 파박!

 어우, 눈부셔...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흥!

 “전 국민 대상 그놈 찾기 프로젝트! 지금 이시간부로, 지상최대 오디션을 시작합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30 전시연이 내 방에 찾아왔다 9/23 265 0
29 난 무식한 신이다! 9/23 271 0
28 스타 탄생! 9/23 250 0
27 지상최대오디션(3) 9/23 254 0
26 지상최대오디션(2) 9/23 262 0
25 지상최대오디션(1) 9/23 248 0
24 그놈 찾기 프로젝트 9/9 284 0
23 지옥 혈전 9/8 259 0
22 괴수 vs 헐크 9/7 256 0
21 법과 원칙의 악마 9/3 259 0
20 야구장 그녀 (2) 9/2 273 0
19 야구장 그녀 (1) 9/2 262 0
18 멜로를 부탁해 (2) 9/2 264 0
17 멜로를 부탁해 (1) 9/2 264 1
16 폭소만발 시상식 9/2 264 0
15 괴수가 춤 춘다! 9/2 285 0
14 얼음귀신을 보았다 9/2 269 0
13 지옥의 오디션 9/2 260 1
12 비밀 병기 9/2 269 1
11 괴수의 위기 9/2 255 1
10 악마와의 계약 9/2 257 1
9 강동원을 만나다 9/2 266 1
8 광란의 파티 9/2 269 1
7 두 개의 지옥 9/2 255 1
6 의리의 승부사 9/2 259 1
5 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9/2 274 2
4 관계자 외 출입금지 9/2 273 1
3 괴수의 탄생 9/2 272 1
2 악마의 눈동자 9/2 263 1
1 실패한 인생은 지옥간다 9/2 47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