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더보기
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히추하는 날
작성일 : 20-09-12     조회 : 46     추천 : 2     분량 : 2374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름-히추하는 날

 

 ‘회추’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것을 말하는데 발음이 히추로 바뀐 것이다. 계추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다. 우리 동네는 냇가에 버드나무 숲이 아카시아나무랑 우거졌었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 강에서 낚시하는 사람, 고디잡는 사람, 도회지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차도 귀해서 멀리 여행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인근에서 강가 버드나무밭으로 계추를 하러 모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많았다. 우리 집 앞은 여름이면 인근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해수욕장만큼이나 붐볐다.

  특히 히추를 하러 사람들이 모이면 아저씨들은 냇가 버들밭에서 돼지를 직접 잡는다.

 나이 든 아주머니들은 돌을 괴어 가마솥을 걸고 마른 나무로 불을 때서, 잡은 돼지고기에 숭덩 썬 대파를 한 아름 집어넣고, 납작하게 썬 무 한다라이, 이름모를 야채 한다라이 가득,

 토란 줄기, 마늘 한 바가지, 고춧가루 한 바가지를 집어 뻘건 돼지고깃국을 끓였다.

 보통 히추가 열리는 아침이 되면 새벽부터 트럭에 살아있는 돼지, 콜라, 사이다, 과자, 과일, 반찬거리를 산더미처럼 싣고 온다. 돼지는 남자들이 직접 잡아서 피를 빼고, 사이다와 콜라는 냇가 가장자리에 상자째로 담가놓는다. 수박, 참외도 물 속에 띄워놓는다. 천막을 친 그늘에 자리를 펴고 과자, 술, 음료수, 반찬들을 펼쳐놓고 수 십명이 먹을 점심을 준비한다.

 아침에 잡은 돼지가 점심무렵이 다 되어가면 가마솥에서 구수하고 뻘건 국물에 적당히 기름이 동동 뜨는 맛있는 돼지국이 되어 끓고 있다. 인근에서 오기 때문에 다 알만한 사람들이다.

 냇가에서 희추를 하면 깨끗한 물을 뜨러 사람들이 우리집에 와서 야채도 씻어가고 없는 물건도 빌려간다.

 “집구석에 꿀발라놨나? 처박혀서 머하노? 퍼뜩 안나가보나?”

 유독 부끄러움이 많아서 방에 틀어박혀있는 나에게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어서 냄비들고 갔다온나.”

 엄마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서 손에 냄비를 쥐어준다. 늘 그런식이다.

 자기가 가면 될 것을 왜 꼭 나를 시키는지 알 수 없다. 내가 거지도 아니고 왜 처음보는 사람들 밥 먹는데 가서 냄비를 들고 돼지고깃국을 얻어오라고 시키는지 모른다. 나는 거지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 옆에 가서 먹을 걸 얻어오기 싫다. 나는 자존심이 있는 인간이다.

 “아! 왜 나보고 가라카는데?”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빨리 가보라니까.” 엄마는 내 등짝을 손바닥으로 철썩 치면서 집 밖으로 떠밀었다.

 왜 꼭 체면안서는 비굴한 짓은 나에게만 시키는가? 오빠는 이런 비굴한 짓을 면하려고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없었다. 눈치빠르게 피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히추를 하고 있는 버들밭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냇가 입구 아카시아나무그늘 앞에 텐트를 친 젊은 남자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가 나를 보고 히죽 웃었다. 나는 애써 무시하고 지나갔다.

 ‘내가 고기랑 사이다 얻으러가는 걸 아는 거 아닌가?’

 남에게 뭔가를 주러가는 것은 당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남에게 뭔가를 얻으러 가는 건 얼마나 부끄럽고 체면 안서는짓인가를 나는 일찍부터 깨달았다.

 냇가 버드나무 그늘로 들어섰다. 나무 밑에는 내가 좋아하는 꿀꽈배기, 새우깡, 사탕, 사이다가 박스째로 쌓여있고 가마솥에는 시뻘건 고깃국물이 김을 뿜고 있었다. 그 옆을 마치 그냥 볼일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처럼 슬쩍 지나갔다. 아주머니들이 바쁜지 나를 보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무척 쪽이 팔렸다.

 누군가 나를 우연히 발견해주길 바라면서 저만치 걸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천천히 가마솥 앞을 지나갔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나를 와락 끌어당겼다.

 “아이고, 이쁜 강아지. 니 저 앞 사과밭집에서 살제? 많이 컸구나. 니 내 모르겠제?”

 한복치마를 칭칭 감아 끈으로 묶은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내 볼따구니를 쓰다듬으면서 냄비를 뺏아갔다. 아주머니는 냄비에 뻘건 고깃국물을 가득 담아주었다.

 “자, 사이다도 한 병 주께.”

 사람좋은 아주머니는 사이다와 과자 한 봉지, 아카시아껌 한 통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아아니, 저 괜찮지만.......”

 나는 사이다와 과자를 받고 속으로는 너무 기뻤으나 겉으로는 체면때문에 한번 사양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양은 입으로만 할뿐 고깃국을 담은 냄비뚜껑 위에 과자와 사이다까지 얹어서 들고 돌아서는데 입이 헤벌어졌다. 내가 얻어온 시뻘건 고깃국과 사이다 과자를 보고 동생들은 ‘와’ 소리를 질렀다. 시뻘건 고깃국에 밥을 말아서 점심으로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자랑을 하는지 무척 시끄러웠다.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어떤 아저씨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집 앞에서 보니 나이많은 아저씨들이랑 아줌마들이 떼거지로 막춤을 추면서 버드나무 숲은 난장판이었다.

 ‘아~ 난 커서 절대로 저러지 않아야지.’

 

 
 

맨위로맨아래로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