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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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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거짓말에 소질이 없군요
작성일 : 20-09-13     조회 : 437     추천 : 0     분량 : 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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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검사가 갑자기 눈짓을 했다.

 상수는 박 검사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박 형사. 최혜영 진술이랑 사건현장보고서랑 불일치하잖아?”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검사님?”

  “방금전 최혜영은 남편을 죽인 장소에서 깃대가 부러졌다고 진술했어. 하지만 자네가 올린 현장보고서에는 사체가 발견된 곳의 깃대는 부러지지 않았잖아?”

 

 상수가 살짝 인상을 썼다.

 최혜영이 진술한 깃대가 부러진 곳은 7번 홀이었다.

 그리고 피살자 돈종률의 사체가 발견된 곳은 9번홀.

 7번 홀에서 9번 홀까지는 대략 500미터 남짓의 거리였다.

 

  “검사님, 최혜영이 남편을 죽였다고 착각하고 돌아선 거라면요?”

  “착각이다? 죽은 줄 알고 최혜영은 돌아갔는데, 피살자는 9번 홀까지 기어가 죽은 거다?”

  “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죽기 직전의 사람이 왜 언덕을 올라가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반대로 내려와야 맞잖나?”

  “아래로 내려가면 최혜영이 다시 쫓아와 죽일 테니까요. 죽은 피살자 입장에서는 와이프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을 겁니다.”

 

 박 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봐 범생. 보고서에는 오류가 없어야 해. 이런 사건은 늑대같이 달려드는 기자놈들이 많단 말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

 

 상수가 눈을 꿈벅이며 쳐다봤다.

 그러자 박 검사가 상수에게 바싹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내 말은 자네가 착각을 해서 사건현장 보고서를 잘못 작성한 게 아니냐 이거지. 방금 전 최혜영이 진술한 깃대가 부러진 장소가 7번 홀이 아니라 9번 홀이 아닐까? 형사인 자네보다야 직접 살인을 저지른 최혜영의 진술이 더 맞지 않겠어?”

 

 상수는 화들짝 놀랐다.

 박 검사의 말인즉슨 깃대가 부러졌다고 적힌 7번 홀을 9번 홀로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이건 명백한 위조보고서가 된다.

 

 박 검사가 상수의 품에 서류를 안겼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이야. 게다가 우리는 지금 살인범의 자백까지 확보했어. 천사부부로 알려진 남편과 부인이 각각 피살자와 살인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가장 완벽한 조합이지. 게다가 사건을 빠르게 종결한다면 자네 진급은 따놓은 당상이지 않나?”

 

 상수가 침을 꿀떡 삼켰다.

 만약 경감으로 진급된다면 월급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동생의 병원비 문제도 빨리 해결할 수 있다.

 

 박 검사는 여우처럼 씩 웃었다.

 그리고 상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갔다.

 복도에 홀로 남은 상수는 제 손에 쥔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 손에 있는 이 사건현장 보고서에는 깃대가 부러진 곳이 7번 홀이라고 되어 있다. 내가 여기서 숫자 7을 9로 바꾸기만 한다면 이 사건은 종결된다.'

 

 하지만... 기태가 걸렸다.

 그는 사건 당일 상수와 같이 골드골프장 현장에 직접 출동했었다.

 물론 기태는 숙취로 인해 그날 사건현장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그래. 내가 숫자를 바꿔도 눈치 못챌 거야. 내내 배회하며 숙취에 고통스러워했으니까. ’

 

 제 손안에 든 물건, 마음만 먹으면 수정할 수 있는 이 서류.

 그런데 상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기태를 속인다는 게 몹시 괴로웠다.

 아무리 그가 퇴물 취급 받아도 그는 자신의 사수이며 직속 선배다.

 기태는 한결같이 '정의로운 형사 길'을 상수에게 가르쳐 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옳지 않다. 선배에게 다 털어놓자, 차라리.'

 

 상수가 핸드폰을 꺼내 기태의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서둘러 종료했다.

 

 '박상수! 지금 옳고 그름이 문제냐! 네 동생 영수가 죽어가고 있다! 지금이 영수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상수가 다시 제 손에 쥔 보고서를 응시했다.

 방금 전 박 검사가 해준 말이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이 사건을 완벽히 해결한다면 고과에 크게 반영될 수 있다.

 경위딱지를 떼고 팀장이 될 수도 있다.

 

 상수가 이번에는 제 양손을 응시했다.

 한쪽에는 핸드폰, 다른 손에는 보고서가 있다.

 한쪽에는 정의가 다른 쪽에는 불의가 있다.

 양심과 돈, 이 기로에서 상수는 갈등하고 있었다.

 

  ***

 

 침상의 미란은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변기태 형사.

 그는 병실 안을 서성거릴 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갑자기 멈춰 선 기태가 불쑥 물었다.

 

  “레프팅 좋아하십니까?”

 

 미란은 황당한 표정으로 기태를 봤다.

 

  “네? 그게 무슨...?”

  “너무 뜬금없었나요? 갑자기 생각 난 김에 물어본 겁니다. 미란 양 집에 사진이 걸려 있더라구요.”

  “네에...”

 

 미란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기태를 응시했다.

 기태가 물었다.

 

  “병원에 입원한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하십니까?”

  “아뇨. 경황이 없어서요.”

  “제가 원무과에 알아보니 밤 12시에 입원하셨더군요.”

  “아. 네에.”

  “지난번 진술에서 11시에 사고가 났고 어머님이 미란 양을 사고현장에서 픽업했다고 들었는데요, 맞죠?”

  “네에.”

  “어머님이 별장 근처까지 갔다가 학교까지 오는데 15분. 학교에서 병원까지는 10분. 도합 25분이면 충분하죠. 그렇다면 적어도 11시30분에는 병원에 도착했을 텐데, 왜 12시일까요?”

 

 미란이 다시 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기태가 뚫어지게 미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30분의 시간이 왜 비는지.”

 

 기태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묘하게 서늘했다.

 

 미란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우물거렸다.

 

  “병원에서 아마도 실수를... 한 거겠죠.”

  “흠. 병원 측의 실수라. 아참. 지금 미란 양 어머니는 경찰서에 있습니다.”

  “네에???”

 

 토끼 눈이 된 미란이 기태를 쳐다봤다.

 몹시 놀란 것 같았다.

 

  “살해용의자로 긴급 체포되셨습니다.”

 

 미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기태가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제게 할 말 없습니까?”

  “어, 엄마가.. 의원님을 죽인건가요?”

  “글쎄요, 아버님을 죽인 사람이 최혜영 씨 맞습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의원님을 누가 죽였는지는 형사님이 찾아야죠! 아시다시피 그날 밤 저는 사고를 당했구 눈 떠보니 병원이었다구요!”

 

 미란이 히스테릭하게 반응하자 기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를 끝끝내 의원님이라고 부르는군요.”

 

 미란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만 돌아가 주세요. 피곤해요!”

  “한 가지만 더 질문하죠. 그 남자는 누굽니까?”

  “대체 무슨? 남자라뇨? 누굴 말하는 거죠?”

  “사건 당일 미란 양을 병원에 데려다 준 남자 말입니다. 병원 간호사가 기억하더군요. 사고 당일 미란 양의 보호자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구요.”

 

 미란이 다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 입술에서 피가 살짝 베어났다.

 

  “미란 양? 언제까지 거짓말만 할 겁니까?”

  “모르는 사람예요. 그냥 우연히 만났어요. 엄마가 절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래요? 그 남자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습니까?”

  “몰라요. 저는 그냥 차 안에 있었어요. 어머니가 골프장 근처에서 우연히...”

  “골프장이요? 미란 양도 골프장에 있었습니까? 사건 당일 밤, 미란 양이 사고를 당한 곳은 학교 도서관 공사현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미란은 몹시 당황하며 제 두 손을 꽉 맞잡았다.

 기태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계속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란 양. 지금 본인 진술이 얼마나 이상한지 압니까? 미란 양 아버지는 골프장에서 살해됐고 미란 양 어머님은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가 됐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동시에 미란 양이 사고를 당한 학교에 나타났다는 게 말이 안되죠? 한 사람이 어떻게 동시에 다른 장소에 있을 수 있죠?”

  “아흑!!!”

 

 미란이 비명인지 울부짖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기태는 쓴 소주를 마신 것처럼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간 미란에게 시간을 주었다.

 

 자신의 치부가 고스란히 드러날 때 피해자는 수치와 고통을 동시에 느낀다.

 제 탓이 아니어도 저를 탓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일평생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다.

 

 기태는 그런 피해자를 너무 많이 봐왔다.

 또 그들이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 얼마나 아파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사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자다.

 

  “미란 양.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돈 의원의 추행이?”

 

 미란은 계속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다 신음하듯 입을 뗐다.

 

  “하... 입양되고 나서 1년 뒤요.”

  “입양은 언제 된 겁니까?”

  “10살이요.”

 

 맙소사.

 기태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죽은 자를 위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지금 심정으로는 죽은 자를 제 손으로 다시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기태는 형사다.

 상대방의 고통과 연민은 늘 접어둬야 한다.

 

  “어머니 최혜영 씨는 그 일을 알고 있었습니까?”

  “네.”

  “언제부터요?”

  “처음... 부터요.”

 

 기태가 다시 인상을 구겼다.

 미망인 최혜영이 그럼 10여년을 모른 척 살아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피살자 돈의원은 상습적으로, 지속적으로 이런 일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영아입양이 아닌 초등학생 입양을 반복적으로 해왔을 수도 있다.

 

  “그날 사고는 도서관에서 있었던 게 아니죠?”

 

 미란은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골프장 안에 있는 별장에 어머님이 나타난 겁니까?”

 

 미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에 있는 미란 양을 어머니가 구했구요?”

  “네에...”

 

 기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 다시 한번 묻죠. 병원에 미란 양을 데려다 준 그 남자는 누굽니까.”

 

 미란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몹시 괴로운 표정으로 기태를 응시했다.

 기태도 미란을 응시했다.

 미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란 양.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건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지 않습니까?”

  “사실예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차 안에서 혼절해 있었어요. 그냥 낯선 남자가 엄마의 부탁을 받고 저를 병원에 데려다 준 거예요.”

  “미란 양. 지금 미란 양 말대로라면 어머님이 별장에서 미란 양을 구했고 미란 양은 차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니 최혜영 씨는 피살자인 돈 의원을 죽이러 가는 상황에서도 갑자기 등장한 낯선 남자에게 미란 양을 부탁했습니다. 병원으로 데려가라고요. 그리고 어머니는 피살자인 돈의원을 쫓아가서 살해했습니다.”

  “네... 맞아요. 형사님 말이 다 맞아요.”

  “아니죠. 이 낯선 남자는 갑자기 어떻게 등장한 거죠? 자정이 가까울 무렵 외따로 떨어진 골드골프장 별장까지 우연히 걸어올 사람은 없습니다. 게다가 미란 양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할 것을 알았으면서도 어머니를 만류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미란이 발악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네! 다 맞아요! 그랬어요! 저는 어머니를 만류하지 않았어요! 왜냐구요?? 의원님이 죽기를 바랬으니까요! 그 끔찍한 고통을 그만 쫑 내고 싶었어요! 엄마가 안했다면 내가 했을 꺼라구요, 내가!!”

 

 악을 토해 낸 미란이 씩씩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눈빛에서 격렬한 증오가 묻어나고 있었다.

 기태가 차갑게 말했다.

 

  “거짓말에 소질이 없군요 미란양. 어머니 최혜영 씨는 살인범이 아닙니다. 그렇죠?”

 

 

 - 다음에 계속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작가 최극입니다.

 13화 업로드가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입원을 하셔서 그동안 글을 업로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자주 업로드를 할 예정이니 양해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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