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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입니다
작가 : 샤론
작품등록일 : 20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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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돌. 나를 아프게 했고 여전히 아프게 하는 이름
작성일 : 20-09-13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7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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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실]

 

 “안 돼!!”

 

 책상에 팔을 개고 잠들어있던 준원이 화들짝 놀라며 깼다.

 꿈속의 끔찍한 장면은 사라지고,

 준원의 시선엔 여러 대의 모니터와 때가 찌든 라꾸라꾸 침대,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와 커피, 우유 등등이 널부러진 편집실,

 산발인 머리카락과 부은 얼굴이 거울에 오버랩 됐다.

 

 “또.... 그 꿈이네...”

 

 (아무도 모르지만) 아이돌 T.O.T 출신 PD 박준원.

 그가 종종 꾸는 꿈이었다.

 탑 아이돌이 되어 무대에 올라 팬들의 함성을 받다가

 리더 도윤이 천장에서 떨어져 죽는 꿈...

 황홀함과 끔찍함이 공존하는 그 꿈은

 11년째 준원을 괴롭히고 있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그대로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 때 내가 그 사람을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

 

  ** 2006년, 17살의 준원 시점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피씨방을 가려는데

 어떤 남자가 준원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하얗고 밝은 피부톤, 작은 얼굴, 덕지덕지 묻은 잘생김..

 178cm의 이상적인 키! 슬림한 몸매...

 준원을 보는 여자들, 아니 남자들도!

 이 얼굴은 이렇게 썩히면 안 된다며 연예인하라고 부추겼다.

 

 이렇다보니 길거리 캐스팅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다들 금방 데뷔시켜줄 것처럼 말해서

 몇 번 엄마와 회사에 가보기도 했지만

 막상 가면, 캐스팅 받았어도 오디션은 봐야한다..

 오디션 보고 붙으면 연습생부터 해야 된다...

 똑같은 말 뿐이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얘기 들어보면 연습생만 기본 5년...

 꼭 연예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공부도 곧잘 했던 준원은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디션만 보면 프리패스인데..

 그건 실력이 있다는 얘긴데.. 굳이 연습생을 해야 하나?‘

 시건방진 생각이 가득 차있었다.

 

 ‘이번에도 연예인 하라고 날 붙잡는 거겠지..’

 싶었던 준원은 웃으며 말했다.

 

 “연습생 같은 거 할 생각 없는데요~”

 

 팔을 잡은 손을 떨쳐내며 꾸벅 인사를 하는 준원이 귀여웠는지

 그 남잔 “훗” 웃음을 뱉고는 준원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연습생 말고, 바로 데뷔!

  물론, 학생이 실력이 있어야겠지만!

  우리 회사에서 7인조 준비하고 있거든요.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데... 춤은 좀 춰요?”

 

 다른 때와 달리 뭔가 확신에 찬 말투 때문이었을까..

 준원은 홀린 듯 그 사람을 따라갔다.

 

 이름 있는 소속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청담동에 사무실이 있었다.

 명함을 준 남자는 대형기획사 출신 매니저고,

 여기서는 이사라고 소개했다.

 데뷔를 기다리는 연습생들의 비주얼은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에 비해 꿀리지 않았고,

 그들의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어떠냐고 묻는 듯한 남자의 얼굴..

 어린 준원의 눈에 그 사람은 구세주로 보였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주 짧은 오디션을 봤고, 바로 합격!

 그 뒤로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고,

 준원은 회사 들어간지 5개월 만에 [Top of The Top]이라는 뜻의

 T.O.T 센터로 데뷔했다.

 

 그때 준원과 T.O.T 멤버들은

 당장 내일 스타가 될 것처럼 행복했다.

 곧 유명해지고 콘서트 하고, 예능도 나가고..

 수많은 팬들이 우릴 둘러싸서

 밖에도 못 나가는거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1집 폭망..

 운이 나빴던 거라며 위로하고 2집을 바로 냈지만

 대형기획사 걸그룹들이 화제가 되며 존재감 제로.

 또 폭망이었다.

 일주일에 음악방송 한 개도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 후로 세 장의 앨범을 더 냈지만

 연차만 쌓여가고, 인지도는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미미했다.

 그렇게 2년 후, T.O.T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

 

 아이돌로 살았던 시간 고작 2년..

 아니지, 활동기간만 치면 8개월쯤 될까?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도 않고

 치유되지도 않은채 지독하게 준원을 괴롭혔다.

 

 도윤 때문이었다.

 정말 좋아했고, 의지했던 형의 부재는 엄청난 상처였으니까.

 부모님이 억지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을 때 의사는 말했다.

 그 사람은 이제 없는 사람이라고.. 잊어야 한다고..

 그래서 물었다.

 잊혀지지 않는데 어떻게 잊냐고..

 자꾸 생각이 나고, 편해지지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스스로 잊으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준원의 마음은, 준원에게 그 의지를 갖게할 생각이 없는듯

 매일 도윤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는데...

 가끔 이 꿈을 꾸고 나면 너무 지치고 힘들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

 

 준원을 잡념에서 깨운 건 후배 PD 나영의 괴성이었다.

 나영은 준원의 후줄근한 모습을 한참 바라보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4년 전이었나? 나 처음 선배 봤을 때 진짜 설렜는데..

  편집실에서 침 흘리고 자는데도 잘 생겨서 깜~~짝 놀랐거든..

  근데... 선배도 마~~이 늙었다.”

 

 나영은 자신이 마시려고 가져온 커피를 준원에게 건넸다.

 준원은 고맙다는 뜻으로 손을 한번 들어보인 채

 커피를 쭈욱~ 들이키고는 뻐근한지 목을 주물렀다.

 그런 준원을 안쓰러운 듯, 한심스러운 듯 보더니

 책상 한켠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며 말했다.

 

 “참! 부장이 선배 찾아”

 

 “왜?”

 

 “나도 모르지~ 무슨 프로그램 맡길 것 같던데..”

 

 “무슨?”

 

 “나도 모른다고요~

  빨리 가~ 나 예고 편집해야돼.”

 

 “으으으으~~~~”

 

 준원은 잔뜩 구겨진 몸을 펴며

 괴상한 신음을 내더니 “으아~” 하며 의자를 짚고 일어섰다.

 

 

 바깥으로 나온 준원은 밝은 세상이 불편해 눈을 찡그렸다.

 방송국 로비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음악방송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매니저들 마주치기 전에 얼른 사무실로 도망가야지~'

  생각하며 빠르게 걷던 준원의 걸음이

 음악 쩌렁하게 울리는 공개홀 스튜디오 앞에서 멈췄다.

 

 이른 아침부터 1층 무대에선 사전녹화가 한창이었다.

 뭔가에 홀린 듯, 2층으로 통하는 공개홀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피곤에 찌들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리허설을 하는 아이돌들..

 준원은 그들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싫은데 자꾸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자신이,

 어떤 미련에 붙잡힌 듯한 마음이, 미치도록 짜증났다.

 이런 저런 잡념에 빠져있는 준원의 귀에

 우렁찬 인사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브릴리젠트 입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자신 앞에 서 있는 아이들..

 아래서 대기하던 매니저가 2층에 있는 준원을 발견하고

 멤버들과 올라온 모양이다.

 

 찬란하다는 뜻의 “Brilliant”와 선물이라는 뜻의 “Present”를 합쳐

 대중들에게 찬란한 선물이 되고 싶은 포부를 담은 브릴리젠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은 연습생들이 대거 포진돼서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오를 거라 예상했지만

 벌써 3년차.. 정상 근처만 맴돌고 있었다.

 

 건성으로 인사를 받고 나가려는데 브릴리젠트 매니저인

 오원일 이사가 너스레를 떨며 준원을 붙잡았다.

 

 “PD님을 여기서 다 뵙네요~

 어쩐 일이세요?”

 

 “그냥 지나다가..”

 

 딱 봐도 준원보다 예닐곱은 많아 보이는데

 원일은 저자세였고, 준원은 세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분명 준원을 욕했을 거다.

 

 분위기가 여의치 않음을 느낀 원일은

 멤버 중 한 명의 손을 잡아 끌어 준원 앞에 세웠다.

 

 “기억하시죠?

 감독님 [이리와] 하실 때 패널로도 몇 번 나갔었는데..”

 

 “안녕하세요! 브릴리젠트 하준입니다!”

 

 아.. 기억난다.

 브릴리젠트의 리더 하준.

 어느 아이돌이나 그렇겠지만,

 녹화가 아무리 길어져도 힘든 티 한번 안내고

 생글생글 웃던 친구였다.

 

 방송도 곧잘 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모범 답안을 내놔

 예의돌, 선비돌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던 건 다 옆에서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작가들이 어찌나 옆에서 살뜰하게 챙기던지..

 특히나 세컨 작가였던 세희는 흐뭇하게

 엄마 미소 지으며 유독 더 신경 쓴 기억이 난다.

 

 일 할 때 세희는 열정적이었다.

 방송을 위해서라면 쪽팔림도 감수하며

 연예인들과 리딩하는 자리에서

 직접 연기를 선보이고 망가짐도 불살랐고,

 방송이 서툰 신인들에게는 더욱 더 신경써주고

 멘트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주는 스타일이었다.

 

 하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딩은 물론이고,

 방송 들어가기 전, 엠씨들에게 특별히 더 잘해주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쯤되면 방송을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플로어에서 현장을 통솔하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옛날 아픈 기억이 떠올라 준원은 하준이 더 꼴보기 싫었다.

 

 ∴

 

 준원이 T.O.T로 활동하던 당시,

 초반에는 예능프로그램과 라디오에 종종 나갔었다.

 T.O.T가 단체로 처음 라디오에 출연하던 날,

 첫 방송이라 긴장해 있는데

 매니저는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같이 출연한 그룹의 매니저는 옆에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고,

 PD, 작가는 물론 MC 대기실에도 데리고 가 인사를 시켰다.

 

 그 모습에 T.O.T 멤버들은 엄마 잃은 아이들마냥 초조했지만

 자신들이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결국, 그 날 방송은 그 팀만 돋보이고 끝이 났다.

 

 속상한 마음에 차에 타서도 다들 시무룩해있는데

 매니저가 멤버들 탓을 했었다.

 너네가 못해서 다신 저 프로그램 못 나갈 거라고...

 너네 말 못하냐고, 왜 질문에 답을 못하냐고,

 너네한테 한 질문을 다른 팀이 뺏어서 대답하는데

 등신같이 왜 눈치만 보고 있냐고 면박을 줬다.

 다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우린 신인이니까..

 저 사람은 이사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창밖만 바라봤다.

 

 ∴

 

 오랜만에 만난 하준의 우렁찬 인사에

 다시 거지같았던 과거가 떠올라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이 아이한테 화를 낼 수도 없어

 도망치듯 공개홀을 빠져나왔다.

 

 준원이 나간 자리에 또 누군가 나타났는지

 브릴리젠트 멤버들이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게 들렸다.

 누군지 궁금해 공개홀쪽으로 돌아가

 문 밖에서 힐끗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세희 작가였다.

 

 자신과 그들의 분위기는 완전 어색.

 윤작가와 그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였다.

 

 그 중 예능을 담당한다는 멤버 현민은

 누나가 여기 왜 있냐고~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얼마 전 종영한 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정 패널과 작가로 함께 일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현민과 한창 얘기하던 세희는 하준을 보고도

 오랜만이라며 어깨를 토닥이고 반가워했다.

 

 ‘와.. 진짜 대단하다~

  고작 두 세 번 본 연예인한테도 저렇게 친근하게 대하다니..‘

 

 왠지 모르게 잔뜩 심술이 올라오는데

 준원의 시선에 다른 멤버들이 보였다.

 하준과 현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같은 멤버끼리도 질투나지..’

 

 아무도 모르게 혼자 비아냥대자 심술은 조용히 사라졌지만

 금세 그 자리에 씁쓸함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나아지지 않는 기분..

 아픔 따위 무뎌진 줄 알았는데..

 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프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부장이 심각한 얼굴로 반쯤 눕듯 의자에 기대

 A4 용지를 들춰보고 또 들춰보는 게 보였다.

 

 예능국의 전설이라 불리는 임석태 부장.

 공중파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로그램을 여러편 제작하고,

 MBS Line에 억대 연봉을 받고 이적했다.

 대중들은 이미 유행한 거 따라한 아류작만 만드는 PD라고 하지만

 내부 평가는 그렇지 않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하지만 뻔한 것도 그의 손을 거치면 신선해진다.....“ 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준원이 보기엔 그다지 새롭지 않고 베낀 거 맞다.

 

 하지만 내부 평가가 좋은 데는 그 사람의 인성이 한 몫 했다.

 후배 PD들이 존경하는 선배!

 작가들이 같이 일하고 싶은 PD!

 신인은 물론 이름도 없는 기획사 매니저에게도 친절한 PD!

 

 준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배들의 고충을 해결해주진 못해도 알아주고,

 사소한 일까지도 함께해주는 선배라 임부장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부장님~”

 

 “어~ 왔어? 앉어~

  꼴이 왜 이래? 밤 샜어?”

 

 “예 뭐...”

 

 “진짜 우리 PD들 고생한다..

  아침은? 뭐라도 좀 먹으면서 얘기할까?”

 

 “괜찮습니다.

  근데 저 찾으셨다고...”

 

 “준원이 입봉해야지!”

 

 “네? 아직 입봉은..”

 

 “아니야~ 너 실력있어!

  그러니까 이거 니가 해~”

 

 임부장은 보던 A4 뭉치가 "챡" 소리를 내며 준원 앞에 펼쳐졌다.

 [나는 아이돌입니다(가제)] 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었다.

 

 ‘헐... 아이돌?’

 

 준원은 어떻게든 부장을 설득해서

 이것만은 피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입사 7년차, 입봉을 얘기하기엔 이른 감도 있었고

 무엇보다 준원은 아직 메인 PD가 될 마음이 없었다.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웠고

 한편으론 귀찮았다.

 그런데 준원의 뼈아프게 만드는 아이돌 프로그램이라니...

 이건 무조건 하기 싫었다. 할 수 없었다.

 

 “부장님~ 저 이제 7년차예요.

  제가 어떻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요. 자신 없어요..”

 

 “그럼 언제까지 세컨만 할거야?

  기회 왔을 때 해~

  뭐 사실 지금 이걸 할 PD가 없어서도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땐 너 감 좋아~ 그래서 시키는 거야!”

 

 “아니 저 좋게 봐주신 건 정말 감사한데요..”

 

 “토 달지마~

  그렇게 큰 프로 아니니까 맡기는 거야!

  슬슬 준비하라고! 알았지? 이제 끝!”

 

 “근데 전 당장 제 작가도 없고...”

 

 “아~ 작가!

  너 그럴 것 같아서 내가 이미 구해놨어!”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준원은 한숨을 삼키며 기획안을 들여다봤다.

 아이돌의 24시간을 지켜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인간극장의 아이돌판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어쨌든 팬들이, 아니 딱 팬들만! 좋아할 소재였다.

 대중성 제로! 소수의 아이돌 팬들만,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애들 나올 때만 보는 방송!

 그렇다고 A급 가수들이 나올 것도 아니고...

 그들만의 리그...

 

 아니, 아이돌 시장 죽은지가 언젠데..

 트롯이 대세가 된지가 언젠데..

 왜 자꾸 아이돌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거지?

 이해가 안 되면서도 이해해야 했다.

 아이돌 프로그램이 해외에서는 여전히 먹히니까..

 판권이 잘 팔리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해외에서 투자 받아서

 아이돌 프로그램 제작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게 이건가? 싶었다.

 

 뭐가 됐든 준원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다.

 아이돌만 보면 화가 치미는데 어떻게 이걸 하냐고...

 사표를 쓸 타이밍인가... 생각하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장님~”

 

 하이톤의 발랄한 목소리.

 뒤를 돌아보니 하.. 좀 아까 본 불편한 얼굴..

 세희였다.

 

 “오랜만이네 윤 작가~”

 

 “승진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무슨.. 힘들어죽겠어~

  다른 데 가서 프로그램 대박 나니까 좋아?”

 

 “그래도 요기 있을 때가 더 편해요~

  우리 집 같아서...”

 

 ‘얼씨구~’

 부장과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보통이 아니었다.

 친화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아! 두 사람 프로그램 같이 한 적 있잖아~

  둘이 뭐 껄끄럽고 그런 사인 아니지?

  준원이는 좀 까칠해도..

  우리 윤작가가 워낙 사람이 좋으니까..”

 

 “아......”

 

 준원이 말끝을 흐리자 세희도 놀랐는지 부장에게 물었다.

 

 “나는 아이돌입니다...

  담당 PD가 박 PD님..?”

 

 “어!”

 

 마치 제대로 된 짝을 지어준 부모처럼

 흐뭇하게 웃는 임부장에게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억지웃음을 지어보이고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돌아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며 떨떠름한 표정이 지어졌다.

 

 ‘왜 하필 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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