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아이돌스토리
나는 아이돌입니다
작가 : 샤론
작품등록일 : 2020.8.24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2. 동상이몽
작성일 : 20-09-13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7346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 2006년, 19살 세희 시점

 

 방송국에서 일하는 친구의 언니가

 최고의 아이돌 판타모니를 보여준다며 초대한 날.

 커피숍에 앉은 세희와 친구들은

 거울을 보며 꽃단장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자 빼먹은 게 걸리면 완전 깨지겠지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야~ 이따 오빠들이랑 눈 마주치면 어떡해?”

 

 “으악~~~ 야! 생각만 해도 심장떨려~”

 

 “가서 내 이름 말하면 기억해줄까?

  오빠한테 내 마음을 어떻게 알려주지?”

 

 그 순간, 세희가 찬물을 확! 끼얹었다.

 

 “걱정하지마! 방청석에 있어서 우리 안 보일거야!"

 

 “이런 강철심장.. 어쩜 이렇게 이성적일 수 있지?

  너... 솔직히 말해! 판타모니 팬 아니지?”

 

 “어허! 무슨 소리!!

  내가 현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진짜 취향 특이해...

  판타모니는 보통 제이슨이나 진호가 메인인데.. 왜 현우야?”

 

 “알잖아~ 서브병! 세희 그거 중증이야”

 

 그랬다. 세희는 이상하게 주류보다 비주류에 끌렸다.

 드라마를 볼 때도, 다들 주인공 멋있다고 난리일 때

 세희는 조연 배우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물론 주류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메인보다 서브에 더 끌리는 서브병을 앓았다.

 

 

 잠시 후, 스튜디오에 연예인들이 한명씩 등장하자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나온 한 남자는 제작진 한명 한명에게

 폴더 인사를 하고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인사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세희는 친구에게 물었다.

 

 “쟤 누구야? 아이돌 같은데..”

 

 “그러게.. 좀 생겼네~

  그러고 보니 딱 윤세희 취향 아니냐?”

 

 “어어~ 완전! 큭큭”

 

 “아.. 판타모니는 언제 나와...”

 

 친구들은 얼굴 보고 잠깐 혹했다가 금세 시들해졌지만

 세희는 계속 그를 보고있었다.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대기실에서 누가 나오기만 하면 자동으로 인사했다.

 

 

 5시부터 시작된 녹화는

 밤 10시가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명 가까이 되는 연예인들도,

 방청석에 앉아있는 팬들도 지쳐갈 때쯤,

 잠시 쉬어간다고 한 남자가 외쳤다.

 

 연예인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 대기실로 들어갔다.

 팬들은 행여나 우리 오빠도 들어갈까.. 걱정하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판타모니 멤버들은

 팬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힘들죠..”

 

 그 말 한마디에 팬들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고,

 오히려 자신들의 오빠를 걱정하며

 우린 괜찮으니 대기실 가서 쉬고 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 때, A4 용지를 든 한 여자가 들어와

 판타모니 리더인 현우에게 다가갔다.

 세희는 다정한 분위기에 관심이 생겼다.

 얼핏 듣기에 다음 녹화에 진행될 순서를 알려주며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여자가 만족한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현우의 어깨를 토닥이자 현우가 꾸벅 인사를 하며

 그 여자가 가는 길을 에스코트하며 따라나갔다.

 

 세희는 그 여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녹화가 끝나고 친구의 언니에게

 그 사람이 누구냐 물었더니 작가라고 했다.

 

 ‘이거다!’

 어릴 때부터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 탓에

 아이돌에 일찍 눈을 떴다.

 특정 한 팀만 좋아한 건 아니고,

 이 팀도 좋고 저 팀도 좋아하는 철새였지만

 그냥 그들을 보는 게 좋아서,

 그들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세희에게 꿈이 생긴 거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들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일...

 게다가 그들이 더 빛날 수 있게 도움까지 줄 수 있는 일...

 그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함과 동시에 직진이었다.

 

 

 예대 문창과 졸업 후, 있는 인맥, 없는 인맥 총 동원해서

 지상파 방송국 자료조사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워낙 싹싹하고 성격이 좋아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3개월쯤 지났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케이블에서 리얼 버라 하나 하게 됐는데..

  너 우리 프로그램에서 일 해볼래?”

 

 오며가며 인사를 하고 지내던 메인 작가의 제안.

 그렇게 세희는 MBS Line에서 막내 작가부터 시작했다.

 세희는 모든 게 신나고 즐거웠다.

 밤을 새고 자료조사를 하고, 선배들한테 혼이 나도 재밌었다.

 

 아이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활달하고 사람 좋아하는 세희의 적성에도 꼭 맞았다.

 작가라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행복해하며 일하다보니

 세희에 대한 평가는 날로 좋아졌다.

 성실하고 일만 잘해도 땡큐인데 얼굴까지 예쁘장하니

 일찌감치 선배들이 탐내는 후배였다.

 거기에 운까지 따라준 케이스였다.

 케이블이었지만 MBS Line의 굵직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 바닥에서 일찌감치 이름이 알려졌고,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긴 선배들이 많이 끌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세희는 늘 만족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아이돌 프로그램과는 이상하게 연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3년 전쯤 같이 일했던 PD인

 임부장이 전화를 했다.

 아이돌 프로그램을 런칭하려는데

 그 프로그램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세희는 소리 없는 쾌재를 불렀다.

 메인작가로 입봉도 감사한데 아이돌 프로그램이라니...

 다른 건 더 들을 것도 없었지만 일코를 유지하며,

 프로답게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다며 찾아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늘 이 자리에 기분 좋게 왔는데

 박준원이라니.... 왜 하필...

 세상은 역시 좋은 걸 다 주지 않는 건가...

 세희는 좌절했다.

 절대 그 사람이랑은 같이 일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세희가 아이돌을 너무 사랑했다.

 

 ∴

 

 세희와 준원은 방송국 로비 커피숍에 마주 앉아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려나..

 눈치를 살피며 애꿎은 커피만 홀짝거리던 두 사람.

 먼저 말을 꺼낸 건 준원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네...”

 

 다시 정적... 이번엔 세희가 입을 열었다.

 

 “PD님이 하실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왜요?”

 

 “그냥... PD님 아이돌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뭐라도 되는냥 가오만 잡고

 꼴값 떨면서 현장 분위기 안 좋게 만드시고..’ 는

 속으로만 덧붙인 말이다.

 

 준원과 세희는 불과 6개월전까지 외국인이

 한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 [이리와]에서

 세컨 작가와 세컨 PD로 함께 일했다.

 처음엔 준원이 있어 근무환경 퍼펙트라고 좋아했는데..

 준원은 겪으면 겪을수록 진상이었다.

 

 일하는 스타일도, 재미 포인트도!

 그냥 모든 게 다!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게다가 사람은 왜 이렇게 꼬인 건지..

 잘 지내보려 다가가서 말도 걸고,

 장난도 쳐봤지만 무시하는 건지 뭔지.. 반응도 없었다

 

 세희가 웬만해선 사람 싫어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PD가 박준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눈앞에 다가온 아이돌 프로그램을 놓치고 싶진 않다.

 아무리 부장이 콜했다지만 담당 PD가 싫다고 하면

 작가는 물러날수밖에...

 이 인간이 나랑 안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됐다.

 그렇다고 하고 싶다고 매달리기엔 자존심상하고...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준원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도와달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의외의 말에 놀라서 준원을 쳐다보는데 준원이 말을 이어갔다.

 

 “말씀하신대로 전 아이돌... 안 좋아해요. 잘 모르고..

  부장님이 이거 하라고 하셨을 때 못하겠다고 했는데,

  할 PD가 없다고 하라고 하셔서... 더는 거절 못했어요.

  기왕 할 거면 잘해야 하니까..

  작가님은 아이돌 매니저랑도 잘 아시고..

  별로 내키지 않으신 것 같지만.. 도와주세요.“

 

 ‘뭐지 이 진정성 뚝뚝 묻어나는 멘트는...?‘

 

 준원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걱정말라고

 내가 도와주겠다고 주책맞게 얘기할 뻔 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세희는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말했다.

 

 “회의.. 언제부터 하실 거예요?”

 

 “팀부터 꾸려봐야죠~

  작가팀은 윤작가님이 세팅해주세요.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일주일 후부터 할까요?”

 

 “좋아요.”

 

 피까지는 안 튀어도 뭔가 설전이 오고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얘기가 끝나 뭔가 찜찜했지만

 기분탓이려니.. 했다.

 세희와 준원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세희는 드디어 아이돌과 일하며 그들을 빛나게 해주고 싶다는

 꿈을 이루게 돼 세상을 다 가진 듯 흐뭇하게 웃었고,

 준원은 모든 걸 체념한 듯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슬퍼런 독기도 비쳤다.

 

 

 두 사람이 막 일어서는데 커피숍 계산대 앞에서

 오원일 이사와 몇몇 매니저들이 아는 체를 했다.

 준원에게는 꾸벅 인사만 하고,

 바로 세희와 친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매니저들과 달리

 오 이사는 준원을 따라 나오며 말을 붙였다.

 

 “PD님~ 아까 왜 그냥 가셨어요~

  바로 다음 우리 애들 리허설이었는데..

 애들 좀 보고 가주시지..

  하준이가 PD님 오랜만에 봬서 반가웠다고 전해달래요~”

 

 준원이 10번을 떨떠름하게 대해도

 열한번 다가오는 불굴의 매니저!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이런 매니저가 있어서 걔넨 좋겠다...

 이런 사람이 우리의 매니저였다면.. 우리도 잘 됐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속이 쓰리며 신물이 올라왔다.

 

 ∴

 

 우리가 망한 건 다 소속사와 무능한 매니저들 때문이라고..

 T.O.T 멤버들은 생각했다.

 반응이 없자 연습하라고 닥달만 하지 레슨도 안 잡아줬고,

 스케줄은 없냐고 물으면

 너네가 못해서 안 잡히는데 어떡하냐며

 모든 잘못을 멤버들에게 돌렸다.

 

 소속사 대표라는 사람은 더 가관이었다.

 낮밤도 없이 술만 마시면 연습실이고,

 숙소고 찾아와서 주정을 부렸다.

 왜 내가 너네 때문에 나이도 어린 PD들한테

 머리 조아리며 살아야 하냐고..

 너네가 빵 떴으면 떵떵거리고 살았을 거라고~

 

 한번은 멤버 세진이 대표에게 대든 적이 있었다.

 우리도 빵 떠서 떵떵거리고 싶다고!

 그런데 음악방송 출연도 못하는데 어떻게 뜨냐고!

 나갈 방송도 없는데 춤이며, 노래며 개인기 연습은 해서 뭐하느냐고...!

 

 그 말에 화가 치밀었는지 대표의 손이 올라갔고,

 그 앞을 리더 도윤이 가로막았다.

 모두가 놀라 아무 말도 못하자 세진이 그 길로 뛰쳐나갔고,

 도윤은 그런 세진을 따라나갔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숙소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시간 후, 사건이 벌어졌다.

 T.O.T가 데뷔 쇼케이스를 했던 공연장 건물에서

 도윤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옥상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도윤의 가족들은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라며 조사를 요청했고,

 소속사 대표에게 따지기도 했지만 대표는 묵묵부답..

 부검까지 했지만 타살의 정황은 없다는 말에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다.

 

 도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준원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했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장례식장에도 가봤다.

 더 이상 형을 볼 수 없다는 것,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사실 감이 잘 안왔다.

 

 그 후, 군대로, 다른 소속사로, 그리고 집으로...

 각자 자리를 찾아 흩어지면서 T.O.T는 공중분해됐다.

 

 집으로 돌아와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던 준원은

 형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났고,

 말도 없이 가버린 형이 원망스러웠다.

 가끔은 형이 그렇게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아

 ‘누군가 죽인 게 아닐까..’

 '죽었다고 뻥치는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연습생 생활도 없이 데뷔를 하게 된 준원은

 멤버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뒤늦게 들어와 얼굴 좀 반반하다는 이유로

 센터 자리를 차지한 준원을 멤버들이 못마땅해 했으니까..

 그렇다고 먼저 가서 살갑게 구는 스타일도 아니라 늘 겉돌았다.

 그런 준원을 도윤은 살뜰하게 챙겼다.

 멤버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도와주고, 춤도 가르쳐주고,

 밥도 같이 먹고, 늘 함께해줬다.

 

 준원은 그런 도윤이 좋았다.

 친형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친형처럼 따랐었는데...

 형도, 형을 추억할 그 무엇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걸 깨달은 순간 슬픔, 아픔이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늘 받기만 하고 형을 위해서 해준 게 하나도 없다니..

 나는 형에게 위로조차 되지 못했다니...

 형의 죽음이 의심스러워도 밝힐 수 있는 힘도 없다니..

 생각이 들 때마다 숨이 막혔다.

 준원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형의 목소리를, 얼굴을, 노래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몰래 울었다.

 

 ∴

 

 깊은 생각에 빠진 준원 곁에서 원일은 계속 떠들어댔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어 말을 그치고 준원을 보는데.

 어? 표정이 이상했다.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슬퍼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헉! 눈물까지....?

 ‘세상 싸가지 없는 이 인간도 울 줄 안다고?

 대체 왜 우는 거지?‘

 이유가 너무 궁금했지만 원일은 아는 체 할 수가 없었다.

 

 이쯤에서 빠져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준원이 아이돌 프로그램 런칭한다는 걸 들은 이상

 그냥 갈 순 없었다.

 우리 애들 스케줄 하나라도 더 잡으려면

 이 싸가지 앞에서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망설이던 원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PD님?”

 

 자신의 눈물을 봤을까...

 당황한 준원은 언짢은 표정으로 원일을 한번 보고는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아까 윤작가님이랑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들어서요..

  PD님 아이돌 프로그램 런칭하신다고......”

 

 그 말에 준원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고,

 원일은 덩달아 멈추려다 스텝이 꼬여 넘어질뻔 한 걸

 겨우 중심을 잡았다.

 준원은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 할말만 했다

 

 “아직 결정된 거 없구요.

  그러니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마시구요.

  저는 바빠서 먼저 가겠습니다.”

 

 “아.. 그럼 나중에....”

 이미 저만치 가버린 준원의 뒷모습에

 원일은 어이가 없는지 코웃음 치며 혼잣말을 뱉었다.

 

 “저 싸가지...”

 

 준원의 뒷모습에 아무도 들리지 않을 욕을 내뱉고 돌아섰다.

 

 ∴

 

 마음이 복잡해진 준원은 옥상에 올라갔다.

 어쩔 수 없이 아이돌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세희와 얘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내 프로그램 잘 만들어서 PD로 인정도 받고,

 매니저라는 인간들도 더 위에서 내려다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일을 만나고 도윤이 떠오르는 순간,

 T.O.T를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난 이들이 떠올랐고,

 애써 다잡은 마음이 다시 독으로 얼룩졌다.

 쓸데없는 질투, 삐뚤어진 마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준원은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형.. 나 아이돌 프로그램 담당 PD 됐다..

  근데 형.. 나 이거 너무 하기 싫어..

  아이돌 보면 자꾸 형 생각나고

  옛날 아픈 기억이 떠올라서 싫어...

  잘해보려고 생각도 했는데.. 그게 안돼.

  화나고 우리가 당한 수모만 생각나는데 어떡해...

  우린 안 됐는데 그래서 화가 나 미치겠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을 위해서 일을 해...‘

 

 준원은 다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근데 해야하니까.. 할거야!

  나 PD잖아.

  그들이 그토록 나오고 싶어하는 프로그램의 PD..

  제대로 갚아줄 거야!

  우리가 당했던 수모.. 차별.. 다..”

 

 무책임했던 T.O.T 대표와 매니저들에 대한 원망이,

 자신들은 못 가진 걸 가진 아이돌을 향한 질투가,

 삐뚤어진 자격지심으로 쌓여 준원의 마음에 독만 남겼다.

 

 그 독은 엄한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고,

 준원은 그들에게 화살을 날리기 위해

 마음 속 활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3 #에필로그. 9/29 194 0
22 #21. 아이돌, 나를 찾게 해 준 이름 9/29 198 0
21 #20. 보답 9/29 186 1
20 #19.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중.. 9/29 195 0
19 #18. 돌이킬 수 없다면 다시 시작하면 돼. 9/29 210 0
18 #17. 오해와 진실, 그리고 진심 2 9/29 195 0
17 #16. 오해와 진실, 그리고 진심 1 9/29 190 0
16 #15. 왜 그 사람이 너에게서 보이는 거지? 9/29 194 0
15 #14. 아무데도 못가게 지켜주고 싶어.. 9/29 269 0
14 #13. 나를, 너를, 알아가는 중.. 9/29 166 0
13 #12. 예고에 없던 균열 9/29 184 0
12 #11. 상처가 크다는 건, 많이 사랑했다는 증거. 9/29 193 0
11 #10. 의심의 싹 9/29 207 0
10 #9. 조금씩 드러나는 윤곽 9/14 215 0
9 #8. 내가 T.O.T의 팬이었다고! 9/14 202 0
8 #7. 당신은 잘 될 자격이 없었던 거야. 9/14 203 0
7 #6. 박준원 PD가 아이돌이었다고? 9/13 191 0
6 #5. 절실함 + 절실함 = (내키지 않지만) Go 9/13 197 0
5 #4. 나를, 우리를 위해서라면.. 이걸 이용해도 … 9/13 292 0
4 #3. 네가 그 노랠 어떻게 알아!!!! 9/13 296 1
3 #2. 동상이몽 9/13 306 0
2 #1. 아이돌. 나를 아프게 했고 여전히 아프게 … 9/13 309 0
1 #프롤로그. 꿈 8/25 49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