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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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변수
작성일 : 20-09-15     조회 : 442     추천 : 0     분량 : 5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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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저녁 8시, 청담동 고급한정식 집 앞.

 차에서 내린 박 검사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지금 검사장의 긴급호출을 받고 급하게 도착한 길이었다.

 

 대기 중인 직원이 박 검사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박 검사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의 가장 끝방, 일명 VIP룸.

 직원이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줬다.

 

  ‘역시!’

 

 박 검사는 바싹 긴장한 채 방안에 발을 디뎠다.

 쟁쟁한 현역 의원들, 적어도 4선 이상의 의원들이, 모여 앉은 술자리였다.

 목덜미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지만 박 검사는 공손히 묵례를 하고 말석에 자리했다.

 말석 근처에 있던 검사장이 박 검사 앞에 술잔을 놓았다.

 박 검사는 얼른 잔을 들었다.

 검사장이 술을 따라주는 사이

 가장 상석에 있던 의원이 입을 열었다.

 

  “돈 의원 조문은 잘들 다녀오셨습니까?”

 

 그러자 그의 오른쪽에 앉은 의원이 먼저 답을 했다.

 

  “예. 워낙 명망 있는 분인지라 문상객이 붐비더군요.”

 

 답을 먼저 한 의원을 필두로, 다른 의원들이 차례로 답하기 시작했다.

 

  “미망인께서 마음고생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고인을 음해하는 기사에다, 유가족을 괴롭히는 사람까지 있답니다.”

  “저런, 누가 그런 경거망동을. 이 참에 그런 자는 싹 뽑아내야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박 검사의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자신에게 경고하는,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박 검사.”

 

 가장 상석에 앉은 그 의원이 무거운 목소리로 불렀다.

 박 검사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예. 의원님.”

  “서부지검에서 가장 유능한 검사라고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의원님.”

  “그래요? 후훗. 과찬인 건 압니까? 다행히 귓구녘은 말짱한가보구만.”

 

 헙!

 박 검사는 너무 놀라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의원은 지금 저를 비난하고 있었다.

 박 검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의원님. 고인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상석 의원이 잠시 싸늘하게 박 검사를 보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헛, 이것 참. 누가 보면 외압이라 오해 하겠구만.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아요 박 검사.”

  “예!”

  “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요."

  "예. 의원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공이 간과 되서는 안 되죠. 잘 아시다시피 고인은 우리나라를 위해 15년간을 헌신했습니다. 나라경제가 어려울 때 자신의 전 재산을 국가에 바쳤고, 국민이 힘들어할 때마다 빈민구제 사업을 펼쳤어요. 이런 훌륭한 공을 세우신 분에게 작은 흠집이 하나 있다고 해서 그분의 공적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지 않겠어요?”

 

 박 검사가 고개를 들고 잠시 그를 보았다.

 지긋하게 저를 쳐다보는 의원.

 하지만 눈빛은 단호하고 매서웠다.

 박 검사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의원님.”

 

 

  ***

 

 

 상수는 한 시간 넘게 볼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놓인 종이에 7이라는 숫자를 9로 바꾸자고 결심했지만, 계속 망설이는 중이었다.

 

  “뭘 망설여. 그냥 고쳐버려.”

 

 상수가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어느 새 기태가 제 뒤에 서있었다.

 상수는 재빨리 서류를 덮어버리고 일어났다.

 

  “진종일 어딜 쏘다니다 이제 온 겁니까?”

  “피살자 딸 좀 만나고 왔어.”

  “피살자 딸을요? 또 왜요?”

 

 기태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말했다.

 

  “뭔가 아귀가 안맞아서. 가길 잘했어. 새로운 걸 알아냈거든.”

  “새로운 거라뇨? 뭔데요?”

  “사건 당일 돈미란이를 입원시킨 보호자는 최혜영이 아니었어.”

 

 훗.

 상수가 만족스레 웃었다.

 최혜영이 아닌 게 당연하다.

 그 여자는 돈미란이 병원에 입원한 그 시각, 피살자 돈종률을 죽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범생 그 미소는 뭐야? 넌 누가 돈미란일 입원시켰는지 안 궁금해?”

  “글쎄요. 본인 스스로 갔을 수도 있고, 뭐 아니면...”

  “남자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남자?

 상수는 인상을 쓱 썼다.

 젊은 남자라는 점이 뭔가 걸렸다.

 

  “그치? 범생 너도 걸리지, 그 자가 누군지 궁금해지지?”

  “글쎄요. 누군데요?”

  “몰라.”

  “병원 입원서류에 이름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서류에는 최혜영이 보호자라고 기록되어 있었어.”

  “뭐라구요?"

 

 상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보호자를 가짜로 기재하는 건 명백한 위법이다.

 

  "그럼 병원 측에서 남자 보호자 신분확인도 안하고 최혜영 씨 이름으로 기입했단 말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병원에서 보호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도 불법이야."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최혜영 씨가 누군지는 다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남자가 자신을 최혜영이라고 우겨도 모른 척 했다는 말입니까?"

  "그래. 원무과 직원 말로는 돈 의원의 비서 중 한명이라 생각했다는군. 병원 관계자들은 피살자 일가를 잘 알고 있으니까. 돈종률 의원을 비롯해 부인과 딸까지 모두 그 병원의 단골이고 건강검진도 매년 그곳에서 해왔으니까.”

  “그렇다면... 그 남자도 피살자 집안의 운전기사나 직원일 수도 있겠네요.”

 

 상수가 넘겨짚자 기태가 미묘하게 웃었다.

 

  “그건 아니야. 그 남자를 목격한 간호사가 있었거든. 그 간호사 말이 확실히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고. 돈 의원 집안의 기사도 아니라고.”

  “그래요? 그럼 딸 돈미란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모르는 사람이라고 발뺌하더군. 엄마가 자신을 입원시켜 달라고 그 남자에게 부탁을 했고 얼결에 데려다 준 낯선 사람이라고.”

 

 상수가 또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집안의 관계자이거나 골프장 관계자이면 몰라도 오밤중에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이라니.

 정말 너무 뻔한 거짓말이지 않은가.

 

  “돈미란 씨는 어머니 최혜영 씨에 대해 뭐라던가요?”

  “처음에는 어머니가 용의자로 체푀되었다는 소식에 조금 놀라더군. 하지만 이내 내게 물었어.”

  “뭐라구요?"

  "엄마가 의원님을 죽인 게 맞냐고 하더군.”

  “이상하군요. 그날 밤 침실에서 자신을 구한 어머니를 분명히 봤을 텐데요. 흠. 아마도 거짓말을 하는 거겠죠, 엄마를 보호하려구요.”

  “과연 그럴까?”

  “당연히 그렇죠. 조금 전에 최혜영 씨가 피살자를 죽였다고 다 자백했습니다. 그동안 양녀인 돈미란이 피살자에게 당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고 사건 당일 기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별장까지 직접 갔다고요. 그리고 침실에 들어가 1차로 골프채로 피살자를 가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지난번 진술에서 운전기사는 시골에 갔다고 했었잖아?”

  “거짓말이겠죠, 그것도.”

 

 기태는 다시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짚었다.

 서둘러 사건을 종결 내려는 상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상수는 기태의 우려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당일 골프채로 피살자 돈의원을 1차로 침실에서 가격했고, 그리고 도망가는 피살자를 쫓아가 2차로 가격해서 숨지게 했다고 분명히 자백했습니다.”

  “최혜영이 골프장까지 쫓아갔다고?”

  “네.”

  “그럼 도망치는 돈 의원을 뒤쫓는 그 긴박한 와중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딸을 지나가던 낯선 남자에게 부탁하고, 자신은 남편을 죽이려는 일념으로 다시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9번 홀까지 쫓아갔단 말이야?”

 

 제길.

 상수는 속으로 욕을 했다.

 자신도 안다, 최혜영의 자백이 뭔가 덜그덕 거린다는 것을.

 하지만 범인이 살인을 자백한 마당에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그런데 기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범생, 최혜영인 범인이 아냐.”

  “아뇨. 범인 맞습니다. 본인이 자백했어요.”

  “그 자백을 너도 믿을 수 없잖아? 최혜영은 자기 골프채를 별장 신발장 앞에 놓고 왔어. 살인사건 현장까지 피살자를 쫓아가 죽이고 도로 가지고 내려 와서 우리가 볼 수 있게 해놨단 말야.”

  “자꾸 말도 안 되는 그 이상한 추측 그만 하세요!”

  “범생. 너야말로 고집피우지 말고 생각을 제대로 해봐. 최혜영은 프로에 가까운 골프실력을 가졌으면서도 골프를 못한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누구든지 보라고 피 묻은 골프채를 신발장 옆에 세워 놓았다구. 살인을 자백한 게 아니라 최혜영은 자신을 살인범으로 위장하고 있어!”

  “빌어먹을! 그 여자가 뭣 때문에 그런 얼빠진 짓을 합니까!”

  “누군가를 위해서겠지."

  “그게 누군데요! 말해 봐요 그럼!”

  “아직은 몰라. 두 모녀가 그 부분에 대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으니까.”

  “두 모녀가 왜 입을 다물고 있는 줄 알아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혜영이 자기남편을 죽인 게 진실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제발!! 선배야말로 얼빠진 추측 그만 하시죠!”

 

  - 둘 다 뭐하는 짓이야!

 

 상수와 기태가 뒤돌아봤다.

 어느 새 박 검사가 들어와 있었다.

 

  “둘 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복도 끝까지 두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거 몰라요?”

  “검사님, 변 선배가 자꾸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박 검사가 손을 들어 상수를 제지했다.

 그리고 기태 쪽을 봤다.

 

  “지난번부터 계속 골프채를 일부러 놓고 왔다고 말하는데 변 형은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신발장 옆에 세워져 있었으니까요.”

  “그럼 최혜영이 일부러 놓고 왔다 칩시다. 그 이유가 뭐요?”

  “범인이 누군지 우리에게 숨기려는 거죠.”

  “그러니까 최혜영은 범인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고 그 범인을 보호하려 든다?”

  “아마도 그렇습니다.”

  “범인을 왜 보호한다는 말입니까?”

  “범인이 드러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양녀로 입양한 돈미란을 피살자가 지속적으로 학대하고 성적으로 유린...”

  “그만! 그 이야기는 안 됩니다! 이 시간부로 무조건 오프 더 레코드라구요.”

 

 단호한 박 검사의 제지에 기태가 눈을 추켜올렸다.

 

  “오프더레코드요? 갑자기 불쑥 뭐하자는 겁니까? 사건의 진실을 숨기자는 겁니까?”

  “변 형. 이 점은 분명히 해둡시다. 피살자 돈종률 의원과 양딸의 관계는 절대로 언론에 드러나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엿 같은 소리요? 그럼 범인의 동기는! 이대로 묻자는 거요!”

  “어이 변! 말 조심 해. 엿같은 소리라니?? 지금 내가 우습게 보입니까! 어따 대고 함부로...”

  “검사면 검사답게 사실을 밝히란 말이요!”

 

 박 검사가 기태 앞에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야 변기태. 지금 내가 검사답게 일하는 거 안 보여?”

 

 기태와 검사가 으르렁 거리며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이.

 아까부터 계속 울리던 전화를 상수가 받았다.

 

  “서부경찰청 박상수 경윕니다. 서부구치소라구요? 네. 네?!”

 

 갑자기 상수가 놀라 굳었다.

 그러고는 제 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드렸다.

 하얗게 질려 있는 상수를 기태와 박 검사가 돌아봤다.

 기태가 다가왔다.

 

  “상수야,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순간 상수가 휘청, 이자 기태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

 박 검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와 떨어진 수화기를 집었다.

 

  “나 서부지검 박태만 검사요. 서부구치소에서 무슨 일로...? 뭐? 모친이.. 자살을...했다구?”

 

 전화기를 든 박 검사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기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박 검사를 봤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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