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푸른 잎에 능금
작가 : 목탄
작품등록일 : 20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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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깨 위에 구름
작성일 : 20-09-17     조회 : 357     추천 : 1     분량 : 7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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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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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를 들고 오가는 나인들로 궁이 번잡스럽다. 붉은 도포를 살랑대며 궁을 누비던 별감이 생각시를 불러 묻는다. 별감의 미색에 반한 생각시가 낱낱이 명 받은 일을 고한다. 일이 벌써 이렇게 된 것인가. 전하께서 어정에 제를 명하셨으면, 곧 일이 벌어지겠구나. 중전이 그토록 막고 싶어 했던 기우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텐데. 어찌 천명을 막을지 궁금하구나. 마침 세자가 아침 공부를 마치고 동궁을 나온다.

 “기우제를 한다던데?”

 “워낙 가물었으니.”

 “그럼 네가 주관하겠구나?”

 “전하께서 계신데 왜 내가?”

 “이 일의 발단은 너거든.”

 “술주정은 기방에서 하고, 냉큼 비켜라.”

 “어진 왕이 되려면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지. 너 때문에 비가 안 내린다는 소문이 있거든.”

 “누가 그런!”

 “너 때문에 어정도 막히고, 연못도 메워졌다. 응당 그런 소문이 돌 밖에.”

 “헛소문이다.”

 “그렇다면 증명해야지.”

 화홍의 입매가 굳어진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여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이제야 마음껏 능금에게 갈 수 있는데, 몇날 며칠이 될지도 모르는 제사를 주관하라는 말이냐. 화홍의 속내를 눈치 챈 부사가 피식 웃는다. 너도 사내로구나. 이 엉큼한 것.

 “기우제가 시작되기 전에 합방이라도 치르지 그러냐.”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배동인데, 어찌 그런 대사를 상관치 않으리.”

 “닥치시지.”

 “워워. 진정하시옵소서. 이 망령된 입을 닥치겠나이다.”

 부사가 깐족깐족 약을 올리며 사라진다.

 

 중전의 처소에 나이든 노인이 앉아있다. 그 옛날 용의 허리를 뚝 끊어놓았던 늙은 아비다.

 “기방 나들이가 너무 잦으신 게 아닙니까?”

 “무슨 낙이 있어야 말이지요.”

 “바둑이나 서책은 어떠십니까?”

 “눈이 침침해서 그만 둔지 오랩니다.”

 “그만 몸을 돌보셔야지요.”

 “늙은이는 기방에 들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그만 체통을 지키셔야지요.”

 “사내라면 응당 꽃을 가까이 하는 법입니다.”

 아직도 사내라 여기시다니, 정정하신 게로구나. 딸보다, 손자보다 어린 첩년들이 줄줄이 있는데도 여전히 기방에 드나드시다니, 그 버릇은 개도 못 주는 모양이다.

 “어쩐 일로 궐에 드셨습니까?”

 “마마님 얼굴도 뵐 겸 궁 구경도 할 겸 들렸지요.”

 “잘하셨습니다.”

 “참, 며칠 전에 재밌는 얘길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요?”

 “기녀에게 들은 얘기인데. 별감의 등에 구름 같은 반점이 있다 하더이다.”

 “구름 같은 반점이요?”

 “뭉게구름 같은 반점이 어깻죽지에 있다는데, 꼭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근두운 같다고 합니다.”

 근두운이라, 전하의 어깨에도 그런 흰 점이 있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기녀의 말이라 못 믿으시는 겝니까? 춤과 노래를 팔 지언정 거짓은 팔지 않는 게 기녀랍니다.”

 별감 뒤를 항아리를 인 아낙이 따라붙는다. 저자거리에 들어선 별감이 향낭을 고르다, 갓끈을 고르다 한다. 때를 보던 아낙이 부러 별감에게 부딪친다. 백년을 묵었음직한 씨 간장이 와락 별감의 몸으로 쏟아진다.

 “억, 이게 무슨 짓이오.”

 “에구머니나,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똥이요? 된장이요? 왜 이리 구린게요?”

 “간장입니다.”

 “무슨 간장냄새가 이리 구려!”

 “이거 죄송해서 어쩝니까?”

 “젠장, 누가 보면 똥 싼 줄 알겠네!”

 구린내를 풍기며 부사가 쏜살같이 달려간다. 체면이고 뭐고 씻기부터 해야겠다.

 뜨거운 물이 넘실대는 욕탕에 앉아 부사가 투덜댄다. 이리 독한 냄새는 처음이다. 영 냄새가 안 빠지면 어쩌나. 동백기름이라도 발라야겠다. 무슨 간장단지를 뚜껑도 안 닫고 다닌담. 이상한 여인네가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솟는다. 새로 맞춘 관복에도 냄새가 밸 것 같다. 옷값이라도 받을 걸 그랬나? 세욕제로 거품을 내어 몸을 씻는다. 놋 바가지로 연거푸 물을 끼얹고 무명으로 몸을 닦는다. 기분이 한결 낫다. 냄새도 싹 가셨구나. 목욕재개 하였으니 기방이나 들까. 돌아서는 부사의 등에 흰 구름 한 장이 떠있다. 영락없는 근두운이다. 문득 인기척을 느낀 부사가 문가에 눈을 둔다.

 “누구냐!”

 달아나는 발소리, 부사가 피식 웃는다.

 “누가 구름을 구경하러 온 겐가.”

 

 부사의 아비가 너럭바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마른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그리 넘치던 물도 말라, 한참이나 낮아진 내에 앉아 낚이지 않는 세월을 낚는다.

 “미끼를 끼우기는 하셨습니까?”

 “글쎄다. 궁에서 오는 길이냐.”

 “예,”

 부사가 푸른 이끼가 낀 내를 잠잠히 내려다본다.

 “곧 기우제를 지냅니다.”

 “어정에서 말이냐.”

 “세자저하의 주관으로 어정에서 드립니다.”

 무심하던 아비의 표정이 흔들린다. 약속한 때가 되었구나. 너도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거라. 그래야만 비가 내리고 강이 흐르리니.

 “그 말을 하러 왔구나.”

 “늘 어정 일을 궁금해 하셨으니까요.”

 “별 일은 없는 게냐?”

 “별 일이라, 미행을 당하는 것 빼고는 별로 없습니다.”

 “여인네들이 종종 미행을 한다 하지 않았더냐.”

 “목욕하는 걸 훔쳐볼 정도는 아니었지요.”

 “행실을 조심하거라.”

 “남의 원한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네의 마음을 그리 심난하게 하고도 그리 말하는 구나.”

 “잘생긴 게 죄라면 어쩌겠습니까.”

 아비가 웃는다. 그리 천진한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허나 누군가 네 등을 보았다면, 네 신분을 궁금해 하는 사람일 것이다.

 “몸 조심하거라.”

 “아버지두요.”

 “그래.”

 어정이 뚫린 것을 알면 두려움에 떨겠구나. 진즉에 보내주었어야 할 용을 놓지 않으려 다시 발악을 하겠구나. 그 여인이 어떤 수를 쓸지 걱정이다. 그 아비는 용의 허리를 끊고, 그 딸년은 용궁의 길을 끊고, 어떤 악연이 있어 그리 용의 숨을 틀어막는 것이냐. 부사의 아비가 시름에 젖는다.

 물을 긷는 무수리가 물동이를 들고 어정을 기웃댄다. 허리께가 두리뭉실한 게 예사 배가 아니다. 곧 헛기침 소리가 나고 임금이 나타난다. 기꺼이 물동이를 받는 임금, 은애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다.

 “고생이 많구나.”

 “아닙니다. 이 일마저 없으면 저는 궁에서 쫓겨납니다.”

 “조금만 참거라. 짐이 곧 너를 후궁으로 앉히리니.”

 임금이 무수리의 손을 애틋하게 잡는다.

 “소인처럼 천한 무수리가 어찌 그런 자리에 앉겠습니까?”

 “승은을 입은 너를 후궁으로 앉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수리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중전의 위세를 알고 있는데 어찌 후궁자리를 탐하겠는가.

 “중전 때문에 그러느냐. 걱정말거라. 내 너를 지킬 것이다.”

 “소인은 그저 뱃속 아이와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중전 마마가 낳으실 아기씨와 겨루고 싶지 않습니다.”

 “겨룰 필요 없다. 곧 폐비가 되리니.”

 “예? 어찌?”

 “뱃속 용종은 내 아이가 아니다.”

 무수리가 두레박을 놓친다. 어찌 다른 사내의 아이를 회임했단 말인가. 삼대가 멸하는 것도 모자라 씨족을 말려버릴 대역죄가 아닌가.

 임금이 친히 물을 떠서 물동이에 담는다. 무수리의 머리 위에 물동이를 올려주고는 잠잠히 웃는다.

 “그만 하면 되었으니, 어서 침소에 들거라. 너도, 우리의 아이도 모두 고단하리니.”

 임금이 무수리를 다독여 보낸다. 내 너에게 첩지를 내리지 않은 것은 중전의 등살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거라.

 어정에 달빛이 드는가 싶더니 용 한 마리가 포효를 하며 나타난다. 임금이 그 위엄을 알고 어정 바닥에 엎드린다. 검은 비늘을 반짝이던 용이 이내 훤훤장부로 변해 어정 앞에 서있다.

 “일어나시오.”

 임금이 일어나 예를 갖춘다.

 “용의 아이를 해치면 천벌을 받소. 뱃속 용종도 무사하지 않을 것이오.”

 “용의 아이라 함은, 혹시 중전의 아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어차피 물로 돌아갈 아이오. 그대가 내 아이를 지켜준다면, 나도 그대의 아이를 지켜 주리다.”

 “허나 어찌,”

 “지금 용종을 낳은들, 간신배의 틈새에서 지킬 수나 있겠소. 그대가 힘을 기르는 동안 숨겨두시오. 내 반드시 지키리니.”

 흑룡의 말이 맞다. 권력이 없는 왕이 용종을 낳은들, 어찌 안전하리오. 용의 아이를 볼모 삼아 내 아이를 지키는 게 나으리라.

 “정녕 그리하여 주시겠습니까.”

 “내 자식을 맡겨놓고, 거짓말을 하겠소.”

 검은 도포자락이 흔들린다.

 “그때까지만 내 아이를 지켜주시오.”

 문득 입질이 온다. 가난한 미끼에도 입질을 하는 가여운 물고기가 있구나. 아비가 미늘에 꽂힌 물고기를 빼어 다시 내에 던진다. 아무 미끼나 물지 말거라. 그리하다가는 너도 네 뱃속 알도 위험해진단다. 아무 여인을 함부로 품은 죄로 모두를 위험하게 만든 나처럼 말이다. 그 죄로, 저 가여운 무수리도, 내 아들도 모두 위험해졌구나. 부사의 아비가 부스스 일어난다.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이 이 약속이다.”

 

 나인 하나가 중전의 처소에 은밀히 든다. 부사에게 간장을 쏟았던 그 여인이다.

 “보았느냐?”

 “예. 어깻죽지에 구름 같은 반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수고 했다. 나가보거라.”

 “예.”

 나인이 나가자 분노한 중전이 서안을 내리친다.

 “감히 나를 속여!”

 전하는 어린 동궁을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다. 무뚝뚝한 아비라 여겼으나, 묘하게도 별감을 보는 눈빛은 달랐다. 귀한 붓을 몰래 내어주기도 하고, 맛있는 간식도 불쑥 소맷부리에서 꺼내 주었다. 저하를 모시는 아이라 저리 챙기나 싶다가도, 그 눈빛이 다정하여 얄미웠다. 설마 용의 아이임을 아는가 싶어 가슴이 철렁할 때면 그래도 다행이다. 화홍에게 집착한들, 화만 커질 게 아니냐. 차라리 무심한 게 낫다 여겼다. 허나 용종을 놔두고, 저리 편애하는 것을 볼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움이 솟아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 죽이고 싶었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유모를 아끼고, 너를 아꼈던 것이 다 그런 이유였구나. 중전이 주먹이 분노로 떨린다.

 “내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

 

 어정 앞을 배회하는 임금 앞으로 익위사가 다가온다.

 “언젠가 여기서 용을 만났었다.”

 “어떠하였습니까?”

 “검은 비늘이 무척이나 아름답더구나.”

 “그리우신지요?”

 “그 비늘보다는 물동이가 더 그립구나.”

 “예?”

 “공연한 말을 하였다. 어쩐 일로 왔느냐?”

 “교태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럴 때도 되었지. 넌 군사를 모아 별감과 그 가족을 지키거라.”

 “명 받잡겠습니다.”

 그대의 아들이 세자로 지내는 동안, 내가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고 있었겠소. 그대가 세자를 등에 이고 악을 행하는 동안 나도 성가신 가지를 쳐내고,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었다오. 용의 말대로, 때가 되었소. 어린 용이 물로 되돌아가야 할 때.

 횃불을 든 군사들이 몰려간다. 때가 이르렀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어정 물이 넘실대며 흘러넘친다. 임금이 어정을 향해 절한다.

 “용의 아들을 드리려 합니다. 부디 거둬주시고, 제 아들을 돌려주십시오.”

 

 놋으로 만든 욕통에 물을 받고, 화홍이 몸을 정갈하게 씻는다. 물이 닿자 검은 비늘이 화르르 돋아난다. 이 비늘을 보고도 놀라지 않은 것은 오직 너 뿐이다. 문득 손을 들어 손금을 본다. 그리 울긋불긋하던 것이 이리 나았구나. 이제는 정말 손금 같다. 내 생을 이리 온전히 이어주었으니 널 곁에 두어야겠다. 제가 끝나면, 혼례를 치르자. 이 손금이 끝날 때까지 해로 하자구나.

 

 부사의 어미가 아궁이에 앉아 장작을 넣는다. 가마솥에서 김이 폭폭 샌다. 콩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아비가 좋아하는 두부를 만들 셈이다. 정지에 김이 자욱하다.

 “같이 산지가 벌써 20여년이 흘렀구나.”

 그리 살고 보니, 가짜 부부도 진짜 부부처럼 되어 이리 정이 들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찬을 구하고, 서로의 의복을 고르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다. 남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묵묵히 아비 노릇을 하였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다.”

 그가 있어 돌팔매를 당하지 않았고, 홀어미라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부사도 나도 소소하고 좋았다. 이런 것이 가족이로구나. 그토록 연모하던 그는 어디가고 이런 소박함만 남았을까.

 “두부를 하는 것이오.”

 빈 낚싯대를 든 아비가 들어선다.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콩은 어디서 구하였소?”

 “부사가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를 닮아 참으로 다정하단 말이오.”

 “부전자전이 아닙니까.”

 아비가 웃는다. 기른 정이 이리 크다. 같이 산 정이 이리 크다.

 “빈손으로 오기를 잘 했구려.”

 “예, 잘하셨습니다.”

 어미가 마주보며 웃는다. 이 애틋함을 시기하도 하듯 검은 그림자들이 마당으로 은밀히 들어선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아비가 어미를 등 뒤에 숨긴다.

 “웬 놈들이냐!”

 칼을 든 자객들이 부연 김 속에서 나타난다.

 “저 계집만 내놓아라. 네겐 용무가 없으니,”

 “제 마누라를 채가는 데 어떤 서방이 가만있을까!”

 아비가 어설프게 식칼을 휘두른다. 뒷걸음치던 자객이 일시에 아비를 공격한다. 식칼이 바닥에 떨어지고, 아비의 잘린 손에서 피가 솟구친다.

 “정령 용을 죽이려는가!”

 그 외침에 천지가 울리는가 싶더니 비늘이 돋고 수염이 돋고 뿔이 돋는다. 흑룡 한 마리가 여인을 감싸고는 날아오른다. 활이 날아들고, 비수가 날아든다. 용이 여인을 강가에 내려놓는다. 이내 사람으로 변한 용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손을 댈 수조차 없이 찔리고 베였다. 어미가 목 놓아 운다.

 “서방이 죽을까 우는 것이오?”

 “안됩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그대 곁에서 오래 행복했소. 다음 세상에도 꼭 부부의 연으로 만납시다…”

 아비가 슬프게 웃으며 어미의 품에서 눈을 감는다.

 어미의 울음이 강을 적시고, 하늘을 울린다.

 복면을 한 자객 하나가 교태전으로 든다. 호롱을 켠 채 수를 놓던 중전이 문득 손을 멈춘다.

 “어찌 되었느냐?”

 “도망쳤습니다.”

 “도망을 치다니! 그깟 천한 무수리 하나 못 잡는단 말이냐!”

 “그게, 갑자기 용이 나타나는 바람에,”

 “용! 용이라 했더냐!”

 “예, 검은 색 용이 나타나 계집을 안고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었단 말이냐!”

 “활을 쏘아 떨어뜨리기는 하였는데,”

 “활을 쏘았단 말이냐!”

 “예, 용을 죽이고, 계집을 붙잡으려 했는데 관군이 나타나서 놓쳤습니다.”

 화홍의 아비가 죽었다. 내가 마음을 주었던 사내가 죽었다. 내가 보낸 자객에 그가 죽었다. 어찌 미천한 유모 하나를 지키려 목숨을 버렸단 말인가. 어찌 나를 버리고, 그 여인을 살렸단 말인가. 중전이 가슴이 쥐어뜯는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사의 목을 가져와라. 그것만이 네 살길이다.”

 “예”

 자객이 몸을 숨긴 채 교태전을 떠난다. 중전이 붉어진 눈으로 일어선다.

 “이제 내가 지킬 것을 오직 화홍 너 뿐이구나. 네 아비도 너를 버리고 떠났다. 너를 지켜 이 옥좌와 이 나라를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결코 부사에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피투성이 여인이 돌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쌓는다.

 “부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부부의 연으로 만날 수 있기를,”

 눈물이 차올라 앞섶이 젖고 소매부리가 젖는다. 눈물을 훔치는 여인 곁에 삿갓을 쓴 사내가 다가온다.

 “전하가 안 계시는 동안, 그가 저의 지아비였습니다. 무너진 담장을 쌓고, 부사를 안아주고, 물고기를 잡아 찬을 만들었습니다. 전하의 빈자리를 그가 메꿔주었습니다.”

 “미안하오.”

 “어린 시절의 마음은 온통 전하였습니다. 이제는 곁을 지켜준 그가 저의 마음입니다.”

 “할 말이 없구려.”

 “너무 늦으셨습니다. 갓난쟁이는 어른이 되고, 처녀는 늙은 어미가 되고, 곁을 지키던 지아비마저 죽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신 겝니까.”

 “힘을 키우면 될 줄 알았소. 그러면 아무도 잃지 않을 줄 알았소. 이토록 허망하게 갈 줄은 몰랐소,”

 “전하도 결국 제 것을 지키려, 타인을 해하는 짐승이 되신 게 아니십니까? 마마처럼 말입니다.”

 “소연,”

 “그만 가십시오. 전하가 이곳에 오신 것만으로도 저와 부사는 위험해집니다.”

 “내 반드시 그대와 부사는 지킬 것이오.”

 “그 또한 전하의 욕심이십니다.”

 그랬던가. 서로의 아이를 지키자 해놓고, 그 욕심에 먼저 칼을 내었던가. 용이 스스로 돌아가길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베었던가. 임금이 물러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연, 너를 지킬 것이다. 용이 지키려 애 쓰던 것을 지킬 것이다.

 

녹수 20-09-20 13:47
 
아 그리 된 것이었군요. 임금과 흑룡이 서로의 아들을 지키고 있었던 거네요.ㅠㅠ
중전은 자신의 욕심이 자신의 정인을 죽였는데도 깨닫는 바가 없으니...
그 욕심이 또 다른 희생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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