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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치찬란했던 시절(1981~1987)
작가 : 레빈
작품등록일 : 202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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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 나를 비추는 거울
작성일 : 20-09-18     조회 : 360     추천 : 0     분량 :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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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저는 생애 두 번째로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어릴 때 미대에 진학했던 친구 녀석이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인사치레 차 딱 한 번 가 본 이래로 그런 곳에는 감히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알게 된 어떤 화가분의 초청을 받고서는 호기심에 갔습니다. 물론 미술에 문외한인 제가 가서 본다고 뭘 깨닫거나 하는 건 딱히 없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이것저것 귀찮으실 정도로 물어보는 데도 싫다 내색 않으시고 설명을 잘 해 주신 게 고맙기도 하고 '견문이 ㅂ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가서 보면 혹시나 뭘 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갔습니다.

 

  사실 저는 고 2때 겪은 치욕스런 일 때문에 미술을 기피하게 됐는데 그 때 그 일과 선생님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또 한 편으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실 우리 몇몇 미술기피자들은 초딩 때부터 아주 특별했는데 미술이 싫다보니 미술도구를 구입해 본 적도 없었고 친구들이 그림 그릴 때면 스케치북 위에다 크레용 하나 달랑 올려놓고-그것도 빌려서-먼 산을 바라보거나 공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훈련이 안 됐고 할 줄 아는게 없다보니 수업도 지루하고 선생님들 또한 우리에겐 관심도 없으시니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 온 우리가 실기시험 10점 만점에 6점만 맞아 온 우리가 고2가 되었다고 잘 할 리가 없다는 걸 뻔히 아시면서도 운명의 이 날 선생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참기 어려운 모욕을 주셨습니다.

 

  그림 들고 교탁 앞으로 나오라니요? 해도 해도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그리고는 이게 그림이냐는 둥, 초등학생도 너보다 낫겠다는 둥, 너 색맹이냐는 둥, 온갖 말로 우리들을 모독하셨습니다. 그래서 참다못한 친구 하나가 이 사태를 웃음으로 받아넘기려고 “선생님! 너무 우리 예술세계를 폄하하시는 것 아닙니까?”라고 했다가 웃음은커녕 오히려 선생님의 분노만 자극해 체벌을 가하시려길래, 진짜 색맹인 저도 욱해서 “아니 선생님! 사람마다 재능이 다른데 다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선생님은 운동 잘 하십니까?”라고 했다가 선생님께 대든다고 싸가지 없다고 교무실로 끌고 가 그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그림을 들고 서 있게 하셨습니다.

 

  그 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와! 진짜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보여 준 연기를 제가 실행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으이그! 학교 유리창 다 깨 부셔 버리고 학교 그만두고 싶었단 얘깁니다.

 

 

 그 충동의 순간, 인생의 방향이 바뀌려는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교실로 돌아오면서 제가 결심했습니다. 다음 번 시험에서 어떻게든 실기에서 8점 이상을 획득해 발판을 마련한 후 필기를 만점으로 마무리 해 기필코 ‘수’를 받고야 말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트레이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홍대 서양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친구에게 부탁해 기말고사의 주제로 예정돼 있던 유화를 집중적으로 연습해 실기시험에서 8점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치러진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취득해 결국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미술에서 ‘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랬다고 어디 없던 재주가 생기겠습니까? 시간이 지나니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더군요. 그리고 그 때 그 일을 지금 생각해 보니 실기시험에서 8점을 취득한 것도 제 노력이 가상해서 선생님께서 배려해 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는 정말 미운 선생님이었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추억이 되는군요.

 

  아! 참. 그리고 제가 예전에 어디서 듣고 너무 멋있는 것 같아 기억하는 말인데 미술을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답니다.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럼 도대체 난 뭐야? 암만 봐도 모르겠는데...”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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