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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살벌했다.
작가 : 바코드1001
작품등록일 : 20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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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성일 : 20-09-22     조회 : 450     추천 : 0     분량 : 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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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달렸다.

 

 한 마리 야생마처럼 갈색 빛 똥 머릴 덜렁거리면서.

 

  “아아, 그 인간한테 당하셨나 보네. 저기 게시판 보이죠?”

 

  “.................”

 

  “부동산매매 사기범으로 전국에 수배령 떨어진지 한 달이나 됐는데?”

 

 하수가 한강경찰서 형사가 가리킨 수배전단게시판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첫 줄을 버젓이 장식하고 있는 구세주 아저씨 아니, 그 놈.

 

 “하... 하하...”

 

 눈물보단 웃음이 먼저 났다.

 

 주머니에서 끄집어 낸 그 놈의 명함은 안 봐도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개인부동산 신수아파트 매매 전문가 임 태 철]

 

  “아.. 아하하.......”

 

 수배전단지엔 이름도 나이도 불명이라 적혀있었다.

 

 그 놈은 20대 중반에서 80대 초반까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팔도를 유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가씨? 내가 진짜 좋은 매물 하나 알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볼래요?’

 

 친절과 미소는 기본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형사님! 그 뭐냐, 그.. 저한테 사기 쳤을 때는 한 50대 초중반? 막 지가 베테랑인냥 떠들었어요. 까만 뿔테 안경 썼구요. 그리고 그.. 컬러조합도 굉장히 촌티 나는 체크무늬 셔츠랑 여기, 여기. 무릎 헤진 청바지에요.”

 

  “이 동네는 이미 떴을 거예요.”

 

  “!!!!!!!!!!”

 

 무심한 형사의 말투에 저벅저벅 한 달음에 다가간 하수였다.

 

  “형사님! 아니, 형사선생님!! 그 놈이 먼저 접근했어요!!! 친절 아니, 음흉하게 웃으면서 변태처럼 접근했다구요!”

 

  “아가씨?”

 

  “저 다음 주에 입주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아시죠? 럭키세븐? 무려 신수아파트 707호라구요. 분명! 분명 하늘이 도우 실거예요. 찾읍시다, 네?! 찾아야 돼요.. 지금 있는 원룸도 이미 계약 끝나서 저 나가면 바로 사람 들어오기로 했단 말예요......”

 

  “일단 진정하고... 근데 딱 보면 모르나?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건 백프로 사긴데.”

 

  “형사선생님은 도둑놈 딱 보고 아 이놈이다! 하세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살인범이 나 살인범이다 써 놓고 다니나?!?!”

 

  “...세상 물정 모르고 함부로 도장 찍고 그런 아가씨 잘못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 말이에요.”

 

 아주 현실적인 형사의 안쓰러운 잔소리에 하수의 빡침게이지는 조금 더 상승했다.

 

  “실속 없는 잔소리 하실 때가 아니잖아요, 지금? 형사선생님께선 지금 제 심금을 울리실 게 아니라 출동 벨을 울리셔야죠?! 지금 당장! 출동!!”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 쉬던 형사가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코자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 아니, 뭐 하시는 거 에요?!”

 

  “제발... 잡아주세요. 빨리요.. 제발요... 네...?”

 

 붙잡은 그의 손으로 서럽고 한스러운 마음을 아낌없이 전달하고 있는 하수였다.

 

 희망이란 못된 걸 가슴에 품고서 후달리는 다리를 달래고 달래며 왔는데.

 

  “흑... 형사님..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네? 그 놈 좀 잡아주세요... 제 돈 좀... 찾아주세요........”

 

 참고 참았던 눈물이란 놈은 형사의 눈빛 앞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진술서 작성할 거니까 세부적인 것 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시면 우리 쪽에서도 수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아이고, 아가씨... 괜찮아요?”

 

 뚝뚝 떨어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보며 휴지를 찾았다.

 

  “없네. 이걸로 좀 닦아요.”

 

 미용티슈를 찾다 두루마리 휴지를 집어 들었다.

 

  “뒤에.. 있는데에..!!! 허어어어엉!!!”

 

 형사의 뒤쪽 책상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미용티슈를 가리키며 꺼이꺼이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그가 미용티슈를 가져오기 위해 의자를 휙 돌렸다.

 

  “킁!!! 크응!!!!!”

 

 손에 돌돌 감아 끊어낸 두루마리 휴지로 코를 풀고 있는 하수였다.

 

  “저요... 태어나자마자 공중화장실에 버려졌대요.. 휴지는 개인 소지 필수인데다가 여기저기 똥 튀겨서 지린내 진동하는 그런 곳에......”

 

 언제나 나올까 했던 피해자의 신세한탄이 그 신호탄을 울렸다.

 

 “저 새낀 알았을까요? 저한테 암모니아 향이 나서 저절로 끌렸을까요? 나한테서 뭔가 동질감 같은 걸 느꼈으려나?...... 흑... 으흑....”

 

  “아니, 저기.....”

 

  “저요?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고아라고 천대받지 않으려고 알바도 고딩 때부터 했어요. 신문에 우유배달은 기본이었구요. 아, 햄버거. 형사님, 하루에 햄버거 500개 만들어 본 적 있으세요? 단체주문이라도 있는 날엔 천 개? 기본이에요! 근데 그게 다 내 돈이었을까요? 아뇨! 햄버거세트 값에 절반도 안 되는 최저시급 받으면서 죽어라 돈 벌어서 십팔! 세 때 고아원 나왔어요. 아마 원룸 전세 구해서 나간 원아는 제가 처음이었을걸요?”

 

  “이게 감정에 호소한다고 될 일이,”

 

  “저요! 독립한 그날로 은행가서 적금통장부터 만들었어요. 쌀 아낀다고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상상이 되세요? 한창 성장할 나이에 하루 한 끼. 남들 대학가서 새 책사고, 새 학용품 살 때.. 저요? 그거 판매하고 있었어요. 제가 알바천국 VVIP회원이거든요. 멋있죠?”

 

  “... 멋있네요.”

 

  “저요, 지금 다니는 출판사도 복사알바로 시작해서 정직원 까지 오른 기적의 여주인공이에요. 정직원 됐다고 알바 관뒀을까요? 오, 노! 저요! 주말 오전엔 택배 상차도 했구요. 주말 밤엔 대리도 뛰었어요.”

 

  “고생 많이 하셨네, 아가씨가.”

 

  “그러니까요. 그 고생을 왜 했을까요?”

 

 초장부터 막장이었던 신세한탄이 끝나나 했건만 아직 할 이야기가 남은 모양이었다.

 

  “진짜 죽어라 열심히 살아서 악착같이 모았는데도 8천... 적금 깨고 대출받고! 있는 돈 없는 돈 박박 긁어서 만든 1억 4천이라구요! 어떡할까요? 그 돈 포기 할까요? 정말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형사선생님?!?! 제 인생을 포기하는 건데 정말!! 진술조서 작성하는 걸로 끝내야 하는 걸까요?!?!!!!”

 

 하수가 있는 힘껏 책상을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

 

 유치장 안에서 쪽잠자고 있는 몇 사람을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저기!... 저기라면....!’

 

  “자, 진정하시고. 사건 발단부터 차근차근,”

 

  “형사님!! 저요!!... 죄졌습니다!! 제가 바로 죄인입니다!!!”

 

  “예에?!”

 

  “무식이 죄! 저, 은하수! 무식해서 사기 당했습니다! 형사님도 말씀 하셨잖아요? 세상 물정 모른 제 잘못도 있다고? 얼른 잡으세요! 지금 당장 저기 처넣으세요!!”

 

 맞붙인 두 손을 불쑥 내밀며 수갑을 채워 달라 까딱거렸다.

 

  “이봐요, 아가씨. 진정하시라고.”

 

 어쩌면 몸 붙일 곳은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바른 자세로 착석한 하수가 말했다.

 

  “길바닥 보단 감빵이 났잖아요? 그쵸? 밥도 주고, 일거리도 주고.”

 

  “감빵이 무슨 보호손 줄 알아요?!”

 

  “왜요? 저 죄 지었다니까요? 무식이 죄! 아! 공무집행방해? 뭐 그런 거 있죠? 저 뭐할까요? 선생님 책상 좀 엎으면 되려나? 그 정도면 감빵에서 한 달, 아니 두 달 정도 살 수 있겠죠? 아니다. 선생님 몇 대 칠게요. 제 손이 맵긴 한데 그래도 여자니까? 요기, 요기 눈 옆에 멍 좀 들고 코피. 그래! 쌍코피가 좋겠다!”

 

 잠시 후, 경찰서 밖까지 형사들에게 들려 나왔다.

 

 계단 아래에 버려지고도 온갖 발악을 해댔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흐어어어엉!!! 나 어뜩해!!!”

 

 헝클어진 똥 머리가 걸을 때마다 달랑거리며 뒤통수를 때려대니,

 

  “아파.... 개똥같다, 진짜...”

 

 잡아 뽑듯 풀어헤쳐버렸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는 땀에 젖어 몸에 들러붙기 일쑤였고.

 

  “흑...”

 

 무릎이며 엉덩이가 다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엄마. 저 누나 똥 쌌나봐.”

 

  “쯧. 저런 거 보지 마.”

 

 꺾어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걷다가 큰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다다랐다.

 

 깜빡거리던 초록불이 빨간불대기 5초 전을 알리고 있었다.

 

  “어?!”

 

 내딛은 한 발을 세차게 구름과 동시에 달렸는데,

 

  “으악!!!!!”

 

 맞은 편 인도에 다이빙을 하고 말았다.

 

  “어머, 뭐야! 저 여자!...”

 

  “되게 쪽팔리겠다.”

 

  “......... 아, 내 신발.......”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차바퀴에 사정없이 밟히고 있는 한 짝의 신발을 보면서 넋을 놓았다.

 

  “아가씨! 괜찮아요?!”

 

 개 망신살을 떨치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어 준 친절한 행인 아줌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아아......”

 

 세상 아직 살만한 건가 싶었다.

 

  “괜찮냐고요, 아가씨?”

 

  “저요... 아가씨 아니고, 은하수에요.”

 

  “... 뭐래? 미친 여잔가?....”

 

 살만하긴 개뿔.

 

 고아에 무식해서 사기 당하고 미쳐버린 여자는 세상도 쉽사리 받아주지 않는 이놈의 현실.

 

  “나.... 왜 살았지....”

 

 절어가는 피해의식에 중얼중얼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나에게 말해 주면 좋겠다... 너는 지금 잘하고.... 있다고... 조금 더...... 괜찮은 삶이 찾아올 거라고.......”

 

 애독서의 인생구절처럼 누군가 다가와 주길 바랐다.

 

  “괜찮..... 다고......”

 

 다가오는 이 하나 없는 잔인한 현실을 실감할 뿐이었지만.

 

 무릎까지 터진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었다.

 

  “하!.... 누구냐, 넌...”

 

 넘어지면서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금이 가버린 액정에 비치는 건 그녀의 얼굴이었다.

 

  “누구냐고...”

 

 수신자를 가려버린 새까만 액정 아랠 대충 그어봤다.

 

  “네네.... 은하수입니다.”

 

  “은하수씨? 나 인사과 양 대린데...”

 

  “양 대리님이 어쩐 일로...!!”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고 벌떡 일어난 하수였다.

 

 다 죽어가던 눈빛에 생기가 도는 듯 한데,

 

  “어?! 저 혹시 편집실 발령 났어요?!! 된 거죠? 그쵸! 제발 됐다고 말씀해주세요!”

 

 희소식이 들려오길 간절히 빌었다.

 

  “그게..... 은하수씨, 월요일부터 권고사직처리.. 됐어. 신수그룹에서 우리 회사 인수하는 거 결정 났거든. CS팀 직원들이 구조조정 1순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됐네.”

 

  “.........”

 

  “하수씨? 듣고 있어? 그래도 퇴사 아니고 회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자른 거니까 권고사직으로 진행하기로 했어. 3개월은 정부지원금 받으면서 구직활동 할 수 있을 거야.”

 

  “................”

 

  “은하수씨? 듣고 있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

 

 툭 떨궈지는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간 휴대폰이 바닥을 쳤다.

 

 인생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명품족의 꿈처럼.

 

 털썩 주저앉아 쪽팔린 얼굴을 감췄다.

 

  “누군가... 제발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 지금 잘하고.... 잘하고... 흑..! 으흐흑!!.... 잘하고 있었어요... 진짜... 죽어라 잘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저 여자 왜 저래?”

 

  “어휴, 젊은 사람이 낮술을. 쯧쯧쯧.”

 

 흘끔거리는 시선도 수군거리는 말도 들리지 않을 때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는데 눈앞은 깜깜했다.

 

  “자기야, 오늘 노을 색 진짜 예쁘지 않아?”

 

  “그러게. 자기만큼 예쁜데?”

 

  “...........예쁘긴 개뿔. 새까맣기만 하구만.”

 

  “어머, 이 여자 뭐야?!”

 

  “미친년인가 봐. 신경 꺼.”

 

 횡단보도를 건너는 커플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만 빼고 다... 잘하고 있네. 다 괜찮게... 사네....”

 

 빠르게 스쳐가는 사람들과 그 보다 빠르게 굴러가는 자동차들에 정신이 혼미했다.

 

  “어머! 저 사람 쓰러졌어!!!”

 

 흐릿한 여러 환영들 속에서 촌스러운 체크무늬 상의를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가씨?”

 

  “......네.”

 

  “괜찮아요?”

 

  “......네.”

 

  “이름이 뭐예요?”

 

  “.......은하수...입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하수였다.

 

  “119 불렀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응급차가 온다니 그대로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이 사람...... 본 적 있는데.....’

 

 죽어라 힘을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애를 쓴 건 눈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 누구..... 였더라...........’

 

 결국, 의식을 잃어버린 하수를 받치고 있는 남자의 입술이 살짝 열렸고,

 

  “훗.”

 

 서늘한 비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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