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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살벌했다.
작가 : 바코드1001
작품등록일 : 20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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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센세이션
작성일 : 20-09-22     조회 : 443     추천 : 0     분량 : 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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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세이션>

 

 

 

  흘러간 세월에 외모가 변하는 건 당연지사 아닌가.

 

 태백이 기억하는 열네 살 하수는 남장이 취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녀였다.

 

 교복 말곤 치마도 입지 않았고, 똑 단발인 머리카락을 기르래도 싫다고 콧방귀를 끼고.

 

 사내 같던 하수도 변했을지 모른단 생각에 달려가 묻고 싶었다.

 

 그 은하수가 맞냐고.

 

 무엇보다 그 은하수를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던 말이 있었으니까.

 

  ‘너 때문에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아?’

 

 욱하는 성질머리에 저도 모르게 한 발을 내딛는 태백이었다.

 

  “앗!!!..... 아, 진짜.”

 

 그의 뒷덜미를 움켜쥔 차비서가 말했다.

 

  “저 여자가 진짜 그 은하수면 우린 최소 고소 각이야...!”

 

 움켜쥔 뒷덜미를 그대로 잡아 끌어버리는 차비서였다.

 

  “뭔 개소리야?! 형!!”

 

 어미개가 덜 떨어진 새끼 개를 물어가듯 끌고가선,

 

  “시끄럽고. 일단 가자고 쫌!”

 

 억지로 차에 태우더니 손수 안전벨트까지 채워주고 있었다.

 

 잽싸게 달려가 운전석에 오른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는 건데? 고손 또 뭔 소리야? 은하수가 또 뭔 짓했어?”

 

  “뭔 짓은 우리가 은하수한테 했지.”

 

  “우리?....”

 

 우리란 말에 순간 움찔하는 태백이었다.

 

  ‘나야.... 은하수한테 잘못한 게 있을.... 아니지.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

 

 인상을 잔뜩 구기고선 차비서에게 다시 따져 물었다.

 

  “뭔데 이러냐고? 회사 일이야?”

 

 묵비권을 행사하며 액셀을 밟는 차비서였다.

 

  “말 할 때까지 묻는다.”

 

  “너 아까 나한테 그랬지? 회장님이 주는 거 받아 먹어봐야 독이라고.”

 

  “그건 뇌물...... 아아, 하. 그쪽이면 더욱이 들어야지. 말해 빨리.”

 

  “후우....”

 

  “아까 그 은하수가 기획안 은하수야?”

 

  “몰라. 그 은하수가 그 은하순지. 근데 은하수란 이름이 흔하냐?”

 

  “흔해.”

 

 차비서에게서 고갤 돌려 창밖을 보는 태백이 중얼거렸다.

 

  “이 세상 은하수 다 모아다 띄우면 그야말로 은하수일걸.”

 

 그에 대해선 선경험이 있는 태백이었다.

 

 UCLA 입학허가를 받았던 날, 문득 하수가 생각이 났더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갑에 ‘도토리’ 한 알쯤 기본으로 넣어 다니던 때였다.

 

  “..... 도토리... 가 뭐야?”

 

 본인 소식 보기 싫어서 한국 웹사이트는 접속도 안 하던 그가 도토리가 필요한 사이트에 접속했다.

 

 미니홈피는 젖혀두고 은하수를 검색했다.

 

  “뭐... 이렇게 많아? 비공개는 뭐야?!”

 

 대문에 은하수란 이름이 걸린 미니홈피 개수도 많았을 뿐더러 사진을 보려면 가입에 일촌까지.

 

  “아.... 아, 안 해. 안 찾아, 쯧.”

 

 귀찮아 관뒀다.

 

 그 후로는 그녀를 떠올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날을 보냈다.

 

  “저기... 사람 찾는 어플 같은 건 없어요?”

 

  “많죠. 요즘은 SNS로 다 찾을 수 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휴대폰을 처음 개통했을 때였다.

 

  “더럽게 많네.”

 

 SNS 어플들로 다시 한 번 도전 해봤지만 전보다 더 많은 검색결과에 또 포기했다.

 

  “하긴, 찾아 뭐해. 속만 쓰릴 거.”

 

 피나는 스토킹을 하기엔 감정이 썩 좋진 않았다.

 

  ‘고아원..... 가볼까..’

 

 생각하던 태백이 갑자기 발을 구르며 성을 냈다.

 

  “에이씨! 괜히 봤어!”

 

  “!!!! 깜.. 짝이야. 뭘?”

 

  “아까 그 여자.”

 

  “아는 여자였어?”

 

  “............. 알아도 모르고 싶은 여자.”

 

  “뭐라는 거야?...”

 

  “근데 진짜 뭐야? 은하수가 회사에 피해... 아, 아까 고소 각 어쩌고 했지?”

 

  “알면 다친다니까 그러네. 너 어차피 그거 안 한다며?”

 

  “얘기 들어보고 할지 말지 결정할 거야. 빨리 까. 나 오늘 세상 모든 비밀이란 비밀은 다 까버릴 심정이거든.”

 

  “.........”

 

 있는대로 뜸을 들이다 결국 입을 여는 차비서였다.

 

  “회사에서 출판사업 추진계획서가 올라오면서 인수 물망에 오른 회사가 있었어. 아, 너도 봤지? 사랑문화사.”

 

  “어. 보니까 인수가도 형편없었던 거 같던데.”

 

  “야! 그거 진짜 세게 부른 거야. 그 회사 거의 망하기 직전이었어. 오히려 우리가 인수해서 대표도 살고, 직원들도 살린 거지.”

 

  “말은 청산유수지.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야, 근데 이거 까면 나도 물론이거니와 니 아버지.. 우리 강 회장님도 곤란해져.”

 

  “우리 강회장님? 내 편 한다며?”

 

  “그래! 난 항상, 언제나 너의 편이지. 근데... 월급 주는 건 회장님인데...”

 

  “그 돈 내가 줄게. 내 통장 가져가. 비밀번호 2,”

 

  “야야야! 쯧, 알았어. 알았다고.”

 

 상당히 곤란해 하는 차비서를 흘겨보던 태백이 불현 듯,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보기 시작했다.

 

  “형. 자꾸 꾸며 낼라고 머리 굴리지 말고 자신 있게 까도 돼. 까나 안 까나 형 월급 못 받을지도 모르거든.”

 

  “뭐?!”

 

  “이 프로젝트로 당신 비밀 밝히시겠대. 그걸 나보고 맡으라니... 미치신 거지.”

 

  “뭐라고?...”

 

 태백은 보지 못했지만 순간적으로 차비서의 낯빛이 창백해져 있었다.

 

  “비, 비밀을 뭐.... 무슨, 무슨 비밀을 밝힌.. 다는 건데?”

 

 급 긴장하며 말까지 더듬거리는 차비서였다.

 

 이건 좀 과한 반응이다 싶은 태백이 물끄러미 그를 보다 말하길,

 

  “그건 비밀.”

 

  “.....................”

 

 버럭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넋이 나가버린 것 같은 차비서였다.

 

  “형, 진짜 뭐 있구나? 영 수상한데?”

 

  “어?! 아냐! 있긴 뭐가 있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란 말이 있지.

 

 입 안에서 혀를 굴리는 태백은 그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한층 더 짙게 드리웠다.

 

  “내가 하나 깠으니까 형도 이제 까.”

 

  “어? 아, 어....”

 

 운전 중인 차비서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어 정신을 차려 보려는 것 같았다.

 

  “대체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실까? 초대박 사건이야?”

 

  “어? 아, 아니. 그 정도는... 간단하게 말하면 회장님이 은하수란 사람 기획안을 훔친 거야. 기획안만 먹고 은하수는 아웃.”

 

  “뭐야, 그게?”

 

  “스토리신수 신입사원 공모에서 은하수 기획안이 1등이었는데 회장님이 그거 보시고 또 그러신 거야. 기획안만 받고 은하수는 입사 절대 안 됨. 그것도 티 안 나게 몇 개만 고쳐가지고 기획안 통과시키신 거고.”

 

 주저할 땐 언제고 책을 읽듯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는 차비서였다.

 

 마치 준비된 답안지를 술술 읽어 내려가듯,

 

  “회장님 그전부터 이상하시긴 했어. 그 사랑문화사. 은하수란 여자가 거기 직원이었는데 인수하면서 다른 직원은 다 돼도 은하수는 무조건 자르라고.”

 

 이럴 거면 뜸은 뭐 하러 들였나 싶은 태백이었는데,

 

  “은하수 안 자르면 여기랑 계약 안 한다고 협박도 하시고.”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인수조건에 어처구니가 날아갔다.

 

 차비서가 눈을 흘기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대체... 왜?! 은하수가 뭔데?!”

 

  “몰라, 인마. 은하수란 여자랑 뭔 악연이 있으신가보지. 계약직이니까 그냥 들였다 내보내도 되지 않냐.. 말씀드렸는데 곧 죽으셔도 은하수는 안 된대. 아...”

 

  “뭐? 뭐가 더 있어?”

 

  “지금 생각해보니까... 어, 그건가 보네? 회장님이 은하수를 전 직장에서 자른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 은하수가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에... 미리부터 손을 쓰신 거지.”

 

  “고작 그딴 이유로 불합격에 기획안은 훔쳤다. 아주 그냥 박수무당 나셨네. 계약직 직원이 사고를 치면 뭔 사고를 친다고? 사고 치면 그때 내보내던가! 더러워 죽겠네!....”

 

 신수에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의 표정을 살피던 차비서가 화제를 돌렸다.

 

  “직원 입김에 회사가 휘청거리는 세상이야. N그룹사건 몰라?”

 

 몇 년 전,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Me too’운동.

 

 대한민국도 강타한 미투 쓰나미에 보기 좋게 휩쓸린 N그룹 대표이사의 성파문은 아직까지 진행 중에 있었다.

 

  “미투다 빚투다 매일이 시끌시끌한데 짤렸다는 거에 앙심품고 뭔 짓을 할지 어찌 아냐?”

 

 그의 말은 듣지도 않던 태백은 기획안을 다시 보고 있었다.

 

  “뭘 자꾸 보냐...”

 

  “이거. 전부 다 그 은하수란 여자 거라고?”

 

  “어? 아, 아니. 거기 SS있지? 시크릿, 센세이션. 타이틀은 고대로 갖다 쓰고 카피만 바꾼 거야. 아주 교묘하게.”

 

  “그거 바꿨다고 그 사람이 모를 거 같아? 이거 엄연히 지적재산권침해야.”

 

  “변호사 나셨네.”

 

  “프로젝트 발표되는 순간 회사로 고소장 들고 올 걸? 아, SNS나 인터넷에 올리기만 해도 끝이네. 청와대 게시판도 있어. 대체 어쩌시겠다는 거야?!”

 

  “그걸 몰라 그러셨겠냐, 천하에 강회장님이? 후일까지 대책 마련 싹 다 해놓고 지르셨겠지.”

 

 태백이 이를 갈며 기획안을 찢어버리고 있었다.

 

  “똥물에 튀겨낸 프로젝트를 나보고 맡으라? 회장님한테 전해. 지랄이 풍년이시라고.”

 

 갈기갈기 찢은 것도 모자라 아주 세심하게 조각조각을 내고 있었다.

 

  “얌마!! 새 차 똥차 만들일 있냐?!!!”

 

 얼마나 잘게 찢었는지 차비서의 입김 한 번에 눈꽃처럼 흩날렸다.

 

  “형이 생각해도 똥이지?”

 

  “왜 나한테 화풀이야?!... 회사에서 똥 치우는 것도 죽겠구만 차에까지. 것도 새 찬데!...”

 

 씩씩대며 째리는 눈을 잽싸게 피하는 태백이었다.

 

 차창 밖 야경을 보는 태백의 눈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나 있었다.

 

  “건 그렇고.. 아까 그건 무슨 말이야?”

 

  “뭐?”

 

  “회장님 비밀이 프로젝트 어쩌고 했던 거.”

 

  “노망나신 거지. 하하, 형 말 듣고 보니까 자기가 싼 똥 자기 손으로 치우시겠다는 거네? 이걸 칭찬 해드려야 하나... 참.. 별, 어휴....”

 

  “왜? 뭔데? 내꺼 깠으니까 너도 빨리 까.”

 

  “형.”

 

  “어.”

 

  “형 꺼는 남의 똥인데 내 꺼는 내 똥이라 말하기 싫어. 계속 비밀할래.”

 

  “야!!”

 

  “내일이라도 병원에 모시고 가. 상태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아.”

 

 차창 문을 내리고 두 팔을 걸친 태백이 밖을 향해 소릴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미친놈.”

 

 얼굴을 스치는 여름 밤바람에 실려 간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도 있었다.

 

  ‘친엄마가 방화범이래.. !!!!’

 

 울컥했는지 버럭 또 외쳤다.

 

  “은하수!!! 쌤통이다!!!!!”

 

 속이 시원해졌는지 창문을 올리고, 에어컨을 틀 더니 등받이를 젖혀 누워버렸다.

 

  “형.”

 

  “왜 또?”

 

  “만약에 그 은하수가 내가 아는 그 은하수라면... 아버지가 드디어 내 빚을 갚아주셨구나..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죽어서 지옥가려나?...”

 

  “뭔 소리야? 너도 은하수란 여자한테 뭐... 있어?”

 

  “있지. 빚... 받을 게 많지.”

 

  “돈 빌려줬냐?”

 

  “훗. 차라리 돈이면... 내 인생 15년을 환산하면 얼마쯤 될 거 같아?”

 

  “............. 이제 집에 가자. 기름도 없다.”

 

 질문에 대답은 안하는 차비서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내리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 미안하다.”

 

 사과? 분명 사과의 뉘앙스를 가득 품고 있는 중얼거림이었다.

 

 대체 뭐가, 대뜸 미안한 것인지.

 

  “뭐라고? 바람소리 때문에 안 들렸어.”

 

  “자라고.”

 

 말까지 돌리는 그의 행동이 여간 수상쩍은 게 아니었다.

 

  “도착하면 깨워줄게 눈 좀 붙여.”

 

  “..........어.”

 

 스르륵 눈을 감은 태백이 바깥 소음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Thank you. Bro.”

 

  “..............”

 

 차비서의 안색이 별 하나 없는 밤하늘처럼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 태백. 나도 살자고 이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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