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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살벌했다.
작가 : 바코드1001
작품등록일 : 20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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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작성일 : 20-09-22     조회 : 504     추천 : 0     분량 : 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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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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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아빠.... 안 돼... 오지... 마... 보지 마!’

 

  “!!!!!!!!...”

 

 번쩍 눈을 뜬 태백이 숨도 몰아쉬지 못하고 굳어 있었다.

 

 잠깐의 잠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인지.

 

 미치게 그의 휴식을 방해하는 악몽이었다.

 

  “후우.....”

 

  “깼냐?”

 

 악몽에서 깬 태백의 눈앞엔 신수아파트 입구가 보였다.

 

 도착한지 한참이었는데 그가 깨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깨우지.”

 

  “잘 자 길래.”

 

 잘 자긴 무슨, 악몽이나 빨리 끝내주지 그랬냐며 타박할 수도 없는 그의 호의에 훗, 하고 웃고 말았다.

 

  “어... 덕분에 굿밤 이었네. 간다.”

 

  “태백.”

 

 반쯤 닫았던 문을 다시 열어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보내려니까 아쉬워? 라면 먹고 갈래?”

 

  “시끄러, 인마.”

 

  “후후.”

 

  “너... 그거 할 거야? 프로젝트.”

 

  “아까 답했잖아. 회장님한테 전해. 지랄 풍년에 숟가락 얹을 생각 없다고. 수고 많은 우리 차철 비서팀장님. 집에 가서 차 청소 꼭 하시고.”

 

 능글맞은 미소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간 태백이었다.

 

 신수아파트 707호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급해보였다.

 

 악몽이 뿜어낸 식은땀에 푹 젖은 와이셔츠를 단추를 거칠게 풀어내면서 곧장 샤워 룸으로 향했다.

 

 탁! 쏴아아아아아-

 

  “......... 후우..”

 

 태백은 차디찬 물줄기 아래서 한참을 서 있는 중이었다.

 

 악몽만으로도 힘겨운 그의 머릿속을 계속 헤집는 신수의 말,

 

  ‘가령 네 친엄마는 사실... 방화범이었다. 같은.’

 

  “...... 아아아악!!!!!!”

 

 냉수마찰에 악도 써봤지만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을 돌다 못해 신경을 타고 내려 심장 깊숙이 들어앉아 덜컥 자리까지 잡아버리는 신수의 비밀.

 

 잠시 후, 어두컴컴한 거실에 섹시한 상체를 드러낸 태백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강 신수 회장의 비밀... 비밀...’

 

 커다란 창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불빛들 속에 그는 얼마나 많은 비밀을 숨겨둔 걸까.

 

  “지랄맞단 말을 이럴 때 하죠, 아버지.”

 

 툭, 어깨를 대고 기대서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신수아파트 707호에서 감상하는 야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은하수...’

 

 멀리 반짝이는 한강대교를 보니 순식간에 머릿속이 은하수로 가득 찼다.

 

  “오늘은 니가 날 구하네, 은하수. 되게 미운데...”

 

  ‘이 사기꾼아!!!!!!!!’

 

  “사기 같은 건 안 당하고 살았으면...”

 

  ‘나 사직도 당했다!!!!!!!!!’

 

  “그 은하수가.. 너라면....”

 

 문득 돌아선 그가 저벅저벅 침실로 향했다.

 

 침대 위에 던져 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저예요. 그 프로젝트 할게요. 하찮은 자리 말고, 스토리신수 대표 자리에서.”

 

  “훗. 네 놈도 사내라고 권력욕이 있다는 거냐?”

 

  “당연하죠. 누구 아들인데. 당신 닮은 놈이라 적당히는 없다는 거 미리 말씀드려요. 아버지가 바라시는... 국민패륜아. 제대로 한 번 보여드릴게요.”

 

  “내일 집으로 와라.”

 

 그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먹은 이유는 순전히 ‘은하수’때문이었다.

 

 인생 15년 치의 빚을 청구하고 싶을 만큼 밉고, 미운데 어째선지 화가 났다.

 

 그저 이름만 같은 여자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하필.... 은하수를 건드린 아버지 잘못이에요.’

 

 그에겐 은하수 그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었겠지.

 

 태백이 신수에게 선전포고를 할 때,

 

  ‘Thank you, Bro.’

 

  “미친... 초딩 같은 놈이.”

 

 복잡한 표정의 차비서는 태백을 내려줬던 그 자리에서 밤을 지새울 모양이었다.

 

  “......... 뭐냐, 또.”

 

 귀라도 간지러웠던지 때마침 전화를 걸어 온 태백이었다.

 

  “어.”

 

  “형. 나 그거 하기로 했어.”

 

  “!!!!!!”

 

 좌석 등받이에 기대있던 차비서의 상체가 절로 들렸다.

 

  “뭘... 해?”

 

  “프로젝트. 그래서 말인데 부탁하나만 하자. 사랑문화사 사장님 있잖아? 내일 그 분 좀 뵙고 싶은데 어디 사는 지 알아?”

 

  “.........”

 

  “형? 듣고 있어?”

 

 차비서는 초점 없는 눈동자에 운전대를 움켜쥔 손까지 부르르 떨고 있었다.

 

 

 

 *****

 

  2층짜리 고아원 건물 옥상에 작은 컨테이너를 생활공간으로 개조한 예쁜 원룸이 하수의 방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희미한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뭔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아으... 너무 마감 직전에 보냈어...!”

 

 천고마비 독서의 계절을 빨갛게, 노랗게 물들이는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

 

  “온 세상이 감성으로 물들 너와 나의........”

 

 홀로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붉은 단풍잎 한 장을 따라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스토리신수 첫 공모전 프로젝트 ‘SS스토리’

 

 SECRET, 너와 나만 아는 비밀...

 

 SENSATION, 온 세상이 감성으로 물들 너와 나의 이야기...>>

 

 모니터에 공모했던 기획안을 띄워놓고 맘 졸이고 앉아있던 하수였다.

 

  “아직 안 잤니?”

 

  “잠이 안 와서요. 엄만 왜 안 주무셨어요?”

 

 원장수녀가 모니터를 스윽 훔쳐보곤 미소를 지었다.

 

  “잘 만들었네.”

 

  “잘은요 무슨. 구관이 명관이라고 출판사 고객 상담만 하려다 기획안을 만들려니 생각이 고작 이 정도.”

 

  “아냐, 엄마가 보기엔 아주 좋은데?”

 

  “응.... 엄만 천사라 세상사 다 좋게 보이시는 겁니다요.”

 

  “후후. 안 잘 거면 오랜만에 엄마랑 별구경할까?”

 

  “완전 좋죠. 헤헤.”

 

 컨테이너 밖에 놔둔 낡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 날씨도 선선하니 좋다! 우와, 오늘 별 진짜 많네? 이런 날은 딱 별사탕 느낌인데.”

 

  “짠.”

 

 작은 별사탕 7개가든 봉지를 흔들어 보이는 원장수녀였다.

 

  “우와! 대박. 이거 그거죠? 텔레파시? 역시 내 맘이 엄마 맘이라니까.”

 

 얼른 받아 든 하수가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별사탕 하나를 꺼내서 밤하늘에 대보였다.

 

  “이렇게 하면,”

 

  “별 따기?”

 

  “오! 후후. 어릴 때 별사탕 가져다가 여기서 맨날 이러고 있었는데.”

 

  “별사탕으로 별 따는 거. 누가 알려 준 거야?”

 

  “어?... 누가 알려준 거였나? 모르겠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을 걸요?”

 

 씨익 웃으면서 따낸 별을 입에 넣었다.

 

  “저요... 여기 떠나선 이렇게 하늘 올려다 볼 생각을 못하고 살았어요. 내 평생의 꿈은...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내려다보는 거였거든요. 천 원짜리 건빵 한 봉지면 별도 딸 수 있는데 명품만 꿈꿨어.”

 

  “그래서? 지금은 꿈이 바뀌었어?”

 

  “아뇨, 헤헤. 아직은 포기가 안 되네. 조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꿈 꿔보고 싶어요.”

 

  “응. 우리 하수, 늘 응원해. 대신에 이번엔 지치면 지금처럼 별 따기. 앞만 보고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알았지?”

 

  “넵.”

 

 한두 번 더 별을 따먹던 하수가 문득 눈동자를 키웠다.

 

  “아, 그거였구나? 센세이션.”

 

  “센세이션?”

 

  “나 아까 알바 끝나고 한강대교 걸어왔는데 어떤 남자랑 마주쳤거든요?”

 

  “남자? 웬일이야? 네가 남자 얘길 다 하고?”

 

  “아니, 뭐. 사랑이나 연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스치는.... 무튼. 딱 스쳐 가는데 순간적으로 온몸의 감각세포들이 확 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거야. 막 간질간질하고 울렁 술렁?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생각하다 관뒀는데 지금 딱 알겠어요.”

 

  “무슨 느낌인데?”

 

  “생물학적 센세이션. 딱 그거였어...”

 

 그 순간처럼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하수였다.

 

 설레고, 설레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떼는데,

 

  “나랑 그 남자랑 멀리 떨어져서 서로 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있던 그의 모습도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고 있었다.

 

 “저기 있는 남자가 견우인 거야. 난 직녀고. 멀리서 서로 그러는 거지. 잘 지냈나요? 당신은요?...”

 

 생물학적 센세이션으로 깨어난 감각세포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우리 옛날에 안녕 했던 적 있냐고 묻고 싶었어.....”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하하, 웃기죠?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두고 혼자 감수성 폭발해가지고.”

 

 홍조 띤 뺨을 가리며 펼쳤던 나래를 얼른 접어버리는 하수였다.

 

  “그래놓고 그냥 보냈어? 얘는 참. 그 정도였으면 가서 확 물어봤어야지.”

 

  “............. 훗.”

 

 급 낯빛이 어두워지는 하수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엄마 생각엔 왠지 둘이 뭔가 깊은 인연이었을 거 같은데? 그런 감성까지 폭발한 거 보면.”

 

  “아시잖아요? 그런 식으로 누구랑 엮이는 거 안 해요. 억지로 인..연 만드는 거 별로에요, 이상해.”

 

 하수의 얼굴 옆선을 물끄러미 보던 원장수녀가 넌지시 물었다.

 

  “아직도 힘드니?...”

 

  “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랑은 괜찮아요. 일자릴 구한다거나 여기 다시 왔을 때처럼. 근데 생판 모르는 남한테 먼저 다가가거나 그런 건 역시 좀 힘들어요.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누가 다가오는 것도... 스친 인연은 스친 채로 끝. 굳이 돌아가서 붙잡고, 깊어지고 그런 건..... 아직 좀 힘들어요, 헤헤.”

 

 어색한 미소에 원장수녀의 마음이 따끔거렸다.

 

  ‘그 아이가... 아직도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구나.’

 

 별사탕을 조물딱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서 밤하늘을 향해 올리며 말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면 이 별 따는 법을 알려줘 봐.”

 

  “대뜸?”

 

  “응, 대뜸. 아무것도 묻지 말고 이것만 알려주고 돌아서도 돼. 일종의 별 따기 전도사가 되는 거지.”

 

  “하하. 별 따기 전도사... 재밌겠다.”

 

 안색이 환해진 그녈 보며 흐뭇한 원장수녀가 말했다.

 

  “하수 너, 한때는 별 따기 전도사였어. 고아원에 처음 온 친구들한테도, 성당에 처음 온 신자들한테도 가르쳐줬었거든. 대뜸 다가가서 별 따는 법 알려드릴까요?”

 

  “제가요? 어... 내가... 그랬었나....?”

 

 하수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에도 이 옥상, 이 낡은 소파에 앉아있었다.

 

  ‘이렇게 따서... 이렇게 손에 쥐면 이 별은 내거가 되는 거야.’

 

  ‘바보... 그래봐야 사탕이거든?’

 

  ‘바보. 이거 먹으면 기분 되게 좋아지거든? 이건 단순히 별을 따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는 주문이야.’

 

 문득 떠오른 기억에 원장수녀를 보며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별 따기는 행복해지는 주문이라고..... 누가 있었어, 여기.”

 

 원장수녀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우리 원점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별 따기 전도사도 다시 해보자. 사람들하고,”

 

  “엄마.”

 

 원장수녀의 말을 듣다 눈을 감아버린 하수였다.

 

  “나 갑자기 머리가 아프네? 들어가서, 잘게요. 엄마도 얼른 주무세요.”

 

 도망치듯 가버린 그녀가 남기고 간 별사탕이 소파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하수야! 너 또 별사탕만 빼고 건빵은 하나도 안 먹고!’

 

  ‘헤헤, 별사탕이 급해가지고. 죄송해요. 사실은 백 개 모아서 태백이 줘야하거든요. 걔가 워낙 행복의 맛을 모르는 애라.’

 

 서글픈 눈의 원장수녀가 읊조렸다.

 

  “하수야.. 태백이 일은 너 때문이 아니야... 이제 그만 거기서 나왔으면 좋겠는데...”

 

 흩어진 별사탕보다 달달한 성격의 하수였다.

 

 별 하나 없는 밤하늘아래 그녀가 있으면 그 주변이 절로 반짝거리던 그런 아이였다.

 

 그랬던 하수가 그날부터 지금까지 달달함도 잊고, 반짝임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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