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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deye : 살인자가 된 엠마
작가 : 바코드1001
작품등록일 : 20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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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e past_(3)
작성일 : 20-09-22     조회 : 491     추천 : 0     분량 : 5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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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천진한 얼굴로 애교를 부리며 엠마의 아픔을 무마시키려는 요셉이었다.

 

  “요셉! 너 이노무 자식, 누나 아픈데 그렇게 매달리면 어떡해?”

 

  “이거 놔! 이 할망구야!”

 

 가브리엘 수녀가 요셉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녀의 팔 안에 갇혀 버둥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눈가의 욱신거림은 별 게 아닌 듯 했다.

 

 그대로 들려나가는 요셉이 필사의 힘을 다해 외쳤다.

 

  “누나! 할망구 이기고 또 올게!!!”

 

  “아, 하하.........”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바닥에 무언가 툭, 떨어진 소리의 잔향이 남았다.

 

 나무로 만든 작은 십자가 목걸이였다.

 

 침대 위에서 내려 온 엠마가 목걸이 주우며 중얼거렸다.

 

  “아저씨한테 돌려드려야겠다.”

 

 침대 옆 탁자 위엔 수녀의 다정한 목소리로 더 듣고 싶었던 ‘정글이야기’란 책이 놓여있었다.

 

 그 안에 펼쳐진 세계는 엠마의 세계와 참으로 비슷하기에 ‘정글이야기’는 하루에 백번을 돌려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키울 거 에요! 이애는 벌거벗고 굶주린 채 한 밤중에 혼자 왔어요. 겁먹지도 않고요. 봐요. 벌써 우리 아이 하나를 밀치고 자리를 잡았어요.’

 

 책장을 펼친 순간, 그 세계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엠마의 상상나래였지만.

 

 악당 호랑이 시어 칸이 늑대들의 소굴에 쳐들어왔다!

 

 갓난 아이, 모글리를 지키기 위해 늑대들은 일제히 그 주변을 감쌌다.

 

  ‘흐음......’

 

 그들의 전투적인 모습에 시어 칸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슬그머니 돌아섰다.

 

 엠마의 손가락 끝에서 한 장, 한 장 넘어가던 책장이 휘리릭 그 빠르기를 더하고,

 

  ‘모글리! 이제 제법 늑대처럼 달리는 구나!’

 

  ‘모글리! 넌 인간이야!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어!

 

  ‘모글리! 산이 불타고 있어! 우릴 도와줘! 구해줘!’

 

  ‘......................’

 

 잠시, 책장처럼 빠르게 넘어간 세월에 성인이 된 엠마의 옆모습이 보였다.

 

 창고 안의 퀴퀴한 공기와 매캐한 냄새 틈에 용접으로 인한 불 냄새도 간간히 끼어 있는 곳.

 

 쇠를 잘라낼 때 일어난 쇠 먼지들이 자욱하게 깔린 가운데 앉아있는 그녀는 제 세계의 이야기 책 ‘정글이야기’를 읽고 있다.

 

  “누군가 모글리에게 말했습니다.”

 

 뺨을 반쯤 덮고 있는 진회색 빛깔의 구불구불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짝 넘기는 손가락엔 검은 재가 착색된 듯 보이기도 하고,

 

  “모글리...”

 

 날이 선 턱선 안에 작은 입은 이젠 한국어가 더 익숙한 듯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녀의 목소리가 시야를 밝혀주고 있는 머리 위 갓 쓴 전구를 살며시 흔들었다.

 

 책에 적힌 글귀를 어루만지는 엠마의 손 위로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가 유독 눈에 띄는데,

 

  “모글리,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세월이 흘러 인간의 모습으로 다 성장해버린 엠마는 더 이상 그 세계에 없구나.

 

 흘러가는 세월에도 변함이 없는 ‘정글이야기’ 속 세계의 모글리, 그는 더 이상 엠마가 아니구나.

 

 한 때는 그녀 자체였던 모글리는 다른 누군가의 세계 속 그가 되어버렸나...?

 

  ‘요셉... 누난 널 여전히 사랑해. 그러니 이제 그만 돌아와도 돼.’

 

 

 

 Εμμανουήλ~~~

 

  23년 전, 일본 나가노 현으로 시간은 다시 돌아왔다.

 

 좀 전, 새빨간 눈동자로 보고 만 요셉의 악행에 대한 뒷수습을 위한 걸음을 나선 엠마였다.

 

  “휴우....”

 

 악을 봤던 새빨간 눈동자는 햇살처럼 밝은 것을 보는 것도 거부하는 듯 했다.

 

  “아아......”

 

 건조해진 눈을 찡긋 감았다 뜨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성요셉성당을 나오면 바로 앞에 ‘성’이 보였다.

 

 그 성은 일명 ‘가라스성(烏城)’

 

 까마귀 성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최고의 국보 성이라 했다.

 

  “やっぱり昼より夜がもぅきれいだ。”

 

  역시 낮보다 밤이 더 예뻐.

 

 한낮보단 한밤중에 더 아름답게 빛나는 그 성을 낮에 보는 것도 오랜만인 엠마였다.

 

 까마귀 성을 왼쪽 길 건너에 두고 쭉 달려가다 보면 오래된 소학교가 있었다.

 

 백년 가까이 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데 글쎄, 엠마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서.

 

 소학교를 끼고 돌아서 또 쭉 달려가다 보면 어느 새 이곳 마을을 감싸고 있는 알프스산맥의 작은 산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여간 요셉이 땜에 못살아, 내가.’

 

 동네사람들은 그곳을 가벼운 등산이나 산책길로 애용하곤 했다.

 

  “후아... 다 왔다..... 아고, 힘들어.”

 

 산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을 뚜벅뚜벅 걸어 엠마가 도착한 곳은 산속에 있는 작은 나무공방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곳을 ‘豚の攻防’이라 불렀다.

 

 일본어 발음은 부타노 코오보오. 한국어론 ‘돼지의 공방’이란 뜻이었다.

 

 그리 부르는 이유는 잠시 후에 타케를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고.

 

  ‘그래도 덕분에 예쁜 걸 보네.’

 

 언뜻 보면 허름한 듯도 했지만 나무로 만든 공방은 엠마가 7년 짧은 인생에서 본 가장 예쁜 집이었다.

 

  “아저씨...? 타케 아저씨 있어요?”

 

 손 안에 요셉이 훔쳐 온 십자가 목걸이를 꼭 쥐고 조심스레 안을 살피는 엠마였다.

 

 인기척을 냈음에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다 자연스레 작업 테이블에 눈길이 닿았다.

 

 각양각색의 나무공예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있었고, 완성되어 진열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엠마는 그 테이블 한편에 도둑질이란 악을 보게 한 요셉의 십자가 목걸이를 살포시 올려놨다.

 

  “아저씨, 이거 여기 두고 갈게요. 죄송합니다!”

 

 얼른 돌아서 나가려는데,

 

 철컥, 끽.....

 

  “!!!!!!!”

 

 공방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으앗!!!.....’

 

 뚜벅뚜벅, 엠마의 뒤로 서서히 다가오는 두툼한 발자국 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며 쫄고 말았다.

 

  “엠마!”

 

 불쑥 나타난 타케 아저씨는 부타(豚) 그 자체였다.

 

  “으!......”

 

 둥글넓적한 얼굴을 이고 있는 두툼한 목살하며 삼 겹, 오 겹 거칠 것 없이 접혀있는 뱃살에 작업복이 씹히는 건 기본이고.

 

 등 뒤에 선 그의 아우라에 엠마는 눈까지 질끈 감고 굳어버렸다.

 

  “욘 석이...”

 

  “!!!!!!!”

 

 후딱 돌아서 불룩한 배 앞에 머리부터 조아렸다.

 

  “죄송해요. 요셉이가 훔치고 싶어서 훔친 건 아니에요. 용서해주세요....!!!”

 

 뭉툭하고 거친 손이 귓가를 향해 올라오기에 또 움찔하고 마는데,

 

  ‘어?.........’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에 질끈 감았던 눈을 뜨는 엠마였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보니 타케 아저씨가 퍽 인자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너한테 주려고 만들고 있었던 거니까 가져가거라.”

 

  “네?”

 

 십자가 목걸이를 엠마의 목에 걸어주면서 말하는 목소리도 다정다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기에 벅찬 다리 대신 허리를 굽혀 엠마와 눈을 맞추는 타케 아저씨였다.

 

  “요셉이가 작은 나무 조각을 하나 가지고 와서는 만들어 달라고 했었지.”

 

 개구쟁이 요셉이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나뭇동을 가지고 들이닥쳤던 며칠 전을 떠올렸다.

 

  ‘타케! 이걸로 십자가 만들어 줘!’

 

  ‘요 놈, 또 반말! 주세요 라고 해야지.’

 

  ‘메롱!’

 

 다시 그려봐도 고놈 참, 깨물어주고 싶게 개구지다 싶은 모양이었다.

 

 환하게 웃으며 엠마에게 묻기를,

 

  “어떠냐? 맘에 들어?”

 

 엠마도 전에 없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너무 이뻐요! 감사합니다. 타케 아저씨.”

 

 한 발 물러서 꾸벅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엠마였다.

 

 그때, 공방 밖 멀찍이서 부터 다다다다다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사람의 발소리가 엠마의 귓가를 간질였는데,

 

  “!!!!! 히익!!”

 

  “누나, 비켜!”

 

 깊게 숙인 상체에 고개만 살짝 틀어봤더니 요셉이란 새끼멧돼지가 저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이얍!!!!”

 

  “아저씨!”

 

 돌격해오던 새끼멧돼지가 느닷없이 공중부양을 하기에 놀란 엠마가 위험을 알렸지만,

 

 퍽!

 

  “으윽!!!!!”

 

 순식간에 마흔 살 가까이 먹은 중년돼지의 배에 단단한 머리를 정통으로 꽂아버린 요셉이었다.

 

  “으으!!... 아고, 배야...!!!”

 

  “흥!”

 

  “아저씨! 괜찮아요?!”

 

 요셉의 파워에 밀려버린 타케 아저씨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고 놈, 고거 머리가 돌이네!”

 

 요셉은 뭔가에 화가 잔뜩 난 듯 했다.

 

  “타케! 설마 그거 내가 준 거라고 말했어?!!”

 

  “뭐 인마?!”

 

  “타케는 남자가 되가지고 남자 마음을 그렇게 모르냐! 바보! 빠가 타케!”

 

  “빠가아?! 에라이, 빠가 요셉!”

 

  “ばか者もの(멍텅구리)!!!”

 

  “ああ?!?! このぼんくらめ(이 맹추야)!!!”

 

  “...........”

 

 유치한 속어들이 오가는 사이에서 엠마는 한숨만 쉬고 있다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둘 다 그만해에에에!”

 

  “!!!..........”

 

  “!!!!...........”

 

 조금 덜 놀란 요셉에게 먼저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요셉! 아저씨한테 버릇없게 자꾸 반말 할 거야? 누나한테 혼난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요셉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뚝!”

 

  “!!!......”

 

 훌쩍 코까지 들이키며 눈물을 참아내는 요셉이었다.

 

 다음은 타케 아저씨 차례라고 훽 초록 눈동자를 굴려 그를 째려보는 엠마가 다그치길,

 

  “아저씨! 우리 요셉이한테 소리 지르지 말아요! 그리고 아저씨는 어른이잖아요? 어른이 되가지고 이런 꼬맹이랑 싸우고 싶으세요?!”

 

  ‘아니아니!’

 

 타케 아저씨의 고개가 도리도리 세차게 가로저어지고 있었다.

 

  “요셉! 아저씨한테 사과해.”

 

 꾸중은 끝났는지 양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의젓한 자세를 취한 엠마였다.

 

  “미안.”

 

  “똑바로!”

 

  “윽!”

 

 손 날로 다 요셉의 단단한 머리통 정수리를 가격하기까지.

 

  “아야야... 잘못했어요.”

 

 타케 아저씨에게로 돌아간 엠마의 고개가 또 말하길,

 

  “타케 아저씨! 요셉이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미안.”

 

 엠마의 당찬 모습에 벙져버린 타케 아저씨였다.

 

  “좋아요.”

 

 의젓하게 올려뒀던 손을 내리고 요셉의 옆으로 한 발짝 붙어서더니 다시 허리를 깊게 숙였다.

 

  “목걸이 만들어 주셔서.....”

 

 슬그머니 요셉의 손을 잡는가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아저씨!”

 

 활짝 열린 문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버렸다.

 

 잽싸게 멀어지는 엠마와 요셉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타케 아저씨가 흐뭇해 읊조렸다.

 

  “나 원.. 녀석들.”

 

 그리고는 작업테이블 구석에 놓인 작은 액자를 집어 들었다.

 

 차이나 교복 형태의 군청색 가쿠란을 입은 한 남학생의 순하디 순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네 놈도 저리 해맑을 때가 있었는데... 이츠키, 난 그 시절 네가 너무 그리운데..... 넌 그립지 않니?”

 

 ‘樹(いつき)’ 이츠키는 ‘나무’를 뜻함이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어 준 이름이었는데......

 

 한편, 엠마와 요셉은 손을 꼭 맞잡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훔친 거 아니야.”

 

  “알아. 아저씨가 다 얘기해줬어. 근데 목걸이는 왜 만들어 달라고 한 거야?”

 

  “그게.....”

 

 불현 듯 오동통 살이 오른 두 뺨을 분홍으로 물들이는 요셉이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쉽사리 말도 못 꺼내다가,

 

  “...............”

 

  “어제 텔레비전에서.......”

 

  “...............”

 

  “누나?”

 

 갑자기 우뚝 멈춰선 엠마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

 

 둘이 걸어가야 할 길 한 가운데 노루 한 마리가 검붉은 피를 뒤집어 쓴 채 죽어있었다.

 

  ‘........!!!!!!!’

 

 불현 듯 엠마의 등 뒤를 스치고 지나는 음습한 기운에 오드아이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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