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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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연이 내 방에 찾아왔다
작성일 : 20-09-23     조회 : 269     추천 : 0     분량 : 4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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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콰쾅!

 어른 종아리보다 굵은 철근덩어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 중에서도 뾰족하게 튀어나온 접합 부위가 전시연의 머리를 겨냥한 듯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저걸 맞으면 죽는다!’

 순간적으로 몸을 날렸다.

 “시연씨!”

 전시연을 꽉 끌어안았다.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 뿐.

 “아악!”

 전시연은 비명을 지르며 내 품 안으로 들어왔고, 난 그녀를 껴안은 채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파박!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마치 천국의 빛을 본 것 같았다.

 ‘또 죽은 건가?’

 난 전시연을 꼭 껴안은 채 눈을 떴다.

 전시연이 놀란 표정으로 마네킹처럼 굳어있었다.

 “누굴 구하나 했더니, 결국 여자구만?”

 카이저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철근더미가 공중에 못 박힌 듯 정지해 있다.

 ‘아... 시간이 멈췄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시연의 볼에 내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녀의 보드라운 뺨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시연씨, 무사해서 감사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아주 혼자서 영화를 찍어요. 빨랑 안 일어나!”

 난 전시연을 안아서 무사한 곳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흥! 니가 왜 생긴 것 같잖게 멜로영화 찍는 지 이제 알겠어. 이 여자 꼬실려고 그러는 거지?”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래, 나 시연씨 좋아해.”

 “그럼 저 놈은 뭔데?”

 강동원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이쪽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고 있다.

 “페르소나.”

 “페르... 뭐?”

 “날 대신하는 거야. 내 마음을 대신 전해줄 사람.”

 카이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심부름꾼이라고? 흥, 변태같은 놈.”

 카이저의 이죽거리는 표정이 더 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난 녀석을 붙잡고 볼에 뽀뽀를 퍼부었다.

 “카이저, 구해줘서 고마워!”

 “엑! 이거 안 놔? 어따 침을 묻혀?”

 카이저는 발버둥을 치며 내 손을 벗어났다.

 “니가 좋아서 구한 거 아냐. 그놈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카이저가 강동원 옆으로 날아갔다.

 “얜 어떡해? 죽게 내버려 둬?”

 “아니! 절대 안 돼지.”

 난 재빨리 강동원을 끌고 와서 전시연 옆에 눕혔다.

 자, 지금부터가 문제다.

 내가 전시연과 강동원, 두 사람을 모두 구한 상황을 그럴싸하게 연출해야 한다.

 “어떤 자세가 좋을까? 내가 가운데서 양팔로 둘을 감싸고 있는 게 낫겠지?”

 “그럼 동선이 안 맞지. 넌 분명히 여자 쪽으로 몸을 날렸는데.”

 카이저가 스윽 훑어보더니 말했다.

 “니가 먼저 여자를 구한거고, 저 페르소나는 뒤에서 널 구한거야. 일명 삼층 덮밥.”

 정리해보면...

 난 전시연을 덮쳐서 그녀를 보호하고,

 강동원은 내 위로 몸을 날린 거다.

 그럼 목숨을 바쳐 서로를 지키려는 감독과 배우의 애틋한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나온다.

 ‘오! 이 자식 천잰데?’

 난 전시연 위로 살포시 엎드렸다.

 “오케이, 동원씨를 내 위로 올려.”

 “어휴, 별 걸 다 시켜요. 진짜...”

 카이저는 낑낑거리며 강동원을 끌고 와서 내 위로 밀어 올렸다.

 “됐어.”

 “레디, 액숀!”

 그 순간 시간이 다시 흘렀고, 철근더미는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땅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당탕! 콰콰쾅!

 뿌연 먼지가 흩날렸다.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잠시 후, 스텝들이 일제히 뛰어왔다.

 “동원씨, 괜찮아요?”

 “감독님은요?”

 “시연씨, 어딨어?”

 다들 겁먹은 표정으로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다.

 강동원이 어리둥절하며 일어섰다.

 “저는 무사한데 감독님이...”

 난 모른 척 전시연을 꼭 껴안고 있었다.

 그런데 동훈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내 몸을 확 재꼈다.

 “형! 죽었어?”

 이런 눈치 없는 새끼...

 난 동훈이를 뿌리치며 전시연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시연씨, 안 다쳤어요?”

 “네...”

 전시연이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모든 스텝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감독님, 괜찮아요?”

 “시연씨,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냐?”

 난 일부러 의젓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많이 놀라셨죠? 우린 무사하니까 안심들 하세요.”

 안도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안병태 피디가 털썩 무릎을 꿇으며 울먹였다.

 “감독님,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저 안 죽습니다. 이 영화 성공시키기 전까지는 절대 못 죽어요!”

 그때, 촬영감독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조요한 감독님, 내 평생...”

 저 존경심 가득한 눈빛이라니. 후훗!

 “당신같이 무식한 감독은 처음이야.”

 우쒸!

 난 촬영감독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더 안전하게 현장 진행하겠습니다.”

 촬영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독님 말대로 영화는 불가능이 없네요.”

 우린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와아!

 스텝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구름 사이로 새어나온 엷은 황혼이 우릴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때, 전시연이 다가왔다.

 “감독님...”

 “네, 시연씨.”

 순간, 전시연이 날 와락 끌어안았다.

 어어...

 그녀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피부로 느껴졌다.

 [‘전시연’이 ‘조요한’에게 강한 신뢰감을 보입니다.]

 [‘조요한’에 대한 ‘전시연’의 호감도가 급상승합니다.]

 [‘조요한’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연출력 : ★★★ → ★★★★]

 [리더쉽 : ★★★★ → ★★★★★]

 난 그녀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많이 무서웠죠?”

 “......”

 전시연은 아무 대답 없이 날 한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스텝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난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회색 빌딩숲 너머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그녀를 안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10년 만에 본 서울하늘의 무지개보다 더 경이롭다고 느껴졌다.

 

 ***

 

 까톡! 까톡!

 [감독님, 어디까지 왔어용?]

 [대관령 지나고 있어요]

 [난 호텔인데. 언제 와요?]

 [잠시만요!]

 운전을 하고 있는 안병태 피디에게 물었다.

 “피디님, 얼마나 남았어요?”

 “40분 쯤 걸릴 겁니다.”

 전시연에게 카톡을 보냈다.

 [40분 후에 도착입니다]

 [네~~~~~~ ♥]

 요즘 그녀에게서 까톡이 자주 온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치 시작하는 연인의 설렘이라고나 할까? 히히...

 조수석에 앉은 강동원이 대본을 들고 뒤돌아봤다.

 “감독님, 저도 노래하나요?”

 “아뇨, 동원씨는 그냥 시연씨한테 맞장구만 쳐주면 되요. 자연스럽게.”

 “아, 네...”

 우린 지금 다음 촬영을 위해 강릉 바닷가로 이동 중이다.

 전시연과 강동원이 해변에서 추억을 쌓는 장면을 찍을 예정인데,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나올 것 같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상쾌하다.

 예쁜 장면을 찍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무엇보다, 배우가 아름답지 않은가? 하하하!

 안병태 피디가 호텔 프론트에서 키를 받아와서 건넸다.

 “감독님 방은 로열스위트로 잡았습니다.”

 “스위트요?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슨 말씀을요? 감독님이신데. 일단 푹 쉬시고 저녁식사 때 맞춰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스위트룸 문을 열어보니,

 뜨아악!

 넓다.

 방인지, 거실인지, 운동장인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하얀 시트가 깔린 푹신한 침대...

 그 앞에 넓은 통창으로 해변이 한눈에 펼쳐진다.

 난 침대에 누워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을 감상했다.

 잠시 스위트룸의 안락함을 만끽하던 중, 전시연에게서 까톡이 왔다.

 [감독님, 오셨어요?]

 [네, 지금 막 짐 풀었습니다]

 [잠깐 뵐 수 있을까요?]

 [10분 후에 로비에서 만나요]

 [네~~~~~ ♥]

 마지막 문장은 항상 이런 식이다.

 가슴이 또 설렌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다 문득 생각했다.

 ‘기왕이면 동원씨랑 같이 현장을 미리 봐두는 게 좋지 않을까?’

 

 ***

 

 저녁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걸었다.

 내 옆으로 전시연과 강동원, 두 주연배우가 따라오고 있다.

 “두 분이 해변을 장난치면서 뛰어갈 거예요. 그럼 강아지 한 마리가 쫓아오고. 파도는 철썩철썩...”

 “예쁘겠네요.”

 강동원이 웃으며 말했다.

 “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될 겁니다. 저녁이 되면 시연씨가 여기 바닷가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고백하는 거죠.”

 전시연이 입을 빼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미리 연습 한번 해볼까요?”

 “오늘은 제가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아... 그러실래요?”

 전시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어!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그때, 강동원이 팔꿈치로 툭 쳤다.

 “감독님은 왜 그리 눈치가 없어요?”

 “뭐가요?”

 “감독님이랑 단둘이 있고 싶은 거잖아요. 저는 왜 불러요? 불편하게.”

 “아... 그런 건가요?”

 “당연하죠. 여자 마음을 이렇게 몰라서야, 원.”

 “동원씨는 여자 마음을 어떻게 알아요?”

 “제가 경험이 좀 있잖습니까? 이따 저녁 먹고 차 한 잔 하자고 하세요. 단둘이 산책도 하시고. 그럼 금방 풀릴 거예요.”

 이 친구... 배울 점이 많다.

 

 저녁식사 자리에 전시연은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까톡을 보냈다.

 [식사 안하세요?]

 [촬영 전날은 안 먹어요]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쉴게요. 컨디션 조절해야 돼서]

 [네... 푹 쉬십쇼!]

 까톡 너머로 왠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찝찝하다.

 전화를 해볼까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내일 촬영을 위해선 배우의 컨디션 조절이 우선이니까.

 맞은편에 앉은 최성원 촬영감독이 일어서며 말했다.

 “감독님, 식사 다 하셨으면 회의 좀 하시죠. 현장도 둘러봐야 되고.”

 “네, 그러시죠.”

 난 스텝들과 함께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간단한 촬영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복잡했다.

 바닷가에 촬영장비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밀물과 썰물의 시간대를 체크해야 되고, 황혼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은 일조량과 해지는 시간까지 계산해야 했다.

 역시 영화에 쉬운 건 없다.

 현장답사와 동선체크까지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난 샤워를 하고 침대에 곧바로 쓰러졌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겨우 문을 여니, 동훈이가 서 있었다.

 “형, 스텝들 다 모였는데. 한잔 하러 내려와.”

 “내일 촬영인데, 술을 마시면 어떡하냐?”

 “오후 촬영이잖아. 바닷가에 왔는데 그냥 잘 수 있나?”

 “피곤해, 쉴래.”

 “술 먹으면서 쉬어. 그래야 바이오리듬 안 깨져.”

 “됐어, 니들끼리 먹어.”

 문을 쾅! 닫아주고 침대로 돌아왔다.

 깜박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또 문을 두드린다.

 똑똑!

 ‘어우! 이 거머리같은 새끼!’

 벌떡 일어나 쿵쾅거리며 걸어갔다.

 “야! 술 안 먹는다고!”

 벌컥 문을 여니...

 전시연이 서 있었다.

 “감독님,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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