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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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퇴물의 고백
작성일 : 20-09-24     조회 : 475     추천 : 0     분량 : 5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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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레프팅 확실해? 그쪽에서 이 신발을 일괄 구입했단 말야?”

  “예. 지난달에 레프팅 강사들이랑 직원들 사이즈에 맞춰서 백 켤레 정도 주문했다네요.”

  “회사이름이... 골드레프팅이라면 혹시 골드골드장이랑 관계가 있나?”

  “안 그래도 제가 그 부분도 알아봤는데요, 골드레프팅이 골드골프장 그룹 산하에 있더라구요.”

  “그러면 골프장이랑 레프팅 직원들이 모두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얘기군.”

  “그렇죠.”

 

 기태가 갑자기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골드레프팅 회사, 홈페이지 있어?”

  “있을 거예요. 요즘 레프팅 접수는 다 홈페이지에서 접수하니까요. 어디 보자...”

 

 김 수사관이 포털에 검색한 후 홈페이지를 클릭했다.

 

  “사이트 여기 있네요.”

 

 기태가 홈페이지 화면에 뜬 메뉴창을 유심히 살펴봤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레프팅 도구도 살 수 있나?”

  “공동구매 많이 하니까 가능하죠. 여기 보시면...”

 

 김 수사관이 메뉴 상단을 클릭하자 다양한 패들(노)과 신발, 구명조끼 사진이 나왔다.

 그러자 기태가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 패들 부분, 클릭해봐.”

 

 김 수사관이 여러 가지 패들 사진을 클릭하자 기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이고 이거. 뭐 하나 나오면 모르는 거 투성이네. 레프팅 패들 종류가 원래 이렇게 많나?”

  “기본적으로 가이드용이랑 핸들러 용으로 나누고, 모양에 따라 T자형도 있고, 서핑플러그 패들이라는 것도 있구요.”

 

 기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김 수사관 정말 해박하네. 레프팅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아. 실은 아내가 레프팅이 취미거든요. 맨날 공동구매 한다고 사들이는 통에 미치겠어요. 한 달에 돈 백 이상 깨져요. 그것 때문에 눈길만 마주쳐도 싸우고... 후.”

 

 기태가 픽 웃으며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잠깐. 거기 그 사진 클릭해봐.”

  “이거요?”

  “응. 어때? 사체의 상흔이랑 모양이 일치하는 것 같은데?”

 

 김 수사관이 화면 속에 확대된 패들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기태가 물었다.

 

  “사체의 목에 난 상흔 폭이 얼마나 됐지?”

  “12~15센티 정도요. 어! 선배님 말씀처럼 사체 상흔이 티자형 패들의 노 부분이랑 거의 일치하네요.”

  “저 패들이 맞는지 정확히 좀 확인해 줘.”

  “예, 알겠습니다.”

 

 김 수사관이 다급하게 일어나 화면 속 사진을 프린트 했다.

 기태는 의자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클릭하며 혼잣말을 했다.

 

  “흠... 그건 홈페이지에는 없나...”

 

 프린트 된 인쇄물을 스템플러로 찍으면서 김 수사관이 다가왔다.

 

  “뭘 찾으시는 데요?”

  “레프팅 홈페이지니까 강사들이나 회원들 사진도 있지 않을까 해서.”

  “상단 메뉴 보시면 갤러리, 라고 있을 겁니다. 거기 클릭해보세요.”

 

 기태가 메뉴 상단의 갤러리를 클릭했다.

 그러자 레프팅을 즐기는 고객들 사진이 쭉 나왔다.

 

  “오호. 여기 있구만. 으응?”

 

 기태가 눈을 크게 뜨고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이 아가씨, 레프팅을 여기서 해왔군. 흠... 이 사진 크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해?”

 

 김 수사관이 다가와 마우스를 클릭하며 물었다.

 

  “이 아가씨가 누군데요?”

  "피살자의 딸. 돈미란.”

  "피살자 딸이요? 병원에 입원한 그 스무살 아가씨요?"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수사관이 다시 화면을 여러번 클릭했다.

 그러자 수십 여장에 달하는 다른 사진이 화면에 연달아 떴다.

 그 사진들 중에 꽤 여러장에 돈미란이 주기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 아가씨도 레프팅이 취미였나봐요. 정기 가입한 회원이네요.”

  “응. 취미활동이라더군. 어디서 했나 했더니 골드골프장 자회사인 이곳에서 했군.”

  “뭐 오너 딸이니까 디스카운트도 되고 덕 좀 봤겠죠.”

 

 기태가 별안간 사진 속을 가리켰다.

 

  “잠깐만. 이 사진은 뭐지?”

  “아마 레프팅 강사가 회원들을 교육시켜주는 것 같은데요?”

 

 기태가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사람들이 너무 여러 명이라 선명하질 않네. 뒤에 찍힌 저 남자, 얼굴 좀 선명하게 만들 수 있나?”

 

 김 수사관이 포토샵 화면을 띄운 후 사진을 보정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일단 이렇게 포커스 아웃된 뒷부분을 선명하게 해주고...”

 

 김 수사관이 단축키를 몇 번 만지며 화질을 바꾸었더니, 사진 뒷부분이 조금 선명해졌다.

 기태는 다시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흠. 흥미롭군."

  "왜요? 이 남자 아세요?"

 

 김 수사관의 질문에도 기태는 침묵에 잠겼다.

 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기태가 취조실에 들어섰다.

 혜영은 몇 시간 전과 다름없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최혜영 씨. 이제 집에 가셔도 됩니다.”

 

 혜영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기태를 봤다.

 

  “박 검사님과 박 형사님은 어디 계신 거죠?”

 

 기태가 풋 웃었다.

 

  “왜 그렇게 애타게 찾으십니까? 왜요. 그 두 사람이 제일 만만하게 보이나요? 그렇다면 오산입니다. 방금 전 박 검사는 최혜영 씨를 풀어줘도 좋다고 했으니까요.”

 

 혜영이 싸늘하게 기태를 응시하자 기태가 말했다.

 

  “지금 막 새로운 범행도구가 발견됐거든요.”

  “새로운 범행도구요?”

  “예. 부군이 살해된 무기는 골프채가 아니더군요. 사이즈가 상당히 유사하긴 했지만 일치하지 않았어요. 사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흔이 더 짙어지게 됩니다. 초반에는 상흔이 흐릿해도 이삼일이 지나면 선명해지죠. 부군이 살해된 도구는 패들이었습니다. 레프팅 할 때 물을 젓는 도구, 혹시 아십니까?”

 

 혜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패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뭐든 다 모른다고 하시는 군요, 최혜영 씨. 그럼 뭐 때문에 살인자를 자처하시는 겁니까?”

 

 기태가 물었지만 혜영은 답 없이 벽을 응시했다.

 기태가 혜영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최혜영 씨. 진실은 결국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내가 죽였어요. 그게 진실입니다.”

  “아니죠. 진실은 이겁니다. 피살자 돈종률 의원은 추악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다는 거죠.”

 

 혜영이 다시 기태를 응시했다.

 기태도 그녀를 응시했다.

 두 사람은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팽팽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

 

 불규칙한 호흡, 창백한 얼굴.

 영수는 여전히 호흡기를 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상수가 피딱지가 맺힌 손을 들어 영수의 이마를 쓸었다.

 

 - 범생!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상수가 돌아섰다.

 문가에 기태가 서있었다.

 기태가 무겁게 말했다.

 

  “어딜 쏘다니다 이제 나타난 거야.”

 

 상수는 다시 고개를 돌린 채 침상 위 영수만 응시했다.

 기태가 뚜벅뚜벅 다가와 상수의 얼굴을 살피다가 흠칫 놀랐다.

 

  “넘마! 얼굴이 왜 이래! 어디서 이렇게 쥐어 터진 거야!”

  “... ...”

  “어떤 자식이 감히 경찰한테 손을 대! 누군지 당장 말해 당장!”

 

 잔뜩 흥분하는 기태를 보며 상수는 기묘하게 웃었다.

 

  “김만철이가 그때... 자기 어머니 보호해달라고, 삼일만이라도 보호해달라고 했어요 나한테...”

  “김만철이 그 놈, 사람을 세 명이나 죽인 연쇄살인범이야. 그런 놈 말을 누가 믿겠어. 나도 속았다고 생각했어 사실은.”

  “하지만 선배는 들어주셨죠. 그 자식이 거짓말을 하든 말든 상관치 않고 그 자식의 말부터 들어준 거잖아요.”

 

 기태가 부정했다.

 

  “그랬다가 큰 일 치를 뻔 했잖아. 네가 그 때 김만철 잡으러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끔찍했을 거다. 네가 그때 방안에 안 들어갔으면 김만철이 제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구.”

 

 상수는 고개를 숙인 채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김만철이가 양부를 정말 죽이려고 할 지는 몰랐어. 알았다면 네 말대로 바로 서로 끌고 왔어. 아무튼 됐고. 내가 그 자식을 서로 끌고 오던 집구석에 데려다줬던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상수야. 돌아가신 김만철 모친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그 남편 손에 어차피 돌아가셨을 거야...”

  “실은 내가... 거짓말을 했어요.”

  “뭐? 무슨 거짓말?”

 

 상수가 돌아섰다.

 그리고 기태를 보며 차마 내뱉기 힘들었던 그 말을 토하듯 내뱉었다.

 

  “김만철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부탁하고 있었어요. 양아버지한테 자기 어머니를 때리지 말아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하고 있었다구요. 그 자식 부탁을 들어줬더라면... 그랬다면 그 어머니는 죽지 않았을 거예요!”

 

 기태는 슬픈 눈으로 상수를 바라봤다.

 김만철이 어떤 행동을 했을지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또 상수가 사건보고서를 임의로 써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건과 죽음에 대해 형사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

 

  “범생.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김만철의 어머니를 죽인 건 남편이지 네가 아니야!”

 

 하지만 상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선량한 사람이 죽도록 방치한건 결국... 저잖아요.”

 

  ***

 

 도로 한쪽으로 이어지는 한강물줄기에는 새벽안개가 피어나 있었다.

 상수의 차는 새벽녘 경춘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기태가 조수석의 상수를 힐끔 살폈다.

 밝아오는 창가를 보며 상수는 어두운 얼굴로 차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수야.”

 

 상수가 기태를 돌아봤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술주정뱅이가 됐는지 진짜 이유 알아?”

  “이혼하셔서...?”

 

 기태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다들 그랬지. 내 아내가 내 친구랑 바람이 나서라고.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어.”

  “다른 이유라고요?”

 

 침체되어 있던 상수가 몸을 세우며 물어오자 기태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년 전 일이야. 평범한 좀도둑을 하나 잡았어. 기억나? 너 나랑 짝지 되기 직전에 터진 금은방 살인사건.”

  “네. 기억나요. 70대 금은방 여주인이 잔인하게 살해됐었죠.”

  “그래 맞아. 그때 담당이 나였거든. 난 일주일간 주변을 탐문했고, 스무 살짜리 양아치를 잡았어. 그 녀석 주머니에서 도난당한 장물이 잔뜩 나왔고 빼박이었지. 놈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난 경위로 승진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놈이 감옥에서 자살을 해버렸어.”

 

 상수가 놀라봤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어. 일주일 뒤에 다른 금은방을 털던 진범이 잡혔거든.”

 

 상수가 눈을 크게 뜨고 기태를 응시했다.

 기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내가 잡았던 놈은 진범이 아니었던 거야. 그제야 이해가 되더군. 자살한 그 놈이 왜 두 눈을 부릅뜨고 죽었는지를.”

  “그 자의 시체를... 보셨어요?”

  “응. 나도 너처럼 궁금했거든.”

 

 기태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서 안치실에 가서 놈의 시체를 봤었지. 두 눈 부릅뜨고 죽어있는. 그 날 이후 밤에는 잠을 못 잤어. 놈이 시뻘겋게 눈을 뜨고 밤마다 찾아왔거든. 어떤 때는 자살한 그 녀석이 내 마누라로 보이고 어떤 때는 딸로도 보이고. 그래서 마누라를 패고 딸년을 때렸지. 그리고 지금 이렇게 퇴물이 된 거야.”

 

 그런 사정이 숨어있는 줄은 몰랐었다.

 상수는 그저 기태의 와이프가 바람이 났고, 그녀가 나쁜 여자라고만 생각했었다.

 

  “박상수. 나는 못난 나 자신을 괴롭히는데 무려 5년을 보냈어. 하지만 넌 그러지 마라. 우린 범인을 잡는 경찰이지, 죄인을 사랑할 의무는 없어. 그건 성직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상수가 다시 기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어느 새 차창 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한적한 숲속 안에 차가 멈췄다.

 기태가 운전석에서 내리자 상수도 차에서 내렸다.

 눈앞에 낡은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상수가 간판을 보았다.

 

 [그린 보육원]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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