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학자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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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작성일 : 20-09-25     조회 : 42     추천 : 0     분량 : 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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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저녁이었다.

 칭얼대는 민서희를 안경식이 다독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씨, 진짜 완전 짜증나게 하네. 이거 인터뷰만 아니면 반 죽여 버릴건데. 진짜 얼마나 지난 거예요?”

 “글쎄요. 8시에 온다 캤는데, 한 30분 지났네요. 허허.”

 민서희는 가볍게 웃는 안경식을 노려보았다.

 “아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거 너무 하잖아요. 영진인가 뭔가 어쨌든 우리보다 나이도 어릴 텐데. 이건 인터뷰나 방송을 떠나서 기본이 안 되어 있어요. 나오면 진짜 아오 나 빡친 거 전부 다 뭐라고 해 줘야겠어요. 아 진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민서희는 주먹을 쥐고 자신의 손바닥을 치며 고개를 가로로 젓고 있었다. 안경식은 머릿속에서 표준말을 예쁘게 쓰던 서울 아가씨의 이미지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곁눈질로 민서희를 훔쳐보던 안경식은 나중에 이 아가씨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정말이지 고생을 바가지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띠리잉

 커피숍 문에 달린 벨이 울렸다.

 커피숍 문을 열고 이영진으로 추정되는 젊은 아가씨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안경식이 손을 들자 곧장 걸어왔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민서희는 아직 그녀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던 그녀에게 이영진이 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아까 낮에 통화했던 이영진이에요.”

 “아 예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미인이시네요. 호호호 KCB방송국의 민서희 PD입니다. 여기는 안경식 PD구요. 커피는 뭐로 하실 거예요?”

 안경식은 너무 놀라 입을 헤 벌리고 민서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민서희는 이영진이 나타나자 좀 전의 분기탱천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상냥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 학생이 되어 있었다.

 “아메리카노요.”

 “경식씨, 가서 아메리카노 세 잔이요.”

 경식이 반응이 없자 민서희는 그의 옆구리를 쳤다.

 “뭐해요? 아메리카노요. 호호 아 너무 미인이시라 그러시는구나. 호호.”

 “아? 예? 예.”

 안경식은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를 주문하러 가면서도 안경식은 민서희의 정체가 궁금하였다. 그리고 왜 자기는 물어보지도 않고 아메리카노를 시키는지도 궁금했다.

 이영진은 민서희의 명함을 흘깃 보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 그리고 우리 실험실 분위기를 어떻게 아시게 된 거죠?”

 이영진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친구나 친척들한테 얘기한다고 생각하고 말하시면 되요.”

 이영진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성용이랑 태민이 둘 중의 하나죠?”

 민서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까지 말해줄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안경식이 커피를 테이블 위에 놓으며, 카메라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촬영하겠습니다.”

 “신원 보장은 확실하게 진행할 것이고요. 필요하시면 모자이크와 목소리 변조 모두 해드릴게요.”

 이영진은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커피숍 2층이라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어떤 걸 말씀드리면 되죠?”

 “최근 최기영 학생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 이유와 박민용 교수님과의 관계요.”

 이영진은 민서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만 얘기하면 되나요?”

 “일차적으로요. 다른 질문도 있습니다.”

 민서희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알겠어요. 솔직히 저는 실험실을 떠날까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기영오빠의 죽음에 대해서도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

 이영진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약 한 달 반쯤 되었을 거예요. 기영오빠가 저한테 얘기를 꺼냈어요. 박민용 교수가 정직하지 못하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낡은 노트를 잠시 보여주었어요. 저는 자세하게 보지 못했죠. 솔직히 기영오빠는 천재였어요. 그래서 박민용 교수님의 지적 수준을 의심하는 일도 많았고, 자신을 부려먹는다고 불만도 많았었고요. 그래서 그 날도 그저 그런 푸념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날은 뭔가 좀 달랐어요.”

 

 2014.04.12

 “이제 도저히 못 참겠다. 교수님하고 뭔가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이게 무슨 미친 짓이고.”

 최기영은 화가 나 발로 나무줄기를 걷어차고 있었다.

 “오빠야. 왜 그라노? 응? 여기 좀 앉아봐라.”

 “아니야 영진아 니는 모른다. 아 썅 박민용 교수가 지 아이디어도 아닌데, 막 지꺼처럼 쓰고 있잖아.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아나? 남의 거 훔쳐갖고 잘 될 줄 아나? 확 다 때려 부술 거다.”

 이영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야 왜? 왜? 그라는데? 박민용 교수님이 오빠야 아이디어 훔쳤나?”

 그러나 최기영은 다정하게 물어보는 이영진을 바라보지도 않고 혼잣말을 하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면 안 돼.”

 “오빠야 왜 그러는데?”

 이영진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중얼거리는 최기영의 어깨를 잡아돌리며 다시 물었다.

 “영진아 니는 천재를 만나본 적 있나?”

 뚱딴지같은 기영의 말에 영진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본 적이 있냐고? 천재말이야. 천재.”

 이영진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최기영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어? 어. 응. 처음에 오빠 봤을 때, 교수님이 리만 가설에 대해 물었잖아. 그 때 막힘없이 대답하는 거 보고, 내는 진짜 오빠야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 때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

 최기영은 이영진의 말을 듣고는 얼이 빠진 얼굴로 멍하니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최기영의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하하하. 아하하하.”

 배를 잡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박장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이영진은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오빠야. 와 그라노? 무섭다. 왜? 뭐가 그렇게 웃긴데?”

 “하하하. 아하하.”

 그러나 최기영은 눈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계속 웃었다. 그러더니 한순간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팔에 소름이 돋았다고?”

 그의 눈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반짝거렸다.

 “으..응 왜? 왜 그러는데?”

 “아니야. 아니다. 내가 천재라고? 천재?”

 “...”

 최기영은 그녀에게서 무언가 답을 원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영진아. 알겠어. 나는 잠시 할 얘기가 있어가꼬 교수님한테 가 봐야겠다. 니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내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이번에 확실하게 확인해 봐야겠다. 내 존재가치가 뭔지 말이야.”

 그는 한숨 섞인 푸념과 같은 말을 쏟아내고는 그녀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뒤를 돌아 건물로 다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따라가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았다. 단지 뒤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기영 오빠는 분명히 자신의 아이디어를 박민용 교수에게 빼앗긴 것이 틀림없어요. 그리고 실험실 내의 그 누구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어요. 박민용 교수가 우리, 아..아니 기영 오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거 말이에요. 기영 오빠를 멀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갑자기 수학 7대 난제 정리가 마무리 되었다는 말이 돌았거든요. 그리고 기영오빠는 그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요.”

 민서희는 자신의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상황을 이영진이 설명해주자 매우 기뻤다. 김신일 CP가 자신을 칭찬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벌써부터 그에게 인정받고, 주변의 부러움을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박민용 교수가 결정적으로 최기영씨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증거가 있나요?”

 민서희는 기대를 가지고 그녀에게 물었다. 옆자리에 앉은 안경식도 이영진에게 다가앉으며 바라보았다.

 “아니요. 그런 증거는 없어요.”

 “예?”

 민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였다. 단지 추측만 가지고는 박민용 교수를 제자의 아이디어를 훔친 사람이라고 방송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민서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지나갔다.

 이영진은 그러한 분위기를 눈치 채자 잠시 망설이는 듯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그러니까 사실은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 얘기했던 증거는 그것만 구하면 될 거에요.”

 민서희가 다시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것이요? 그게 뭐죠?”

 “기영 오빠가 근래에 자주 들고 다니던 낡은 노트와 종이꾸러미가 있어요. 아마 예전부터 정리한 것 같았어요. 그리고 기영 오빠가 자살한 후에는 자리 정리를 할 때도 그 노트를 보지 못했어요. 사건 현장에도 없었다고 들었고요. 기영 오빠 집으로 찾아갔을 때도 기영 오빠 방에는 그 노트가 없었어요.”

 민서희가 다시 되물었다.

 “확실한가요? 책상 서랍이나 옷장 안에 넣어둔 게 아닐까요?”

 “아니에요. 확실해요. 기영 오빠 부모님이 너무 정신이 없으셔서, 제가 오빠 짐 정리를 다 했거든요. 동생이 있었지만 역시 그럴 정신이 없었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저 말고 짐 정리를 할 사람은 없었어요.”

 안경식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민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경식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박민용 교수에게서 그 낡은 노트를 찾아내고, 그 노트에서 최기영의 흔적을 찾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미 그 노트 일부가 있었다.

 민서희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그들은 그 뒤로도 몇 가지 더 질문을 하였지만 일상적인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약 30분 뒤,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나요?”

 민서희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요.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생각이 더 떠오르면 언제든지 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주세요. 그리고 필체 감정을 위해서 최기영씨가 생전에 사용하던 노트나 수첩을 구해주실 수 있나요?”

 “...”

 이영진은 민서희의 요청에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예 알겠어요. 제가 찾아볼게요. 어쨌든 기영 오빠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밝힐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예 정말 고맙습니다.”

 “예. 그럼.”

 민서희는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 몇 번을 망설였지만 이제 그녀가 가려고 하자 용기 내어 물어보기로 하였다.

 “저 혹시... 최기영 씨와 연인 관계..”

 민서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영진의 입이 열렸다.

 “아니요. 그냥 일방적인 저 혼자만의 감정이었어요. 기영오빠는 끝내 알지 못했겠지만요.”

 “...”

 “그럼 이만.”

 이영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서희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악수를 하였다.

 이영진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민서희는 자리에 다시 앉으며, 안경식에게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요. 지난번에 저에게 주었던 그 종이와 최기영의 노트에 적힌 글씨체를 전문가에게 맡겨서 대조하면 박민용 교수의 파렴치한 행동을 밝혀낼 수 있을 거예요.”

 “휴우, 우리나라에 어마어마한 천재가 등장한 줄 알았는데, 이거 잘못하면 대도둑이 나타날 수도 있겠네요.”

 “잘못하면이 아니에요. 드디어에요. 드디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거죠. 그럼 우리도 축배를 들러 갈까요?”

 “예? 이렇게 자주 술을..”

 민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의 가슴을 손등으로 툭 쳤다.

 “원래 기분 나쁘면 한 잔, 좋아도 한 잔, 심심할 때 한 잔, 바쁘면 쉬어 가기 위해 한 잔 마시는 게 바로 술이에요. 뭐가 그리 빡빡해요?”

 그리곤 안경식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커피숍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커피숍 알바생의 단조로운 인사만 그녀의 뒤에 남았다.

 안경식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방송국에 뽑혔는지 잘 이해가 안 됐다.

 “추측과 가설은 금기 사항인데, 와 저래 설레발이고. 쩝.”

 그는 혼잣말과 함께 그녀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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