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학자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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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작성일 : 20-09-25     조회 : 36     추천 : 0     분량 : 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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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스 호텔에서 일어난 민서희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최기영 학생 장례식장에 가려고 했지만, 안경식이 기영모에게 전화를 하자 집주소를 알려주면 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어느새 그녀는 안경식과 함께 양정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 정문에 서 있었다.

 “이야 양정에도 이런 곳이 다 있네. 쥑이네. 캬아.”

 안경식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말을 했다. 민서희는 그런 그의 팔을 잡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휴대폰 안의 주소를 보며, 그녀는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힘없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감기에 걸린 것처럼 허스키하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KCB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잠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지잉

 자동문이 열렸다. 그리고 민서희와 안경식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그들이 생각했던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족들의 죽음을 파헤치려 드는 것은 기억하기 싫은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꺼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최기영의 집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안경식과 민서희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재빨리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6층까지 올라가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최기영의 집 앞 벨을 눌렀다.

 철컥 삐리리

 현관을 연 사람은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키 165의 단아한 중년 여성이었다. 마치 작은 거인 이선희를 보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아까 소개하셨잖아요. 들어오세요. 콜록 콜록”

 “아? 예. 예.”

 안으로 들어간 중년 부인은 부엌으로 가서 미리 준비한 다과와 주스를 가지고 나왔다.

 “소파에 앉으세요. 그리고 인터뷰는 기영이에 관한 건가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은 안경식과 민서희가 말했다.

 “예 어머님. 최기영씨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어서요. 어렸을 때부터 사고가 나기 전까지요.”

 그러자 중년의 부인은 피식 웃었다.

 왜?

 웃지?

 자신의 자식이 죽었는데...

 민서희는 점점 더 이상했다.

 “저는 잘 몰라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기영이 친엄마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기영이가 고등학생일 때 여기 바깥양반한테 시집왔어요. 그리고 이 집 바깥양반은 사업 때문에 서울로 또 올라갔고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밖에 말해 줄 수가 없네요. 참 나 사업 때문에 서울에서 전부 내려왔는데, 다시 혼자만 서울로 올라가고.”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안경식과 민서희는 서로 얼굴을 다시 마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상대가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하자 오히려 말문을 잃은 것이었다.

 “그.. 그럼 뭐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요, 최기영 학생이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적은 일기나, 다이어리 같은 건 없십니까?”

 말을 잃은 민서희를 대신하여 안경식이 카메라를 켜며 물었다.

 “얼굴은 나오지 않는 거죠? 목소리는요?”

 대답대신 안경식은 자신을 바라보는 중년의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요. 기영이는 뭐. 어쨌든 요즘 애들 다 그렇잖아요. 컴퓨터나 할 줄 알지. 뭐 종이에 적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설사 있다고 해도 나에게까지 보여주진 않았을 테고요. 그리고 애들 아빠 왔을 때 정신이 없어서, 짐을 치우지 않았거든요. 뭐 여자친구인지 후배인지 하는 여자애가 와서 걔 짐을 정리하기는 했지만, 기영이 방에 가면 노트나 다이어리 정도는 있을 거예요.”

 최기영의 계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그들에게 얘기하였다. 민서희는 그녀를 보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친자식이 아니지만 저렇게까지 담담할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민서희의 표정을 읽은 최기영의 계모는 말했다.

 “그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나보고 독하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정말 재수없다고 말이죠. 혹시나 기영이 죽음에 내가 관련돼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그 애 아빠의 재산을 독차지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나요?”

 너무도 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당황한 민서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이마에선 땀까지 흘렀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후흣 괜찮아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서울에서 여기 처음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저도 그렇게 독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시댁도 그렇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돈 때문에 결혼한다고 사귈 때부터 그렇게 저를 죽일 려고 달려들었어요. 뭐 이 정도야 제가 겪은 일에 비하면 별 거 아니죠 뭐.”

 공허함과 슬픔이 스쳐지나간 그녀의 눈을 보았다. 중년의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컵에 받아 티백을 넣었다. 향긋하고 달콤한 차향이 거실에 퍼졌다. 차를 들고 그녀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거기다 기영이는 이중적인 아이였어요. 이제야 느끼는 건데 약간 사이코패스같은 성격이 있었죠. 밖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지적인 아이지만 집에만 오면 막말을 하고, 독단적이었어요. 심지어 저와는 남남으로 살자고 선언까지 했었죠.”

 민서희가 그녀에게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럼 최기영 학생이 폭력도 행사하였나요?”

 “아니요. 폭력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언어폭력도 폭력이라면 행사한 것이겠죠. 정말이지 저도 정신적으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어요. 기영이가 천재적인 건 나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런 자만심이 컸던 탓인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참지 못했죠. 어마어마한 욕설을 하고 물건도 던지기 시작했어요. 죽기 며칠 전에는 훨씬 더 심해졌었고요.”

 민서희가 입을 열었다.

 “혹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질환을 앓은 적이 있었나요.”

 “호호호호 아니요. 그런 건 없었어요. 약간 강박증처럼 물건을 정리하는 건 있었지만, 전혀 그런 건 없었어요. 모르죠. 조금 있었을지도 하지만 제가 기영이 병원다니는 것까지 신경쓰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어차피 기영이 아빠도 기영이 엄마가 죽고 나서부터 기영이한테 별 관심이 없었어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애라 불쌍해서 잘 대해주려고 했는데, 자기가 그렇게 싫다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

 “그래서 제가 집으로 오라고 한 거예요. 기영이 친가쪽 사람들은 저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장례식장에 있었으면 안 좋을 꼴을 봤을 거예요. 기영이 아빠도 자기 자식이지만 기영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어서, 상주 노릇 좀 하다가 오늘 밤엔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뭐 회사일이 바쁘다고 그러는데 핑계인 거 같아요.”

 삐리리 덜컥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일찍 왔네.”

 “...”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들어오더니 거실을 슬쩍 바라보곤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누구죠?”

 민서희가 다시 자리에 앉는 최기영의 새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

 “...”

 “태준이라고. 기영이 동생이에요.”

 민서희와 안경식이 대답을 재촉하듯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자 기영의 새엄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 애는 제가 낳은 아이에요.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죠? 제가 기영이를 죽였다는 거예요?”

 갑작스럽게 돌변하여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기영의 새엄마로 인해 당황한 안경식은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하였다.

 “아.. 아입니더. 지들은 그냥 기영학생 관련된 거만 물어보는 깁니더.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이소. 흐흐흐흐.”

 “...”

 의미없이 웃는 안경식과 달리 민서희는 태준이라는 아이도 신경이 쓰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태준학생은 어느 대학교를 다니죠?”

 “경성대학교요. 그리고 그건 왜 묻죠?”

 어느새 문을 열고 나와 부엌으로 들어가던 최태준이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지나갔다.

 “태..태준아 그게 아니라 갑자기 이 사람들이..”

 당황한 것 같은 기영의 새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황급히 따라 들어가며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한 손에 우유를 들고 마시던 태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소파에 앉으며, 대답하였다.

 “아니요. 뭐 상관없어요. 솔직히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기영이형을 좋아해요. 그리고 형이 그렇게 자살을 했다는 게 국가적인 낭비라고도 생각이 들고요. 휴우 형이 그렇게 갈 줄 알았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건데, 우린 그런 것도 없었네요. 엄마는 기영이 형이 별로 맘에 들지 않고 죽도록 미웠겠지만, 저는 기영이 형 좋아했어요. 그리고 후드티 이거 빨았죠? 제가 가지고 갈게요.”

 그리고 뒤를 따라 온 기영의 새엄마는 그런 그에게 가볍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얘는 무슨 그런 말을 다 하니? 기영이는 애가 좀 삐뚤어져서 어디 가도 적응을 못 할 아이야. 태준아 여기는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있어. 엄마가 금방 과일 깎아서 들고 들어갈 테니까.”

 베란다에 널린 영어로 'I win'이라고 크게 적힌 회색 후드티를 만지작거리던 태준은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았는지 다시 소파로 돌아오며, 기영의 새엄마에게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여 대꾸하였다.

 “아 이제 그만 인정해. 솔직히 나는 죽어라고 공부해서 이 정도 자리에 올랐고, 형은 천재야. 천재라고. 괜한 자격지심에 그렇게 형을 깎아내리지 말라고. 형은 불쌍한 사람이야. 엄마는 매사 형 트집잡고, 나만 질릴 정도로 챙겨줬었잖아. 엄마 이제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그리고 나한테도 너무 기대하지마. 나는 여기가 끝이라고..”

 그는 소리를 지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영의 새엄마는 눈을 감으며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힘겹게 말했다.

 “보셨죠? 저 애가 저렇게 착하답니다. 그런데 기영이 이 놈은 우리를 아주 재산을 빼앗으러 온 독사 보듯이 대했어요. 세상에 저렇게 착한 애가 어디 있겠어요. 그 사이코 같은 애랑은 완전히 종자가 다르다니까요. 그리고 그런 애들은 세상에 나가도 또라이 짓이나 하고 사고 칠 게 뻔해요.”

 민서희는 애써 위안을 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어머님은 뭐가 그렇게 두려우시죠?”

 “예? 뭐라고요?”

 “...”

 “호호호호 두렵다고요? 뭐가요? 그 애가요?”

 하지만 안경식도 그녀의 억지스런 웃음을 들으며 어색한 기분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녀의 분위기 전환용 어색한 웃음도 끝이 났다. 어느새 기영의 새엄마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두려움이라? 그럴지도 모르죠? 우리 애도 공부는 엄청 잘했어요. 여기서 기영이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인정할게요. 천재? 그렇죠. 천재일지도 몰라도 인성은 완전 싸가지 밥맛이었어요. 모른다고 무시하고 깔보고 얕보는 데는 정말 선수였죠. 그리고 노력도 하지 않고 어려운 수학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 놀랍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녀석의 자만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하고자 하는 의욕조차 꺾는다는 것을 왜 몰라요? 그런 녀석이 자식이라는 것을 알기만 했어도 저는 이 결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영의 새엄마는 마치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민서희는 안경식에게 일어서자는 눈치를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을 읽은 안경식은 조심스럽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따 어머님. 저희는 이제 고마 가보겠십니더. 어느 정도 정리는 된 거 같네예. 마지막으로 기영 학생 방 좀 보면 안 되겠십니꺼?”

 “보세요. 아까 태준이가 들어간 방 앞방이에요.”

 “고맙십니더.”

 “참 그리고 요새 우리 태준이가 무슨 논문을 쓴다고 난리니까 모두 조용히 해 주세요. 기영이가 없으니까 이제 우리 태준이가 우뚝 서는 것 같네요.”

 안경식과 민서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영학생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기영의 새엄마는 태준이에게 줄 과일을 깎으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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