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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 공작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작가 : 이날비
작품등록일 : 20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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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26     조회 : 314     추천 : 1     분량 : 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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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종?”

 “응.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이 사람이 누나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거야?”

 “99.9퍼센트.”

 “…….”

 리안이 숲지기의 편지를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찢어버리자, 누나.”

 “왜?”

 “누나를 귀찮게 하니까.”

 “아냐, 그건 싫어. 그래도 내 팬의 편지인데.”

 숲지기는 메데이아의 1호 팬이었다.

 지금이야 귀찮은 존재지만, 힘들 때 그가 보낸 편지 덕분에 얼마나 기운을 얻었는지 모른다.

 독초 전문가 메데이아.

 키리아는 독초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자신의 실력을 숨겼다.

 대신 부캐 메데이아로 마음껏 활동했다.

 동생을 돕고 싶다는 말에 말없이 일체의 학비와 연구비를 지원해 준 백작님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독초 연구하는 걸 들켰다면 난 지금쯤 불행한 어린 신부거나 수녀가 됐을 거야.’

 그만큼 독초를 연구하는 여자는 환영받는 신붓감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도 제국에서 독초는 안 좋은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독초도 약이 될 수 있어!’

 리안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키리아는 메데이아라는 이름으로 독초 연구를 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칼럼 형식으로 꾸준히 올렸다.

 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잡지에 말이다.

 그러면 다음 호에 실리는 ‘독자의 생각’ 코너나 출판사를 통해 도착한 편지에서 엄청난 험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리아의 전생 용어로는 악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데이아라는 부캐를 내세운 덕분에 정신적인 충격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잡지사에서는 ‘덕분에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며 특별대우 해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러던 중 한 통의 정중한 편지가 키리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3장 분량의 그 편지는, 메데이아의 연구가 얼마나 가치 있으며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 진지하게 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미에는 이런 추신도 있었다.

 

 당신을 이해하기도 전에 비난부터 하는 이들에게 상처받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의 연구는 가치 있어요.

 부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가 끝까지 당신의 편이 되겠습니다.

 

 당신을 존경하는 숲지기 드림

 

 다른 말보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두 문장에 키리아는 저도 모르게 훌쩍였었다.

 자신도 몰랐던,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키리아는 정성들여 답장을 했고, 거기에 또 답장이 왔다.

 편지 교류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고마운 마음도 한두 번이다.

 편지도 자주 보내면서 보낼 때마다 5장은 기본이니, ‘연구, 밥, 화장실, 연구’가 하루의 반복인 키리아에게는 답장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더 이상 쓸 말이 없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3장을 채워서 답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절로 용건만 간단히 하는 상당히 쿨한 메데이아가 완성되었는데, 숲지기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짧게라도 답장을 해주면 무척 고마워했다.

 ‘어지간히 친구가 없나봐….’

 그렇게 암묵적인 규칙이 생기고 교류는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나.”

 “응?”

 “숲지기라는 사람, 예전부터 남부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럼 북부에 사는 거야?”

 “음… 아마도?”

 북부. 마물 공작이 지배하는 땅.

 신체 일부가 마물로 타락했으나, 어떤 약도 신관도 그의 신체를 되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유독 북부에 들끓는 마물들과 더불어 그의 이름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상한 걸 많이 알고 있구나.”

 “무슨 소리야?”

 리안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풀을 보여주었다.

 “편지 봉투 안에 들어 있던데?”

 “어?”

 검은 꽃잎에 보라색 반점이 찍힌 작은 꽃이었다.

 편지를 다시 보니, 앞장을 꽉 채우는 바람에 뒷장으로 밀린 추신이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꽃입니다. 화려한 모양새가 독초 같기에, 혹시 연구에 도움이 될까 하여 동봉해 보냅니다. 보존 마법을 걸어두었으니 시들지 않았을 겁니다.

 

 이 꽃 한 송이에 보존마법을?

 ‘숲지기라는 직업이 벌이가 그렇게 좋은가?’

 그럴 리가. 숲지기가 취미인 귀족이거나 졸부겠지.

 리안이 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슨 꽃이야?”

 “으으음, 그게….”

 인정하기 싫었지만….

 “처음 보는 거야.”

 메데이아의 자존심에 조금 금이 갔다.

 누나 입에서 그런 말을 처음 들은 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헤에. 북부에는 신기한 게 많나보네.”

 ‘북부….’

 키리아는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계의 입구가 닫힌 뒤로, 북부에는 마물들과 함께 새로운 식물들도 나타났다고 들었다.

 대부분이 독초여서 쓸모는 없다고.

 ‘역시 독초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북부로 가야 해. 하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리안의 상태가 악화되면?’

 다른 사람들처럼 키리아도 마물이 무서웠다. 검이나 마법을 쓸 줄 아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북부에 가기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는 리안이었다.

 메두사병은 잠잠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석화가 빠르게 진행되고는 했다.

 자신이 없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지금은 백작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금전거래에 있어서만큼은 치사할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니, 이번엔 정말 1골드까지 받아낼 작정인 것 같았다.

 ‘좋은 수가 없을까….’

 고민하며 무심코 꽃의 향기를 맡는 순간.

 풀썩.

 의식을 잃고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

 

 키리아는 꿈을 꿨다.

 꿈속의 자신은 결국 자작부인이 되어 있었다.

 리안을 방문하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위해 북부를 방문한 사이에 나온 것이었다.

 척박했던 북부에서 값비싼 자원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을 했더니 리안은 침대에 앉아 가냘프게 웃었다. 석화는 심장 부근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나도 북부에 가보고 싶었는데. 기사가 되어서.”

 “갈 수 있을 거야. 다음에 갈 때는 같이 가자고 해볼게. 그러니까 약 먹자. 새로 만들어 본 거야.”

 키리아가 가방에서 약을 꺼내서 다리 리안을 바라봤을 때.

 “꺄악! 리안!”

 리안이 쓰러져 있었다. 석화가 심장을 멈추게 하자, 온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돌로 변해버린 것이다.

 “안 돼, 안 돼!”

 두 팔을 허우적대며 울부짖었다.

 “리안! 제발! 안 돼!”

 

 ***

 

 “누나!”

 “으허어엉, 리안!”

 “누나! 키리아 누나!”

 헉.

 키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리안에게 매달린 자세였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리안이 정신을 차린 키리아를 보고 안도했다.

 “누나. 갑자기 쓰러지더니 막 울었어. 무슨 일이야?”

 “아니… 어, 아무것도….”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짧은 꿈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예지몽이든 뭐든, 꿈에서 본 광경은 키리아가 절대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손 안의 꽃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키리아는 결심이 단단히 섰다.

 

 ***

 

 벌컥!

 백작의 집무실을 누군가가 위풍당당하게 열어젖혔다.

 쳐들어온 이는 키리아였다.

 “결정했어요.”

 “음?”

 두꺼비 자작에게 혼인 날짜를 조정하는 편지를 쓰고 있던 백작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그래, 말해보거라.”

 “4억 골드 갚겠습니다.”

 “…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 백작은 당황했다. 하지만 곧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또 시간을 벌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재고의 여지가 없다.”

 “1년 주세요.”

 “…방금 한 말 못 들었느냐?”

 어이없어하는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키리아는 백작이 앉아있는 책상을 두 손으로 내려쳤다.

 쾅!

 갑작스러운 박력에 백작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다.

 기분 탓인지 키리아의 표정도 평소와 다르게 좀 무시무시했다.

 “다 계획이 있어요. 1년 주시면 4억 골드 이상 벌어다드리죠.”

 “무슨 수로?”

 “북부에서 벌려고요.”

 “뭐? 파하하하핫!”

 잠시 긴장했던 백작은 북부라는 말을 듣자마자 폭소했다.

 “네가 집구석에만 박혀 있다고 해도 기본 정세 정도는 듣고 사는 줄 알았는데, 영 아니었나보구나?”

 “…….”

 “제국에서 유일하게 세금을 걷지 않는 땅이 있다. 어딘지 아느냐?”

 “북부죠.”

 “그래. 북부다. 그 이유는 알고?”

 “마족, 마물들과의 전쟁터였으니까요. 몇 년이나 북부에서 전쟁을 벌인 탓에 황폐해졌다고 들었어요.”

 “그걸 알면서 그러느냐? 북부는 황제 폐하께서도 포기하셨을 정도로 척박하고 가난한 곳이다. 앞으로도 점점 심해질 거고. 그런 곳에서 무슨 돈을 벌겠다는 거냐?”

 물론 그 말에 일리가 있었다.

 마물 공작은 두려움의 대상임과 동시에, 제국에서 가장 가난한 귀족으로도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키리아는 북부의 숨은 가치를 알고 있었다.

 ‘마물 공작이 다스리는 공작령은 전무후무한 노다지라는 거.’

 원작과 동떨어져서 살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설정이었다. 꿈을 꾼 충격으로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 북부로 가야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동생의 병을 치료할 연구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서.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도 백작에겐 먹히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클로버필드 가문은 상대와의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죠?”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백작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의를 기반으로 상단이 성장했고 마침내 귀족이 된 가문이니까. 무엇보다 신의가 중요하지.”

 “그러면 제게 신의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를 주세요.”

 “…….”

 백작은 더없이 진지한 키리아의 얼굴이 낯설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이 딸은, 엉뚱하고 제멋대로인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가끔 날카롭고 이지적인 분위기로 변모할 때가 있었다.

 특히 연구에 집중할 때면 그랬다.

 그에 비해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한 노릇이긴 했지만….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건가.’

 평소 앞머리를 까고 다니는 행태를 보면 찜찜하긴 해도, 이런 모습을 보니 그쪽으로 무게가 쏠렸다.

 무엇보다 ‘마지막 신의’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음….”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백작을 키리아는 가만히 기다렸다.

 몇 분이 지났을 때, 마침내 백작이 입을 열었다.

 “1년이라고 했지.”

 “……!”

 “1년 안에 돌아와서 네 말을 증명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가문의 가주이자 아버지의 권리와 의무로서, 네 결혼을 결정지으마.”

 “만세!”

 기쁨의 함성을 지른 키리아가 백작의 두꺼운 목을 답싹 끌어안았다.

 놀란 백작이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손까지 허공에 멈춘 채였다.

 하지만 기뻐하는 키리아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팔을 풀고 평소의 거리로 되돌아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북부로 출발하는 건 다음날 아침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북부에 웅크리고 있던 한 사람의 운명도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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