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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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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파양된 아이
작성일 : 20-09-28     조회 : 467     추천 : 0     분량 : 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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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육원의 원장실은 낡고 어수선했다.

 상수와 기태가 삼십분 이상 기다리고 있을 무렵, 지저분한 몰골의 남자가 들어섰다.

 나이는 60대 전후.

 아무리 한 여름이라지만 민소매 윗도리에 반바지도 얼룩덜룩 지저분했다.

 

  “연락주셨다는 이야기는 설핏 들었습니다만.”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용건부터 꺼내들었다.

 그러자 기태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 제가 여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십년 전에 이곳에서 입양된 아이에 대해서 알아보려구요.”

  “아. 예. 그 이름이 뭐라고 하셨더라?”

 

 남자가 책상 위에 무질서하게 쌓인 낡은 서류를 뒤적이며 물었다.

 

  “입양된 이름은 돈미란입니다.”

  “아...예. 여학생인 거죠?”

  “그렇습니다. 지금 나이는 스물입니다.”

  “십년 전이라...”

 

 남자가 손에 침을 묻혀가며 계속 서류를 뒤적였다.

 기태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랑 통화한 여직원 분은 어디 계신가요? 그 분이 여기서 입양된 아이가 맞다고 확인해주셨는데요?”

  “그 아이는 여직원이 아니라 우리 보육원 아입니다. 이주에 한번 씩 보육원에 찾아와 사무를 봐주고 있습니다.”

  “아 예. 그런데 그 여자 분은 전화로 바로 확인을 해주셨는데요?”

  “어떻게 알고 그렇게 바로 답했을까. 보다시피 우리 보육원은 컴퓨터도 없고 제대로 정리도 안 되서요. 거참.”

 

 침묵하고 있던 상수가 입을 열었다.

 

  “기사를 봤을 겁니다 아마도.”

  “기사요?”

  “네. 최근에 돈종률 전직의원이 살해됐습니다. 그분의 영애로 입양된 아입니다.”

 

 순간 남자가 서류를 놓쳤다.

 그러더니 황급히 서류를 주워 페이지를 착착착 넘겼다.

 

 기태와 상수는 남자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마침내 남자가 서류 한 면을 펼쳐서 두 사람 앞에 황급히 가지고 와 내밀었다.

 

  “누군가 했더니만 맞네! 진즉에 입양한 부모 이름을 말씀해주시지 그랬습니까. 여기여기! 그 아이 원래 이름이 한유진입니다.”

 

 기태와 상수가 서류를 봤다.

 십년 전, 앳된 여자아이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시간은 많이 지났지만 한눈에 봐도 미란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미란의 옆에는 조금 더 훤칠한 남자아이 사진이 함께 붙어 있었다.

 기태가 물었다.

 

  “옆에 이 남자 아이는 누굽니까?”

  “하... 이 녀석은...”

 

 남자가 갑자기 소파에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생각만 하면 속이 너무 상합니다."

 

 상수가 불쑥 몸을 내밀었다.

 

  "왜요? 무슨 일 있었습니까?"

  "이 아이는 유진이와 둘도 없는 단짝이었습니다. 고아원에서 5년 정도 함께 자랐는데 피만 안섞였지 찐 남매 같았어요."

  "그런데요?"

  "안타깝게도 파양을 당했습니다. 어쩌자고 다 큰 아이를 파양을 시킨 건지 원.”

 

 기태가 물었다.

 

  “파양을 당한 이유가 뭡니까?”

  “사유는 뭐... 난폭하고 폭력적이라고 하더만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14살에 입양 한 아이를 18살까지 키우다 파양을 시켰다는 겁니다. 둘이 엔간히 사이가 좋아서 차마 떨어뜨려 놓을 수 없어서 그때까지 참았다고 하는데...”

 

 상수와 기태가 동시에 물었다.

 

  “둘이라뇨! 돈미란과 그 아이가 같이 입양됐단 말입니까?”

  “예. 유진이랑 둘이 같이 입양됐죠. 돈종률 의원 내외가 두 아이를 모두 데려갔죠.”

 

 상수와 기태가 놀라 다급히 말했다.

 

  "좀더 상세히 설명해주세요!"

  “아... 예. 둘은 어린 아이지만 남매처럼 진짜 친했어요, 죽고 못 살 만큼 서로 아끼고 보듬어주고. 둘 다 우리 보육원에서 가장 예의바르고 착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입양되기 전까지는. 그런데 갑자기 4년 만에 폭력적으로 변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용식이는 절대로 그런 아이가 아닌데 말입니다. 결국 파양되고 이곳으로 돌아와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기태가 물었다.

 

  "방금 그 남자아이 이름이 뭐라고요?"

  "용식이요."

 

 기태가 고개를 갸웃하며 혼잣말을 했다.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이번에는 상수가 물었다.

 

  “혹시 지금 그 남자랑 연락이 됩니까?”

  “우리 용식이요? 물론 되죠. 이 녀석은 해마다 우리 보육원에 찾아옵니다. 다행히 건실해서 스포츠 강사가 되었답니다. 하는 일이...”

 

 갑자기 기태가 무릎을 탁 쳤다.

 

  “용식이란 그 사람... 지금 레프팅 강사죠?”

 

 남자가 깜짝 놀라 기태를 봤다.

 

  “예 맞습니다. 레프팅 강사입니다. 근데 우리 용식일 아세요?”

 

 상수도 놀라 기태를 봤다.

 대체 선배는 어떻게 이 남자의 직업을 맞춘 걸까.

 

 기태가 덤덤히 말했다.

 

  “드디어 연결고리를 찾았어.”

 

  ***

 

 경찰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서울외곽을 달리고 있었다.

 맨 앞을 달리는 차는 상수가 운전 중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기태는 다급하게 다시 핸드폰을 눌렀다.

 하지만 신호음만 길게 울릴 뿐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젠장할. 오지현이 전화 좀 받아라, 제발!”

 

 

  ***

 

  “이런 곳에 이런 숨겨진 비경이 있을 줄이야.”

 

 오지현이 함빡 웃는 얼굴로 문용식을 봤다.

 두 사람은 지금 강원도의 깊숙한 골짜기에 들어와 레프팅 장비를 풀고 있었다.

 

  “여기 마음에 드세요, 형님?”

  “응. 덕분에 답답했던 마음이 좀 시원해진다. 그동안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용식이 네 덕에 오늘은 마음이 편안해졌어.”

 

 용식이 희미하게 웃으며 레프팅 배를 띄웠다.

 

  “자, 이제 타시면 되요.”

  “나 이거 처음인데 괜찮을까? 물살이 꽤 센데?”

  “제가 있잖아요. 이래 뵈도 작년 레프팅 체전 우승자였어요.”

  “오케이 그럼 믿고 타본다.”

 

 지현이 덤벙 보트에 오르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용식이 균형을 잡으며 배에 올랐다.

 그리고 손에 쥔 패들로 강가를 슬슬 밀었다.

 

  “이제 출발합니다.”

  “어어어. 이거 생각보다 많이 흔들리는구나.”

  “벌써부터 겁먹으시면 안 돼요 형님. 이제 시작인데요. 이러고 한 시간 가까이 갈 겁니다.”

  “오오.. 기대되는데.”

 

 용식이 능숙하게 패들을 다루자 배가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보트가 강물 한가운데로 나오자, 마침내 오지현은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강가와 달리 한가운데는 물살이 세지 않았다.

 도리어 잔잔한 물결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지고 졸음이 몰려왔다.

 용식이 기태를 응시했다.

 

  “형님. 있잖아요, 뭐 좀 물어봐도 되요?”

 

 지현이 보트에 편안히 등을 기댄 채 창공을 보며 말했다.

 

  “하늘 참 좋네. 뭐든 물어봐.”

 

 용식이 패들을 무릎에 올리고 물었다.

 

  “선미 형수님을 사랑하시나요?”

 

 지현이 풉- 웃었다.

 

  “뭐야 갑자기 뜬금없이."

  "너무 불쑥이었나요?"

  "풉. 당연한 거니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내 짝이 선미야.”

  “그렇군요.”

 

 지현이 갑자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왜 그런 걸 물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어?”

 

 용식은 그냥 미소만 지었다.

 지현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있구나! 어떤 여잔데? 내가 선 자리 알아봐도 싫다고 그렇게 거절만 하더니, 대체 어떤 아가씨가 우리 무뚝뚝한 용식이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 아주 오랜전부터 만나왔어요.”

  “얼마나?”

  “십년도 넘었어요.”

 

 지현이 깜짝 놀랐다.

 

  “어? 그러면 그 아가씨를 중학생 때부터 만났단 말야?”

  “네”

  “문용식 넘마! 하하하. 이런 깜찍한 녀석을 봤나? 얘기 좀 해봐 용식아. 형님 궁금해 죽겠다. 어디서 어떻게 만난 건데? 응?”

  “보육원에서요."

  “아 그랬구나. 어떤 아가씨야? 지금 뭐해? 나이는?”

 

 용식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슬픈 표정으로 보트바닥을 응시했다.

 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무슨 일 있어”

  "큰 일이 있었요."

  "무슨 일인데? 아가씨 가족이 뭐라고 하디? 딸이랑 교제하지 말래?"

 

 용식이 다시 답하지 않고 풋 웃었다.

 녀석은 가끔 저런 모습을 보였다.

 그때마다 지현은 생각했다.

 참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그런데 용식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여자 가족이 얼마 전 죽었어요.”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구나. 네가 그 아가씨를 많이 위로 해줘야겠네.”

  “위로하지 않아도 되요.”

 

 응? 이건 또 뭔 소릴까?

 

  “그 아가씨 어머님은 어때? 만나본 적 있어?”

  “어머니가 좋아요.”

  “아 그래? 다행이네 그럼."

 

 용식이 다시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특히 절 아주 좋아해주세요.”

  “다행히 사윗감으로 마음에 두셨나보다. 그치?”

  “대단한 미인이세요. 예전에 배우를 했거든요.”

  “아... 그래?”

 

 지현이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돌아가신 가족에 배우였던 엄마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처럼 스토리가 좀 오묘했다.

 

  “형님. 형수님을 정말 사랑하시죠?"

  "그럼. 세상에 둘도 없는 내사람이니까."

 

 용식이 픽 웃으며 무릎에 놓인 패들을 쓰다듬었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용식아. 이제 보니 그 패들은 못 보던 거네? 새로 샀어?”

 

 용식이 고개를 저었다.

 

  “선물 받았어요.”

  “누구? 여자친구?”

  "네."

 

 지현이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용식아.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을 때는 놓치지 말고 꽉 잡아야 한다. 안 그럼 굉장히 후회한다.”

  “그렇겠죠?”

  “그럼. 이 형도 보육원 출신이잖아. 세상에 가족이고 부모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부유하듯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우린 잘 알잖니.”

  “그렇죠.”

  “우리같이 외로운 사람들은 빨리 짝을 만나 가족을 이루는 게 좋아. 아이도 많이 낳고 사랑도 많이 하고 서로 아껴주고 챙겨주면서.”

  “그렇군요. 그런데 형님은 왜 그러셨어요?”

 

 난데없는 질문에 지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가 뭘?”

 

 용식의 얼굴이 차갑게 돌변했다.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부인인데 왜요?”

  “용식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니?”

 

 용식이 갑자기 패들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저라면 제가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두지 않아요.”

 

 용식이 패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지현은 놀라 굳어버렸다.

 

  “용식아?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대체?”

 

 용식이 패들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런 놈한테 농간 당하도록 두지 말았어야지.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렸어야지, 그 자리에서.”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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