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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완미
작품등록일 : 20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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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악몽의 파편
작성일 : 20-09-29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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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온은 팀에 빠르게 융화되었다.

 

 숙소에 들어와 살면서 아침에 눈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같이 연습하고 생활하다보니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특히 막내 진오와는 4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격 없이 지내었다.

 

 “에에? 무릎. 무릎을 써야지. 어깨만 들썩거리면 안 된다니까. 봐 이렇게.”

 

 얼굴에 마스크 팩을 얹은 채로 진오는 다온에게 춤을 가르쳐 준다. 다온은 댄스 선생님에게서 일대일 지도를 받고 있었다. 레슨을 받은 후에는 진오와 함께 배운 것을 복습하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숙소 거실에서 춤 연습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인범은 조용히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 앞에는 이미 물을 마시러 나온 욱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춤이 빨리 늘 것 같지는 않지? 업다운이랑 기본 스텝도 이제 겨우 하는데, 안무 익히는 단계까지 가려면 한 세월은 걸리겠어.”

 

 인범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욱영은 다온과 진오 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조용히 타일렀다.

 

 “형도 자기가 춤추면서 노래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을 거야. 아무 준비 없이 시작했으니 더딜 수밖에. 우리 초조한 기색 보이지 말자. 본인도 답답할 텐데 옆에서 자꾸 조급해하면 포기하고 싶어질 거야.”

 

 “누가 뭐래. 그냥 막연해서 그래. 잘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까.”

 

 “진오가 잘 도와주고 있어. 옆에서 참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안 좋아. 격려나 많이 해줘. 형이 안무 합만 맞출 정도로만 춰줘도 나머지는 우리가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을 테니까.”

 

 “하긴 다온이 형은 노래로 우릴 커버 쳐 줄 테니까. 그래도 군무가 완성도 있어 보이려면 언젠가 들어올 다른 새 멤버는 춤을 잘 췄으면 좋겠다.”

 

 “전에는 누구든 상관없다더니. 욕심이 많아졌네.”

 

 “이왕이면 다홍치마인 거지.”

 

 인범은 욱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냉장고 안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들었다. 괜스레 해실해실 웃음이 났다. 숙소 안에도 활기가 돈다.

 

 팀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던 때에 비하면 행복하기 그지없다. 다음 새 멤버가 누구이든 깜깜하기만 했던 앞날이 좀 밝아진 느낌었다.

 

 그 즈음 양지형도 「팔라딘」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고심 중이었다.

 

 그는 윤길수가 추천한 연습생의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의 그는 여러모로 기대이상이었다.

 

 당장 데뷔를 시켜도 무방한 춤과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캐스팅 담당자의 짓궂은 질문에도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이나 언뜻언뜻 드러나는 유머감각이 확실히 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화룡점정인 것은 외모였다.

 

 머리만 길었으면 여자인 줄 착각할 만큼 곱상한데, 카메라를 응시하는 시선이 이따금 육식동물처럼 야성을 띤다. 그것이 사람의 시선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영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딱 한 가지 문제만 빼면 말이다.

 

 -전 소속사에서 폭력사건으로 퇴출되었대.

 

 무시하기에는 작지 않은 리스크였다.

 

 어떤 폭력사건인지는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는데, 전 소속사에서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팀원들이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고 해서 잘리게 되었단다.

 

 -전에 있던 소속사가 ‘쥬쥬엔터’야. 어딘지 알지? 거기 대표인 지경엽 씨하고 우리 사장하고 친하잖아. 그쪽에서 폭력사건으로 잘린 연습생을 우리가 데려가는 것이 찝찝하다며 사장이 커트했어. 캐스팅 담당자랑 신인 개발팀은 아까워 죽으려고 했지만 말이야. 어떤지 한 번 보려면 연락해봐.

 

 양지형은 찝찝해한 대표의 입장도 이해가 됐고, 아까워 죽으려 한 캐스팅 담당자와 신인 개발팀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그 두 가지 마음이 지금 양지형에게 공존하고 있었다.

 

 손희영과 약속한 두 달 중에서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간다. 남은 시간 안에 얼른 다른 한 멤버를 채워 평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찜찜함에 그를 포기하고 다른 인물을 찾는다?

 

 그러기에는 남은 시간이 어중간하다. 무엇보다 그는 현재 「팔라딘」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

 

 양지형은 휴대폰을 들고 윤길수가 알려준 번호를 찍었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순호와 상수가 생각났다. 그들 때문에 팀이 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것을 떠올리면 이 연습생의 폭력사건도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

 

 통화버튼 위를 맴도는 그의 손가락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니지. 꼭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잖아. 일단 한 번 직접 보고 결정하자.”

 

 맴돌기만 하던 양지형의 손가락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

 

 너 누구인지 몰라도/ 나 아무 상관없대도/

 너/…… 너/ 누구인지 몰라도/…….

 

 “하아.”

 

 랩 연습을 하던 욱영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마른세수를 했다.

 

 상수가 팀에서 이탈하고 랩을 맡을 이가 없어 임시방편으로 목소리 톤이 비슷한 욱영이 랩 파트를 맡았지만 지금까지 랩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는 아무리 따라하려고 연습해도 상수처럼 랩을 할 수가 없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연습하던 보컬 룸에서 나온 욱영은 로비 쪽으로 발길을 잡았다. 그런데 로비에 심원중이 나와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형…….”

 

 욱영이 그를 부르려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심원중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반팔 후드 티에 백팩을 멘 소년이었는데,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욱영은 숨이 턱 막혔다.

 

 조금 길게 내린 앞머리 사이로 비치는 선명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은 아무렇게나 옷을 입어도 맵시가 사기적인 신체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연예인이 되는 것이지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타입이랄까. 그래서인지 로비를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그를 돌아본다.

 

 욱영은 그 얼굴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마주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심원중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그 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회사를 훑어본다. 그의 눈이 자신 있는 쪽을 향하자 욱영은 재빨리 등을 돌렸다. 그는 주문처럼 “보지 못했어. 보지 못했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등골이 오싹하고 금방이라도 뒤에서 ‘최욱영’하고 제 이름을 부를 것 같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욱영은 다시 보컬룸 안으로 들어가 황급히 문을 닫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걔가 왜 여기에 나타나. 내가 잘못 본 거야. 절대 그 녀석일 없어. 침착하자. 최욱영. 침착해. 옛날 일은 잊어버리자. 침착하는 거야.”

 

 욱영은 방금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며 평정심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귀에서 ‘삑’하는 이명이 들리면서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늘 남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욱영은 덩치도 좋아서 초등학교 시절에 씨름부에서 활동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씨름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큰 키에 두툼한 살집을 지닌 그를 다른 아이들은 ‘돼지’라고 놀렸다.

 

 성격이 무던한 욱영은 그 놀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를 돼지라 부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언젠가부터 그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야, 돼지야. 이거 너나 먹어라.”

 

 쓰레기나 다름없는 먹고 남은 음식을 던지기도 했고, 몰래 체육복 바지 엉덩이 부분에 칼집을 넣은 뒤 뚱뚱해 바지가 터진 것처럼 몰고 가기도 했으며 욱영의 이름으로 가짜 고백 편지를 반 여자애 가방에 넣어 혐오의 대상이 되도록 선동하기도 했다.

 

 욱영이 댄스 학원을 다니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처음에는 살을 빼기 위해서였는데 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선생님도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칭찬을 해주셔서 학교 다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러다 가수를 꿈꾸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연습생을 뽑기 위해 댄스 학원을 찾아온 기획사 관계자와 만난 후부터였다. 그는 단체 오디션 후 욱영을 콕 집어 따로 또 오디션을 보고 싶어 했다.

 

 “피지컬이 좋네. 몸놀림도 키나 덩치에 비해 가볍고. 살만 빼면 인물도 훤할 것 같고. 중2라고 했나? 노래는 잘 해요?”

 

 “즐겨는 듣습니다.”

 

 “그럼 한 번 해봐요.”

 

 그날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중간에 부르다 말았던 것 같다. 비웃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 기획사 직원은 욱영의 목소리를 칭찬해주었다.

 

 “변성기는 지난 거죠? 저음의 목소리가 참 좋네. 독특해서 노래에 색다른 맛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컬 쪽으로도 연습해 봐요.”

 

 결국 그 기획사에서 욱영을 연습생으로 뽑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 날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수가 될 준비를 하였다. 보컬 학원을 다니며 노래를 연습했고 기획사 오디션이 있으면 틈날 때마다 참여하였다.

 

 살도 조금씩 뺐지만 돼지라는 놀림은 계속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한 놀림을 받게 될 것이었다. 다행히 학교에 친구가 없어 욱영의 꿈에 대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한 오디션 장에서 옆 반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너 가수가 꿈이었어?”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 걔들이 날 돼지라고 놀리는 건 상관없는데, 내 꿈까지 비웃음 는 건 싫으니까.”

 

 “알았어. 말 안 할게.”

 

 그 애는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처음에는 말만 그렇게 하고 소문내고 다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중학교 2학년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욱영이 가수를 지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그 애가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었구나 생각했는데 겨울 방학이 끝난 뒤 학교에 왔을 때, 욱영은 반 아이들이 저를 보며 키득거리는 것을 알아챘다.

 

 “야! 돼지야. 이거 뭐냐?”

 

 반 아이들 중 한 명이 휴대폰으로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영상에는 오디션에 참가해 춤을 추는 욱영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이미 다 돌려본 반 아이들은 잔인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최돼지. 너 파닥거리는 몸짓이 귀엽다. 꼭 날아다니는 돼지 같아. 크크크.”

 

 “돼지야. 내가 조언 하나 하자면 가수도 기본적으로는 연예인이야. 어느 정도 인간의 몰골은 갖춰야 되지 않겠니? 낄낄낄.”

 

 “내가 뭐랬어. 저 자식 자기가 멋진 줄 안다니까. 지가 무슨 거리의 댄서라도 된 냥 집에 가는 기에 이어폰 끼고 걸으면서 리듬을 탄다니까. 뒤에서 보면 완전 개 웃긴데, 저는 제 멋에 취해서 모르더라고.”

 

 짓궂은 녀석들이 영상 속 욱영의 춤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추는가 하면, 분수도 모르는 멍청이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어차피 3학년이 되면 반이 갈릴 아이들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며 그들의 조롱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복도에 나오자 ‘그 애’가 욱영의 반 아이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엇을 보는지 같은 반 아이들이 녀석의 휴대폰 화면을 보며 포복절도를 한다.

 

 “아, 최욱영 졸라 웃겨. 시련을 견뎌낸 무지개. 그것이 나의 운명~ 워우워우~ 깔깔깔.”

 

 “나 이거 어디서 들었는데 이거 만화 주제가 아니냐? 와! 이 새끼 어쩐지 주제파악을 못한다 했더니, 만화 오덕이었네. 어쩐지.”

 

 “김서정. 이런 재미있는 걸 왜 너 혼자만 가지고 있었냐. 이거 내가 공유해 간다.”

 

 반 아이들이 뭐라 비웃든 견딜 수 있었다.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의 조롱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다보면 그런 것들도 자연히 흘러 지나가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을 험담하는 아이들 틈에 그 녀석이 있는 것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영상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찍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가 오랫동안 잡고 있던 인내와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렸다. 욱영은 서정을 향해 덤벼들었고, 그것으로 그의 중학교 생활은 완전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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