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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돌입니다
작가 : 샤론
작품등록일 : 20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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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무데도 못가게 지켜주고 싶어..
작성일 : 20-09-29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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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짝짝~ 고생하셨습니다~”

 

 3회 가편 시사가 끝나고 다들 바짝 긴장했던 몸을 풀어주듯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어쩐지 막내작가인 정인이 시무룩해보여 세희는 옆에 앉은 윤지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정인이 왜 저래?”

 

 “기사 못 보셨어요? 태하 왕따 논란.. 결국 터졌어요!

  세븐 스텝 멤버 부모님 몇분이 회사에 소송을 냈나봐요..

  그러면서 폭로글 나오고.. 태하만 잘 나가니까 걔만 밀어줬다..

  소속사가 애들 차별해서 생긴 일이다.. 책임져라.. 난리예요.”

 

 “헐!”

 

 요 며칠 예상치 못한 일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일할 때마다 인터넷을 봐도 할 것만 하고 세상에 관심을 껐더니 이런 일이 터졌을 줄이야.. 윤지는 세희 앞으로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화면엔 <태하 왕따 사건 정리>라는 블로그가 띄워져있었다. 세희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태하 섭외 안하길 잘했구나...’

 브릴리젠트가 아닌 태하를 5회 출연진으로 픽했다면.. 방송 엎네 마네 난리가 났을 거고 6회 방송을 앞당기거나, 스페셜 방송을 내야 했을 텐데...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새삼 준원에게 고마워져 그를 보는데 많이 피곤해 보였다. 다들 밥 먹고 오자는 나영의 말에 하나 둘 회의실을 나가는데 준원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언니 안 가세요?”

 

 “금방 갈게~ 먼저 가~”

 

 세희는 윤지를 보내고 준원에게 말을 걸었다.

 

 “식사하러 안 가세요?”

 

 “전 속이 좀 안 좋아서..”

 

 “메인 PD님이 팀원들한테 너무 관심 없는 거 아니에요~?”

 

 “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인데.. 준원이 너무 미안한 표정을 지어 순간 세희가 멋쩍어졌다. 까칠한 사람이 얼마나 미안했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다 문득 정우에 대한 소식은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오원일 이사랑 얘기 하셨다면서요?

  뭐래요?”

 

 “후... 모른다고 하죠 뭐..

  일 잘하는 매니저잖아요. 자기 아티스트는 끔찍하게 챙기는..”

 

 남의 일 말하듯 그대로 눈을 감고 성의없이 말하는데.. 어쩐지 모든 걸 체념한 듯 보였다. 이상하게.. 도윤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려는 집념도,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 그만두기로 한 거냐고 물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지이이잉” 세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현민의 메시지였다.

 

 [누나~ 연락이 좀 늦었죠..

  바로 풀었어야 했는데 제가 생각이 많아져서..

  어제 하준이 형이랑 잘 얘기하고 풀었어요.

  누나 덕분이에요~ 역시 우리 누나! 고맙습니다 ]

 

 웃는 이모티콘은 종류별로 다 쓴 듯한 메시지를 보다 세희는 다시 준원에게로 시선이 갔다. 하준과 현민처럼 쉽게 풀릴 수 있는 일이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저 사람은 모든 게 다 어렵기만 한 걸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안 먹겠다는 준원을 세희는 억지로 끌고 나왔다. 방송국 뒤편 피자 집에 있다는 톡에 답장을 보내며 준원과 나란히 걸어가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강민이 준원을 노려보는 게 포착됐다. 그 모습에 언짢아진 세희는 괜히 역정을 내며 말했다.

 

 “차강민 피디 아직도 저래요?

  그러고보니까.. 며칠 전에 한판 했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방송국에 비밀이 어딨어~

  소문 다 났어요~ 차강민이 비열하게 아픈데 건드렸다고..

  차 빌런이라고 부르던데요..”

 

 “비열....... 나만큼 비열할까..”

 

 준원은 옆에 있는 세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는 건지 대답도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에 세희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작가들은 늘 바쁘지만.. 가편이 나온 날은 더 바쁘다. 자막을 써서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인건 나아돌 피디들은 웬만한 상황 자막이나 말자막 정도는 가편에 얹어서 줬기 때문에 작가들은 그걸 조금 더 재밌어보이게 추가하고 수정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훨씬 수월했다. 그래도 자막 쓰는 일은 중노동... 오늘도 밤새 머리를 굴리며 자막을 뽑아낼 후배들을 위해 세희는 카드를 투척했다.

 

 “놓고 간다~ 머리 안 돌아가면 편의점에서 단 거 사 먹고,

  스트레스 받으면 야식 매운 거 시켜먹고..

  너무 졸리면 좀 자고~ 알았지?!! 고생해~

  아! 정인이는 이제 다 울었어?”

 

 태하 사건으로 내내 울상이었던 정인이를 놀려주려 한마디 던졌는데 정인의 표정이 시뻘개지며 심각해졌다. 그냥 농담인데.. 정인이 너무 정색하니 옆에 있던 다른 작가들도 민망해진 표정이었다. 윤지는 그런 정인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김정인.. 언니가 장난 좀 친 건데 뭘 그렇게 정색해..”

 

 “그게 아니구요 언니...”

 

 정인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채 황당한 듯 입을 열었다.

 

 “브릴리젠트도 터졌어요...

  현민이가 하준이 때린 영상이 지금 SNS에....”

 

 “뭐?”

 

 놀란 세희는 정인의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영상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화면 속엔 브릴리젠트의 뮤직비디오 촬영 날, 현민이 하준의 손을 뿌리치려다 얼굴을 친 문제의 장면이 담겨있었다.

 

 

 곧바로 나아돌 제작진이 회의실에 모였다.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브릴리젠트 편 방송을 킬해야 하나에 대한 사안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영상이 나아돌 제작진에게서 나왔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 일이 뮤직비디오 촬영 날 일어난 사건이라는 걸 안 극성 팬들이 나아돌을 걸고 넘어진 거다.

 나아돌 팀이 뮤비 촬영 날 뭐 찍는다고 왔는데.. 이 피디가 하준이한테 앙심 품고 일부러 찍어서 퍼트린거 아니냐는 루머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준원이 하준의 멱살을 잡은 영상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확인하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원일과 통화를 마친 세희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준원은 그런 세희를 보고는 답답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나영에게 물었다.

 

 “우리 카메라 꺼져 있었던 건 확실해?

  대기실에 거치해둔 건? 그건 켜져 있었을 거 아냐~”

 

 “대기실 거치캠은 각도가 달라요.

  그렇게 정면에서 찍혔을 리가 없다고요..”

 

 “거치 세 대였잖아~ 다 확인했어?”

 

 “그게...”

 

 결국 세 개의 거치 카메라에 담긴 그날의 참사를 우린 다같이 봐야했다. 확실히 두 대의 카메라는 각도가 확연히 달랐지만 문에 달려있던 카메라는 약간 애매했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아니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세희도 아니라는 쪽이었다.

 

 “문 쪽에 있던 거치는 좀 높은 곳에 있었잖아요.

  우리 카메라 영상이랑 SNS에 있는 영상..

  비슷해 보여도 달라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쪽에서 저걸 흘릴 사람이 없잖아요..”

 

 준원은 골이 아픈 듯 관자놀이를 누르며 세희에게 물었다.

 

 “오 이사는 뭐래요?”

 

 “혹시 찍힌 영상 있으면.. 다 보내달래요. 비교해본다고..

  그리고 자기네 스태프들도 확인해보겠대요..

  그 날 카메라가 많긴 했으니까...

  소속사에서 찍은 비하인드 카메라도 있었고...

  뮤비에 스틸로 들어갈 영상 찍는 카메라도 있었대요.”

 

 “나영아.. 저 영상 오 이사한테 보내줘~”

 

 “네..”

 

 “반응은 어때요?”

 

 “심각해요....”

 

 정인은 인터넷 반응을 조심스럽게 읊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SNS엔 <아이돌 인성>, <왕따 논란>으로 온갖 추측성 기사와 댓글이 메인을 장식하고 있었다. 며칠 새에 아이돌 그룹의 왕따 논란이 연이어 나왔으니...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을 던져준 셈이었다.

 다들 답답한지 말이 없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한숨소리에 준원은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잠시 후, 준원이 입을 열었다.

 

 “크리스텔라 촬영.. 금요일이죠?”

 

 “네..”

 

 “방송을 킬 할지는.. 반응 조금 더 지켜보고..

  부장님과도 상의해볼게요.

  만약 킬하게 되면.. 크리스텔라를 먼저 내야 할 것 같은데..

  스케줄 체크 좀 해주세요”

 

 “네~”

 

 윤지의 대답을 끝으로 스태프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욕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욕먹는 건 기운 빠지는 일이다. 하준과의 사건이 없었다면.. 나아돌 팀은 헛수고를 했을지언정 적어도 욕을 먹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면.. 말은 안해도 준원을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준원이 읽었을까?

 준원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고개를 숙이며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준원을 보며 후배 피디들과 작가들은 같이 우물쭈물 하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준원의 사과에 다들 놀라고 미안한 눈치였다.

 

 

 준원과 세희는 술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연거푸 소주만 따라 마시는 준원을 보던 세희는 그의 손에서 소주 병을 가로챘다.

 

 “이러다 속 버려요.

  뭐라도 좀 먹으면서...”

 

 “후훗”

 

 갑자기 실소를 터트리는 모습에 세희는 이 사람이 정신줄을 놓은 건가.. 싶었다.

 

 “드디어 정신 놓은 거예요?”

 

 “아.. 정신 놓고 싶어서 마시는데...

  안 놔지네요..”

 

 옅은 미소를 띄며 다시 소주를 따라 들이키는 준원의 모습에 세희는 마음이 아팠다.

 

 “피디님 탓 아니에요..”

 

 “아니요. 내 탓이에요..”

 

 “피디님이 퍼트린 것도 아니고,

  걔들 싸우라고 부추긴 것도 아닌데..

  왜 그게 피디님 탓이에요..”

 

 “얼마 전에 차강민이 나한테 한 얘기 들었다고 했죠?

  망한 아이돌이었던 니가 잘나가는 애들 보면 어떠냐고..

  내가 성공했으면 내가 저 자리에 앉아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 들어서 속 뒤집어지지 않냐고...

  그 때 내가 뭐랬는줄 알아요?

  선배가 그런 마음이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욕하더라고요.. 그래서...”

 

 준원은 다시 빈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시고는 말을 이어갔다.

 

 “선배가 잘 했으면.. 안 뺏겼을 거라고..

  잘 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했다면 이 자리 지켰을 텐데

  왜 본인이 그거 못해놓고 남 탓하냐고...

  근데 그 순간.. 차강민한테서 내가 보이더라고요.

  내가 열심히 안 해서 아이돌로 성공 못해놓고

  남 탓 하면서 애꿎은 사람들만 원망했구나...”

 

 세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자격지심 덩어리로 살지 않았다면...

  굳이 하준이한테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고..

  그럼 섭외도 안 했을 거고.. 이런 사고도 없었을 텐데..“

 

 “태하를 섭외했어도 터질 일이었어요.”

 

 세희의 팩트 체크에 준원이 “훗”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작가님은 참 희한해요.

  그냥 팩트를 말한 건데.. 위로가 돼요..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뜬금없는 준원의 멘트에 세희는 “엥?” 하는 표정을 짓자 준원이 더 크게 웃었다. 민망해진 세희는 소주를 한잔 들이키며 준원의 얼굴을 봤다.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참 좋았다. 그때 생각했다. 준원이 계속 웃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하늘에 있는 도윤이도 웃고 있을 것 같아서...

 

 ∴

 

 세희 덕에 기분이 한결 나아져 집으로 돌아간 준원은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멀리서봐도 하준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준원의 기척에 푹 숙이고 있던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하준의 얼굴을 본 준원은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하준의 표정.. 그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 같은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의 눈빛...

 준원도 경험했던 감정이라 한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하준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한테.. 왜 우리한테만...”

 

 덜컥 겁이 난 준원은 하준을 꼭 안았다. 하준이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흐느끼자 더 세게 안았다.

 도윤처럼 한 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서... 어디도 못 가게 꼭 지켜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때 하준의 떨리는 목소리가 준원의 귓가를 울렸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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