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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완미
작품등록일 : 20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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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받지 않는 전화
작성일 : 20-09-29     조회 : 322     추천 : 0     분량 : 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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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루루루.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손희영의 입도 거칠어진다.

 

 “받아. 이 자식아. 진짜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받아.”

 

 그녀는 반복적인 신호음만 토해내는 전화기를 잡아 흔들었다. 회사에 출근한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내내 응답이 없는 전화에 그녀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폭주하여 날뛰기 일보직전, 딸깍 소리가 나며 나른한 남자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여보……세요?”

 

 손희영은 고함이 터져 나오려던 자신의 입을 막았다. 이곳은 회사이고 대표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내린 방편이었다. 그녀는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 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응. 그래. 나야. 자고 있었니? 내 전화 받고 깬 거야?”

 

 “어……. 그러니까 끊어. 나 졸려.”

 

 그는 아이처럼 칭얼거리더니 전화를 끊으려한다. 그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꾹꾹 눌러 담았던 손희영의 분노가 폭발한다.

 

 “야! 이 미친놈아! 뭐, 졸려? 지금 잠이 쳐 와?! 너 내가 뭐라고 그랬어. 50만 원 이상 쓰면 죽을 줄 알라고 했지? 그런데 250? 250?”

 

 “어……. 그게. 어, 그러니까……. 50만 원을 내 한 달 용돈이라고 치고, 다섯 달 치를 미리 줬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뭐라고? 너 이 새끼! 내가 네 엄마냐? 내가 왜 너한테 용돈을 줘. 뚫린 입이라고 나오는 말마다 개소리네. 너 딱 기다려. 나 지금 간다. 250만원어치 만큼 네놈 머리털을 다 뜯어 놓을 거니까 각오해! 알았어?”

 

 손희영은 전화를 끊고 차키를 챙겨 나왔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직원에게 말을 남겼다.

 

 “오늘 「팔라딘」 데뷔평가 있는 날이죠? 양 팀장에게 2시간 정도만 늦추자고 해요. 내가 잠깐 어디 좀 갔다 올 데가 있어서요.”

 

 직원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은 양지형은 내심 안도를 했다. 아니, 기왕 미룰 거면 며칠만 더 뒤로 미루자 하고 싶었다.

 

 “서정이는 여전히 연락이 안 돼?”

 

 심원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욱영이랑 싸운 당일 날만 해도 서정은 숙소로 돌아갔다. 서로 말하지 않고, 얼굴도 마주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그런데 데뷔평가를 앞둔 어제 아침에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연락이 끊어졌다.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니겠지요?”

 

 “숙소건물 공용 CCTV로 봤잖아.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거. 서정이네 집에는 연락해 봤어?”

 

 “누나하고 단 둘이 사는데, 누님 말로는 집에 안 왔다고 하던데요. 되레 서정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서 제가 착각한 것 같다고 둘러대기는 했는데. 이제 어쩌죠?”

 

 양지형은 자신도 누군가에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지난 두 달 간 뭘 위해 이리 안달박달 했는지 회의감이 밀려왔다. 겨우겨우 서정을 찾아 오늘 데뷔평가를 치른다 해도, 이런 콩가루 팀워크로 「팔라딘」이 혹독한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

 

 아등바등 애써왔던 모든 것이 허무하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서정에게 데뷔평가가 몇 시에 시작되는지 문자로 연락을 하였다. 그가 돌아오든, 안 오든 지금 양지형이 할 수 있는 건 무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뿐이었다.

 

 같은 시각.

 

 연습실에 모여 있던 「팔라딘」의 멤버들도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데뷔평가 당일. 한 번이라도 더 호흡을 맞춰도 부족한 때에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린 서정 때문에 다들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전화 안 받지?”

 

 진오가 물음에 서정에게 연락을 취하던 다온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낸 톡도 아직 안 봤던데. 대체 어딜 간 걸까?”

 

 진오는 답이 없는 대화창을 두들겨 댔다. 한숨과 적막이 교차하는 분위기 속에서 멤버들의 마음도 침울해진다.

 

 “서정이 형. 혹시 다시는 안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만약 서정이 형이 이대로 안 돌아오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데뷔평가를 넷이 치르나? 아니면 새 멤버를 다시 찾을 때까지 평가를 미룰까?”

 

 “어찌 되었든 난 서정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진오와 다온의 대화를 듣던 욱영과 인범은 가슴이 뜨끔했다.

 

 두 사람은 이번 데뷔평가가 팀의 존속을 결정짓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전에 데뷔가 좌절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진오와 춤을 잘 추지 못하는 것이 핸디캡인 다온이 큰 부담을 안고 평가에 임할까 싶어 숨겼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진오와 다온이 얼마나 속상해할지 가늠이 안 된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저인 것만 같아 욱영은 견딜 수가 없었다.

 

 “저기,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욱영을 화장실을 다녀오겠다 말하고 연습실을 나와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는 회사 부근에 있는 한적한 공용 놀이터로 가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는 저장은 해놨지만 한 번도 연락해 본 적 없는 서정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전화 받았으면 하면서도, 받지 않기를 바랐다. 서정이 전화를 받으면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욱영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 코멘트가 나오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너 진짜 돼지가 됐구나. 진창에 처박혀 시키는 대로 꿀꿀대는 돼지가.’

 

 서정의 말에 화가 치밀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욱영은 화가 났던 이유가 돼지라는 표현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서정이 제게 했던 말이 원색적인 비난에 불과했던 것인지 돌이켜 보게 된다. 그러자 서정에게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크게 숨을 몰아쉬고 문자로 어렵게 한 마디를 적어 보냈다.

 

 -미안해.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욱영의 마음은 번다했다. 그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돌아올 답을 기다렸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괜히 초조해졌다.

 

 “아직 못 본 건지, 답을 하기 싫은 건지.”

 

 욱영은 침묵을 지키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여기서 마냥 답을 기다리며 지체할 수는 없었다. 연습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서 욱영은 그네에서 내렸다.

 

 그때 ‘띠링’ 하고 문자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서정이 보낸 답장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여니, 다른 말은 없고 링크 주소 하나가 덜렁 떠있었다. 그걸 누르자 다운을 받겠냐는 창이 떴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파일을 다운받자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영상 속에는 지금보다 살집이 있고 얼굴이 앳된 욱영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욱영은 중학교 때 놀림감이 되었던 영상임을 직감했다.

 

 미안하다는 자신의 문자에 보내온 답장이 이 영상이라니.

 

 조롱당한 기분이었다. 울컥해서 바로 영상을 껐다. 그런데 창이 닫히기 직전 욱영은 영상 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다시 영상을 틀었는데, 정말 누군가가 욱영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영상은 원본과 다른 편집본이었다. 편집본에는 누군가 욱영의 영상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시간대별로 나뉘어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투르게 따라 부르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 부르는 사람이 실력이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후렴부분에서는 욱영의 목소리를 지지해주듯 화음을 넣으며 고조를 높인다.

 

 그것을 듣는 순간 욱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짜릿한 무언가가 속에서 꿈틀대었다.

 

 *****

 

 “미안해요. 내가 좀 늦었죠.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날인데 약속시간을 어기다니 사과할게요.”

 

 격렬한 일을 하다 온 것처럼 손희영은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사과를 했다.

 

 그녀는 매무새를 다듬은 후, 연습실 한 쪽에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는 음악, 퍼포먼스, 콘텐츠 기획 등 여러 명의 회사 관계자들이 데뷔평가를 보기 위해 이미 와 앉아 있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양 팀장님.”

 

 손희영이 평가할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다. 양지형은 굳은 얼굴로 문가에 서있는 심원중을 쳐다보았다. 그가 작게 손사래를 친다. 시간을 알려줬음에도 서정이 끝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새로 녹음하면서 다온과 서정의 노래 비중이 커졌다. 이런 상태에서 4명이 평가를 치러봐야 통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는데 연습한 것을 보여줄 기회도 주지 않고 끝내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해 양지형은 평가를 강행하기로 했다.

 

 그는 심원중에게 「팔라딘」 멤버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심원중은 다른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들을 회사 관계자가 자리한 연습실로 데려왔다.

 

 일렬로 늘어선 그들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하였다.

 

 “정다온입니다. 21살이고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유진오입니다. 17살이고 춤이 메인입니다.”

 

 “박인범입니다. 19살이고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최욱영입니다. 19살이고…… 랩을 맡고 있습니다.”

 

 소개가 끝나자 손희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명은 어디 있죠? 멤버가 5명 아니던가요? 최욱영, 박인범, 유진오는 원래 있던 멤버고, 정다온 군과 함께 영입된 새 멤버는 어디 갔나요?”

 

 “그게…….”

 

 양지형이 해명을 위한 말을 고르던 그때 드르륵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문가로 쏠린다.

 

 뺨에 불그스름한 멍이 들어있음에도 곱상한 미모가 빛을 발하는 소년이 회사 관계자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서정입니다. 19살이고 보컬입니다.”

 

 다 포기하고 있던 차에 서정이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반가우면서도 화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양지형은 일단 그를 멤버들 옆으로 데려왔다.

 

 “데뷔평가 하는 중요한 자리인데 다른 멤버들 소개 다 끝날 때까지 뭐 하다가 이제 온 건가요?”

 

 손희영이 냉정하게 서정의 태도를 꼬집었다. 그러자 양지형이 서정을 두둔하고 나섰다.

 

 “대표님도 늦으셨잖습니까. 그것도 한 번 미룬 약속에 말입니다. 서정이도 변동된 시간을 착각해서 늦은 겁니다.”

 

 거의 떼를 부리는 수준의 말이었지만, 자신도 늦은 건 사실이기에 손희영은 더 문제 삼지 ㅇ낳았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죠.”

 

 「팔라딘」 멤버들은 데뷔평가를 받기 위해 대형을 잡았다. 그리고 안무를 시작하는 첫 동작을 포즈 잡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촉박한 시간에 인범이 제 옆에 선 서정에게 조용히 말했다.

 

 “널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딱 맞춰 돌아와서 다행이다.”

 

 “다행일 것 없어. 난 이 평가를 망치러 왔으니까.”

 

 “뭐? 너 그게 무슨…….”

 

 인범이 따져 물으려던 찰나에 음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팔라딘」 멤버들은 본능처럼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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