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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를 죽이고 싶습니다.
작가 : 지비냥
작품등록일 : 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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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성일 : 20-09-29     조회 : 272     추천 : 1     분량 : 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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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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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대 황제의 애지중지하던 막내 아들이자 현 황제의 동생인 쿠온백작.

 쿠온 백작의 사생아이자 하녀의 아들이 프레드릭이었다.

 

 “그녀는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살아 있었나?”

 

 의아해하는 베아트리체 말에 프레드릭은 즐거움을 차마 숨길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아아! 건강하게 살아 계시지! 하하! 독 뿐만이 아니라 너에 대해 여러 가지 일도 하셨지, 푸하하하하.”

 ‘그럼 그 추문도 다...’

 

 자신과 어머니를 끝없이 괴롭혔던 추문이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 베아트리체는 눈앞이 점점 뿌예지는 걸 느꼈다.

 

 “당신이 우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영광이네. 울지마, 베리. 내 마음이 다 아프잖아.”

 

 그렇게 속삭인 프레드릭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당신 심장에 꽂혀있는 이 단검.”

 

 베아트리체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심장에 꽂혀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이게 황실의 보물이라고 하더라고. 뭐라더라? 이 검으로 황가 핏줄의 심장을 뚫으면 힘을 약하게 만든다고 하던가?”

 

 그 말에 단검을 쳐다보니 붉은색을 띄고 있던 보석이 검게 변해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잠시 그 단검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짐하듯 말했다.

 

 “만약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아니 내가 죽어서도 네 목숨만은 꼭 내 손으로 끊어주겠다!”

 

 갑작스런 베아트리체의 말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 프레드릭은 얼른 단검을 뽑았다.

 

 “이제 곧 죽을 신세면서 별 소릴 다 하는군. 이제 정말 안녕. 내 사랑, 베리….”

 

 그가 단검으로 그녀의 심장을 다시 꿰뚫으려고 했다.

 그 순간, 베아트리체의 심장에서 강렬한 빛이 새어 나왔다.

 

 “으윽!”

 

 프레드릭의 놀란 목소리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기억이 뚝 끊겨버렸다.

 

 ***

 

 베아트리체는 하늘 위에 붕 떠있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꿈인가?’

 

 결박이라도 당한 듯 움직이지 않는 몸.

 베아트리체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경직되어 있던 몸이 조금씩 풀렸다.

 베아트리체는 그제야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처음 보는 숲이었다.

 그것도 꽤 우거진 숲이어서 베아트리체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깨어나셨군요.”

 

 재빠르게 뒤를 돌아보니 웬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었으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안개에 감싸인 듯 흐릿하게 보였다.

 

 “누구지? 혹시 마법인가?”

 

 베아트리체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잠이 덜 깨신 겁니까? 뭐, 그것도 귀엽긴 합니다만.”

 

 웃음 띤 목소리로 대꾸하던 남자가 천천히 베아트리체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상쾌한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베아트리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짐승같다.’

 

 먹잇감이 놀라지 않도록 숨죽이는 짐승….

 베아트리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남자가 또 한 번 웃음 띤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보이시면 더 이상 참기가 어렵습니만….”

 

 그 말과 함께 남자가 두 손을 뻗어 베아트리체의 양 뺨을 보듬었다.

 

 “……?”

 

 베아트리체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촉-.

 

 “…어?”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은 베아트리체가 그를 와락 밀치려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그녀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또 다시 온몸이 경직된 것이다.

 

 ‘…이게 무슨?’

 

 베아트리체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또 다시 입맞춤이 날아들었다.

 

 쪽.

 

 당황한 베아트리체는 부드러운 입맞춤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감촉이었다.

 곧 혀가 얽히고 타액이 섞이는 야릇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베아트리체의 뇌리에 신비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먹어치워.]

 

 ‘…뭐?’

 

 베아트리체가 의문을 느낄 틈도 없이 남자의 손길이 갑자기 자극적으로 움직였다.

 

 “…읍! 잠깐!”

 

 만류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더욱 깊이, 더욱 대담한 손길로 베아트리체의 온몸 곳곳을 누볐다.

 

 “하아….”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꽉 밀착된 몸, 누구의 열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베아트리체는 제 옷이 점점 흐트러질 때마다 언제나 텅 비워져 있던 그곳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갖고 싶어.’

 

 무엇을 가지고 싶은지 그녀 자신도 몰랐다.

 그저 알 수 없는 목마름과 가지고 싶다는 열망 만이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느새 베아트리체는 남자의 허리를 잡아채 자세를 역전시켰다.

 그리고 잡아먹을 기세로 그의 상의 단추를 풀다가 답답한 마음에 찢어버렸다.

 그러자 남자가 웃으며 허리를 살짝 들어 찢어진 상의를 벗었다.

 

 “어제는 제가 잡아먹혔으니 오늘은 제가 잡아먹고 싶었습니다만….”

 

 베아트리체는 대답 대신 탄탄해 보이는 그의 가슴부터 균형 잡힌 복근까지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기사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베아트리체는 남자의 단련된 몸을 보고 그의 직업을 유추했다.

 

 “윽…. 만지기만 할 겁니까?”

 

 남자의 신음 섞인 말에 베아트리체는 그의 가슴 위로 제 몸을 포갰다.

 그러자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입을 맞춰왔다.

 곧 베아트리체의 옷이 벗겨졌고, 두 사람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

 격해지는 신음과 끓어오르는 욕망.

 어느 순간,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몸 깊은 곳이 가득 채워지는 걸 느끼며 그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리고 무언가 폭발하는 걸 느끼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그때 아까 들었던 신비한 목소리의 주인이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베아트리체의 기억 속에서 잠시 메아리를 울리다가 아련히 사라져갔다.

 

 ***

 

 “허억!”

 

 거친 숨소리와 함께 베아트리체는 눈을 번쩍 떴다.

 다음 순간 이곳이 자신의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있는 거지?’

 

 분명 프레드릭에게 찔려 죽어가고 있었는데?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내가 남자랑….’

 

 베아트리체는 뒤죽박죽인 기억에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꿈인 건가, 아님 모든 게 현실인건가?’

 

 베아트리체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여니 더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덥다고…?’

 

 지금 계절이 더울 리가 없었다.

 

 “분명 겨울이었는데?”

 

 베아트리체는 떨리는 손으로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양손을 내밀었다.

 마침 더위를 식히려는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

 베아트리체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휘류륭.

 갑자기 신비로운 음향이 들리더니 머리 위로 얇고 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

 

 마법이었다. 그것도 베아트리체가 익히 알고 있는 정령마법이었다.

 

 “리체님….”

 

 부드러운 중저음이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불렀다.

 베아트리체는 화답하듯 자신을 부른 이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세드릭….”

 

 꽤 먼 거리에 있었지만, 세드릭의 눈가가 유려하게 휘는 것이 보였다.

 베아트리체는 지금 상황도 알아볼 겸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잠깐 올라와봐, 릭.”

 

 그 말에 세드릭이 가볍게 날아올라 베아트리체 앞에 섰다.

 베아트리체는 세드릭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작은 빛무리를 보며 속으로 작게 웃었다.

 

 ‘바람의 하급정령들이군.’

 

 정령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 암흑 길드의 수장이라니.

 

 ‘신이란 참으로 얄궂은 존재야.’

 

 아니, 그 자리에 세드릭을 앉힌 자신이 얄궂은 것일까.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는 세드릭에게 베아트리체는 가벼운 인사부터 건넸다.

 

 “오랜만이네, 릭.”

 “...오랜만이요?”

 

 세드릭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뒤이어 그의 그린 올리브색 눈동자가 베아트리체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조금씩 시선을 내려 그녀의 손을 주시했다.

 

 “……?”

 

 베아트리체는 다시 올라오지 않는 세드릭의 시선에 이상함을 느끼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리체님. 추워요?”

 

 세드릭의 눈동자와 목소리에 걱정이 담겨있어 베아트리체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조금 추운 것 같군.”

 

 그 말에 세드릭이 다가와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너무 차가워요, 리체님. 갑자기 비를 맞아서 그런건 가요?”

 

 세드릭은 혹시 감기에 걸렸나 싶어 급히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래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자 눈빛으로 양해를 구한 뒤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주었다.

 

 “고마워, 릭.”

 

 베아트리체는 잠시 세드릭의 품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계속 의아했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세드릭. 오늘이 몇 년 몇 월이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세드릭은 성실하게 답했다.

 

 “제국력 1265년 6월 2일이잖아요.”

 “…아.”

 

 과거야!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방금 심장이 찔려 죽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 17살의 과거로 돌아오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베아트리체는 혼란에 빠진 눈으로 앞뒤 정황을 추측해봤다.

 

 ‘내가 죽기 전에 잠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진짜 과거로 돌아온 건가?’

 

 잠깐 꿈을 꾸고 있다면 이 시간도 금방 끝날 것이다.

 

 ‘남자와의 그 행위도? 아니, 그건 꿈이었던 것 같은데….’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안고 있는 세드릭의 심장 뛰는 소리에 맞춰 가만히 숫자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열하나, 열둘, 열셋….

 숫자가 어느새 제 나이를 넘어섰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세드릭의 심장 뛰는 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는 게 유일한 변화였다.

 베아트리체는 뒤이어 세드릭의 머리칼을 만져보았다.

 조금 전에 느낀 빗방울처럼, 생생한 촉감이 느껴졌다. 움찔 놀라는 세드릭의 반응도 너무나 생생했다.

 

 ‘이건 절대 꿈이 아니야!’

 

 남은 결론은 진짜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

 

 ‘그게 말이 되는 것인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믿기 힘든데, 아예 과거로 회귀했다니. 너무 황당하지 않나.

 

 ‘혹시 그 단검에 회귀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건가? 그게 아니면 도저히 말이 안 되는데….’

 

 그러다 문득, 대륙 곳곳에 신의 은총이 깃든 보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어릴 때 어머니와 스승님이 해준 이야기였다.

 그 중 솔라리스 제국에는 세 가지 신물이 전해져 온다고 했다.

 첫 번째는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후계자만 사용할 수 있는 반지.

 두 번째는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후계자가 없을 때를 대비해, 황제의 증표로 삼은 목걸이

 마지막은 선황 때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단검 형태의 신물이었다.

 

 ‘만약 그 단검이 신물이 맞다면… 그 힘으로 내가 회귀한 거라면, 선황 때 사라진 신물이 어떻게 프레드릭의 손에 있는 거지? 그리고 프레드릭은 왜 그 신물이 황가 핏줄의 마나를 약하게 만든다고 오해한 거지?’

 

 생각할수록 의문만 늘었다.

 하지만 현시점에선 더 이상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프레드릭을 잡아 족치려 해도 이미 과거로 돌아와버린 상황. 그가 언제 단검을 입수할지도 모르지 않나.

 그리고 죽음에서 벗어나 과거로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도 축복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면 되지 않을까.

 

 ‘일단 현 상황이 내가 알던 과거와 똑같은지 그것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겠군.’

 

 갑작스러운 회귀에 놀랐지만, 어느새 마음을 진정시킨 베아트리체는 세드릭을 살며시 밀어냈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세드릭이 아쉬운 눈빛으로 물었다.

 

 “고맙군. 덕분에 진정이 된 것 같아.”

 “제가 도움되었다니 영광입니다, 황녀 전하.”

 

 과장된 몸짓으로 예의를 차리는 세드릭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인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등돌려 방 안쪽을 가리켰다.

 

 “잠깐 같이 들어갈 테냐?”

 

 그 말에 세드릭이 움찔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그녀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만 이성이 그를 막아섰다.

 

 “왜? 싫은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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