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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를 죽이고 싶습니다.
작가 : 지비냥
작품등록일 : 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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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작성일 : 20-09-29     조회 : 277     추천 : 1     분량 : 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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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난스런 그녀의 말에 세드릭은 툴툴거리며 대꾸했다.

 “약혼자도 있는 분께서 외간남자를 함부로 방에 들이시려 하다니요.”

 약혼자.

 그 단어를 듣자마자 베아트리체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의 기세가 매서워지자 세드릭이 눈에 띠게 당황했다.

 “제, 제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나요?”

 안절부절못하는 세드릭을 보고 베아트리체는 속으로 또 한 번 웃었다.

 ‘그래, 세드릭은 이런 사람이었지.’

 자신에게 닿고 싶어 가벼운 접촉을 시도하지만, 정작 귀찮아하면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풀이 죽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세드릭이 귀여운 동생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암흑길드, 그것도 정보길드의 수장이 표정 하나 관리를 못 하면 어떡하나.”

 베아트리체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나무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세드릭의 키가 상당히 컸기에 최대한 손을 뻗어야 그의 머리에 간신히 닿을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의 손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세드릭은 무릎을 살짝 굽히며 말했다.

 “...리체님 앞에서만 이러는 거예요. 다른 곳에선 안 그런다고요.”

 조금 삐딱한 말투였지만 베아트리체의 손길에 만족했는지 약간 올라가 있던 세드릭의 눈꼬리가 사르륵 내려갔다.

 “그렇담 다행이고. 아무튼 내 동생 같은 너를 초대하겠다는데 누가 흉을 볼 수 있겠느냐.”

 “…그래도 진짜 동생은 아니잖아요.”

 세드릭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베아트리체의 손을 살짝 내려놓았다.

 사실 세드릭은 그녀가 자신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동생 취급만 받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리체님 옆에 있는 프레드릭 그놈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하지만 그녀의 약혼자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지만 리체님이 믿고 계시니까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난 꼭 부마의 자리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뭐….’

 그저 그녀의 옆에 있을 수 있다면 후궁 자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세드릭이었다.

 ‘하지만 후궁이라도 애정을 독차지할 순 있거든. 나처럼 생각하는 놈들이 무척 많겠지만 말이야….’

 세드릭은 베아트리체 주변을 맴도는 이들이 생각나 더욱 조바심이 났다.

 “저도 남자예요. 리체님.”

 “누가 남자가 아니라고 했느냐.”

 “그럼 왜 항상 어린애 대하듯 하세요!”

 세드릭이 입을 삐죽이며 말하니 생각보다 더 귀엽게 느껴져 베아트리체는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네 투정부리는 모습을 보니 귀여워서 그랬다.”

 “투정이라뇨! 이건 어디까지나…!”

 “되었다. 일단 들어와라. 비밀리에 할 말이 있으니.”

 얼굴을 붉히며 항변하려던 세드릭은 이내 한숨을 쉬며 베아트리체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자리에 앉은 베아트리체는 맞은편에 앉아 신기한 듯 방 이곳저곳을 훔쳐보는 세드릭에게 차를 건네며 물었다.

 “민트차 밖에 없는데 괜찮느냐?”

 “리체님이 평소에 마시는 차인가요?”

 “그냥… 요즘 자주 마시는 차 중 하나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방금 회귀한 나이, 그러니까 17살 무렵부터 상쾌하고 시원한 향이 마음에 들어 자주 마셨던 차였다.

 “그럼 마실래요.”

 “그래.”

 베아트리체는 마법으로 주전자의 물을 따뜻하게 데운 다음 찻잎을 넣으며 할 말을 골랐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얼마나 오만한 판단이었는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눈앞에 있는 세드릭을 암흑길드의 길드장으로 만든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니 프레드릭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갈 때 세드릭의 정보망을 활용했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을거다.

 하지만 배우자가 될 이의 뒷조사를 명한다는 게 왠지 꺼려져서 차일피일 미루고 말았다. 그 결과 죽을 때까지 프레드릭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슨 짓을 꾀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안일함이 최악의 파국으로 돌아왔다.

 ‘이젠 전과 달라져야 해.’

 그 출발점이 바로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다.

 이후 제국 전체를 휩쓴 전염병과 마수 출몰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야한다.

 ‘그리고 내 일에 관해서도….’

 베아트리체는 먼저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뒤 별거 아니라는 듯 물었다.

 “저번에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지?”

 “지도와 용병길드를 만드는 거 말씀이세요?”

 “그래.”

 “용병길드는 지금 저희 길드와 병합해서 키워나가는 중입니다. 아직 용병 인원이 부족해서 다른 나라까지 손을 대긴 어려운 상태지만 좀 괜찮은 놈들이 들어와서 얼추 갖춰진 모양새에요. 지도는 지금 다른 왕국까지 만들고 있는 상태이지만….”

 “상태이지만?”

 “정령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도 대륙 자체가 너무 넓다보니 좀 힘드네요. 시간이 더 필요해요. 지금 저희 제국은 마무리 단계지만 울프 대공저 문제도 그렇고 숨겨진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확실히 과거에 맡긴 일이 맞았다.

 “그래. 수고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얘기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제 자신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베아트리체는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숨겨진 곳을 찾아내는 것과 지도를 만드는 일에 대한 조사는 지금보다 더 은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더 은밀하게요?”

 “그래. 나는 곧 아무도 모르게 황궁을 나가 잠적할 예정이거든.”

 “…궁에서 나가신다고요? 이렇게 갑자기요?”

 “그래. 그러니까 방금 말한 일외에도 프레드릭과 그의 친모에 대해 한번 파고 들어봐.”

 “...네? 그 사람의 친모는 이미 죽은 거 아니었어요?”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프레드릭이 우연히 친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아, 참. 테러시아 황비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알겠습니다. 근데 갑자기 왜 궁에서 나가시려고 하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테러시아 황비의 눈도 피할 겸,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대비할 겸.”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요? 무슨 일인데요?”

 세드릭이 의아해했지만, 베아트리체는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그건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지. 일단 방금 말한 것들을 최대한 은밀하게 조사해봐. 특히 프레드릭과 테러시아 황비가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테러시아 황비는 그렇다 쳐도…. 프레드릭…님까지요?”

 여태 베아트리체가 약혼자에 대한 뒷조사를 명한 적은 없었기에 세드릭이 혼란스러운 듯 눈을 껌뻑였다.

 “그래, 프레드릭까지. 그리고 경고 하나 하지. 앞으로 내 앞에선 프레드릭 그 새끼에게 님자를 붙이지 마.”

 “...네?”

 “그 새끼와 빠른 시일 내에 파혼할 거거든. 그러니까 방금 말한대로 그들에 대해 아주 사소한 거라도 최대한 긁어모아봐.”

 “네!”

 갑자기 변한 베아트리체의 태도가 궁금했지만, 프레드릭과 끝낸다는 말에 세드릭은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아, 참 빨리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의 신뢰성이 더욱 중요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믿으마. 사흘 안에 궁을 나갈 예정이니, 그때까지 쓸 만한 정보를 모을 수 있겠지?”

 “그럼요, 누구 명령인데요.”

 세드릭은 베아트리체가 따라준 차를 한 입에 털어 넣은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체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그래, 수고해.”

 “네, 그럼.”

 세드릭이 떠나고, 그의 빈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을 때였다.

 “윽!”

 갑자기 심장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묵직한 무언가가 심장을 내려 찍는 듯한 고통이었다. 뒤이어 피가 빠르게 식어가자 베아트리체는 덜컥 겁이 났다.

 ‘왜 갑자기…!’

 혹시 회귀의 부작용일까.

 이대로 기절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베아트리체는 억지로 침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시녀에게 들키면 소란만 벌어져.’

 곧 궁에서 빠져나갈 계획인데 아픈 걸 들키면 지켜보는 눈만 늘어날 뿐이다.

 베아트리체는 이를 악물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평소 시녀들에게 자신이 자고 있을 땐 절대 건들지 말라 명해두었기에, 이대로 누워있으면 함부로 깨우지 않을 것이다.

 

 

 ***

 

 

 베아트리체는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삐-하는 이명이 들렸다. 동시에 환청처럼 어릴 때 자주 듣던 음성이 들려왔다.

 [황녀님은 제일 높은 곳에 오를 분입니다. 그러니 의심하고 또 의심하십시오.]

 [전하,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의심하십시오. 전하 곁에 있는 사람은 그 누가 되었건 의심하세요.]

 [저는 우리 전하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황자마마랑 황녀마마를 낳으시면 꼭 유모인 저에게 맡겨주세요!]

 어릴 때 유난히 따랐던 유모와 스승의 목소리였다.

 [피닉스님을 꼭 찾아가 보셔야 합니다.]

 [피닉스님이 우리 황녀전하를 선택하지 않은 건 아직 전하를 보지 못해서 그래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전하이신데!]

 [아무도 몰래 찾아가셔야 합니다. 들키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

 

 베아트리체가 7살쯤 되었을 때 스승은 그녀가 피닉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걸 인정할 수 없어 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뭐가요, 스승님?”

 “황녀님이 선택을 받지 못하다니…. 최근 들어 악질적인 소문이 떠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소문때문에 아델리아도 걱정이 많습니다.”

 아델리아는 베아트리체의 유모 이름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부인이기도 했다.

 “...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소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지금 바로 잡으셔야지요. 그저 기다리기만 하시면 안 됩니다. 황궁에서 순하고 착하기만 하면 이용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 될 뿐입니다.”

 베아트리체의 스승은 꽤 신랄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그런 스승이 좋았다.

 그게 진심어린 조언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스승은 아는 것도 많았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베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지리, 문화, 역사 등 후계자가 받아야 하는 교육 전반을 깊이 있게 가르쳐 주었다.

 특히 그녀가 테러시아 황비에게 손찌검을 당했을 때 스승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탄했다.

 “왜! 왜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

 “도와달라 말하지 왜 참으십니까! 왜 그리 참기만 하세요? 왜!”

 그녀는 스승이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테러시아 황비에게 손찌검을 당한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매번 사람들 모르게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했었다.

 처음엔 말로 괴롭혔지만, 점점 강도가 심해져 잘 보이지 않는 곳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져버린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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