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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완미
작품등록일 : 20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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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팀을 망치러 온 자
작성일 : 20-09-29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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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 무대를 망치려는 녀석이 있어요. 이 미친놈을 막아야 해요.”

 

 인범은 이렇게 외치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음악이 시작된 순간부터 복잡한 동선과 초단위로 빼곡히 들어찬 춤동작을 수행하느라 말을 꺼낼 새가 없었다.

 

 그런데 평가를 망치겠다고 공언한 서정은 막상 음악이 시작되자 가장 열정적으로 무대에 임했다.

 

 전주와 함께 시작되는 초반.

 

 가장 춤을 잘 추며 날렵한 진오가 퍼포먼스의 중심을 잡는다. 그 뒤를 이어 서정이 노래를 시작하며 표정과 눈빛으로 좌중의 이목을 휘어잡았다.

 

 그는 자신의 파트가 끝나고 센터에서 사이드로 벗어난 뒤에도 노래에 맞춰 표정과 제스처를 바꿔가며 춤을 춘다. 그래서인지 기술적인 면에서 진오와 욱영의 춤이 더 뛰어남에도 서정의 춤에 눈길이 더 갔다.

 

 팀내에서 무대 장악력이 가장 뛰어난 듯 싶었다.

 

 ‘저 자식. 평가를 망쳐 놓겠다더니 장난으로 한 말이었나?’

 

 인범은 서정이 실없는 소리로 한 것이 아닐까. 저를 놀리기 위해서 말이다. 정말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 인범은 그가 뭔 짓을 할지 더 걱정하지 않고 춤과 노래에 몰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간주가 끝나고 2절이 시작될 때 문제가 터졌다.

 

 2절이 시작되면 인범이 노래를 한 후에 욱영의 랩파트가 이어진다. 이때 센터에서 노래를 부르던 인범과 욱영과 앞뒤로 자리를 바꾸게 된다.

 

 인범이 노래를 마치고 욱영과 자리를 바꾸기 위해 돌아서는 서정이 치고 나와 센터를 차지한다. 제 멋대로 안무를 바꾼 것이다.

 

 다른 멤버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누구도 춤과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욱영은 서정의 뒤편에 서서 랩을 하였다. 그러자 서정도 욱영의 랩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노래를 말이다.

 

 

 지나쳐/ 흘러간 시간 속에/ 남겨진 발자국

 (멈춰버린 세상 속에 버려진 외톨이 )

 

 사라져/ 무심한 한숨 끝에/ 잊혀진 바랜꿈

 (희망은 아득한 구름 너머로 가버리고)

 

 서정이 그림자처럼 욱영의 랩에 노래를 덧씌워 불렀다. 그것을 듣고 있던 욱영은 노래의 정체가 무엇인지 곧 알아차렸다.

 

 그 노래였다. 중학교 때 그를 놀림감이 되게 만든 그 노래였다.

 

 서정은 대화를 하듯 욱영에 랩 맞춰 노래를 덧입힌다. 높낮이 없이 직선적이고 딱딱하던 욱영의 랩핑이 한결 부드럽고 편안하게 들린다. 랩을 하던 욱영 본인도 흥이 오른 냥 고개를 까딱이며 박자를 타더니, 어느 부분에 이르자 서정이 시작한 이상한 노래를 함께 불렀다.

 

 “시련을 견뎌낸 무지개. 찬란히 빛날 미래에 그려질 나의 운명이여. 워우워~”

 

 두 사람이 부르는 유치하면서도 비장한 가사가 「팔라딘」의 원래 곡과 겹치면서 기이한 느낌의 노래를 만들어 낸다.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아귀가 맞고, 엉망인 것 같으면서도 흥미롭다.

 

 흡사 리믹스로 편곡된 노래 같았다.

 

 곡의 흐름이 바뀌었다. 노래의 중심이 서정과 욱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흐름을 눈치 챈 다온은 연습했던 대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원래는 여기서 그가 내지르는 파워풀한 고음이 곡을 절정으로 이끌어야 했지만, 그랬다가는 괴로운 소리가 날 듯했다.

 

 다온은 영민하게 애드립으로 대처했다. 그는 가사를 부르지 않고 음으로 소리를 내어 서정과 욱영의 노래에 잔잔히 화음을 넣어주었다. 그러다가 음을 조금씩 끌어올려 시원한 고음으로 곡의 절정을 만들어 낸다.

 

 곡의 흐름이 바뀌었으니 안무와 동선에도 변화가 필요했다. 진오는 짧은 시간 안에 지금 상황에 추기 적절한 안무를 생각해 주었다. 그는 인범을 보며 어떤 신호를 주었다.

 

 “인범이 형. 우왕좌왕.”

 

 우왕좌왕?

 

 인범은 예전에 진오와 듀엣으로 연습했던 춤을 떠올렸다. 훈련 과제였는데 거울을 보듯 마주 서서 똑같은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습할 적에 서로의 손과 발이 반대 방향이라는 사실이 헷갈려서 자주 우왕좌왕하고는 했다.

 

 그걸 보고 진오가 우왕좌왕 춤이라 불렀던 것이 기억난다.

 

 ‘그 춤을 춘 것이 언제람. 오래 되서 기억이 날려나?’

 

 꽤 오래 전에 춘 것이라 가물가물한데 진오가 추는 첫 동작을 보자마자, 인범의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그 둘은 노래를 부르는 세 사람을 중앙에 두고 사이드로 빠져 우왕좌왕 춤을 췄다.

 

 “이……이게 뭐야?”

 

 저건 「팔라딘」의 춤과 노래가 아니었다. 연습 때와는 완전히 다른 그들의 퍼포먼스에 양지형은 얼이 빠졌다.

 

 음악이 끝나고 노래를 마친 멤버들이 숨을 몰아쉴 때까지도 그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꼭 몰래 카메라를 당한 기분이었다.

 

 무대가 끝난 연습실 안에는 폭풍전야 같은 정적이 휘돌았다. 임기응변으로 무대를 마치기는 했으나 멤버들도 그제야 현실이 자각되었다.

 

 ‘망했다. 이 평가는 망했다.’

 

 평가를 하기 위해 자리한 회사 관계자들 대다수가 어리둥절해했다. 누군가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 팀장마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그들을 황망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손희영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초반, 등받이에 딱 기대어 지루하게 무대를 보던 그녀는 서정이 욱영의 랩파트 때, 난입해 노래를 바꿔 부르자 의자에 기대었던 등을 떼었다. 손가락 사이에 낀 볼펜을 까닥거리며 그들의 노래에 맞춰 박자를 타기도 했다.

 

 지금도 그녀의 눈은 서정과 욱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미있네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가 다소 긍정적이다. 그 말에 양지형과 「팔라딘」 멤버들은 살짝 기대를 가졌다. 어쩌면 데뷔평가에 통과할지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손희영의 말은 그 기대를 산산이 무너트려 버렸다.

 

 “무대 자체는 엉망이었던 건 알지요? 조잡하고 유치했어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멤버들 대다수가 죄를 지은 것 마냥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서정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 대표와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그 쪽이 양 팀장님이 새로 데려온 멤버 맞죠? 이름이……. 김서정?”

 

 “네. 맞습니다.”

 

 “얼굴은 왜 그래요? 꼭 맞은 것 같은데.”

 

 “싸우다 맞았습니다.”

 

 “싸워요? 누구랑?”

 

 서정이 욱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걸 꼭 말해야만 했니! 아연실색한 양지형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멋대로 노래를 바꿔 부른 것이야 그렇다 쳐도, 굳이 싸웠다는 사실을 밝혀 팀워크가 엉망이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역시나 손희영이 그 점을 파고든다.

 

 “아! 그래서 중반부부터 엉망이었구나. 서정 군이 갑자기 다른 노래를 이유는 싸움의 연장이었던 거군요.”

 

 “아니요. 회사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노래를 불렀어요.”

 

 “알려주고 싶은 것이요? 뭘 알려주고 싶다는 거죠?”

 

 “최욱영이 노래를 꽤 잘 한다는 사실이요.”

 

 서정이 다시 한 번 욱영을 가리켰다.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네요. 그러니까 본인과 싸운 욱영 군의 노래실력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이 중요한 데뷔평가를 깽판 쳤다는 건가요? 그냥 말로 해도 되잖아요 .”

 

 “말해도 못 알아들으시던 걸요. 이 녀석 랩이 개판인데도, 노래를 시키지 않고 계속 랩을 고집하시기에 묵혀두기 아까운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그랬어요.”

 

 “이거 다른 멤버들도 동조한 일인가요?”

 

 “아니요. 제 마음대로 저지른 일입니다. 저 친구들은 제가 이런 짓을 벌일 줄 몰랐어요. 저들은 이 무대를 진짜 깽판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제게 맞춰줬을 뿐이에요.”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사관계자들은 서정이 치기어린 이유로 데뷔평가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똘기가 넘치네.”

 

 “미친 거지. 이 자리가 학예회 자리도 아니고. 장난하는 거야, 뭐야?”

 

 “데뷔하기 싫은 모양이야. 다른 애들은 무슨 죄람.”

 

 “저 외모에, 저 실력을 가지고도 퇴출당한 이유가 있다니까.”

 

 다들 서정을 비판한다. 양지형조차도 서정의 행동을 용납하기가 힘들어 다른 이들의 험담에도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손희영은 그런 서정과 「팔라딘」 멤버들에게 더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서정 군의 말은 무대 후반부 퍼포먼스는 멤버들끼리 즉흥적으로 짜내어 맞춘 것이라는 이야기인가요?”

 

 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만족스러운지 손희영의 입꼬리가 비쭉 올라간다. 그녀는 그림의 구도를 재듯 손바닥을 돌려가며 멤버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여러분들 다 같이 팀으로 데뷔하고 싶기는 해요?”

 

 멤버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데 서정이 대뜸 나서 말했다.

 

 “저는 그러고 싶은데 이 친구들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뭐 저런 뻔뻔한 놈이 다 있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태연자약한 서정의 모습에 다들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헌데, 다온이 슬그머니 손을 든다.

 

 “아……. 저도 다 함께 데뷔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저도.”

 

 다온이 손을 들자 진오도 따라 든다. 진오가 “형은 왜 손 안 들어?” 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인범도 마지못해 손을 든다.

 

 욱영이만 마지막까지 손을 들지 않는다.

 

 “최욱영 군? 욱영 군은 왜 가만히 있어요? 지금 멤버들과 함께 데뷔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잘 모르겠다는 건가요?”

 

 “제가 이 팀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욱영이 말끝을 흐렸다. 서정이 머리카락을 넘기며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손희영은 그 둘의 관계를 유심히 바라보다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평가는 끝났어요. 회의하고 나중에 결과 알려줄 게요.”

 

 그녀를 필두로 회사 관계자들이 하나 둘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야단이든 격려든 한 마디 할 법한 양 팀장도 무거운 한숨만 내쉬고 연습실을 나갔다.

 

 “야! 바라던 대로 평가 망쳐서 속 시원하냐?”

 

 인범이 서정을 밀치며 말했다. 분위기가 바로 험악해지자 진오가 인범을 말렸다.

 

 “그만해. 형. 여기서 또 싸우다 대표님이나 회사 관계자 분들에게 정말 안 좋은 인상 남긴다. 방금 전까지 한 팀으로 데뷔하고 싶다 말해놓고 돌아서서 바로 싸우기야.”

 

 인범은 말리는 진오의 손을 뿌리치고 서정의 멱살을 그러잡았다.

 

 “우리 콩가루인 거 이미 소문 다 났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너 말해봐. 오늘 데뷔평가 망치면 「팔라딘」 프로젝트 완전히 끝인 거 알고 있었지? 어차피 무산될 팀이니까, 말로만 한 팀으로 데뷔하고 싶다 뭐다 한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야? 무산될 팀이라니?”

 

 격분한 인범의 입에서 이 평가가 마지막 기회였다는 사실이 튀어나오자,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진오와 다온 그리고 서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달은 인범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또 다른 의미의 정적이 멤버들 사이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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