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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완미
작품등록일 : 20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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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나 좀 재미있었어
작성일 : 20-09-30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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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욱영이 이야기가 끝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사안이었고 두 사람의 얽혀버린 관계를 제 3자가 단언하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서정은 중간에 끼어들어 욱영의 이야기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법 한데, 그 또한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김서정, 네가 전에 로비에서 팀장님에게 우리 회사에 들어올 이유가 생겼다고 말한 건 욱영이를 의미한 거야? 혹시 복수하고 싶었어? 너를 계단에서 민 것 때문에?”

 

 제 나름대로 둘의 상황을 정리한 인범이 물었다. 그러자 서정의 눈과 입술이 삐뚜름해진다.

 

 “생각하는 수준이 딱 너답다. 복수가 하고 싶었으면 우리 누나가 학폭위 연다고 난리를 폈을 때 말리지 않았을 거야.”

 

 계단에서 구른 서정은 팔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머리나 척추 같은 위험한 곳을 다치지는 않았다. 서정이 구르는 것을 본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욱영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처럼 말을 했고 사안은 조금 심각하게 흘러갔다.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애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욱영의 어머니가 서정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와 사과를 전했다. 그러나 서정의 누나는 그 사과가 별로 달갑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 동생을 계단에서 민 당사자가 찾아와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친구를 다치게 했으면 사과를 해야죠.”

 

 “물론이죠. 그래야 하는데 저도 지금 우리 애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잘못을 저지르고 무서웠는지 집에도 오지 않고 전화기도 꺼놨어요. 남편이 수소문해서 찾으러 다니고는 있는데……. 찾는 대로 사과하러 데리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욱영이의 어머니만 찾아와 수술비를 전하고 갔을 뿐 욱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욱영이라는 애 정말 못됐다. 어떻게 자기가 다치게 해놓고 와서 사과도 하지 않니? 내일 퇴원인데 말이야. 나 학폭위 열어달라고 할 거야. 도저히 용서가 안 돼.”

 

 서정의 누나는 화를 풀지 못하고 어떻게든 욱영을 벌주고 싶어 했다. 서정이 그런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내가 착한 것 같아?”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욱영이가 그냥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렸다고 생각해? 누나 동생이 누군가를 화나게 하고 상처 입혔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

 

 서정은 누나에게 욱영과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욱영이가 아이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고, 자신이 어떻게 그를 기만하고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는지를 말이다.

 

 길길이 화를 냈던 누나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나만 확인하자. 너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으면서 왜 욱영이를 따라다녔던 거야? 그 애가 노래 부르던 영상은 애들한테 보여준 이유는 뭐고? 혹시 정말로 욱영이를 놀리려고 그런 거야?”

 

 “절대 아니야. 난 처음 오디션 장에서 욱영이 노래하는 걸 봤을 때부터 사람들이 왜 그 녀석의 진가를 몰라주는지 이해가 안 됐어. 방송사 오디션에 나가라고 한 것도 욱영이는 뽑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거기서 찍힌 춤이 방송을 타고, 애들이 그걸로 욱영이를 놀릴 줄은 몰랐어. 그래서 얘가 이렇게 노래를 잘 한다고 것을 보여주려고 내가 갖고 있던 연습영상을 보여준 거야. 그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난 지금도 걔들이 왜 욱영이를 비웃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속상한 마음에 서정은 코끝이 시큰거렸다. 제 앞에서 눈물을 쏟았던 욱영이의 얼굴을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방법이 서툴고 오해를 살만했네. 나중에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사과해. 그러면 다시 좋은 친구가 될 거야.”

 

 누나는 서정을 위로하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그러나 대화를 나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욱영이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연락처를 바꾼 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다.

 

 “처음에는 화가 났어. 어떻게 내 해명 한 번 듣지 않고,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종적을 감추나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오기가 생겼지. 최욱영, 이 자식이 가수가 되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지금도 어느 기획사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볼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이쪽에 몸담고 있으면 언젠가는 마주치겠지 싶었다. 그래서 방송사 오디션 때 명함 받았던 회사 중 한 곳의 연습생으로 들어가게 되었지.”

 

 “우와. 그렇게 해서 기어코 우리 회사까지 와서 욱영이 형을 만난 거네. 대단하다.”

 

 “대단하긴. 집착이 쩌는 거지. 오해를 풀고 싶었으면 욱영이 만났을 때, 사실대로 말하면 됐잖아. 왜 시비를 걸고 데뷔평가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말 할 기회나 줬어? 같이 연습하고 한 숙소에 살면서도 모르는 척 투명인간 취급한 게 누군데?”

 

 “으흠.”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욱영이 멋쩍게 헛기침을 하였다.

 

 서정은 그에게 있어 잊고 싶은 과거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래서 한 팀으로 같이 연습을 하면서도 그를 모른 척했다. 그리고 서정이 보내온 동영상을 본 뒤에야 욱영은 그에 대해 갖고 있던 깊은 불신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뭐 원래 자존심이 강한 애라 오해를 푸는 것이 쉽지 않을 건 예상했어. 그런데 이 자식이 진짜 자존심을 부려야 할 때는 가만히 있더라고. 노래를 부르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회사가 랩을 맡으란다고 더듬거리면서 랩을 하는 거야. 랩은 랩대로, 춤은 춤대로 절름거리면서 팀의 구멍이 되어 가는데 다들 코앞에 닥친 평가가 급하니까 괜찮아, 괜찮아 하기만 하고.”

 

 서정은 자신이 삐딱하게 굴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던 이들은 조금 켕기기는 했다.

 

 욱영의 어설픈 랩이 거슬리고, 줄어버린 분량과 바뀐 포지션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불만을 꺼내거나 의견을 제시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중요한 건 데뷔평가였으니까.

 

 “전에 회사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거기서는 지금까지 준비했던 대로 무대를 하면 절대 통과 안 시켜줬어. 특색도 없고, 재미도 없거든. 설사 통과한다 해도 문제야. 그건 회사가 정해준 지금의 롤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판을 한 번 뒤집어 보고 싶었어. 급하게 재결성되는 바람에 회사에서 알아보지 못한 장점을 말이야. 이번 평가로 팀 프로젝트의 향방이 결정되는 줄 알았으면 신중하게 다시 생각했겠지만.”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서정이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저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무책임하기는 한데 사실은 말이야. 나…….”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욱영이 멤버들의 눈치를 보면서 뜸을 들인다.

 

 “왜? 뭔데?”

 

 “나 좀 재미있었어. 데뷔와 팀의 명운이 걸린 평가라는 걸 잊을 만큼 몰입해서 노래하고 춤췄던 같아. 서정이가 판을 벌이고 내가 거기에 동조하면서 다들 당황스러웠을 텐데,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우리한테 노래와 춤을 맞춰줬잖아. 나 그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몰라. 이런 말을 하기에는 늦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우리 썩 괜찮은 팀 같더라고.”

 

 모든 이들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파닥거리며 치를 떨기 시작했다.

 

 “방금 건 되게 오글거리는 했다. 그치?”

 

 “누가 아니래. 최욱영 입에서 저런 말이 다 나오다니.”

 

 “그런데 재미있었다는 건 인정. 나 솔직히 인범이 형이 우왕좌왕 춤을 기억해낸 것에 감동했잖아.”

 

 “그건 나도 신기하더라. 킥킥킥. 그런데 다온이 형이 애드립으로 화음 넣은 것도 죽이지 않았냐? 형 혹시 그 노래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니. 오늘 처음 들어봤어. 그래도 내가 명색이 실용음악과 학생인데, 듣고 바로 화음을 맞추는 순발력은 있지.”

 

 “아~ 데뷔평가 통과했으면 좋겠다. 기회만 다시 주어지면 우리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작했던 뒤풀이는 어느 샌가 무용담을 자랑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원망과 불신으로 기억될 뻔했던 그들의 데뷔평가 무대가 웃고 떠들 추억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의자 팔걸이에 대고 괴었던 고개가 뚝 떨어지자, 양지형은 자신이 잠깐 졸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놀란 미어캣 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두워진 회의실에는 그와 손희영 두 사람만이 앉아 있었다. 회의실 책상 위에는 양지형이 준비해온 「팔라딘」 멤버들에 관한 서류와 빈 커피 잔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데뷔평가가 끝난 다음날.

 

 양지형은 멤버별로 분류한 영상을 손희영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오전부터 내내 회의실에 앉아 그것만 돌려보았다.

 

 오디션 때 찍은 것, 방송에 나왔던 것, 월말 평가 때 찍은 것들을 보고 또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녀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간간히 양지형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저 혼자 영상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있을 때마다 멤버들의 정보가 담긴 서류에 의견을 첨언해 넣었다.

 

 ‘대체 뭘 적고 있는 거지? 쯧. 뭘 적든 애들 영상을 저렇게 열심히 볼 정도면 「팔라딘」 계획을 엎지는 않을 거야. 관심이 없으면 뭐 하러 이런 시간 낭비를 하겠어.’

 

 점심도 걸러 가며 손희영이 멤버들의 면면을 살피는데 공을 들이자, 양지형은 「팔라딘」의 데뷔가 머지않았다는 확신 같은 것이 들었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났을까?

 

 손희영이 회의실 모니터를 끄고,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한다.

 

 기다리느라 다소 지루해 의자에 삐딱하게 늘어져 있던 양지형도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는 손희영의 입에서 「팔라딘」의 향방에 대해 어떤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양 팀장님 자료 조사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그건 기대했던 말이 아니다. 달랑 그 말만 남기고 손희영이 서류를 챙겨 회의실을 나가려고 하자, 양지형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다급히 그녀를 불렀다.

 

 “대표님. 「팔라딘」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과 알려주지 않으실 겁니까? 애들이 어제부터 잠도 못자고 데뷔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아, 그거요? 「팔라딘」 프로젝트는 중단할 거예요. 그걸 다시 진행하는 일은 없어요.”

 

 양지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데뷔평가를 치르고 피곤한 상태에서 애들 영상 고르고 분류해 서류 작업까지 하느라 한숨도 못 잤건만 중단이라니.

 

 억울하고 화가 난 양지형이 볼멘소리로 따져 물었다.

 

 “아니. 「팔라딘」 프로젝트 중단할 거였으면 대체 멤버들 자료는 왜 가져오라 하시고, 하루 종일 여기 처박혀서 이건 왜 보신 겁니까?”

 

 “그거야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니까요.”

 

 “새 프로젝트요?”

 

 “네. 새 프로젝트요. 앞으로 엄청 바빠질 거예요.”

 

 손희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회의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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