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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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진실. 따위.
작성일 : 20-10-03     조회 : 495     추천 : 0     분량 : 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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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도착했을 때, 사건은 이미 터져버렸어.

 그는 차 안에서 울고 있는 소녀를 봤지.

 친동생처럼 아꼈던 그녀는 쇼크에 빠진 멍한 눈으로 한곳을 가리켰어.

 그는 본능적으로 패들을 치켜들고 언덕을 향해 달렸지.

 

 골프장 한가운데 비대한 놈을 뒤쫓는 또 한 여자가 보였어.

 하이힐을 신은 채 맹렬하게 뒤쫓는 여자.

 

 패들을 든 그는 가열지게 여자를 따라잡았어.

 그리고 순식간에 앞서가는 놈에게 달려들었지.

 

 그는 패들로 놈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어.

 컥!컥! 비대한 놈은 숨을 몰아쉬며 그의 얼굴을 붙잡았어.

 그 순간 그는 놈과 눈이 마주쳤지.

 

 세상의 지옥이 그의 안으로 들어왔어.

 끔찍했지,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죽어가는 자의 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그는 순간 얼어붙었고 주저앉았어.

 사랑하는 여자를 수십 년간 학대한 놈을 도무지 제 손으로 죽일 수가 없었어.

 그래서 돌아서버리고 말았지.

 그 순간 퍽 소리가 들렸어.

 뒤돌아본 그는 경악했어.

 하이힐의 여자가 골프채로 놈의 머리를 박살냈으니까.』

 

 

 “후후훗. 소설을 쓰시는 군요, 형사님은.”

 

 기태는, 자신을 비웃는 용식을 물끄러미 봤다.

 

 “때로는 소설이 진실을 담고 있지. 빠진 부분이 있다면 자네가 완성해주겠나?”

 

 용식이 날카롭게 기태를 쏘아봤다.

 

 “진실 그 따위 뭐가 되는 난 상관없어요. 진실은 죽어 마땅한 돈종률을 내 손으로 아주 잘 죽였다는 겁니다.”

 

 기태는 끙, 신음했다.

 용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살해당한 돈종률은 죗값을 받아 마땅한 자였다.

 세상의 존경과 추앙을 받을 것이 아니라.

 

 

  ***

 

 기이했다, 최혜영의 태도는.

 마치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한 것처럼 아주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최혜영에게 상수가 물었다.

 

 “이대로 진짜... 가는 겁니까?”

 

 최혜영이 우아하게 상수를 응시했다.

 

 “가도 좋다고 하셨잖아요, 방금 나한테.”

 “하지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여기서 나가지 않겠다고 하셨죠."

 "... ..."

 "게다가 최혜영 씨는 본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셨죠.”

 “아니라면서요 이제?”

 

 상수는 어이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이 여자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답을 준 적이 없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뭐죠?"

 "부군께서 부동산과 주식을 모두 다 당신에게 양도하셨더군요, 이주 전에.”

 “그런데요?”

 “갑자기 왜 전 재산을 당신에게 준 겁니까?”

 

 최혜영이 상수에게 한발 다가왔다.

 순간 상수는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이틀이나 조사를 받았음에도 그녀에게는 변함없이 꽃향이 났다.

 

 “형사님. 48시간은 이미 지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그럼 취조는 그만하시죠.”

 

 상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죽은 돈 의원을 협박했습니까? 지난 20여 년간 있었던 상습적 폭행과 학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신 건가요?”

 “이런 이런."

 

 최헤영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사님. 질문이 아주 무례하군요.”

 “그날 밤 부군을 죽였습니까? 살해도구인 골프채는 왜 보란 듯이 신발장 앞에 세워둔 거죠? 문용식과는 무슨 관계입니까?”

 

 최혜영은 상처입은 사슴처럼 상수에게 말했다.

 

 “박상수 형사님. 이렇게까지 저를 모욕하셔야 하나요? 대체 제가 뭘 잘못했죠?저는 자백을 했지만 당신들이 그걸 뒤집었어요. 골프채는 살해도구가 아니니까 그 자리에 있었겠죠. 당신들이 말했잖아요. 용식이가 패들로 내 남편을 죽였다고. 그리고... 정말이지 역겨운 그 마지막 질문에 대해 답을 드리죠.”

 

 최혜영이 갑자기 발끝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상수의 가슴에 두 손을 올리더니 상수의 귓가에 아주 작게 속삭였다.

 

 “사랑하는 사이예요.”

 

 상수는 경악했다.

 최혜영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

 

 

 『보육원에서 자란 문 모씨는 평소에도 언행이 거칠고 시비가 잦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차시비로 앙심을 품은 문 모씨는 그날 밤 돈 의원의 별장에까지 침입해 돈 의원을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경찰은 범인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 받고...

 유가족과 미망인에 대한 부당하고 강압적인 수사에 대해 진심으로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명한 경찰은 이와 관련해 사건을 담당해 온 변 기태 경위를 보위해직하기로 하였으며...』

 

 박 검사의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Tv를 보다 놀란 박 검사가 문가를 봤다.

 상수가 씩씩대며 들어섰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수작입니까!”

 

 박 검사가 싸늘하게 상수를 흘겼다.

 

 “수작이라니. 일개 말단 경위 따위가 어서 감히 수작을 나불거려.”

 

 상수가 박 검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개 말단 경위가, 기자들 다 불러 모으고, 제대로 기자회견 한번 해볼까요?”

 “그래? 용기 있음 해봐. 직장도 잃고 동생도 병원에서 쫓겨나게 될 테니까.”

 

 상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이라도 이 자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 주먹 잘 접어놔. 안 그러면 박 상수 너도 보위해직 시켜버릴 테니까.”

 “검사 따위가 경찰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뭐? 검사 따위? 이 바닥에서 십년 굴러온 베테랑 검사한테 따위? 너 지금 당장 모가지 날려줄 테니 내 사무실에서 나가!”

 

 상수가 피나게 입술을 깨물며 으르렁거렸다.

 

 “그 전에 사건보고서 은폐하고 덮어버린 당신 모가지부터 날려주지!”

 “보고서 은폐? 팩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쓰레기 서류 말이야?”

 “거기 나온 게 팩트야!”

 “웃기고 자빠졌네. 네 맘대로 작성한 게 팩트야? 문용식이 범행 일체를 자백한 부분은 왜 쏙 빼놔!”

 “문용식 그 자식 자백은 거짓말이니까!”

 “무슨 근거로!”

 “갑자기 부인하던 놈이, 돌변해서 거짓말을 한 거라구!”

 “갑자기 왜! 그 이유가 뭔데!”

 “그, 그건...”

 

 상수는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문용식이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건지, 그도 의문이었다.

 박 검사가 몰아쳤다.

 

 “대체 네들이 말하는 증거는 어딨지? 언제부터 직감으로 수사했어! 너도 변기태 그 자식한테 홀랑 넘어간 거야?”

 “살해도구인 최혜영이 놓고 간 골프채! 언덕위에서 발견된 그 여자 구두 자국! 온통 증거 천지야!”

 “후훗.”

 

 박 검사가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3차 부검결과를 아직 안봤군.”

 “3차라니? 대체 무슨?”

 

 놀란 상수에게 박 검사가 서류 한 장을 쓱 내밀었다.

 

 “오늘 국과수에서 올라온 최종 부검결과야. 읽어봐. 뭐라고 써있는지. 두 눈 달고 있으면 똑바로 보라고 이 멍청아.”

 

 상수가 서류를 봤다.

 

 ‘피살자 돈종률 의원의 최종 사인은 패들로 인한 질식사로...! 뭐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박 검사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다 읽었으면 나가! 가서 네들이 싸놓은 똥이나 수습하라구!”

 

 

  ***

 

 

 15년간 일해 온 사무실.

 자신의 물건이라고는 조그만 종이 상자 한 박스가 전부였다.

 

 기태는 서글프게 박스를 가슴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반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뭐가 어찌됐든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기태가 서글프게 웃었다.

 

 자신의 동기인 오 반장.

 그는 정해진 절차처럼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았고 팀장이 되었다.

 때로 기태와 격렬하게 부딪치며 논쟁을 했지만 유일한 동기였다.

 

 “오삼아.”

 

 기태가 애칭으로 그를 불렀다.

 오징어불고기를 좋아해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우리 상수. 잘 부탁한다.”

 “그놈의 상수 걱정은. 네 앞길이나 걱정해 이 모지라.”

 “나야 대충 굴러먹은 놈이라 이력이 붙었지만, 상수는...”

 

 기태가 말끝을 흐렸다.

 뭔가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

 

 “상수는... 딸린 동생이 있잖냐. 나처럼 튕켜나가지 않게, 오삼이 네가 지켜줘. 네 유일한 모지리 동기의 마지막 부탁이다.”

 “아이 짜식이. 사람 눈물 나게 마지막이라는 소리는 왜 해. 그러기에 성질 좀 죽이고 살자니까, 왜 박 검은 건드려가지고.”

 

 기태가 다시 짠하게 미소를 지었다.

 

 후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변똥, 똥장이라 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기태가 눈인사를 하고 빈 책상을 보았다.

 상수의 자리였다.

 

 ‘그래. 앞으로도 쭈욱 서로 보지 말자, 범생. 나란 놈은 싹 머릿속에서 지우고 앞만 보고 걸어가라 범생. 그렇게 쭈욱 살다보면...?’

 

 기태가 고개를 돌렸다.

 상수와 막내형사가 다급하게 들어선 것이다.

 

 “선배! 잠시만요!”

 

 상수가 급하게 기태의 팔을 잡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막내도 흥분된 표정으로 기태 앞에 섰다.

 

 “뭐야 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상수가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최혜영이 최근에 박사학위를 땄어요.”

 “으응? 박사 학위?”

 

 막내가 나섰다.

 

 “예. 한국대학 심리학과 박사학위를 땄더라구요.”

 “근데?”

 “전공이 뭔지 아세요?”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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