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학자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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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20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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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커덕

 아파트 현관문이 열렸다.

 중년 사내와 여자가 서 있었다. 중년 여자는 울고 있었다.

 “여기 오면 안 된다는 걸 알 텐데.”

 중년 사내의 목소리였다.

 “내도 그기를 알고 있는데, 그래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딸래미 얼굴이라도 함 볼라꼬.”

 손재영이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 손재영이 자네가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렇게 나타나면 오히려 잘 살고 있는 애가 혼란스러워 할 걸세. 나는 아예 문을 안 열어주려고 했는데, 우리 와이프가 하도 사정을 해서 열어 준거야.”

 “고맙습니더.”

 맥이 풀린 것 같은 손재영이었다.

 중년의 여자가 말했다.

 “일단 들어와서 얘기하세요.”

 손재영은 한 발 앞으로 들어왔다.

 철컥 띠리리

 “아니. 여기서 그만 나가주게.”

 그러나 이미 현관문은 닫힌 뒤였다.

 손재영은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함 보는 것도 안 됩니꺼?”

 “그 애를 놔두게. 이제 와서 애 앞길을 망치려는 건가? 보아하니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거 같은데. 그리고 자네가 그 애에게 뭔 짐이 되려는 건지 참.”

 손재영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영이 그 애는 지금 집에 없어. 지방 출장 가서 당분간 만나지도 못할 테고 말이야. 그만 포기하고 다시 예전처럼 사라져 주게.”

 “...”

 중년 여자는 어느새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럼 사진이라도 한 장 줄 수 있십니꺼? 그것도 안 되는깁니꺼?”

 “...”

 중년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여자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는 사진 하나를 가지고 나와 손재영에게 건넸다.

 손재영은 부들부들 떨리는 거친 손으로 그 사진을 받았다.

 사진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가 떨어졌다.

 “흠 흐음. 됐지? 이제 그만 나가주게.”

 “고맙십니더. 참말로. 이렇게... 이. 이쁘게... 잘 키워줘서 참말로 고맙십니데이.”

 중년의 여자가 훌쩍거리다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얼마나 예쁘게 컸는지 몰라요. 똑똑해서 지금은 방송국에서...”

 “에헤이 그만 해. 별 쓸데없는 소릴.”

 중년의 사내가 여자가 하는 말을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안사람 말대로 밝고 예쁘고 구김 없이 잘 자란 아이야. 회사도 좋은 데 들어갔고, 우리가 선자리도 알아보고 있어,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직 총각한테 시집도 잘 보낼 거야. 정말 우리 딸처럼 애지중지 예쁘게 잘 키웠어.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그냥 사라져주게 우리 딸래미 아비로서 하는 부탁일세.”

 “...”

 손재영은 소리 죽여 흐느껴 울다가 고개를 크게 두세 번 끄덕거린 뒤, 뒤로 돌아섰다. 중년의 여자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손재영은 오렌지 주스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이었다.

 “됐네. 이 사람아. 그냥 가게나.”

 “지가 행님 볼 면목이 없어가꼬... 그래도 영숙이 유일한 오빤데... 이렇게라도 죄를... 갚아야지만.”

 “그만 사라지는 게 도와주는 거야. 자네를 알게 되면...”

 그 중년 사내는 직접 현관문을 열었다. 손재영이 내미는 봉투는 바라보지도 않고, 손재영의 등을 밀었다.

 손재영은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자마자 밖으로 뛰어나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얼굴을 마구 때렸다. 파동이니 입자니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그냥 햇살은 따뜻했다.

 이제 복잡한 생각은 싫었다.

 그냥 눈물만 났다.

 “행복하면 됐다. 행복하면.”

 손재영은 손으로 사진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창가에서 손재영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년의 사내가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너무 모진 건 아니에요. 당신.”

 중년 여자의 목소리였다.

 “당신 하나뿐인 딸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러고 싶어?”

 중년 사내의 말에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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