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수학자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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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작성일 : 20-10-20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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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손재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은 도둑이 든 것처럼 집기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서랍을 모두 열려있었고, 옷은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다. 손재영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이가 어렸던 탓이라 상황파악도 잘 되지 않았다.

 덜컹

 재영의 엄마였다. 그녀의 젖은 눈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녀는 재영을 보자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어무이 와요? 와그라는데요?”

 손재영이 달려가 그녀의 다리를 부여잡고 붉어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아무 것도 아이다. 재영아. 우리 이사 가자.”

 어린 나이였지만 가난을 지독하게 경험한 그였다.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사는 뭔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어렸을 때 아빠가 배 타러 갔을 때도 엄마는 아빠가 없는 집이 너무 무서워 이사를 했다고 하였다. 그 때도 무작정 돈만 챙겨들고 집을 나왔다고 하였었다.

 끼익

 “재영이 어매요.”

 옆집에 사는 만수 엄마였다.

 “우짤낀데. 영민이 할매가 곗돈 들고 날랐때매. 재영이 어매는 돈 많이 넣었나? 아유 내사 그런 거 조금밖에 안했었는데. 재영이 어매는 그거 전셋돈 낼거라고 안했었나?”

 “...”

 엄마는 무릎을 굽혀 어린 손재영을 꼭 끌어안았다. 재영은 비록 어린애였지만 많은 의지가 되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과도 같은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어린 재영도 자신의 엄마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참 내사 여서 이런 말 할건 아닌데. 재영 어매가 빌려간 돈 갚아줄 수는 있는기제. 호호호호 내가 별 말을 다하네. 혹시나 싶어서 고마 그런거니께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재영 엄마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배에서부터 짜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갚을낍니더. 내가 전셋돈 빼서라도 갚을끼니까예 걱정하지 마이소.”

 “호호호호 아이다. 내사 재영 어매 믿는다. 내사 믿지만 혹시나 다른 아지매들이 돈 갚으라고 해꼬지 할까봐서 그라는 거다 아이가. 내가 동네 아지매들한테는 잘 말해 놓을끼니까 걱정하지 말그래이.”

 재영은 어린 나이였지만 알고 있었다. 만수 엄마도 가난했다. 돈이 아쉬운 사람들만 사는 동네였다. 재영 엄마는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남에게 돈을 빌리면서까지 계를 들어 돈을 모았다. 하지만 계주가 돈을 들고 도망가면서 이제 모든 게 다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이사갔다 아이가.”

 “예."

 밀양 할아버지는 마루 대들보에 기대어 앉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민서희나 안경식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다.

 리어카를 끌고 도망치듯 이사를 갔었다. 젊고 청아한 모습의 재영모가 보였다. 행색을 볼품없었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결연한 눈빛이 보였다. 재영의 손을 잡고 시장 한쪽 귀퉁이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었다. 재영모는 평소 생선을 즐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생계를 위해 생선을 손질하였다. 생선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 따로 담아주었다. 지금은 모두 버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 내장마저도 사람들은 모두 싸갔었다.

 밀양 할아버지는 아직도 시장 한 구석에서 생선을 손질하는 재영모가 보이는 듯 했다.

 “저.”

 “안다. 가마 있어봐라. 지금 얘기할끼다.”

 “예. 그럼 물이라도 한 잔 떠 드릴까요?”

 “마 됐다. 재영이 아베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같이 일하던 내가 재영이 아베처럼 챙기주야 했는데 내도 살기 힘들어가 이사할 때 겨우 챙기줏다 아이가.”

 밀양 할아버지는 지그시 감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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