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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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직시>
작성일 : 20-10-21     조회 : 361     추천 : 0     분량 : 3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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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이곳 오피스텔의 입주민들은 대부분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직행한다. 그런 관계로, 정작 보안요원이 입주민을 로비에서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오피스텔 1층 로비 현관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안나를 보며 보안요원이 적잖이 당황하며 뛰어나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보안요원을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고개만 끄덕인 안나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의 액정을 터치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액정에는 반응이 없었다.

 

 “아, 제가 대신 찍어 드리겠습니다.”

 

 보안요원은 보안카드를 액정에 갖다 대 활성화한 뒤 꼭대기층을 눌렀다. 그제야 엘리베이터가 위잉거리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보안카드를 집에 두고 나오셨나 봐요.”

 

 안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평소 보안카드를 어디다뒀더라? 따로 들고 다니진 않았던 거 같은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 즈음, 겨우 생각이 났다. 안나는 보안카드를 핸드폰에 꽂고 다녔다. 어차피 핸드폰이야 늘 가지고 다니는 거니 깜빡하고 두고 나올 일이 없을 거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는 것을. 도현의 집에 두고 나왔는지 도현의 병실에 두고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거기가 거기였다. 필요하다면 도현이 알아서 챙길 것이다.

 

 마침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안나는 발을 질질 끌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보안요원이 문득 질문을 건넸다.

 

 “전에 다치신 발은 괜찮으세요?”

 

 발? 내가 발을 다친 적이 있던가?

 

 “예... 아, 예...”

 “다행이네요. 그 때 피가 너무 많이 나서 놀랐거든요.”

 “네...”

 “그럼 올라가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보안요원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문 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안나를 덩그러니 실은 채 꼭대기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끝에 대해선 늘 생각했었다.

 그날 이후로 단 하나의 목표에만 초점을 맞춰온 삶이었다. 그 목표가 달성되면 자연스럽게 이 삶도 종지부를 찍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강경식을 잡아 감옥에 처넣고, 몇 해 동안이나 괴롭히고, 심지어 그의 죽음까지 봤다. 목표로 삼았던 것들은 다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 뒤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생각했던 마음의 평안은 결코 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쉽게 달성되어버린 목표 때문인지 마음은 더욱 크게 요동치고 말았다. 그 파도를 잠재우고 싶었다. 그래서 애써 끝을 인정하지 않은 채, 꾸역꾸역 이 삶을 이어왔다.

 

 마치, 죽었어야 할 안나가 죽지 못하고 그 알맹이를 바꿔 꾸역꾸역 삶을 이어온 것처럼.

 

 

 

 

 “웬 거냐?”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보며 성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꽤나 당혹해하는 성혁의 모습을 보며 유진은 피식 웃었다.

 

 “저도 도구라는 걸 써보려고요.”

 “그래서... 이것들을 샀다고?”

 “요즘 별 걸 다 팔더라고요.”

 

 유진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한 세트의 타로 카드였다. 대체 무슨 콘셉트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그로테스크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진 게, 시중에 파는 평범한 카드는 아닌 듯 했다.

 그 외에도 탁자 위에는 주사위부터 시작해서 오방기, 산가지에 한 대접의 쌀도 놓여 있었다.

 

 “이 쌀은 뭐니?”

 “보니까 이 쌀로 점 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쌀알을 한 번 잡았을 때 여덟 알이 잡히면 좋은 거, 두 알 겨우 잡히면 나쁜 거.”

 “이 동전은?”

 “아, 동전점이라고 앞면이 양, 뒷면이 음이라서 그거 막 던져서 보는 거래요. 주역인가 하는데 있는 무슨 궤라던데.”

 “궤를 읽을 수는 있고?”

 “어... 그래서 책도 샀어요.”

 

 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옆에 둔 책들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주역에서부터 시작해서 만세력, 토정비결, 타로 해설서, 점성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오컬트적인 서적이 가득 쌓여 있었다.

 

 “기본 천자문도 모르는 녀석이 이 책들은 어떻게 읽으려고?”

 “뭐, 언젠간 읽겠죠.”

 

 천연덕스러운 유진의 대꾸에 성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유진이 하는 꼴을 잠자코 바라봤다.

 

 타로점의 첫 번째 스텝을 카드를 섞는 것이었다. 유진은 탁자에 깐 검은 벨벳 천 위에 카드를 흐트러 놓고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카드를 섞었다. 그런 뒤, 가장자리를 툭툭 치며 카드를 모은 뒤, 두 손으로 양 옆을 쥐어 카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폼이 영 어설펐다. 카드가 차곡차곡 정리되기는커녕,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바닥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어떤 것은 앞면, 어떤 것은 뒷면. 이리저리 뒤죽박죽되어버린 탓에 결국 한 장 한 장 손으로 집어 정리해야만 했다.

 

 성혁의 인내심이 결국 바닥난 것이 이쯤이었다.

 

 “뭐라도 있을 줄 알고 왔더니, 이런 장난질 하려고 한 거니?”

 “에이, 장난질이라뇨. 엄연히 자기계발이라고요.”

 “계발 같은 소리 한다.”

 

 하지만 성혁의 핀잔에도 유진은 꿋꿋했다.

 

 “저도 나름 프로라면 프론데 거기에 걸맞은 기술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죠. 언제까지나 감으로 때려잡아 예언이랍시고 날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자, 뽑아보세요.”

 

 유진이 어느새 다 정리한 카드를 길게 펼쳤다.

 

 “뭘로 뽑을 건데?”

 “뭘로 뽑다니요?”

 “주제가 있을 거 아냐.”

 “아...”

 

 머리를 긁적이는 폼을 보니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그냥 오늘의 운세 정도로 할까요?”

 “오늘이 두 시간 남은 이 시점에?”

 “그럼 내일의 운세요.”

 

 차라리 대충 때려 맞춘 예언이 낫다고 여겨질 만큼 어설픈 유진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성혁은 마지못해 카드 하나를 집었다. 거꾸로 나온 여황제 카드였다.

 

 “음 이게... 교황은 아니고... 황제? 아, 여황제구나.”

 

 카드의 정체를 확인한 유진은 옆의 타로해설서를 들어 페이지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뭐야. 아직 카드 의미도 모르는 거야?”

 “오늘 막 샀다고요. 이거 다 외우려면 시간 꽤 걸려요.”

 

 성혁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카드를 덮었다. 더 이상 어린애 장단에 맞춰줄 시간이 없었다.

 

 “그만하지.”

 “어, 이제 페이지 찾았는데.”

 “그만. 그쯤 해.”

 

 엄하게 정색하는 성혁을 보며 유진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똑바로 앉아 성혁을 바라봤다.

 

 “뭘 만질 필요는 없겠지. 이미 어머니 얼굴은 알잖니?”

 “......”

 “결론만 말하렴. 그래서 어떻게 되겠니?”

 

 성혁의 눈빛은 싸늘하면서도 위압적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수년간을 정계에서 버텨낸 노련한 인물을 유진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유진 자신도 모르게 주눅 들었고, 유진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굳게 닫힌 유진의 입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성혁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렴. 다음에 보자.”

 

 뒤돌아서 나가려던 찰나였다.

 

 “사실 몰라요.”

 “응?”

 

 예상치 못했던 유진의 말에 성혁이 뒤를 돌아봤다.

 

 “그거 능력이요. 사라졌어요.”

 “... 사라지다니...?”

 

 의아해하는 성혁을 보며 유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예언 능력이요. 갑자기 사라지고 이제 없어요.”

 “......”

 “그래서 샀어요. 이것들. 어떻게든 밥은 먹고 살아야죠.”

 

 유진의 폭탄 선언에 당황하던 성혁은 다시금 팔짱을 끼고 섰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듯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별 상관 없잖아요.”

 “뭐?”

 

 카드 정리를 끝낸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차피 제 예언 같은 거. 필요 없으시잖아요.”

 “......”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거나, 저지르고 싶은 일 있으면 그냥 저지르세요.”

 “......”

 “더 이상 제가 등 안 떠밀어드려도... 충분히 가능하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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