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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크라우더의 회고록
작가 : HONs
작품등록일 : 20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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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그때의 기억(6)
작성일 : 20-11-12     조회 : 407     추천 : 0     분량 : 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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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부터 윌리엄 로스펠의 얼굴엔 불쾌함과 불편함이 가득 차 있었다.

 

 걸음걸이도 성난 듯이 매우 화가 나 있었고, 무엇보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듯 보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제이 크라우더 때문이었다.

 

 아직도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상상하면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아무리 천민이라 해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아이에게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바튼의 사람의 인권을 제대로 짓밟는 행동도 문제였지만, 그걸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던 가족에게 더 화가 난다.

 

 이것이 진정 귀족의 민낯이라는 건가.

 

 ‘만약 내가 에드 로스펠의 환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 아이를 그냥 되돌려 보냈더라면…….’

 

 그 아이에겐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차라리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당장이라도 그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였는데.

 

 막상 이렇게 생각을 하자니 미치도록 후회가 된다.

 

 제이 크라우더를 어떻게든 저택에 남게 하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치료 때문이었다.

 

 블래크는 다른 몬스터보다 크기는 작아도 치악력이 강하고 이빨이 날카롭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잘못 물리기라도 하는 날엔 그 부위가 절단될 수도 있는데, 최악의 경우 놈들의 이빨에 있는 세균에 감염되기라도 하면…….

 

 ‘그것만큼은 막아야해……!’

 

 제이 크라우더는 아직 성장이 덜 된 아이다.

 

 아주 운이 좋게 팔이 절단 되진 않았지만, 블래키의 세균에 감염될 경우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큰 고열에 시달리게 된다.

 

 최악의 경우 사망까지 이룰 수도 있어서 그걸 막기 위해선 어떻게든 저택에 남겨야 되는 상황.

 

 그런데 그런 아이를 창고에 놔뒀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처음에 만났을 때 응급처치로 약을 먹여 열을 내리긴 했지만, 언제 도질지 모르는 노릇.

 

 아버님의 명령으로 그나마 작은 방에서 지내게 할 거 같았는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 너무나 크나큰 실수였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어제 그 아이를 데려간 메이드에게 창고에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얼마나 얼척이 없었는지.

 

 “제이 크……!”

 

 윌리엄은 서둘러 창고 쪽으로 향했고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는 거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자 윌리엄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찾아 나섰다.

 

 “제이!! 제이 크라우더!!!!”

 

 애타게 소리를 질러 봐도 잡동사니를 치워 숨어 있을 곳을 찾아봐도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문득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뇌리에 스치자 윌리엄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 메이드들이나 집사들에게 물었다.

 

 혹시 제이 크라우더를 봤냐고.

 

 “아뇨, 저는 못 봤습니다.”

 “도련님이 데려오신 그 아이요? 글쎄요, 못 봤는데.”

 “그런 아이를 데려오셨었어요? 죄송해요, 어제 쉬는 날이어서 전 잘 모릅니다.”

 

 창고엔 창문이 없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 아니, 있다 해도 3층 높이의 크기라 나갈 수도 없겠지.

 

 그렇다면 새벽에 몰래 빠져나갔다는 뜻이 되는데…….

 

 아무래도 어제 그 식사자리에서 겪었던 일들을 여기에 지내는 동안 계속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몰래 새벽에 나간 거 같다.

 

 “으아…… 으아아아아아아!!!!!!!!!!”

 

 자신 같아도 그런 취급을 받으면 하루도 못 버티고 뛰쳐나가고 남았을 거고, 그 아이의 심정이 더욱 이해가 되기 때문에 더욱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윌리엄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고 옆에 있던 창문을 주먹으로 쾅! 치곤 어디론가 달려갔다.

 

 쨍그랑 소리가 저택 안에 울렸고 깨진 유리 파편이 바닥에 흩뜨려졌다.

 ***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을 구해준 아이인데 그렇게까지 했을 필요는…….”

 “녀석은 이번 기회에 좀 깨달아봐야 해. 무턱대고 뭔가를 데려오면 안 된다는 것을.”

 

 알프레드는 두 손을 공손이 모으고 약간 마음에 걸린다는 듯 말했는데, 로이 로스펠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그래도 다친 몸으로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저는 그 아이가 결코 나쁜 의도로 그랬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아내인 레일라 로스펠도 자책하는 듯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는데.

 

 “여보,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엔…… 아니, 이 나라에 우리 재산을 탐내는 자들이 여전히 수두룩하다는 걸 염두 해 둬야 해.”

 “하지만…….”

 

 로스펠가는 이 아르델 왕국에서 제일가는 귀족 집안이기 때문에 이곳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여태까지 수많은 귀족들이 얼마나 이 가문에 손을 뻗으려고 했는지.

 

 아직 태어 난지 1개월조차 되지 않은 윌리엄에게 여기저기서 약혼 신청을 해온 걸 떠오르면 아직도 어이가 없다.

 

 게다가 6살이 되고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반 아이들 전부가 자기에게 달려들어 친하게 지내자고 말한 것까지.

 

 윌리엄의 착한 심정을 어떻게든 이용해 이 로스펠 가와 인연을 만들기 위한 더러운 인간들의 수법이었다.

 

 당시엔 그걸 모르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걸로 착각했다가 진실을 알고 난 후엔 그 충격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다행히 바튼과 그레이시아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윌리엄도 이제 곧 성인이라 별 걱정이 되질 않지만.

 

 혹시나 하는 일은 언젠가 일어나기 마련.

 

 아무리 천민 아이라 해도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로이 로스펠은 아까 읽은 아침 신문을 잠깐 곁눈질로 쳐다봤을 때, 갑자기 문이 쾅!! 하고 세게 열렸다.

 

 “아버지!!”

 

 이것에 깜짝 놀란 셋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지금까지 본적이 없을 정도로 흥분한 윌리엄이 서 있었다.

 

 “…… 왜 그러냐, 아침부터 얼굴이 새빨갛게 불어 올랐구나. 야식이라도 먹었니.”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이제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제이 크라우더가 새벽에 저택에서 나갔다고요!!”

 

 이 말을 들은 알프레드와 레일라 로스펠의 얼굴이 바로 심각해졌는데, 유독 로이 로스펠만 침착한 얼굴을 짖고 있었다.

 

 마치 어느 정도 예상한 듯이 말이다.

 

 “그래? 그렇구나. 뭐,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정도의 차별을 받았는데 하루이상 버티는 게 이상한 거지.”

 “아버지, 설마 저에게 어젯밤 그런 제안을 거신 게 크라우더가 밤에 나가도록 계략을 짠 거였습니까?!”

 

 점점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윌리엄의 언성이 높아지자,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 레일라가 일어나 아들을 서둘러 진정시켰다.

 

 “윌리엄, 그게 아니라 사실은…….”

 “사실이고 뭐고! 이제 어쩌실 겁니까, 만약 블래크의 세균이 몸에 감염이라도 되면 죽을 수도 있다고요!!!!”

 

 성인 남성도 겨우 버티는 고열을 어린 나이에 발현되면 일주일은커녕 불과 며칠 만에 죽을 수도 있는 노릇.

 

 자신의 생명의 은인을 너무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어머니의 말을 잘라 소리친 거였는데.

 

 “뭐, 그리 소리치지 마라. 그럼, 난 이만 일이 바빠서.”

 “지금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어떻게 그런……!”

 “너는 일단 이 신문이나 읽고 진정이나 좀 해라.”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냐고 내지르려다가, 로이 로스펠이 책상 위에 있던 신문을 잡고 건네주면서 문장을 끊어버렸다.

 

 “그럼 난 이만.”

 

 그러곤 저런 말을 남긴 채 밖으로 나가자, 윌리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다가 건네준 신문을 바닥에 내팽개치니 어느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

 

 로이 로스펠은 저택에서 나와 입에 시가 하나를 물고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침 들려야 하는 곳도 있고 요새 시민들은 어떻게 지내나 귀족인 걸 숨기고 시장가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바쁘게 지나다니는 거리 한 가운데에 유독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왼팔에 깁스를 하고 머리는 헝클어진 모습으로 두 손을 뻗으며 먹을 걸 구걸하고 있었다.

 

 “저기…… 제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워워, 저리 꺼져라.”

 “…… 죄송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구걸은 거절당했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러 군대를 돌아다니며 먹을 걸 요구했다.

 

 “어우, 이 더러운 아이는 뭐야! 저리 안 가니!”

 “우리도 빠듯하단다. 미안하지만 저리 가거라.”

 “꼬맹아,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가 없단다. 다음에 부모님 데리고 오렴.”

 그러다 되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과 매정한 행동들이었다.

 

 제이 크라우더는 결국 먹을 걸 포기하고 고개를 푹 떨군 채 길거리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

 

 로이 로스펠은 그걸 보곤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면서 몰래 뒤를 들키지 않도록 따라다녔다.

 

 저 아이가 어디서 밤을 지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가는 방향은 집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는 거다.

 

 즉,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건데.

 

 친척이 있는 곳도 모르는 건지, 그저 멍하니 주변을 되돌아다닐 뿐이었다.

 

 아마 어제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 배가 고파 이런 시장가를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빙고였다.

 

 “흐음.”

 

 로이 로스펠은 망설였다.

 

 지금 저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금 저런 처지를 보니 뭔가를 노리고 윌리엄을 구해준 건 아닌 거 같았다.

 

 아니, 처음부터 뭔가를 노렸다면 애초에 새벽에 저택에서 나가지도 않았을 테지.

 

 심지어 저렇게 혼자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제 한 짓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는데.

 

 현재 저 아이의 눈엔 자신의 모습은 그저 더러운 귀족에 지나지 않을 거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제이 크라우더가 갑자기 뭔가를 보곤 걸음을 멈췄다.

 

 “?”

 

 뭐지? 하고 로이 로스펠은 시선을 따라가 봤는데, 어느 익숙해 보이는 뚱뚱한 아이가 패거리를 몰고 어느 여자애를 잡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거였다.

 

 “저건 분명…… 에버릭 가문의 아들이었나?”

 

 에버릭 가문은 아르델 왕국에서 꽤 번창 한 사업을 하고 있고 로스펠가와 신분이 두터운 귀족 가문인데.

 

 다른 애들은 모르겠지만 저 통통한 남자 아이는 바튼의 친구이고 가끔 집에 놀러온 걸 본 적이 있다.

 

 “…….”

 

 그들은 이후 어느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여자애를 데려갔는데, 제이 크라우더는 그걸 보곤 곧바로 뒤따라갔다.

 

 ‘대체 어쩌려는 속셈이지?’

 

 방금까지만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그 장면을 보곤 얼굴을 번쩍 들어올렸다.

 

 뭔가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일을 직감했지만.

 

 로이 로스펠은 일단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따라가 봤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었다.

 

 귀족 아이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고, 그 앞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짓고 바닥에 넘어진 여자애가 있었는데.

 

 제이 크라우더는 이걸 잠깐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가 안으로 들어가더니 여자애 앞에 당당히 섰다.

 

 “설마…….”

 

 그냥 구경이라도 하려고 따라간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른 행동에 로이 로스펠은 침착함만 보여주던 표정이 어느새 놀라움으로 변화됐다.

 

 왜냐하면 저런 상태로 생전 모르는 여자애를 위해 선 행동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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