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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크라우더의 회고록
작가 : HONs
작품등록일 : 20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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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때의 기억(8)
작성일 : 20-11-14     조회 : 414     추천 : 0     분량 : 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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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거만하고 무시하는 듯이 쳐다보던 귀족 4명이 로이 로스펠의 말 하나로 꼬리를 내리곤 도망치듯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다른 귀족들에 비해 위엄이 남다르다는 건 확실히 실감이 났지만.

 

 내 눈엔 그저 천민을 가축보다 못한 취급하는 더러운 인간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 뭐 하시는 거예요! 저분이 누군지 모르시나요, 로스펠가의 당주 로이 로스펠이시잖아요!”

 “…… 저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요?”

 

 그때, 뒤에 있던 여자애가 저 사람을 아는 건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가 멀뚱히 서 있기만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서둘러 손을 잡아당겼다.

 

 알고 보니 나도 어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였는데.

 

 이걸 무시하고 내가 로이 로스펠을 똑바로 쳐다보자, 여자아이가 안절부절 못하다가 속삭이며 내뱉었다.

 

 “가, 간략하게 말해주자면 죽어가던 경제를 극적으로 살리신 분이고, 왕국 병사의 총 책임자이신 엄청난 분이시라고요!”

 “우리 로스펠 가문은 대대로 왕국의 병사는 물론이고 훈련이나 장비 등등을 전부 당주가 담당하기 때문이지.”

 

 여자아이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있다고 로이 로스펠이 대화에 끼어들면서 설명해줬다.

 

 “…….”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다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싶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 건지, 아니면 아까 그 애들에게 너무 맞아서 이성을 잃어버린 건지.

 

 눈을 똑바로 뜨며 여전히 로이 로스펠을 노려보는 내 모습에 여자아이는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계속 강하게 팔을 당겼다.

 

 그럼에도 내가 굳건하게 버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말을 걸어왔다.

 

 “천민 따위가 귀족인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좋은 배짱이구나. 어제 그 일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던?”

 “당신 같았다면 마음에 들겠어요?”

 

 세상에 그 누가 그런 취급 받는 걸 좋아하겠나.

 

 나는 어제 일만 생각하면 분노가 차올랐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참아내는 대신 대들 듯이 내뱉었다.

 

 “대체 왜 그러세요! 이 이상 그러다가 어떤 벌을 받을지……!”

 “됐다. 꼬맹아, 이미 늦었어.”

 

 여자아이의 눈엔 그저 내가 저 귀족인 로이 로스펠에게 아무 이유 없이 대드는 꼬맹이에 지나지 않을 거다.

 

 어찌 보면 상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서민이나 천민이 귀족에게 대들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명백한 위법이기 때문에 벌을 받을 수 있다.

 

 그녀 그것을 알고 어떻게든 피하게 만들기 위해 애원한 거였지만, 로이 로스펠은 손을 올리면서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너도 알다시피, 천민이 귀족에게 대드는 것 자체가 위법이다. 내 마음대로 너를 데려가 처벌을 내릴 권의가 나에게 있다는 거지.”

 “죽이고 싶다면 죽이세요, 어차피 저에겐 이제 갈 곳도 없으니까.”

 

 지금의 나에겐 돌아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차가운 도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용기조차 없고, 비록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길을 모른다.

 

 그야말로 희망이라곤 하나 없는 상황.

 

 나는 모든 걸 다 포기한 채 힘이 풀린 두 눈으로 노려보다가, 로이 로스펠은 작게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재미있구나. 어제 고개도 못 들던 아이에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어이, 꼬마. 여기 근처에 식당 같은 곳 있니.”

 “네…… 네? 저, 저요?”

 

 갑자기 나 말고 뒤에 있던 여자아이를 부르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다가 힘겹게 말했다.

 

 “으, 음…… 우리 어머니께서 식당을 하시긴 하는데.”

 “좋아, 그럼 그쪽으로 가자. 너도 따라와.”

 

 로이 로스펠은 그러더니 여자아이에게 안내하라고 말하곤 등을 돌려 골목길에서 나갔다.

 

 “……?”

 “……????”

 

 나는 순간 저 말을 잘못 들은 건 줄 알았다. 자기를 따라오라니, 무슨 속셈을 갖고 저러는 거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의심을 떨쳐내지 못하며 쉽게 발을 뜨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는데, 뒤에 있던 여자아이가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귀에 작게 속삭이곤 달려갔다.

 

 “가자.”

 “…….”

 

 그럼에도 내가 움직이질 않자,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손을 탁! 하고 잡곤 억지로 끌고 갔다.

 

 “빨리 와!”

 

 ***

 

 골목길을 나오고 거리를 몇 분 정도 걸어가다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도착했다.

 

 내 눈엔 뭔가 익숙한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아까 음식을 구걸하다가 퇴짜 맞은 장소 중 하나였다.

 

 “어, 엄마 저 왔어요.”

 “클로에 모렌츠 왜 이렇게 늦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여자애를 보곤 걱정했다며 혼내려고 했다가 내 얼굴은 못 알아보고 로이 로스펠의 얼굴을 보더니 바로 말이 끊어졌다.

 

 “자리는 어디를 앉으면 되지?”

 “아, 아무 대나 앉으면 됩니다…….”

 

 로이 로스펠은 이름이 클로에 모렌츠라고 하는 여자아이에게 묻곤 곧바로 창가 쪽에 있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식당 안을 주의 있게 둘러봤는데, 귀족의 눈엔 이곳은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누추하고 허름한 곳이겠지.

 

 나는 여전히 불신 가득한 표정을 짓고 멀뚱히 서 있었는데, 로이 로스펠은 그걸 보더니 앉으라며 고개를 까닥였다.

 

 “앉거라.”

 “…….”

 

 저 말을 들은 나는 이걸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멀뚱히 서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일단 앉기로 한다.

 

 그러자 가게 안에 이상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풍겼는데.

 

 귀족이 가게 안에 있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현재 가게 안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긴장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클로에 모렌츠는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곤 어머니가 있는 주방으로 도망치려고 하다가.

 

 “주문 안 받니?”

 “아, 아……! 네, 네……!! 뭐, 뭐뭐뭐 뭐로 드실 건가…… 요?”

 

 로이 로스펠이 어디 가냐고 물어보자, 이것에 화들짝 놀란 클로에 모렌츠는 크게 당황한 나머지 말을 심하게 버벅거렸다.

 

 “일단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거 아무거나 다 주렴. 가격이나 이런 건 상관없으니까.”

 “네…… 네……! 알겠습니다.”

 

 주문까지 받은 클로에는 다시 도망치듯 주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에게 절대 들리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어, 엄마 저, 맛있는 거 아무거나 다 달래! 그리고 절대 맛없게 만들면 안 돼, 만약 그랬다간 망할지도 몰라!”

 “그런 것보단 너는 어쩌다 저런 엄청난 분을 데리고 온 거야, 엄마 부담스럽게!!”

 “조…… 좀 일이 있었는데 어쩌다가 그리 됐어…….”

 

 그러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며 클레어 모렌츠가 애원하자 어머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하다가 식칼을 잡았다.

 

 “갑자기 내 인생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니…… 모렌츠 도와주겠니?”

 “응……!”

 

 맛이 없다면 혹여나 망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두 자녀의 일생일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요리가 시작됐다.

 

 “…… 그래서 저를 왜 이런 곳에 데려온 거죠?”

 

 그럴 때, 나는 여전히 로이 로스펠을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쳐다봤는데, 이 사람은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배도 안 고프나?”

 “…… 제가 아무것도 안 먹은 걸 알면서도 어제 썩은 빵을 주신 건가요?”

 

 어제 잠을 설치면서 생각이란 생각은 다 해봤다. 왜 로스펠 가의 인간들은 나에게 그런 썩은 빵을 줬는가에 대해.

 

 윌리엄의 말로는 맛있는 음식을 줄 거라 말했지만, 정작 돌아온 건 그런 쓰레기였으니.

 

 미천한 천민의 입에 귀족의 음식은 사치스럽다고 생각해 그런 것을 준 것일까.

 

 온갖 추측 속에서 나는 답을 찾기 위해 해매이다가 문뜩 어느 답안에 도달해버렸다.

 

 “나로선 너의 속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거든. 그래서 일부러 내가 셰프에게 썩은 빵을 주라고 시킨 거야.”

 

 역시나.

 

 윌리엄의 부탁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솔직히 처음엔 나에게 억지로 빵을 먹이려고 한 바튼의 짓이라 생각했지만, 문뜩 로이 로스펠이 한 행동에 떠올랐다.

 

 귀족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거냐고 말하다가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곤 말을 바꾸기도 했고.

 

 심지어 그 당시 윌리엄을 포함한 모두가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것도 전부 저 사람이 시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바튼이 그런 짓을 하자마자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야단을 쳤겠지.

 

 처음에 그가 소리를 치자 아버지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고.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제가 정말로 가문의 보상을 노리고 접근했을까봐?”

 “너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걸 노리고 우리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거든. 심지어 귀족들조차도 말이야.”

 

 가문의 주인으로써 이상한 사람과 엮이게 된다면 그것만큼 골치가 아픈 것도 없다며 로이 로스펠은 단호하게 덧붙였다.

 

 “…….”

 “그리고 바튼에 대한 일은 사과하지. 나도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문득 저 말을 듣곤 눈을 찌푸렸다.

 

 마치 바튼이 그렇게 나올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윌리엄은 옛날부터 성격이 여리고 단순했지. 버려진 고양이나 동물들을 보면 곧바로 저택에 데려오곤 했어. 뭐, 대부분 일주일도 못가고 다 사라져버렸지만 말이야.”

 

 갑자기 뜬금없이 윌리엄의 이야기가 나와서 뭐지? 했다가 로이 로스펠은 말을 이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주변에서 그를 이용하려 들었고, 그것에 지친 윌리엄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저택에서만 생활하게 됐지.”

 “…….”

 “심성은 착하지만 아직 마음이 너무 어려. 그렇기에 나는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녀석이 너를 데려온 거다.”

 “설마…….”

 

 저 말을 듣자마자 어처구니없는 추측이 뇌 속에 떠오르자, 이걸 눈치 챈 건지 로이 로스펠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너를 이용해 윌리엄의 현실의 잔혹성을 알려주기로 했지. 저택에 동물을 데려오는 건 모르겠지만 천민 아이를 데려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차이니까.”

 

 이걸 당사자 바로 앞에서 말하는 그의 말투엔 죄책감이라곤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저것은 나를 대놓고 동물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것과 똑같았기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로이 로스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덤덤한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걔도 이제 곧 성인이야, 이제 세계의 잔혹성을 알아야 하는 나이지. 무차별적인 차별을 함으로써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보여주고, 자기가 친절로 베푼 선행이 남에겐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되니까.”

 “…… 그런 것을 위해 저를 그렇게 취급하고 창고에 던져둔 거군요.”

 “너한텐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하겠지만, 착한 사람은 곧 이용당하기 마련이야. 게다가 걔는 아직 사는 세계가 짧고.”

 

 로이 로스펠은 손을 들어 커피 하나를 주문하곤 다시 근엄하게 말을 이었다.

 

 “이걸 알기 위해 일부러 바튼과 함께 윌리엄을 좀 교육시켰지만, 애석하게도 나쁜 영양이 바튼에게만 쏠리게 된 거야. 하지만 정작 윌리엄에겐 효과도 없었고.”

 

 대체 뭔 교육을 시켰는지 몰라도 분명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단 나는 그저 저 사람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분노가 치밀 뿐이었다.

 

 아들을 위한 마음은 이해는 갔어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걸까.

 

 나는 어떻게든 두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필사적으로 참아내고 있을 때 주문했던 커피와 음식을 클로에가 식탁 위에 올려놨다.

 

 “으, 음식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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