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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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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연합>
작성일 : 20-12-02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3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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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혁은 휴대폰을 집어 던지듯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이 할멈은 또 뭔 짓을 꾸미는 거야?”

 

 아무리 자신의 어머니라지만, 그렇다고 날 짜증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머니이기에 더 알 수 없고, 더 걸리적거리며, 더 귀찮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좋지 않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성혁에게 강 팀장이 물었다. 성혁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꽤 심각해 보이시던데요.”

 “그냥...”

 

 성혁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며 강 팀장은 트레이에 가져온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오전 10시에 의원실에서 회의 후, 저녁까지 컨퍼런스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거 꼭 끝까지 있어야 하나?”

 “언론 공개 컨퍼런스라 중간에 빠지시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하필 또 이렇게 꼬이네.”

 

 잠시 궁시렁거리던 성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컨퍼런스 끝나는 시간 맞춰서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 좀 예약해 놔. 보안 잘 되는 곳으로.”

 “네, 알겠습니다.”

 

 강 팀장이 트레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려던 때, 성혁이 다시 그를 붙잡았다.

 

 “잠깐.”

 “네?”

 “대화할 곳 예약해두는 거, 장소를 바꾸지.”

 “어디로 바꿀까요?”

 “Bz호텔 스카이 라운지로. 자리는 상관없어.”

 “너무 오픈된 곳 아닙니까?”

 “그러니까. 바로 예약해 둬.”

 

 

 

 “이거 손님 모셔놓고 혼자 오래 통화해서 어쩌나?”

 “아유~ 별말씀을요.”

 “그래서 아까 어디까지 말씀하셨더라?”

 

 호들갑을 떨며 방을 나오는 미순은 원식이 맡았다. 진짜 그러한 약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식은 화재보험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며 분위기를 잡아갔다. 그리고는 화재가 어떻게 났는지에서부터 돈 이야기까지 논점도 다양하게 질문을 던져대더니, 마지막으로 보험금 청구서류 작성까지 도와주는 걸로 조사를 끝냈다.

 

 “그럼 돈은 언제 나오는 거유?”

 “오늘 제가 서류 접수하면 내일 본사에 들어가서요, 늦어도 3~4일 안에 될 겁니다.”

 “아유, 가게 그렇게 홀라당 타버리고 이제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시고. 고마워서 어쩐대.”

 “에이, 이러라고 보험을 드는 거죠. 저희 회사는요, 다른 데랑은 달라요. 다른 데는 이런 일 있으면 막 돈 안 주려고 이거 따지고 저거 따지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이 무조건 다 드리거든요.”

 “내 말이 그 말이유. 전에도 교통사고 한 번 나서 병원 갔다가 보험금 타려는데, 내가 정말 드럽고 치사해서 때려치우려고 했다니까?”

 

 괜히 경력직이 아님을 증명하듯, 원식은 능수능란하게 넉살을 부려가며 대화의 마무리까지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화기애애하던지, 누가 보면 10년지기 찜질방 친구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 아가씨는 통 말이 없으시네? 이제 막 시작한 신입이신가?”

 “네?”

 

 문제는 수연이었다. 원식이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다 꺼내며 미순의 혼을 쏘옥 빼놓는 동안 적당히 끼어들며 미순의 허점이라도 파악해야 했건만,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굳은 표정으로 내내 있었던 것이다.

 

 “아유, 아주머니 귀신이시네.”

 

 당황한 원식이 대신 받아쳤다.

 

 “사실 우리 조사관님이 원래 저기 대학교에 계시던 분이거든요. 실력이 너무 좋으시다는 말 듣고 우리가 냉큼 스카웃 해 온 건데, 워낙에 애들만 가르치시다 보니까 이런 현장에 와서 사람들이랑 친한 척 하고 그런 걸 잘못하세요.”

 “아, 어쩐지 너무 굳어있다 했수.”

 “그래도 이 실력은 끝내주시는 분이거든요. 아주 매의 눈이야, 매의 눈.”

 

 진땀을 빼며 상황을 마무리한 원식이 수연의 팔뚝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였다.

 

 “아주머니. 저거 저 주시면 안 돼요?”

 “응? 저거라니?”

 

 미순과 원식이 수연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강경식의 유골함이 있었다.

 

 “엥? 저거 유골함?”

 “조사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실례 되게...”

 “아니면 파세요. 골동품점에서 사오셨다고 했나요? 가격 더 쳐 드릴게요.”

 

 난데없는 수연의 제안에 미순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떠올랐다.

 

 “안 될까요?”

 “뭐 안 된다기 보다는...”

 “혹시 중요한 의미라도 있으세요?”

 

 유골함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미순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 그딴 게 어딨겠수. 난 그냥 아무리 그래도 유골함인데 께름칙할까 봐 그렇지.”

 “괜찮아요. 제가 꼭 필요해서 그래요.”

 

 어떤 상황에서도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갈 수 있는 원식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조사관님, 왜 이러세요, 진짜...”

 

 갈수록 막 나가는 수연의 태도에 사색이 된 원식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하지만 수연은 굴하지 않고 미순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도현의 문자를 받은 뒤, 수연의 머릿속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납골당에 있어야 할 강경식의 유골함이 성혁과 손잡고 도현을 죽이려 한 미순의 집에 있는 것. 어차피 같은 패거리라고 생각하면 억지로 짜 맞춰서라도 이해하는 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유골함이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강경식의 유골은 대체 어디 간 걸까? 다른 함에 옮긴 걸까? 아니면 뭔가 조치를 취했을까?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선 몸을 사리고 뒤로 조용히 조사를 하는 것이 맞았다. 마침 원식이 미순을 떠보고 유도하며 적지 않은 정보를 캐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수연의 직감에선 그것들이 모두 의미 없어 보였다. 이 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는 단 하나, 저 유골함에 있는 것만 같았다.

 

 “일단 들어나 봅시다. 대체 저 유골함을 어디 갖다 쓸라 그러우?”

 

 어차피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어든 것이었다. 처음부터 도박이나 다름없었던 운명이다. 이 하나의 수로 그르쳐질 운명이라면 그건 애초에 이룰 수 없는 운명인 것 아닐까?

 

 수연은 미순을 향해 씨익 웃으며 카드를 던졌다.

 

 “제게 원수와도 같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이름이 강경식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죽어버려서 아무것도 못해요.”

 “......”

 “그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유골함을 보니 갑자기 또 울컥 치밀어 올라서요. 그래서 그런데 저거 저 주세요. 발로 차든 망치로 깨부숴버리든 뭐라도 분풀이 좀 하게요.”

 “... 대체 얼마나 큰 원수길래 그러우?”

 “저 사람이 내 가족을 몰살했거든요. 유골까지 있었으면 딱인데... 그런데 진짜 유골은 없어요?”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수연의 말에 원식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적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키를 내보여버리다니... 완전히 망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미순이 조용했던 것이다. 원식은 살짝 실눈을 떠 미순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미순은 당황스러움도, 웃음도 모두 날려버린 채 진지한 눈빛으로 수연을 보고 있었다.

 

 “유골은 진짜 없수.”

 “안타깝네요.”

 “그거 내가 버려 버렸수. 돼지 먹이로 주고, 화장실 변기에 흘려보내고, 탈탈 털어서 개똥 위에 뿌렸수다.”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예상도 못한 말이었다.

 

 “보아하니, 나한테 볼 일이 있었던 건 아가씨구먼? 이 말 잘하는 아저씨가 아니라.”

 “......”

 “아저씨는 이제 가 봐요. 난 이 아가씨랑 좀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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