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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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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6
작성일 : 20-12-14     조회 : 146     추천 : 0     분량 : 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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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골목을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팔라진다. 남자는 관리를 잘해서 몸에 군살조차 없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 오르막길은 녹록치 않다. 숨이 가빠지고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송글송글, 이마에 땀이 맺힌다. 한 집을 지나고 또 한 집을 지나쳐 거의 골목 끝자락에 다다른다. 잠깐 숨을 돌리려 멈춰서 주위를 둘러본다.

  “이 근처인 게 분명한데.”

  이 골목이 끝이 아니다. 그 너머로 옆 동네가 보인다.

  “이렇게 높은 곳에 용케 잘도 집들을 지어놨네.”

  골목을 도는데 한 구석에 재활용 수거용품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며칠 전 누가 이사를 갔는지 자잘한 가재도구들이 한꺼번에 버려졌고, 유독 눈에 띄는 건 그 옆에 올려진 상당한 양의 책이다.

  “공부하던 사람이 시험에 합격해서 떠났나?”

  책을 뒤적여보던 남자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온통 무협지잖아. 누군지 엄청 좋아했나보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가의 작품부터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무협지가 키 큰 책장 전체를 채울 수 있을 만큼 높다랗게 쌓였다. 널브러진 더미를 지나서 몇 걸음 더 걷다 주소를 확인하고 멈춘다.

  “이 집이구나.”

  경사 때문에 기울어진 채로 지어진 집이 보인다. 일층과 이층, 그 위로 임시로 증축된 옥탑방이 자리한다. 함부로 들어가기 꺼려져 안을 둘러보며 낌새를 살피는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대로 문단속을 하지 않았는지 문에 살짝 손을 대자 아무런 저항 없이 안으로 스르륵, 열린다. 남자는 그 안으로 들어가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위로 향한다. 계단을 따라 오르며 이층을 지나쳐 옥탑방이 자리한 가장 위층까지 올라선다. 발을 마지막 계단에서 떼다 옥상 끝자락 턱 위로 누군가 올라서있는 걸 발견한다.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뒷모습이 바람에 휘청거릴 듯하다. 몹시 말랐다. 속된 말로 빼빼 말라서 피골이 상접한 외양이다. 팔과 다리가 몸에 달린 부지깽이 같아서 잘못 건드리면 쉽게 툭, 부러지겠다. 저 아래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을 구경이라도 하는 건가? 남자가 의아해하며 다가서는 사이 여자가 한 발을 들어 공중으로 내딛으려 한다. 누군가 자신의 뒤로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게중심을 옮긴다.

  “흠, 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여자가 놀란 눈을 한 채로 고개를 돌린다. 얼굴에 살이 없어 광대뼈가 돌출했고 파리한 피부색에 눈가에는 검은 자국이 자리한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그만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조금만 더 앞으로 내딛었다면 밑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남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내밀어 여자가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아당긴다. 남자의 힘에 의해 난간에서 내려선 여자는 균형을 잡자마자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거리를 둔다. 경계하는 눈초리와 함께 몸 전체에서 적대감을 뿜어댄다. 적에게 겁을 주기 위해 등을 웅크리고 꼬리를 쳐드는 화난 고양이 같다.

  “누구야, 당신?”

  여자의 공격적인 태도에 남자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진정시키려 애쓴다.

  “아니, 놀라지 마시구요. 저는 부탁을 받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부탁?”

  여자의 서슬 퍼런 눈살에 남자는 시선을 피하며 할 말을 찾는다. 간간이 불어오는 찬바람이 허리까지 닿도록 길게 늘어진 여자의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펼쳐 놓는다. 그 모양이 흡사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조은하 씨 맞죠? 은하 씨를 만났으면 하는 사람, 음, 만났으면 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사람이라는 단어 다음에 잠시 주저하는 게 느껴진다. 은하는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더욱 날카롭게 대꾸한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당신이야? 당신이 그랬어? 당신이 내 물건 모두 치웠어? 돌아와 보니까 방이 텅 비었어. 내 물건들 다 어쨌어? 어쨌냐고?”

  남자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오른다.

  “저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한 박자 쉬었다 말을 잇는다.

  “은하 씨가 조금 전처럼 옥상 난간에 올라서서 밑으로 뛰어내린 적인 있다는 것만 알죠.”

  은하는 순간 남자의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싼다.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숙이고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어댄다. 남자는 은하의 반응에 처음에는 방어하는 자세를 취했다, 바닥으로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경계를 풀며 걱정스런 눈으로 주시한다. 은하는 한참을 소리를 지르며 몸을 앞뒤로 떨어댄다. 남자는 손을 내밀까 하다 생각을 바꿨는지 그 손을 멈추고 잠시 기다려준다. 마냥 계속될 것 같던 순간이 지나가고 내지르는 소리가 잦아든다. 거칠게 들이마시던 숨소리도 조금씩 작아진다. 몸의 떨림이 멈추자 은하가 지친 얼굴을 들어올린다.

  “저는 이 자리에 도우려고 온 겁니다. 은하 씨를 세상 끝으로 밀어냈던 사람들과는 다르죠.”

  남자를 보는 은하의 눈이 매서운 빛을 잃고 이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날 돕겠다구요?”

  “어쩌면, ……, 하늘이 주는 선물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은하 씨가 두 발로 제대로 설 수 있게 해줄 그런 기회 말입니다.”

  아직 남자를 완전히 믿진 않지만 경계심이 전보다 많이 풀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하의 머리가 공중에 나풀거린다. 남자가 손을 내민다. 은하는 그 손을 보고만 있다. 이 선을 넘어갈 것인지 아닌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선 채로. 그들 위로 겨울바람이 하늘을 넘나든다. 저 위로 구름이 가득하다. 밤하늘이 숨을 모으고 있다. 한꺼번에 터뜨릴 순간을 기다리며. 금방이라도 툭, 터지면 함박눈이 쏟아질 거다. 세상 전부를 덮을 만큼 맹렬한 기세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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