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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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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8
작성일 : 20-12-28     조회 : 153     추천 : 0     분량 : 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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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비상구를 가리키는 등만 제외하고 병원 복도에 있는 모든 불이 꺼졌다. 취침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이다. 잊을 만하면 의사와 간호사가 들락거리고 의료기계들이 밤새도록 작동하며 소음을 내느라 제대로 잠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밤 시간은 낮보단 조용해진다. 인수인계가 끝나고 야간당직 직원만 남는다. 특별한 호출이 없는 한 의사도 상주하지 않는다. 청소직원들은 거의 다 일찌감치 퇴근했지만 한 명은 아직 집에 가지 못하고 남아있다. 화학치료를 받던 암환자가 속에 있던 것들을 모두 복도 위로 게워내서 치우고 퇴근하기 위해 한창 바닥을 닦는 중이다.

  “에구. 냄새 참 역하네, 역해.”

  대걸레를 물에 적셔 바닥을 훔치고 그것을 털어내기를 반복한다. 바닥에 널렸던 걸 모두 치우고 나서 마른 걸레로 물기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걸레질이 끝나고 주변정리를 한 후 마지막으로 방향제를 구석구석에 뿌렸다.

  “이제 숨 쉴만 하네. 어휴,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어.”

  구정물을 버리고 청소용구들을 씻어낸 후 하나씩 뒤집어 놓는다. 걸레를 빨아낸 후 뒤집어 걸어놓고 마지막 뒷정리를 마친다. 얼른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청소원은 주위 다른 것에 신경 쓸 만한 여유가 없다. 복도 너머 끝자락에 위치한 비워있는 병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천천히 바닥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약한 진동이 반복된다. 단순하게 걸어가는 동작이 아니다. 옷을 스치는 소리가 나고, 땅에 턱, 턱, 걸리다 미끄러지는 반동이 전해진다. 나지막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마침 그 옆으로 이동용 간이침대를 밀면서 누군가 지나간다. 자기 일에 바쁜지 병실 안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바퀴 소리에 다른 소리가 묻힌다. 청소원이 문을 잠그고 복도로 나와 병실 앞을 지나치다 멈춘다. 눈이 바닥 위를 향한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다. 두 발로 서 있지 않고 바닥에 엎드린 채 팔과 다리를 교차해서 기어가며 병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는지 얼굴이 창백하다.

  “이봐요. 괜찮아요?”

  그는 묻는 말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기어간다. 청소원이 환자 곁으로 다가간다.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아이고, 이를 어째.”

  청소원의 말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 계속 그렇게 움직이면 어디 더 잘못될 수 있는데. 잠깐만, 거기 기다리고 있어요. 내 얼른 가서 누구 불러올 테니까.”

  청소원은 복도로 나서 멀리서 간이침대를 밀고 있는 직원을 발견한다.

  “저기요! 거기!”

  남자가 밀고 있는 손은 그대로 둔 채 뒤를 돌아본다.

  “예? 왜 그러세요?”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환자 한 명이 바닥에 떨어졌어요. 어디 다쳤는지 모르겠네.”

  “환자가 떨어졌어요?”

  남자는 밀고 있던 침대를 벽 한쪽으로 붙여놓고 청소원의 뒤를 따른다. 복도를 지나 청소원이 바닥에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요, 여기. 저런,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는데 아직도 움직이시네.”

  뒤따라온 남자가 무릎을 굽히고 환자를 살핀다.

  “괜찮으세요? 침대에서 떨어지셨어요?”

  어딘가 다친 곳이 없나 몸을 살피고 얼굴로 옮겨가던 시선이 그대로 멈춘다.

  “어?”

  충격을 받은 얼굴로 환자 팔에 걸린 이름표를 확인한다.

  “어, 어, 이 사람?”

  얼굴이 파리해지고 식은땀마저 흘린다. 벌어진 입이 더 이상 말을 뱉지 못하고 꺽, 꺽, 거리는 신음만 낸다. 뒤에 있던 청소원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살짝 어깨를 건드린다.

  “무슨, 일이에요?”

  톡. 살짝 어깨를 건드렸을 뿐이다. 닿은 손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남자의 몸이 튀어 오른다. 청소원은 갑작스런 반응에 놀라 손을 거두며 흠칫, 움츠린다. 남자 직원이 전속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간다.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질러대면서. 영문을 모르는 청소원은 그 뒤를 따른다.

  “이봐요!”

  뒤를 따르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곤혹스런 모습이다.

  “아니, 저 사람 뭐야? 왜 저런대?”

  그 직원은 정신없이 뛰어가다 자신이 한쪽에 밀쳐두었던 간이침대에 부딪혀 넘어진다. 그 사이 청소원이 간신히 따라잡는다.

  “정말 이상하네. 아, 환자를 보고 왜 그렇게 놀래요?”

  그가 목구멍에 숨이 꽉, 들이찬 채로 힘들게 더듬어댄다.

  “저, 저, 저 환자.”

  “아, 저 환자가 뭘요?”

  “화, 화, 환자.”

  “아니 환자가 뭘 어쨌는데요?”

  “죽었다고! 주, 죽, 죽어서 영안실에 내려 보낸 환잔데.”

  “죽다니 누가? 저 환자가?”

  뒤를 돌아보지만 저 너머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남자 직원을 향해 눈을 돌리자 이미 일어서서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내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네. 멀쩡한 환자를 보고 죽은 사람이라니.”

  혀를 차면서 병실 복도로 향한다.

  “원, 헛것을 봤나.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환자를 버리고 가버리면 어떡하라고. 저기 누워있는 환자를 어쩐대.”

  복도로 들어서자 걱정하던 표정이 금세 놀란 모습으로 바뀐다. 조금 전까지 바닥을 기던 환자가 보이지 않는다.

  “어라? 어디 갔지?”

  청소원이 병실 복도를 둘러보며 찾아다니지만 바닥에 있던 그 환자를 찾을 수가 없다. 마침 지나치던 간호사가 말을 건넨다.

  “아직 집에 안 가셨어요? 오늘 늦네요.”

  “저기, 윤간호사. 여기 바닥에 있던 환자 못 봤어?”

  “환자요? 아무도 못 봤는데요? 그런데 환자가 왜 바닥에 있어요?”

  간호사가 손에 든 차트를 넘겨보며 지나친다. 청소원은 복도 끝으로 갔다 반대쪽 끝으로 되돌아오더니 일렬로 놓여있는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는다. 멍한 눈빛과 함께 이마에 손을 얹는다.

  “이게 무슨 일이래? 정신이 하나도 없고만. 누가 그새 데려갔나?”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어머나, 시간이 이렇게 됐어. 내가 혼이 빠져가지고. 얼른 집에나 가야겠다.”

  청소원은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서둘러 자리를 뜬다. 청소원이 사라지고 난 후 한동안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전 들렸던 옷이 스치는 소리와 바닥 위를 미끄러지는 반동이 다시 반복된다. 분명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데 소리가 전해진다. 나직하지만 멈추지 않고 일정하게. 소리를 내는 진원지는 바로 청소원이 발견했던 그 환자다. 팔과 다리를 교차하면서 계속 기어 다닌다. 아직 복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저 둘러봐서는 찾을 수 없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지 않는 한.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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