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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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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12
작성일 : 21-01-25     조회 : 127     추천 : 0     분량 : 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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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점점 더 하늘이 어두워진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고 건물 곳곳에 자리한 간판에도 불이 들어온다. 연말이 가까워오며 화려한 장식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커다란 트리에서부터 양말, 산타, 사슴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마스 상징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공통점은 모두 붉은 색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대학로는 주말이 아닌 평일 저녁임에도 사람들로 넘친다. 길거리를 오고 가는 행인들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도로 위 차량은 거북이걸음 수준으로 나아간다.

  검은색 차량이 한창 붐비는 도로를 지나 한산한 거리로 들어선다. 그 안에 은하와 검은색 복장의 남자가 같이 타고 있다. 이들이 도착한 곳에는 지나가는 행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호객꾼도 없다. 같은 대학로라도 번화가를 벗어나면 이렇게 다르다. 운전하는 남자 옆에서 은하는 세상일에 관심 없다는 얼굴로 시큰둥하게 밖만 쳐다본다. 차는 아무런 특색 없이 단조롭게 지어진 건물 바로 앞에서 멈춘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좁은데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넓게 트인 무대가 나타난다. 작은 방 몇 개를 합쳐 공간을 넓게 만들었다. 그 안으로 들어선 은하와 남자는 구석진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어두컴컴한 무대 위 오직 한 곳에만 동그랗게 원 모양의 형태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 빛의 원 안에는 탁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 옛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중절모가 거꾸로 엎어진 채로 자리를 잡았다. 그 주변을 몸에 살집이 없이 키가 비적하게 큰 한 남자가 빙빙 돈다. 객석에는 여남은 명의 사람만 앉았다.

  “마술의 본질은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겁니다. 관객이 속임수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혼란을 겪게 되지요.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환상의 세계에 빠지도록 이끕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지요.”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강의를 하는 듯하다. 말을 마치고 남자는 간단한 동작으로 모자를 들어 위로 올리더니 그 안에서 토끼 인형을 끄집어낸다. 보고 있는 사람들은 별다른 호응이 없다.

  “손의 능숙한 움직임은 마술에서 가장 기본입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지요. 주변장치, 무대, 조명, 옆에서 도와주는 조수의 행동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완벽한 공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간간이 얘기를 듣다 메모를 하는 사람도 있고 지루한지 대놓고 딴짓을 하는 자도 보인다. 은하와 남자는 뒷줄에 앉아 열심히 듣고 있는 한 사람을 주시한다.

  “별로 특이할 게 없어 보이는데요?”

  툭, 던지듯 은하가 건넨다.

  “나야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앞으로 은하 씨랑 같이 다닐 사람이야. 잘 봐두라고.”

  앞에 선 강사가 잠시 휴식시간을 갖자고 제안하자 사람들이 빠르게 밖으로 나간다. 텅 빈 객석에는 은하와 남자, 그들이 주시하던 그 사람만 남는다. 남자가 일어서고 은하가 그 뒤를 따른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자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는지 다가오는 인기척에도 돌아보질 않는다. 옆모습이 단정한 대학생 같은 외모다. 귀 바로 위까지 덮은 머리가 얌전히 결을 이루고 있고, 세미 정장 복장으로 아래위를 갖췄다. 하얀 얼굴까지 한 세트로 해서 신입사원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법하다.

  “윤병국 씨?”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린다.

  “네?”

  “제가 찾던 분이 맞네요.”

  병국은 남자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그 뒤에 있던 은하를 향해 옮긴다.

  “누구시죠? 저를 아시나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병국 씨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서요.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병국은 잠시 머뭇거린다. 남자가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이어간다.

  “바쁘신 중에 죄송합니다. 저희가 방해가 된 것이 아니라면 좋겠는데요.”

  “일과 관련된 교육을 받는 중이었어요. 이렇게 매년 연례행사로 치르지요.”

  은하가 실내를 둘러보며 말한다.

  “마술, 을 하세요?”

  병국은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은하에게 답한다.

  “직업을 마술사라고 하긴 아직 부족합니다. 배워야 할 게 많아서요.”

 은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병국의 시선을 무시한 채 주위를 계속 관찰한다. 조금 전 토끼 인형이 나왔던 모자를 발견하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 쪽으로 향한다.

  “오늘이 곤란하시면 다음에 약속을 잡아도 됩니다.”

  병국은 남자의 말을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은하의 뒤를 좇는다. 모자 앞에서 조심스레 살피는 은하의 행동을 보며 입꼬리 주위로 살짝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은 마술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다뤄서요. 굳이 끝까지 있을 필요는 없겠네요.”

  병국이 일어서자 남자는 반기는 얼굴로 은하를 다급히 부른다.

  “은하 씨, 얼른 갑시다. 병국 씨가 괜찮다고 하네요.”

  모자를 들어서 안을 들여다보던 은하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학생처럼 빠르게 내려놓는다. 남자가 앞서고 그 뒤를 병국이 따른다. 은하는 약간 떨어져서 뒤따른다. 병국은 은하가 도달할 때까지 문을 잡아준다. 은하는 그런 행동이 낯선지 멈칫, 하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지나친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시동을 켜고 두 사람이 탈 때까지 기다린다.

  “앞자리에 타세요. 제가 뒤에 앉을게요.”

  “아니, 그쪽이 앞에 타셔도 되는데.”

  “괜찮아요. 뒷자리가 편해요.”

  은하가 뒷문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열자 병국이 지나가는 말투로 건넨다.

  “제 이름은 아시죠? 윤병국. 이름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은하에요.”

  짤막한 대답이 돌아온다. 은하가 뒷자리에 올라타자 병국이 은하 씨라고 작게 되뇌며 앞자리에 오른다. 도로를 한참 지날 때까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추자 남자가 입을 뗀다.

  “병국 씨는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술요? 어릴 때부터 마술하는 사람들 보면 눈을 떼지 못했어요. 심지어 동네에 차력하는 사람들이 오면 그것도 너무 신기해서 자리를 죽치고 앉아있다 학교를 빠질 정도였죠.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게 제겐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지 꼭 알고 싶었고, 그렇게 관심을 가지다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병국이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보자 하염없이 밖만 쳐다보는 은하의 옆모습이 비춰진다. 그녀에겐 앞좌석 두 남자의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다.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요?”

  남자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간다.

  “병국 씨. 그래서 원하는 만큼 이루었나요?”

  “생각만큼 안 되더군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았습니다. 타고나야 하는 것도 있나 봐요. 정말 좋아하는데 생각만큼 실력이 향상되질 않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만한 게 어디 있겠어요?”

  은하가 불쑥, 끼어들자 병국이 침을 삼킨다.

  “그으렇긴 한데, ……,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할 때 받는 스트레스도 무시 못할 정도라서요.”

  “그래서 무리하신 거예요?”

  “네?”

  “아, 우리 거의 다 왔군요.”

  남자가 황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방향을 꺾는다. 병국은 은하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다. 은하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둔다. 차를 주차하고 지하로 내려오는 동안에도 병국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남자가 맨 앞에 있고 은하는 팔짱 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른다. 뒤로 저만큼 뒤처져서 따라오는 병국이 신경 쓰이는지 남자는 한 번씩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병국은 멈추지 않고 발을 움직이지만 그 동작이 거의 무의식적이다. 흐릿해진 눈빛으로 생각에 잠긴 채 걷는다. 방 앞에 당도했을 때 병국이 갑작스레 고함을 지른다.

  “나는! 그러니까 내가!”

  “병국 씨! 이봐요! 병국 씨!”

  남자가 비틀거리는 병국의 어깨를 잡아주려는데, 그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병국이 뒤로 물러난다. 은하는 그런 병국의 행동에 놀라서 뒷걸음질 친다.

  “내가 어떻게 된 거야! 아아악!”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흔드는 병국을 진정시켜 보려 남자가 곁에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다. 곁으로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다독여보려 했지만 오히려 흥분한 병국의 손에 턱을 맞고 넘어진다. 쾅. 찰나였다. 은하와 뒤로 넘어진 남자가 어쩔 줄 모르고 병국을 보고만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린다. 흔들거리던 병국의 몸이 위로 떠오르며 발이 땅에서 떨어진다. 들려진 몸이 그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주 빠른 속도로. 은하와 남자는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지체한다. 놀란 눈을 한 채로 은하가 넘어진 남자에게 다가가 일으켜주려는데 그가 혼자 힘으로 일어선다. 남자가 먼저 문 안으로 들어서고 주저하던 은하가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문이 천천히 움직여 닫힌다. 덜컥. 둔중하게 울리는 소리가 나고 조용해진다. 더 이상 어떤 소음도 나지 않는다. 문 저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쪽에서는 알 수가 없다. 눅눅한 습기만이 지하의 공기를 가득 채운다. 습하고 텁텁하게.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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