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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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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17
작성일 : 21-02-21     조회 : 166     추천 : 0     분량 : 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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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민호가 자꾸 뒤를 돌아본다. 뒤떨어져서 걷는 민재의 발걸음에 힘이 없고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앞서 걷던 은지가 걸음을 늦춰 민재와 속도를 맞춘다.

  “엄마, 아빠 보러 가는데 기쁘지 않아?”

  긍정이나 부정의 대답 없이 어깨만 살짝, 들었다 내린다.

  “옆집 아줌마처럼 엄마랑 아빠가 날 보고 도망가면 어떡해요?”

  은지는 말이 막혀 선뜻 대답을 꺼내지 못한다. 문득 손에 들고 있던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려다본다. 민호의 걸음 속도도 느려져 이제 셋, 모두 거의 같은 열을 이룬다. 은지가 가볍게 민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아줌마가 날 보고 많이 놀랐잖아요. 무서운 걸 본 것처럼. 그리고, ……, 분명 차에 부딪혔거든요. 그랬는데, ……, 다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은지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찌푸리자 민호가 더듬어가며 말을 꺼낸다.

  “그, 그, 그게 말이야. 아마 민재가 놀라서, 음, 그러니까 트럭이 급하게 왔잖아. 그걸 보고 많이 놀라서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부딪혔다고 생각했던 거 아닐까?”

  은지가 작게 민호를 향해 속삭인다.

  “차라리, 솔직히 얘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뭘 얘기해?”

  민호가 고개를 바짝 기울인다.

  “민재야. 누나 말 잘 들어. 네가, 전에, 여기, 이 세상을 한 번 떠났다가 돌아왔는지 몰라.”

  “제가요?”

  “으응. 민재, 너, 누나랑 민호 형이랑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하지?”

  “놀이공원에서요. 회전목마 구경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봤잖아요.”

  “그래. 회전목마 있는 곳에서 만났지. 그 전에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는지는 기억나?”

  “어, 그 전에는, …….”

  말이 멈추자 걸음도 같이 멈춘다. 생각에 잠겨 잠시 시간을 보낸다. 하나씩, 하나씩, 민재의 등 위로 빛 뭉치가 솟아난다. 전선을 따라 흐르듯 어딘가로 흘러간다. 빛 뭉치 사이 간격이 점차 벌어지다 더 이상 그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민재가 텅 비어버린 눈동자를 한 채 민호와 은지를 본다.

  “엄마랑, ……, 아빠랑, ……, 같이 왔었어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골목 한 귀퉁이로 물러난다. 두 사람은 천천히 흘러나오는 민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놀이공원에 도착해서, 가장 좋아하는 범퍼카를 탄 후 회전목마로 왔거든요. 아빠가 솜사탕이랑 아이스크림을 사줬어요.”

  말하는 민재의 목소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눈이 젖어간다. 은지는 그런 민재에게 열심히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반복해서 끄덕여준다.

  “아빠가 엄마 사진 찍어준다고 회전목마 근처에 있던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거든요. 아빠가 건넨 가방에는 가지고 온 음료수랑 음식이 들어 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인절미도 있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솜사탕이랑 인절미랑 함께 먹으면 맛있겠다고. 인절미를 솜사탕으로 싸는데 엄마가 포즈를 잡고 아빠가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민재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자 은지가 가만히 머리를 쓸어준다. 민호의 입에서 불쑥, 말이 튀어나온다.

  “남자가 울어도 곤란하네.”

  “뭐랬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민재가 동작을 취한다.

  “입에 이렇게 넣었어요. 그랬는데, ……,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팔로 목이랑 가슴을 막 두드렸거든요.”

  은지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는데, 그 다음엔 계속 뿌옇게 제대로 앞이 안 보이고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회전목마가 있는 곳에 다시 와 있었어요. 엄마, 아빠는 안 보이고.”

  “그랬구나.”

  반복해서 민재의 머리를 쓸어주는 은지의 눈도 살짝 젖었다. 한숨과 함께 움직인 오른손이 민재의 손을 잡는다.

  “어쩌면 엄마랑 아빠가 지금 민재를 보고 많이 놀라실 수도 있어. 그래도 갈 거야?”

  민재가 살짝 몸을 비튼다.

  “모르겠어요. 몰래 보면 안 될까요?”

  “그러고 싶어? 두 분 모르게?”

  “엄마랑 아빠랑 잘 있는지만 보고, 놀라게 하진 말구요.”

  은지가 작은 미소를 입에 담더니 민재를 향해 아래로 굽혔던 무릎을 편다.

  “그러자. 이번엔 얼굴만 보고 또 기회 있으면 오면 되지. 안 그래, 민호야?”

  “어, 응. 얼마든지.”

  은지가 민재 옆에 붙어 한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걷기 시작한다.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민호가 뒤따른다. 큰 골목으로 나오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난다.

  “저 형들은 운동선수 같아요. 다들 같은 유니폼을 입었네요.”

  “그러네.”

  “징 박힌 신발이다. 축구하나 봐.”

  동일한 유니폼을 입은 남자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오자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옆으로 비켜난다.

  “우와, 나도 축구선수 되고 싶은데.”

  “민재는 축구선수 중에 누가 제일 좋아?”

  “메시요.”

  메시라는 말이 무슨 재밌는 농담도 아닌데 은지와 민호는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은지가 가장 맨 앞에 있고 민재가 바로 그 뒤에서, 민호가 마지막으로 따른다.

  “어?”

  자신을 지나쳐가는 유니폼의 등을 향해 민재가 돌아본다. 그 자리에 멈춰 선 민재 때문에 민호와 은지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민재야, 왜?”

  “누나. 저기, 저 형들.”

  “저 형들이 왜?”

  “옆으로 지나가는데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랬는데. 형들이 지나가니까, 어, 그러니까, 나랑 닮았다는 그런 거요.”

  “닮았다고?”

  “생긴 거 말구요. 아, 그러니까, 아이 모르겠다. 설명을 못하겠어요.”

  “축구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서 닮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고?”

  “민재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은지는 ‘아차,’ 하고 안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막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꿔 이어간다.

  “혼자서 괜히 그렇게 느낀 거 아니야? 유니폼 입었으니까 좋아 보여서.”

  “아니에요. 정말로 이상했어요. 나랑 닮았다는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그래?”

  은지가 민호의 팔을 툭, 치더니 멀어져가는 운동복 차림의 아이들을 멀거니 바라본다. 각도를 달리 해서 대각선으로도 봤다가 반대쪽으로 움직이며 등을 훑어 내린다.

  “설마?”

  민호가 은지 바로 곁으로 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모르겠어. 그냥 확인해보는 거야. 아니겠……!”

  은지가 놀란 눈을 한다. 민호가 눈썹을 찡그려 고개를 내렸다 들어올리기를 반복한다. 갑자기 헉, 하는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봤어?”

  “나도 봤어.”

  “맞지? 설마 했는데.”

  민재가 멀뚱히 뒤에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은지 네가 민재랑 있어.”

  민호가 먼저 발을 떼자 은지가 그 말을 무시한 채 따라 움직인다.

  “혼자서 어쩌려고?”

  민재가 따라 나서려 하자 은지가 앞을 가로막는다.

  “민재야, 잠깐만. 형이랑 누나랑 저 형들에게 잠깐 할 얘기가 생겼어. 네가 꺼낸 얘기가 맞는 말인 듯해. 확인해보게 잠시만 기다려줄래?”

  민재는 발을 떼려다 은지의 제지에 멈춘다. 민호가 먼저 앞서고 은지는 민재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서 그 뒤를 따른다.

  “저기, 잠시만요.”

  그렇게 건넨 말에 가장 뒤쪽에 있던 송정근과 한재유, 김동준이라는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은 세 명이 반응한다.

  “네?”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정근과 재유가 민호를 본다. 동준의 얼굴에는 얼른 경계하는 빛이 떠오른다.

  “물어요?”

  정근이 되묻자 재유가 작게 속삭인다.

  “야, 그거 아냐? 도를 아십니까?”

  동준이 둘을 뒤로 당기며 말을 툭, 던지듯 뱉는다.

  “저희 지금 바쁘거든요.”

  앞서 가던 아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은지를 보고 영수가 태영에게 고갯짓을 한다.

  “우리 들킨 걸까?”

  “벌써?”

  가까이 오는 은지를 향해 동준이 대놓고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을 향해 은지가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려 애쓰며 말을 꺼낸다.

  “잠깐이면 되는데. 꼭 할 얘기가 있거든요.”

  태영이 갑작스레 외친다.

  “야! 튀어!”

  고함을 지른 태영과 그 옆에 있던 영수가 제일 먼저 뛰기 시작한다. 태영의 외침에 먼저 반응한 건 광규와 덕남이다. 나머지 아이들은 갑자기 스퍼트를 하는 네 명을 보고 다급하게 달음박질을 시작한다. 민호와 은지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멈칫, 했다. 순식간에 골목을 찾아 들어가고 눈에서 사라진다. 은지가 그들을 따르려는 민호를 붙잡는다.

  “어쩔 생각이야?”

  “그냥 넋 놓고 볼 수는 없잖아. 저렇게 많은데 하나라도 잡아야지.”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꺾어진 방향으로 나 있는 골목을 향해 뛰는 마지막 한 명의 등을 얼핏, 발견한다.

  “장, 재, 찬.”

  은지가 등에 새겨진 이름을 읊는다. 골목 어귀에 도달하자 다시 되돌아 나오는 아이들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아이들이 들어선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민호와 은지를 지나치지 않고 나아갈 수 없게 된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노려본다.

  “당신들 뭐야? 경찰이야?”

  가운데쯤 서 있는 덕남이 고함을 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민호가 한 발짝 물러난다. 은지가 양팔을 들어올리며 진정시키려 애쓴다.

  “경찰 아니에요. 그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우리 중에 누구 이 사람들 알아?”

  아무도 대답이 없다. 태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한 사람씩 눈을 맞춘다. 난 모르는데. 나도 몰라. 처음 보는 얼굴이야. 결국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자 영수가 나선다.

  “남자 한 명이랑 치마 입은 여자 하나야. 힘들지 않을 거야.”

  “경찰이면 무술도 잘할 텐데.”

  “그래도 우린 열 명이잖아. 저기는 겨우 둘이고. 게다가, ……, 우리 많이 달라졌잖아.”

  민호가 그 말을 놓치지 않는다.

  “뭔가 달라졌죠?”

  영수가 그 말에 답 없이 쳐다보기만 한다.

  “그렇죠? 예전과 같지 않죠? 변한 게 있죠?”

  동준이 날 선 소리를 낸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우리를 어떻게 아는 거지?”

  빠르게 뱉어내는 말에 천천히 대답한다.

  “부탁을 받았어요. 여러분을 만났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저 도우려는 거예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가장 뒤에 있던 재찬이 물어볼 사람이 생겨 반가운 표정으로 질문을 꺼낸다.

  “그게, …….”

  민호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은지가 솔직하게 가자고 뒤에서 이르자 조심스레 입을 연다.

  “혹시, 예전 기억나는 일 없어요? 어떻게 여기로 왔다거나 하는 그런 사실들?”

  다들 서로를 힐끔거린다. 재찬이 머리를 갸우뚱, 흔들며 이마를 찡그린다.

  “길을 잃었어요. 차비도 없고 겨우겨우 걸어서 이 동네까지 왔는데 마트에 들렀다가…….”

  “그 얘긴 꺼내지 마!”

  “아, 미안.”

  영수가 다급히 끼어든다. 민호는 마트에 들렀던 게 무슨 문제가 되는 건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그 이전 기억은 없어요?”

  “그 전에요? 시합에 참가하려고 했었죠.”

  “맞아. 모두 같이 학교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민호의 질문에 각자 기억을 들춰보려 애쓴다. 한 명씩 집중하는 모습이다.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자 사방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가장 먼저 재찬의 등 뒤에서 하나씩, 빛뭉치가 떠올랐다 어딘가로 사라진다. 나타났다 어딘가로 사라지고, 또 하나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어! 어!”

  “재찬아! 너 등 뒤에서……, 어? 재욱이 너도.”

  갑작스레 우왕좌왕하는 그 사이, 계속해서 빛뭉치가 등에서 빠져나와 어딘가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놀라서 소리만 질러댄다. 민호와 은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급기야 자신의 등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서로의 등을 보기 위해 몸을 비틀어대는 우스운 광경이 연출된다. 광규가 손을 들어 민호와 은지를 가리킨다.

  “저 사람들 이걸 봐도 놀랍지 않나 봐. 그저 보고만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야?”

  “이봐! 혹시 당신들이 꾸민 짓이야?”

  민호가 정색을 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

  등에서 빠져나오는 빛뭉치 사이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당혹스러워 민호와 은지를 향해 사납게 몰아댄다.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지? 이게 뭐냐고?”

  “다 설명할 테니까 진정하고 말을 들어봐요.”

  “이 사람들 이상해. 무서워. 여기 있기 싫어!”

  정근이 큰 길로 나서기 위해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민호는 자신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무심코 그 팔을 잡으려 했다.

  “저기, 잠깐만요.”

  그만 정근이 나서는 기세와 민호가 막아서는 역반응이 의도치 않게 추돌한다. 둘이 함께 비틀거린다. 균형을 잃었는데 하필 민호가 정근을 위에서 엎어누르는 자세가 되고 만다.

  “정근아!”

  민호 무게까지 더해서 충격을 받은 정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도 눈을 뜨지 못한다. 걱정이 된 아이들이 주위로 몰려들고 광규가 민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벽을 향해 거칠게 밀어버린다.

  “저리 비켜.”

  부딪힌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민호는 광규의 거친 행동에 그저 끌려 다닐 뿐이다. 비틀거리는 다리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은지가 광규의 행동을 말리려 그 손에 매달린다.

  “이러지 말아요.”

  은지가 어떻게든 손을 떼어내려 하자 광규가 반사적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은지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아악.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은지가 나동그라진다. 골목 건너편에서 안쪽을 향해 걸어오던 두 여자가 비명소리에 놀라 흠칫, 멈추더니 상황을 주시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걸음을 빨리 해서 되돌아 나가는데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다. 급하게 두 여자가 큰 길로 뛰쳐나오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뭔가, 궁금해서 골목 안을 둘러본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발견한 사람들이 걱정스레 웅성거린다.

  “싸움 났나?”

  “패싸움이야?”

  “그게 아닌 것 같아. 저기 남자랑 여자가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어.”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음성이 커진다. 그렇지만 열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보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민호는 은지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눈에 번쩍, 빛이 스친다.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광규의 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그 가슴팍을 향해 밀어붙인다. 헉. 밀고 들어오는 힘에 손이 꺾이면서 틈이 생긴다. 게다가 가슴부위를 정면으로 받혀 숨쉬기 곤란한 모양새다.

  “은지야!”

  은지에게 향하느라 주변을 볼 새가 없다. 동준이 광규가 받힌 후 땅 위로 쓰러지자 민호를 향해 달려든다. 옆에 있던 재유를 훌쩍 뛰어넘어 위로 오르더니 내려오는 힘을 실어 발로 내리친다. 민호는 그 발에 왼쪽 어깨를 맞고 그대로 다리가 꺾인다. 갑작스런 충격에 휘청거린다. 등 전체로 지독한 고통이 퍼져나간다. 앞으로 넘어지며 얼굴이 바닥에 부딪히고 입술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린다. 큰 길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높아지지만 아직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은지, 야.”

  민호가 땅 위에서 기듯이 위를 보며 은지를 찾는다. 은지가 민호 곁으로 다가와 자신의 몸으로 그 위를 가린다.

  “그만해요!”

  민호는 충격이 가시지 않아 몸 전체가 얼얼, 하게 느껴진다. 시야가 흐려져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다. 그들 앞에 선 동준이 내려다보는데 그 어깨 위에 누군가 손을 얹는다.

  “어이, 학생.”

  동준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래위 군복을 걸친 남자다. 짧게 깎은 머리가 파리한 색을 띤다. 그가 앞으로 와서 아이들과 정면으로 대치하자 다들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동준은 태영과 영수를 바라본다.

  “힘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한테 단체로 이게 뭐하는 짓이야?”

  군복을 입은 남자는 혼자서 열 명을 앞에 두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다. 타이르듯 동준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동준은 어깨 위로 걸린 손을 빠르게 쳐내더니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고 뻗는다. 이미 예상을 했었는지 남자는 여유롭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더니 반쯤 몸을 움직여 돌려차기를 한다. 다리가 돌아서 명치 바깥쪽을 때리자 동준의 입에서 훅,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남자는 틈을 주지 않고 동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은지가 바닥을 기는 민호와 시선을 맞춘다.

  “민호야, 괜찮아?”

  “으, 응. 너는?”

  서서히 눈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제 군복 입은 남자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준호?”

  “아는 사람이야?”

  동준이 넘어지자 지켜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퍼진다. 덕남과 광규가 경계하는 동작으로 남자를 향해 달려들려는데 태영이 만류하며 나선다.

  “멈춰.”

  덕남과 광규를 포함한 아이들 모두가 태영을 본다.

  “어쩌려고?”

  영수가 묻자 태영이 큰 길을 보라며 턱짓을 한다. 많은 숫자의 눈길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그만 가자. 경찰이 올 수도 있어.”

  경찰, 이라는 단어가 빠른 효과를 불러온다. 앞에서 대치하는 남자를 슬금슬금, 흘겨보며 하나, 둘 씩 발을 움직여 큰 길을 향해 간다. 태영과 영수가 맨 뒤에서 남자를 마지막까지 주시하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다른 아이들을 따라 달린다. 민호는 아직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지만 어떻게든 그 아이들을 잡고 싶었다. 그 뒤를 향해 누운 채로 소리친다.

  “기다려봐, 얘들아! 너희들. 여기는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가 간절했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 말소리가 대상을 찾지 못하고 멀어져간다. 큰 길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들의 앞을 막아서지 않는다. 오히려 부딪힐까 널찍이 물러서는 사람도 있다. 사라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준호가 민호를 향해 돌아서서 한심하다는 느낌이 절절히 묻어나게 내뱉는다.

  “자알, 한다. 이제 하다하다, 길거리에서 싸움질이야? 그것도 애들이랑?”

작가의 말
 

 작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몇 주간 연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4주치 내용을 미리 올립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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