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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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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19
작성일 : 21-02-21     조회 : 366     추천 : 0     분량 : 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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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저녁노을이 그 빛을 머금고 아래로 향한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어둠이 금세 사방을 덮어버린다. 검은색 차량은 밤이 되면 시동을 걸지 않는 한 어둠에 묻혀 눈에 띄지 않는다. 병국과 은하가 뒷좌석에 자리한 차도 검은색이라 어둠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빛이 닿지 않는 한적한 곳에 주차해 눈여겨보지 않으면 차가 없는 텅 빈 공간으로 착각할 정도다. 병국이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묻는다.

  “무작정 이렇게 기다려요?”

  은하는 손에 든 무협지에 정신이 팔려 병국이 하는 말엔 관심이 없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나가자고. 어차피 저기서 밤을 지새울 듯하니. 밝을 때보다 어두운 시각에 이야기 나누기 좋아.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그들이 바라보는 건물에서 나오거나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한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음이 역력하다. 낡아가는 모습을 멀리서도 알아볼 정도다. 페인트 자국이 벗겨지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렵다. 부서진 목재들이 아무렇게 널브러졌다. 고개를 고정한 채 앞만 보는 남자와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은하를 번갈아 보던 병국은 도저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주변에 완연히 어둠이 깔리고 길거리에 세워진 등이 차례대로 불을 밝힌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남자가 허리를 세운다.

  “이제 슬슬 가볼까?”

  은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책의 한쪽 모서리를 접어 표시를 한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자고 있었던 건 아닌지 병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세 사람이 차에서 내려 향하는 건물 주위에 인기척이라곤 없이 그저 스산하기만 하다. 황량한 외관과 달리 건물 안은 상당히 소란스럽다. 축구부 유니폼을 입은 열 명이 드문드문 흩어져 제각각 앉거나 서 있다. 저마다 할 얘기가 많은지 웅성거림이 점점 커진다.

  “분명 뭔가 이상했어. 사람 키를 넘을 만큼 붕붕 날아다니는 게 정상은 아니라고.”

  재찬이 심각하게 이마를 찡그린다. 옆에 있던 광규가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릴까? 여기는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라니?”

  “쓸데없는 소리야. 재수 없게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 거라고.”

  웅성거리던 소리가 한 순간 멈춘다. 꼭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럴 때가 있다. 열심히 떠들던 중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요의 시간. 다들 할 말을 찾는지 눈치를 보는데 재욱이 천천히 입을 연다.

  “재찬이랑 나랑, 그때 말야.”

  재욱이 말을 꺼내면서 다리를 굽혀 동그랗게 몸을 만다.

  “등에서 뭔가 튀어나온다고 했을 때, 떠오른 생각이 있어. 우리가 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갔는데 결국 경기장에 도착하지 못했어. 너희는 기억 안 나?”

  그 말에 바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각자 나름의 생각에 빠졌다. 대화가 끊어지자 공기가 빠르게 차가워진다. 조그마한 부스럭거림도 들리지 않아 진공상태로 느껴질 정도로 완전한 적막이다. 하나씩, 빛뭉치가 등에서 흘러나온다. 영수가 태영의 등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얼굴빛이 바뀌었지만 처음 봤을 때만큼 당황하지는 않는다. 시선을 돌리자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빛뭉치를 볼 수 있다.

  “운전하는 아저씨한테서 술 냄새가 났던 것 같아.”

  “모르는 아줌마가 같이 타더라. 감독님이 태준이한테 들른다고 함께 못 가서 대신 보낸 학교 직원인 줄 알았어.”

  “맞아, 태준이.”

  태영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생각에 빠졌던 눈들이 태영을 바라보자 빠져나오던 빛뭉치의 숫자가 줄어든다. 영수는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것까지 확인하듯 바라보다 태영을 향해 돌아앉는다.

  “태준이를 만나야겠어. 우리 멤버 중에 태준이만 여기 없잖아.”

  “태준이가 왜 같이 안 갔지?”

  “그 자식 때문에 감독님이 엄청 화가 났었잖아. 골키퍼가 경기 전날 사라졌다고.”

  “그랬지. 감독님이 태준이 찾으러 간다고 우리랑 같이 못 갔어.”

  덜컹. 갑작스런 소리에 모두 말을 멈춘다. 태영이 영수와 성욱에게 눈짓을 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자세를 숙이라며 손을 아래로 누르는 동작을 취한다. 지시를 받은 영수와 성욱이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른 사람들은 태영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든다. 곧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 긴장해서 그저 숨소리만 내고 있다.

  “건물 안에 누가 있나?”

  “영수랑 성욱이는 괜찮을까?”

  “쉿!”

  태영은 소리가 나지 않게 제지하며 본인이 직접 가보기 위해 상체를 일으키다 검은 물체를 발견하고 놀라 물러선다. 모두 제자리에서 굳은 채로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잠시 후 그게 영수인 걸 확인하고 안도하는 숨을 동시에 내쉰다.

  “영수구나.”

  “놀랐잖아.”

  “누가 있었어?”

  “아니, 아무도 없던데.”

  영수의 뒤로 성욱이 나타난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누가 있는 것 같진 않았어.”

  “고양이나 쥐가 아닐까. 도둑고양이들 근처에 많던데.”

  영수와 성욱을 확인하고 다들 자세가 조금 전과 달리 편안해진다. 몸에 힘을 주고 숙이고 있다 어깨가 뭉쳤는지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켜는 사람도 있다.

  “어?”

  정근은 자신이 보고 있는 걸 완전히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개를 드는데 너저분한 짐들이 높게 쌓여 탑을 이룬 둔덕 위로 허리께까지 망토를 늘어뜨린 남자가 올라서 있다. 옛날 서양영화에서나 볼 듯한 중절모자를 쓰고 얼굴의 절반은 가면으로 가렸다. 정근이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손가락을 들어 위를 재차 가리키자 덕남과 동준이 의아하게 고개를 든다. 헉. 놀라서 뿜어내는 공기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어서 옆에 있던 아이들이 그쪽으로 눈길을 준다. 태영이 고함을 지른다.

  “모두 물러서!”

  고함소리를 기점으로 다들 주변으로 흩어진다.

  “어,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영수야! 뒤에!”

  이번엔 재유가 고함을 지르자 모두의 시선이 영수에게 향한다. 영수가 있던 자리에는 합판들이 한 방향으로 세워졌고 그 위 간이식으로 만든 철제 계단이 놓였다. 계단 맨 꼭대기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보이고, 몸에 달라붙는 비닐옷을 입은 여자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여자도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는데 망토를 걸친 남자의 가면이 얼굴 왼쪽을 가리고 있다면 여자의 가면은 코를 기점으로 그 위를 가린다. 계단 맨 꼭대기 자리한 남자는 맨 얼굴을 드러낸 채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단조로운 어조로 말을 꺼낸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나 보군. 한 자리에 오래 머물렀어.”

  영수는 긴장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들 누구야? 경찰이야?”

  “경찰 같지는 않은데. 복장이 이상해.”

  “우린 경찰이 아니라네. 다만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이지.”

  병국이 태영 바로 옆에 나타난다. 아무런 인기척을 내지 않고 자리를 옮긴 그를 발견하고 누구 할 것 없이 기겁한다. 모두 병국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다급히 물러난다. 심지어 재찬은 자신의 발에 걸려 아래로 넘어진다.

  “거, 병국 씨. 너무 놀래키지 말고.”

  “이름을 부르면 어떡해요. 신분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건 기본 아닌가.”

  은희가 새초롬하게 말을 건네자 남자가 괜스레 헛기침을 한다.

  “흠, 흠. 그거야, 뭐. 이봐, 자네들. 우리가…….”

  남자가 미처 말을 끝내기 전에 태영이 병국을 향해 달려든다. 예상치 못한 태영의 공격에 병국이 급하게 팔로 앞을 막는다. 병국의 얼굴로 향했던 주먹이 팔에 막혀 빗겨나자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한다. 헉,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병국이 상체를 숙이자 영수가 태영의 위로 뛰어올라 병국의 등을 노린다. 하지만 발이 가닿기도 전에 자신과 같은 높이에 올라있는 은하를 발견한다.

  “선! 학! 신! 침!”

  은하는 딱, 딱, 끊어지게 네 음절을 뱉으며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양팔과 한쪽 다리를 들어 학의 모습을 따른다. 빠른 속도로 공중에 있던 영수와 마주하고는 들어 올린 다리를 휘두른다. 병국에게 향하던 영수의 다리를 걷어내더니 그대로 이어서 그의 가슴팍을 노린다. 불시에 공격당한 영수는 제대로 대항해보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고 아래로 떨어진다. 사뿐히 병국의 옆으로 내려온 은하는 팔짱을 낀 채로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 있으면 덤벼보던가.”

  아직 통증이 채 가시지 않아 찡그린 얼굴로 병국이 어렵게 등을 세우더니 은희의 귀에 작게 속삭인다.

  “도대체, ……, 그 이상한 주문은 뭐죠?”

  고개를 홱, 빠르게 돌린 은하가 병국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인다.

  “무협지 본 적 없어요? 모든 무술동작은 초식으로 이루어져요. 그 초식 명칭을 기합처럼 내뱉는 거죠. 내가 선호하는 건 네 글자로 된 거고.”

  “그럼 초식을 모두 외워요?”

  은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다.

  “……, 아니, 그게, 그건 아니고. 내 맘대로 지어서…….”

  병국의 얼굴 위로 어이없다는 표정이 말을 대신해서 드리워진다. 은하와 병국이 한눈을 팔자 몸이 다부진 광규가 슬그머니 움직인다. 상대방과 거리를 재듯 자세를 잡는데 성질 급한 덕남이 먼저 나선다.

  “덕남아. 아, 진짜.”

  광규가 말리는 걸 못 들은 척 덕남이 앞으로 나서서 은하를 향해 발길질을 한다. 발이 닿기 전 병국이 어깨에 걸친 망토를 들어 은하와 자신을 덮어서 가리자 덕남이 그 위를 내리 누른다. 하지만 발이 닿아야 할 대상이 없다. 푹 꺼지듯 밑으로 망토가 떨어지고 황당한 모습으로 덕남이 그 위로 내려선다.

  “이, 이런.”

  망토를 밟아보지만 발에 걸리는 것이 없다. 팔랑. 붉은색 잎사귀가 하나가 떨어진다. 시작은 하나. 그 다음엔 셋. 그리고 열. 잎들이 떨어져 내리는 위를 쳐다보자 거기에 병국과 은희가 자리한다. 병국이 양팔을 내밀어 덕남의 머리 위에서 둥그렇게 공을 잡고 있는 자세를 취한다. 그 사이로 붉은 장미 잎사귀가 떨어져 내린다. 처음에는 여남은 개로 시작하더니 금세 그 수가 늘어나 덕남을 완전히 덮을 정도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잎들을 털어버리려고 팔을 휘두르지만 순식간에 늘어나는 숫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무릎을 덮었다 싶더니 금방 허리까지 차오른다. 덕남은 기겁을 해서 소리를 질러대며 더 빨리 팔을 휘저어댄다. 뒤에 있던 광규까지 합세해서 잎들을 털어버리려고 해도 역부족이다. 덕남의 턱까지 닿을 정도가 되자 다급해진 광규가 병국을 노리고 튀어 오른다. 그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병국은 상대방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었다. 오른손을 들더니 약지와 중지를 가볍게 톡, 톡, 마주친다. 그 손가락 사이에 새빨간 다이아몬드 퀸이 그려진 카드가 나타나고 주저 없이 광규를 향해 던진다.

  “아아악.”

  광규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카드가 바닥에 박히고 그 옆으로 광규가 무너진다. 목에서 솟구치는 피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다.

  “으으으.”

  떨어질 때 받은 충격 때문인지 광규가 신음을 흘리자 목까지 쌓인 잎들에 갇힌 덕남이 우는 소리를 낸다.

  “광규야아.”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나머지는 자리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

  “거칠게 하지 말라니까.”

  계단 위에 있던 남자가 밑으로 내려온다. 태영은 병국과 은하, 남자를 차례로 주시하다 남자를 향해 말을 뱉어낸다.

  “우리한테 왜 이러세요? 원하시는 게 뭔데요?”

  남자가 짧게 대답한다.

  “대화.”

작가의 말
 

 작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몇 주간 연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4주치 내용을 미리 올립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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