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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Tango de Lady Evil
작가 : 아사찬빈
작품등록일 : 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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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사살>
작성일 : 21-03-05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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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경자가 어떻게 믿는가와 별개로, 성도현의 생사에 따라 본인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경철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고 있는 사람.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정치력과 경제력을 지닌 사람. 그리고 자신을 해치려는 강한 악의를 지닌 사람.

 용케도 삼박자가 다 맞아 떨어져버렸다. 행동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짜증나네.”

 

 성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도현은 절대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되었다.

 

 경자도 아마 도현을 죽이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를 마냥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도현과 그 누이의 행태로 보았을 때, 오히려 경자에게 딜을 걸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자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죽이기 전 도현의 입에서 아니면 그 누이의 입에서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강팀장이 들어왔다.

 

 “의원님.”

 “확인했나?”

 “네.”

 “어떻게 됐어?”

 

 강 팀장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방금 중환자실에서 VIP용 1인실로 옮겼습니다.”

 

 성혁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얼굴 확인 했어?”

 “네. 산소호흡기를 쓰고는 있었지만 확실합니다.”

 “젠장.”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긴 거라면 의식을 되찾았다는 말이었다.

 절대 안 된다. 경자가 도현을 죽이기 전에 본인이 미리 손을 써야 했다.

 

 “강 팀장, 차 준비해.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네.”

 

 

 

 “어디 가시게요?”

 “응?”

 

 외출준비에 한창이던 경자가 뒤를 돌아봤다. 유진이었다.

 

 “몸은 좀 어떠냐?”

 “뭐...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거 다행이구나. 이 할미가 걱정을 아주 많이 했어.”

 

 경자가 유진의 손을 꼬옥 쥐고 토닥였다. 영락없이 다정한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런 경자를 바라보는 유진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할머니.”

 “그래그래.”

 “그거 하지 마세요.”

 “응?”

 

 뜬금없는 유진의 말에 경자가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지금 할머니가 계획하고 계신 거. 하지 마시라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이 할미가 뭘 계획하고 있다고?”

 “절대로 이번엔... 피를 보시면 안 돼요.”

 

 경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아이가 지금 뭘 알고 있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제발요.”

 

 경자에게 잡힌 유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진은 경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번 더 간청했다.

 

 “제발요.”

 

 유진이 자신을 이렇게 똑바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한두 번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처럼 간절하게 바라본 적은 없었다.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경자는 손을 뻗어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밝게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그리 나오면 할미가 어찌 안 들어줄 수 있겠니.”

 

 그러나 유진은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경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할미가 절대, 절대로 우리 유진이가 걱정할 일은 하지 않으마.”

 

 경자가 다시 한 번 유진의 손을 토닥이고는 문을 나섰다.

 

 “임 비서, 가지.”

 “네.”

 

 

 

 차에 올라탄 경자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임 비서.”

 “네, 회장님.”

 “유진이 녀석이 그 성도현이와 친분이 있는 거 같다고?”

 “정확히는 성도현의 누이동생입니다.”

 

 어쩐지 괘씸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 속의 간절함과 불안함이 그 일가를 위한 거였다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배신감이 밀려왔다.

 

 “이런 배은망덕한 것.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게지. 저를 키워준 건 난데 말야.”

 “뭐,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감정에 휘둘릴 때죠.”

 

 임 비서의 말에도 경자는 끙 소리를 내며 입을 삐죽였다.

 

 “오 여사 쪽은 어찌 되고 있나?”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신호만 가면 바로 시작한답니다.”

 “좀 괜찮은 좀을 섭외했어야 하는데.”

 “걱정 마시라고 하더군요. 딱 회장님 스타일일 거라고 기대하시랍니다.”

 “그래.”

 

 

 

 어느 새 땅거미가 내리고 병원의 복도에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강 팀장이 원장을 붙잡고 있는 사이, 모자를 눌러 쓴 성혁은 도현의 VIP 병실 앞에 도착했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성혁은 모퉁이 뒤로 몸을 숨겼다.

 도현의 병실에서 나온 것은 안나였다. 그의 손에는 먹다 남은 식판이 들려 있었다. 성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회복해서 식사를 할 정도로 멀쩡하단 뜻이었다. 정말 명줄 하나 만큼은 끈질기고 끈질긴 놈이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간호사가 안나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성도현씨 보호자분. 잠깐 서류 좀 작성해주시겠어요?”

 

 안나는 식판을 퇴식대에 대충 끼워놓고 간호사를 따라 복도에서 사라졌다. 그 기회를 틈타 성혁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의 불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실루엣은 확인할 수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한 사람. 그의 몸에 붙어있는 이런 저런 장비들.

 성혁은 발소리를 낮춰 침대로 다가갔다. 그 사이 잠이 들었는지, 도현에게서는 기척이 없었다.

 

 어느 새 성혁은 침대 바로 옆으로 다가가 있었다. 도현의 얼굴 위에 내려앉는 푸르스름한 빛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히 도현이었다. 예상대로 도현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갑자기 온 몸에 한기가 들이닥친 것은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였다. 도현에게서 숨소리가 나지 않는다. 도현의 몸에 붙어있는 장비 또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성혁은 도현의 몸을 덮은 이불을 훽 걷었다. 그 속에는 뻣뻣하게 굳은 도현의 몸이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사후경직이 시작되어 단단했고, 상처에는 그 어떤 붕대도 감겨있지 않았으며, 피부는 푸르렀다.

 

 ‘속았다.’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저 안나라는 여자의 수작에. 그리고 안나의 눈속임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도운 원장에게. 그들은 도현의 시신을 미끼삼아 자신이 낚이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성혁이 침대를 쾅 내리쳤다. 이 기분 나쁜 공간을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그때였다.

 

 [푸슉]

 

 등허리에서 인기척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를 확인할 새도 없이 병실 문이 다시 닫히고, 저 멀리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성혁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응, 그려. 알았수.”

 

 미순이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끊고는 경자를 바라봤다.

 

 “말 그대로 병실에 남자가 있다고 하네. 깔끔하게 끝냈다고 하니 걱정 마쇼.”

 “확실한 거지?”

 

 경자의 물음에 미순이 씨익 웃었다.

 

 “예. 성도현이란 놈은 이제 세상에 없수다. 그러니 마음 푹 놓으시라니까요.”

 “그래. 임 비서.”

 

 경자의 손짓에 임 비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단칼에 미순을 찔렀다. 미순이 경악에 가득찬 눈으로 경자를 바라봤다.

 

 “유진이 녀석도 슬슬 능력이 다해서 말야, 더 이상 못 쓸 거 같아. 그러니 이제는 꼭 오 여사가 아니라도 상관없겠어.”

 

 미순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를 본 경자가 임 비서에게 고갯짓을 했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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