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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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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28
작성일 : 21-04-26     조회 : 365     추천 : 0     분량 :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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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은지는 어릴 때 무서운 동물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절대로 등을 돌리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 겁을 먹고 눈을 피하는 순간 나는 네 먹잇감이라고 알려주는 거라 했다. 거리를 두면서 눈을 마주보고 피하지 않아야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해야 할까? 누가 빤히 쳐다보면 저절로 시선을 피하게 된다. 수줍어 그럴 수 있겠지만 눈길 자체가 무섭기도 하다. 영화나 책에서 보면 몰래 구멍을 뚫고 엿보거나 어두운 곳에서 바라보는 눈이 공포심을 종종 조장한다. 그만큼 우리 몸에서 두려움을 유발하는 곳이 눈이 아닐까.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은 뭔가 텅 빈 것 같았다.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퍼져버리는 듯했다. 처음에는 눈만 보였는데, 얼굴과 상체, 몸 전체가 차례로 은지의 눈 속에 상을 맺었다.

  은지의 목구멍 안에서부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주제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머리 위에 있다는 자체가 무섭게 느껴졌다. 다리만 천장에 붙었고, 몸은 그대로 공중에서 늘어져 아래로 향한다. 적개심을 보이거나 은지를 공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모습만 봤는데도 놀라 덜, 덜, 떨리고 온몸의 털이 삐죽, 솟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무릎이 꺾이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개는 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을 피하는 순간 그대로 목을 물릴 것 같아서.

  그가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밑을 향해 뻗은 손에 은지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헐렁하게 몸에 걸쳐진 환자복이 목 아래까지 흘러내린다. 파리한 얼굴. 빛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지 창백하다. 젊은 남자. 20대로 보인다. 은지는 몸 근육이 석고상처럼 굳어 약간의 미동을 하기도 힘들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질 못하겠다.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렵다. 작은 숨소리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저 누르고 또 눌러댄다. 이 사람에게만은 중력이 예외인지 은지의 몸을 타고 내려오는데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얼굴과 어깨에 그의 팔과 몸이 닿는데, 마치 이불솜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다. 머리부터 거꾸로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다리가 바닥에 닿았다. 배를 땅에 붙이고 기는 동작을 한다. 목을 들어 은지를 보지만 일어서진 않는다. 바닥에 팔과 다리를 그렇게 붙이고 누운 자세로 가만히 눈만 고정시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은지는 숨을 진정시키느라 꽤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 사람이 방금 몸을 타고 위에서 내려왔다는 걸 누군가 믿어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방금 일어난 일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전혀.

  그가 은지에게서 눈을 거두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보기만 한다. 그러고 있자니 그 눈이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매도 선해 보인다. 들이쉬었다 내쉬던 숨이 점점 고르게 변한다. 숨쉬기가 편해지니까 자신감이 생긴다. 몸에 힘을 줘보니 팔다리 근육이 별 문제없이 반응했다. 은지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가 놀라지 않기를 바라며.

  “저, ……, 이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환자복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환자복을 입으셔서. 여기 얼마나 계셨어요?”

  대답이 없다. 입술이 살짝 닫혔다 벌어진다. 혹시 말을 못하는 걸까? 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조금은 갈라지고 어눌한 발음이 들려온다.

  “아주, 오래 있어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병원 밖으로, 나가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이제 여기가, 집 같아요.”

  “아, 그러시구나.”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은지를 따라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표정이 너무 엷어 확실히 알아차리기 힘들다. 엉겁결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더니 다리가 엇갈려 있어 불편하다. 자세를 바꾸려 무릎을 살짝 들어 움직였다. 그의 고개는 은지 얼굴을 향해 위로 꼿꼿이 들려져 있다.

  “그런 자세로 있으면 힘들지 않으세요? 저랑 마주보고 앉아서 얘기하는 건 어때요?”

  은지는 그가 취하는 자세로 1분만 있어도 힘들 것 같았다. 그의 눈꺼풀이 감겼다 떠진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오른쪽으로 누인다.

  “하도 병원침대에 누워있기만 해서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 모르겠어요. 몸을 돌리긴 하겠는데.”

  안타까움에 가슴에 스민다.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런 환자들을 많이 봤다. 사람의 근육은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무릎을 구부린 채로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더 이상 다리를 펼 수 없는 환자가 흔했다. 심지어 대소변을 보는 것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결국 인공관을 통하지 않고는 용변을 볼 수 없게 된다. 그가 몸을 틀었다. 침대 위에 눕듯이 뒤로 벌렁 누웠다. 이제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은지를 향해 어렵사리 눈길을 준다. 힘들어 보여 그걸 주시하는 게 안쓰러웠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

  “병원 직원이세요?”

  은지가 옆으로 움직여 서로 마주보기 편한 위치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누워서, 은지는 다리를 포개 앉은 채로 대화를 나눈다. 은지는 선한 인상의 그를 보면서 조금 전 그렇게 공포에 떨었다는 사실이 우스워진다.

  “아니요.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해드리려 왔어요. 조금이라도 덜 힘드시라고.”

  “그 기도 받고 아픈 게 조금이라도 덜해지면 좋겠네요. 통증이 심할 땐 정말 힘들거든요.”

  많이 아파본 자의 공감일까.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은지는 자신이 저렇게 허리를 세우는 법도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면, 아마 가슴에 분노와 원망이 쌓이고 넘쳐서 주님과 주변 사람들을 무척 원망했을 거다.

  “그렇겠네요. 그런 고통 겪지 않으면 좋을 텐데요.”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린다.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가까워진다. 다급하게 뛰던 다리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진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보폭이 짧아진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살폈다. 하얀색 바탕에 파란 줄이 그어진 운동화. 헐렁하게 걸쳐진 상의. 통이 넓게 입은 바지. 머리를 자를 때가 되어서 덥수룩한 머리까지. 어느새 나한테 이렇게 편한 존재가 되었나 싶다. 곁에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한. 이제는 내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그런 사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눈물이 솟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민호를, 그 얼굴을 보기만 하는데도 눈물이 났다. 얼굴 위로 흘러내릴까봐 급하게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리고 눈을 깜빡였다. 지금 처량하게 눈물을 보이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왔어?”

  툭, 하고 던진 말. 꺼내놓고 보니 어색했다. 왔어가 뭐람. 민호의 표정이 어색하게 일그러진다. 지금 웃는 거야?

  “왔어, 가 뭐야?”

  “응?”

  “왔어, 라니. 조금 전엔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비명을 질러놓고.”

  “내가 그랬지?”

  웃음이 난다. 놀랬던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민호가 곁으로 오다 우뚝, 멈춰 선다. 누워있는 그를 발견한다. 은지에게 질문하는 눈빛을 던진다. 누구냐고. 그도 시선을 돌려 민호를 바라본다. 바닥을 침대삼아 그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목을 까닥인다.

  “민호야. 저기, 이 분은…….”

  은지는 말을 꺼냈지만 이어나가기 애매하다.

  “여기 병원에 아주 오래 계셨대. 하도 누워있기만 하셔서 일어서는 법을 잊어버리셨대. 그래서 이런 자세로 있으셔.”

  이제 민호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겠지.

  “조금 전에 저기 위에서 내려오셨어.”

  민호의 눈썹이 올라가는 게 보인다. 무슨 소리를 하냐고 묻고 싶겠지. 그렇지만 은지의 진지한 표정에 슬며시 고개만 끄덕인다.

  “그, 그러시구나. 안 불편하세요? 그렇게 누워서 움직이시려면.”

  “이제는 이게 익숙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병원 침대에 누워서 만날 텔레비전만 봤는데 거기 나오는 슈퍼영웅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웠거든요. 그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스파이더맨이었어요. 정말 스파이더맨처럼 온갖 곳을 기어 다닐 수 있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했는데, 그랬는데, 진짜로 내가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믿어져요? 이런 내가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어요. 한 번 볼래요?”

  민호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그 사람이 벌러덩 몸을 한 바퀴 돌려 바닥에 배를 붙인다. 팔과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에. 자연스럽고 거칠 것 없이 진행한다. 직립보행을 하는 사람보다 빠르다. 벽에 다다르더니 바싹 붙어 두 팔을 먼저 올리고 다리가 뒤따른다. 곡선으로 나아가는 자세에 전혀 무리가 없다. 금세 벽 중간까지 타고 올라간다. 어쩜 저럴 수가 있을까. 온몸에 빨판이 있어 자연스레 붙었다 떼기를 반복하는 수중생물 같다. 은지가 감탄하듯이 바라본다. ‘정말 신기하지 않아?’라고 물어보려는데 민호가 안주머니에서 까만 구슬을 끄집어낸다. 은지를 향해 보라는 듯이 살짝 흔든다.

  “그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그래, 그거였지. 저 세상으로 데려갈 도구. 안 됐다는 감정이 앞선다. 우리가 보라고 저렇게 힘을 내서 움직이는데.

  “제대로 작동하더라. 처음엔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내가 고리를 안 풀었지 뭐야. 무엇이든 설명서대로 해야 한다니까.”

  민호가 씨익, 웃는다. 그래, 저 미소. 이제 상당히 익숙해졌고 며칠 안 보면 생각나는 미소. 알겠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민호가 위를 쳐다보며 다가간다. 천장 바로 위에 닿을 만큼 올라갔던 그 사람은 한 바퀴 되돌아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민호랑 얼굴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우와, 아주 잘 하시네요.”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활동적이었어요. 한때는 암벽타기에 도전해보고 싶었었는데, 내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네요.”

  민호가 손가락을 움직여 구슬의 고리를 푼다. 친근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가 손을 든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무슨 소리라도 낼까 봐. 그 사람이 궁금한 듯 구슬을 본다. 환자복 아래로 튀어나온 야윈 팔에 닿았다. 그게 다였다. 아주 단순했다. 그의 몸 전체가 자잘한 입자 같은 것들로 나뉘더니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고리가 저절로 닫혔다. 분명 세 사람이었는데 이제 두 사람만 이 자리에 있다. 등을 보이던 민호가 주머니 안쪽에 구슬을 집어넣는 동작을 하며 은지를 향해 돌아선다. 인상이 평온해 보인다. 민호는 원래 저런 사람인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힘을 써야 하고 날렵하게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는 정말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디 다친 데 없어?”

  “아니, 괜찮아. 놀라서 비명을 지르긴 했는데 해코지 당한 건 없어.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오히려 안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떡 아줌마가 더 무시무시했지.”

  “떡 아줌마?”

  “아, 맞다. 떡 아줌마! 그 기자분!”

  민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민호야. 그 기자분 찾아야 돼.”

  은지는 민호에게 겪었던 일을 설명해주며 떡으로 뒤덮여 누워있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다행히 숨을 고르게 쉬고 있다. 떡을 치워내고 최대한 숨을 편하게 쉬도록 자세를 잡아준다. 민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일어서며 한 마디 던진다.

  “이게 다 웬 떡이람.”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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