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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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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29
작성일 : 21-05-03     조회 : 352     추천 : 0     분량 : 2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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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민호는 앞을 향해 나아가며 종합병원이라는 곳이 참 크구나, 라고 감탄한다. 게다가 건물 안 구조가 비슷비슷하게 쭉 늘어서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은지가 떡에 파묻혔던 사람을 당겨서 돌려 눕히더니 최대한 숨쉬기 좋은 자세를 취하도록 뉘어주었다. 어디서 그런 건 배웠나 몰라. 은지가 그 사람을 살피는 동안 도움을 줄 사람을 찾으러 나섰다. 어렵지 않게 지나가던 간호사를 한 명 발견한다. 억지로 잡아끌자 처음엔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못해 따라왔다. 퉁명스럽게 지금 바쁜데, 라는 말을 내뱉으며. 그렇지만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발견하자 즉시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감탄사가 나왔다.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자문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다가, 밥을 먹는 중에도, 아님 급한 약속 때문에 뛰어가다가도 누군가 열쇠를 잃어버려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홀연히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자신에 대한 불신감만 든다. 그리 훌륭하게 대처하지 못할 듯해서.

  저 간호사가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한 가지 더 알게 된 건 병원 곳곳에 응급벨이 자리한다는 거였다. 유사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처해 손에 닿기 좋은 위치에 응급벨이 벽 위에 부착돼 있었다. 응급벨이 울리고 오래지 않아 여남은 명의 직원들이 다가와서 그 간호사를 도운다. 그렇게 부산스러운 사이 슬그머니 은지와 함께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 방향인지 기억나?”

  “분명 이 쪽이었던 듯한데.”

  민호 눈에는 거기가 거기인데, 은지는 나름 구역을 살펴가며 잘도 앞으로 나아간다. 아, 맞다. 은지는 이 병원에서 호스피스 관련 일을 돕는다고 했었지. 아무렴 자신보다 익숙할 것이다. 갑자기 확, 뚫린 공간이 앞에 드러난다. 가운데 펼쳐진 공간을 철제난간을 따라 이어진 복도가 둘러싸는 구조다. 바닥에서부터 쌓아올린 굵은 기둥들이 저기 천장까지 닿는다. 밑을 내려다보니 가장 아래층에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만치에 입구가 자리한다. 이제 대강 감이 잡혔다. 여기가 바로 아래위로 오르내릴 수 있게 계단이 연결된 주된 이동경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면 층을 옮기기 위해 이곳을 거쳐 가야한다. 난간 끝에 다다라서 은지가 잠시 주저한다. 더 이상 어디로 향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니 유난히 눈에 띄는 무리가 있다. 저만치 앞서가는 검은색 상의를 입은 자를 푸른색 운동복을 입은 네 명의 아이들이 잔걸음으로 따른다. 언뜻 봐도 눈에 띄는데다 어딘가 익숙하다. 그래, 잊을 리가 없지. 그렇게 당했는데.

  “은지야. 저기, 저 애들. 복장을 봐. 내가 엄청 당했던, ……, 아니, 나랑 다툼이 있었던 애들 맞지?”

  “누구?”

  은지는 민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준다. 금세 두 눈이 커진다.

  “맞아. 걔네들이야. 저 아이들이 왜 여기에?”

  나도 모르지.

  “어쨌든 잘 된 거 아닌가? 아주 이참에 한꺼번에 굴비 엮듯이 엮는 거지.”

  “굴비가 뭐야. 너도 참. 따라가야겠지? 잠깐만. 그 기자분 위험할 수도 있어. 어쩌지?”

  은지가 다급하게 기자라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했지만, 저 애들을 그대로 보낼 수도 없었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은지에게 내밀었다.

  “이거 생각보다 아주 쉬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바로 앞에서 봤잖아. 고리 풀고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돼. 그럼 그냥 쑥, 빨려 들어가.”

  은지가 가만히 민호가 내민 손을 내려 본다.

  “우리, 흩어져도 괜찮을까?”

  “휴대폰 있잖아. 안 되겠다 싶으면 혼자서 무리하지 말고 바로 연락하자. 서로 금방 도우러 올 수 있게.”

  “너, 지난 번처럼 그렇게 당하면 안 돼.”

  “아, 그 때는, ……, 갑자기 일이 벌어져서 그랬어. 오늘은 미리 조심할 거니까 괜찮아. 너야말로 아니다 싶으면 바로 연락해. 괜히 무리수 두지 말고. 알았지?”

  아래를 향해 뛰어 내려가며 뒤를 본다. 은지가 복도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그냥 옆에 있을 걸 그랬나? 괜히 흩어지자고 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됐다. 민재라도 데려올 걸.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이미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향하던 방향으로 뛰었다. 뛰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한다. 어둠이 짙어진 저녁시간인데도 여전히 꽤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안에 남아있다. 막다른 곳에 도착해서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야 했다. 어느 쪽으로 갔을까? 모두 동시에 한 방향으로 갔을까? 아님 나눠서 행동하려나? 누군가 따라가던 것 같았는데. 오른쪽? 왼쪽?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오른쪽 방향에서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두 명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간이의자 뒤로 넘어가서 바닥 위로 누웠다. 의자 아래 바짝 엎드려서 숨는데, 다가오는 걸음속도가 느려진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저 끝은 막혀있을 거라 했잖아.”

  “벌써 멀리 갔나 봐. 아무도 안 보이네. 수사님이 하필 우리보고 가보라고 해서.”

  수사?

  “태영이랑 덕남이도 있는데 말야.”

  다리가 보인다. 푸른색 반바지 운동복 아래 징이 박힌 축구화를 신었다. 한 명은 나이키, 그 옆은 아식스를 신었다. 나이키 파란색 줄무늬 은근 괜찮네. 아이, 씨,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만만한 거겠지. 걔네들은 싸움도 잘하고 한 성질 하잖아.”

  “나는 가끔 태영이가 무서워. 동긴데 꼭 선배 같아.”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점점 발걸음이 느려진다. 구슬을 두 개 꺼냈지만 한꺼번에 고리를 풀긴 쉽지 않았다. 하나를 풀어 꺼내들었다. 조금씩 가까워진다. 두 걸음, 아니 세 걸음 정도. 갑자기 손 안에 땀이 맺힌다. 긴장할 거 없는데. 한 걸음만 더. 아니 한 발짝 더. 그래, 거기.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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