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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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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31
작성일 : 21-05-17     조회 : 320     추천 : 0     분량 : 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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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민호는 그대로 팔을 쑥 뻗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쉽게 닿을 듯했지만 상대방이 걷고 있다는 걸 깜빡했다. 다리가 앞으로 나아가자 구슬을 쥐었던 손이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민호의 팔이 목표물을 놓치고 헤매는 사이 뒷다리가 전진하다 그 팔에 걸려 균형을 잃는다. 반사적인 동작으로 팔을 집어넣었지만 이미 다리의 주인은 앞으로 넘어졌다. 털썩. 먼저 앞서가던 재유는 정근이 넘어지자 그 모습을 보고 짓궂게 웃는다. 일어나도록 도와줄 생각보다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선다.

  “하여튼 네 나이가 몇 살인데 그렇게 넘어지고 그러냐. 앞도 제대로 못 봐?”

  “아니야. 우이씨. 뭔가에 걸려 넘어졌단 말야.”

  “걸리긴 뭘 걸려. 아무것도 없는데.”

  정근이 보란 듯이 재유는 주변을 천천히 훑는다. 그런 정근의 모습에 발끈한 재유는 다리 주위를 둘러보지만 자신이 걸렸을 법한 장애물이 없다. 하얗고 미끈한 타일 바닥만 보일 뿐.

  “네 발에 혼자 걸렸겠지. 아직 걸음마도 못 뗐냐?”

  재유는 능글거리며 정근의 곁으로 다가가 일어서기 쉽도록 허리춤 근처를 잡아준다. 허리에 힘을 주며 당기려는데 민호의 등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어?”

  재유에게 기대서 일어서던 정근은 갑작스레 빠진 힘에 스르륵, 아래를 향해 미끄러진다.

  “아, 뭐야, 너?”

  재유가 대답이 없자 정근은 재유를 봤다 의아한 시선으로 재유가 보는 방향을 살핀다. 민호는 난감한 상황을 주시하다 머릿속에서 김사부의 말을 떠올린다. ‘위험한 상황에서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훌쩍, 일어서더니 손에 든 구슬을 재유를 향해 던진다. 맞추기 위해 힘껏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받기 좋게 원을 그리도록 슬쩍, 올려준다. ‘어디든 몸에만 닿으면 되지 않을까?’ 엉겹결에 날아온 구슬을 받아든 재유는 황당하게 손에 쥐어진 구슬을 내려다본다. ‘어, 왜 아무 반응이 없지?’ 민호도 재유의 손에 놓인 구슬을 보다 화들짝 놀란다. ‘이런, 고리. 아직 적응이 안 됐나? 왜 항상 고리 푸는 걸 까먹어.’

  성큼, 다가서는 민호를 보고 재유가 얼른, 뒤로 물러난다. 민호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아, 저기, 그거 제 건데요.”

  '자기가 던져놓고 자기 것이라고 하면 그 다음엔 어쩌라는 거야?' 재유는 민호를 빤히 쳐다본다. 정근은 아래에서 두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다. 민호가 손을 내민다. 재유가 정근을 내려다 보지만 정근도 뭐라 할 말이 없다. 민호의 손으로 구슬이 넘어간다. 민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쓰며 구슬의 고리를 풀더니 다시 건넨다. 재유는 받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민호가 팔을 흔들어대며 재촉한다.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음을 짓는다. 공손한 자세로 재유가 구슬을 집는다.

  정근은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을 믿을 수가 없다. 분명 재유가 바로 앞에 서 있었고 저기 있는 사람과 검은 구슬처럼 생긴 걸 주고 받다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몸 전체가 투명한 알갱이들로 가득 차버리는 듯했는데 그리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눈을 반복해서 깜빡이며 주변을 돌아본다. 혹시라도 재유가 어딘가로 움직였을까 싶어서. 이제 축구부원들 모두가 엄청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재유를 찾을 수가 없다. 아주 멀리 가버린 것일까. 자신만 남겨두고.

  이상해 보이는 남자가 걸음을 떼 재유가 있던 자리로 향한다. 바닥에서 구슬을 주워든다. ‘저 구슬. 뭔가 이상했어.’ 재유가 그의 손에서 그걸 집었고, 그 후로 사라져버렸다. ‘어,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민호는 구슬을 옷 안 주머니에 넣더니 다른 하나를 꺼내든다. 이번엔 고리를 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똑같이 행동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테고 이제 어떻게 한다.’ 주저앉은 채로 있는 정근을 조심스레 관찰한다. 정근도 민호를 향한 눈길을 떼지 않는다. 민호가 먼저 움직였다. 정근에게 달려들어 구슬을 그대로 갖다 대려 하자 정근이 빠른 속도로 그런 민호를 피하며 고함을 질러댄다.

  “태영아! 덕남아!”

  정근은 민호에게 달려들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 앉은 자세로 기어간다. 민호는 필사적으로 그 뒤를 잡아채려 달려든다. 아직 정근의 다리가 바닥 위에 놓인 채라 움직임이 수월하진 않다. 고함소리에 반응해서 후다닥,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민호는 자칫하면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 놓일 거라 우려하며 더욱 속도를 낸다. ‘빨리 끝내고 자리를 피해야 해.’ 정근이 바닥을 기어 앞으로 나아간다. 팔에 지탱해서 기어가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민호는 고리가 풀린 구슬을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었지만 몸에 가 닿기 전 거리가 벌어진다. 이제 정근이 일어서려는 동작을 취한다. 다급한 마음에 민호가 몸을 던져 위에서 덮치자 엉겹결에 양팔을 내밀어 밀어내려 한다. ‘몸에 닿기만 하면 되는데.’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어떻게든 구슬로 몸에 건드리려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오히려 정확도가 떨어진다. 버둥거리던 정근이 민호의 팔을 쳐서 구슬을 땅 위로 떨어뜨리고 그걸 주우려던 민호는 일어나려고 힘을 주는 정근의 기세에 밀려 균형을 잃는다. 민호는 비틀거리면서도 정근을 놓치지 않으려고 팔을 들어 그의 양쪽 허리를 움켜잡는다. 일어서려는 자와 넘어지는 자가 맞붙었다. 처음에는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을 하는 듯 보였지만 정근이 뒷심을 발휘해 민호를 어깨 위로 넘겨버린다. 벌러덩, 나자빠진 민호의 모습을 보고 정근은 여유를 가진다. 게다가 발소리도 가까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정근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민호는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넘어지니까 잠시 머리가 어질하다. 정근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세가 결코 유리하지 않다. 다가오는 사람들은 거의 근처까지 다다랐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쳐나갈 수를 찾아보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무작정 정근에게 덤벼들기도 만만찮다. 오히려 자신이 당할 여지가 많다. ‘일단 자리를 피할까?’ 슬쩍 옆을 본다. 그대로 튀어나가면 충분히 빠져나갈 공간이다. 정근이 막아서지만 않으면. 정근은 민호의 시선을 따라 같은 방향을 본다. 아무것도 없다. ‘왜 저쪽을 보는 거지?’ 민호가 허리를 세우고 자세를 잡으려 하자 그 행동을 읽는다. ‘도망가려는 거구나.’ 근처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자신감을 얻는다. ‘곧 수사님이랑 덕남이, 태영이도 올 거야. 조금만 붙잡고 있자. 재유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내야 해.’ 민호가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자 그 앞을 천천히 막아선다. 시선이 막히자 이제 당황하는 쪽은 민호다. ‘어? 못 가게 하는 거야?’ 누군가의 발소리를 이렇게 가슴이 조여 오게 들었던 적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지고 무슨 수를 쓰든지 여기서 잡혀선 안 될 것 같았다. 민호는 아직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정근은 그런 그를 위에서 주시하며 좁혀온다. ‘분명 쫓아가던 사람은 나였는데 상황이 왜 뒤바뀐 거야?’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욱 곤란해진다. 민호가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니까 정근이 따른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틀어보자 정근도 다급하게 방향을 바꾼다. 이젠 기 싸움을 하고 있다. 정근은 거리를 좁혀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 민호가 움직이면 붙잡기라도 할 작정이다.

  툭. 오른발을 바닥에 딛자 뭔가 발바닥에 밟힌다. ‘뭐지?’ 정근이 확인해보기도 전에 민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정근의 몸 전체가 좁쌀 같은 입자들로 알알이 나눠진다. 한순간이었다. 그대로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까지. ‘온몸의 세포가 나눠지면 저런 모습일까?’ 민호는 덩그러니 남겨진 검은 구슬을 내려다본다. 고리가 단단히 걸려있다. 조금 전까지 앞을 막던 벽처럼 움직이던 정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작은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닌데도 아직까지 볼 때마다 실감이 들지 않는다.

  아차, 싶었다. 사람의 인기척이 바로 곁에서 느껴졌다. 황급히 구슬을 집어 옷 주머니에 넣었지만 자리를 피하기엔 늦었다. 한 사람이 아니다. ‘어쩐다?’ 일대일로 몸싸움을 하기에도 벅찼다. 여러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자신이 없다. 은지에게 연락을 한다 해도 은지가 와서 뭘 어쩌겠나.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기 겁이 난다. 민호는 다가오는 자들의 발만 주시한다. ‘김사부님도 이럴 땐 방법이 없겠지?’ 민호의 가슴에 자포자기하는 기분이 든다. ‘에라이, 모르겠다.’ 민호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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