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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소녀
작가 : Me문물
작품등록일 : 20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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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51화 마이너스 1
작성일 : 21-08-24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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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이 사라진 지 3일 째 되자 슬슬 믿을 수 없는 이 현실을 직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록 정안은 사라졌고 그 어머니는 제 어머니가 되었고 항상 옆에 있던 시지프를 볼 수 없는 암울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우울하게 구석에 쳐박혀 있을 수는 없다.

 

 “그래. 정신 차리자.

 이렇게 힘없이 늘어져선 가만히 있어 봐야 되는 건 없잖아.”

 

 게다가 ‘하고 싶은 걸 이뤘으면 좋겠다.’라는 정안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게 유언이라 생각하면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반쯤 덮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내려와 그 옆에 놓인 책상 앞에 섰다.

 

 “사실만 적자.”

 

 그리고 의자에 앉아 그와 비슷한 칠이 잘 된 나무 책상에 공책을 펴고 적었다.

 

 펜으로 정리를 하는 동안 왼손으로 머리빗을 들어 부스스한 머리털이 엉키든 말든 대충 빗었다.

 

 [지난 3일 간의 사실. : (+)1-2=-1]

 

 일단 먼저, 3일 전 밤. ‘정안’이라는 존재는 사라졌다.

 

 그리고 ‘이방인 루나’도 그 날 사라졌다.

 

 대신에 새로운 ‘이루나’라는 존재가 정안의 빈자리를 채웠고.

 

 이방인은 불쑥 들어온 변수와 같은 존재였기에 대체 없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루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수학에서 ‘1-2=-1’이라는 식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나에서 둘이 사라지면 그 결과는 없는 것만 못해진다.

 

 이루나. 지금 그 ‘-1’의 돌연변이가 탄생한 것이다.

 

 이곳에서 ‘이방인 루나’의 존재여부를 그 누구도 논하지는 않겠지만.

 

 본래부터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애매한 무언가가 되었다.

 

 ‘이방인 루나’는 과거에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 의자에 앉아 멀쩡하게 살아있다.

 

 하지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제 ‘이루나’니까.

 

 이방인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기웃거리던 시점부터 3일 전 밤 마지막 목격까지.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정안도 얼마 전까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모두에게서 잊혀 졌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 자리를 ‘이루나’라는 새로운 존재가 바꿨으니까.

 

 “분명 있었지만 흔적조차 사라진 존재.”

 

 그러고 보니 닷새 전 꿈이 떠오른다.

 

 시지프와 역에서 있었을 때 잠깐 졸다가 꿈에서 관리자라는 여자가 나와 이렇게 말했다.

 

 ‘난 ‘관리자’라고 해.

 쓰레기는 본래 쓰레기통에 넣잖아? 난 그런 일을 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는 일, 그게 관리자.”

 

 ‘저기. 아름다운 우리 님께서 이번에 가져온 게 너거든?

 근데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버리는 거야.’

 

 “데려왔는데 필요가 없어서 버린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자기 이름도 필요가 없어서 버린다고 했었지.

 

 “뇌에서 만든 이미지가 꿈이라 조금 앞뒤가 안 맞는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자라는 애는 진짜 머리가 이상한 것 같았어.”

 

 그렇게 떠오르는 대로 읇조리며 공책에 두서없이 메모했다.

 

 [지난 3일 간의 사실. : (+)1-2=-1

 정안-> 이루나 (대체)

 이방인 루나-> ??? (변수와도 같은 존재라 대체 없이 아예 사라진 듯)

 아무도 정안과 이방인을 기억하지 못함.

 

 관리자.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님’의 존재.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킨 게 달. 그럼 달은 누구를 뜻하는 거지?)

 보스 코드네임인가?

 게다가 자기 이름도 버릴 정도면….]

 

 “꿈 이야기도 넣을 정도라니. 나도 단단히 미쳤구나.”

 

 정리 한 것만 보면 그저 시시껄렁한 말장난 같아서 머리가 아프다.

 

 “아, 생각해 보니 한 명 더 있었지.”

 

 사각사각. 공책 다음 줄에 ‘시지프?’라고 적었다.

 

 “다른 주민들은 애초에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테지만, 지프 님은 며칠 같이 지냈잖아?”

 물론 자기 자식조차 잊어버리는 엄마도 있으니 그녀라고 반드시 기억할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이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한다.

 

 게다가 지금은 아줌마가 딸이라며 나름대로 애지중지 키우려고 노력하는 게 보이지만.

 

 저 아줌마에게 한때 제대로 화를 내고 집에서 나와 시지프의 집에서 머물렀을 때.

 

 그녀에게서 이 마을의 교육열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마냥 편하게 있을 수도 없다.

 

 어릴 때부터 유학을 보내고 어른이 될 때까지 건강과 인성보다 어떤 학원을 보낼지가 더 중요한 곳.

 

 아마 그녀가 좋게 착하게 말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도 순수한 모성애만 있지는 않을 터.

 

 “그리고 나는 집에 돌아갈 거야. 진짜 가족을 만날 거라고.”

 

 찰칵-.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 열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아줌마가 얼굴을 내밀며 속삭였다.

 

 “루나야. 지금 일어났니?”

 

 “네.”

 

 설마 조금 전에 한 말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들었으면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넘겼다.

 

 “아침 차려놨어.

 엄마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올게!”

 

 “아, 예. 근데 아주머, 아니 어머니.

 왜 말씀하실 때 계속 속삭이시는 거예요?”

 

 괜히 순해 보이려고 그러는 것일까?

 

 여태 아줌마는 안 그래도 작고 여린 몸을 잔뜩 움츠리며 문 사이로 얼굴만 내밀고서 속삭였다.

 

 붉은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는 인상도 보기 싫지만 왜 저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줌마는 질문에 당황한 것일까?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문을 조금 더 열고 반쯤 걸치고 서서 꾸물거렸다.

 

 벨벳 느낌 나는 번뜩이는 붉은 원피스에 새 것 같은 빳빳한 검정 가죽 벨트.

 

 제 치맛자락을 꾸기며 보이는 열 손가락에 예쁜 꽃을 그려넣은 손톱.

 

 나이에 비해 날이 갈수록 점점 살아나는 윤기 나는 곱슬머리까지.

 

 그나마 머리는 아래로 묶어서 단정하지만.

 

 옷차림은 어째 전에 보던 복장보다 화려하고 강렬하다.

 

 아줌마는 빨갛게 바른 얇은 입술을 뗄락 말락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게, 우리 루나.

 열심히 공부하는데 엄마가 크게 말했다가 방해할까 봐 그렇지.

 괜히 와서 치대다 이번에도 1등 놓치면 어떡해?”

 

 “아. 네.”

 

 깜빡하고 있었다.

 

 ‘이루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며 입학 후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꿈은 과학자였지만 가고 싶었던 사립 고등학교에서 떨어졌기에 언제나 성적에 예민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묘한 불쾌감이 이런 설정 때문이었나.

 

 이걸 또 어떻게 알았냐 하면 벽에 지난 시험 성적표들이 붙어 있던 것을 봐버렸으니까.

 

 하얀 벽에 한 아름 붙어 있는데 줄줄이 석차가 ‘1’로 찍혀 있다가.

 

 바로 최근 성적표에는 ‘5’라고 적혀 있다.

 

 “루나야?”

 

 “그럼 잘됐네요. 일 나가신다고 하셨죠?

 이제 더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나가주세요.”

 

 아줌마는 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답 없이 바로 후다닥 나갔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사라질 때까지 덜 닫힌 문을 주시했다.

 

 “이제 간 건가?”

 

 이윽고 현관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가 작게 들리자 다시 책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부터 진짜 피곤하네.”

 

 그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안이 사라졌고 이방인 루나도 사라졌다.

 

 그 대신 저 아줌마의 딸이라는 설정으로 ‘이루나’라는 이름이 붙어 다시 이 자리에 앉았다.

 

 그렇기에 저 아줌마를 엄마라고 불러야하는 게 맞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

 

 어제까지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욕하고 대놓고 싫다고 배척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오늘 엄마가 되었다고 어떻게 하루아침 만에 좋아할 수 있을까?

 

 “만 년이 지나도 그건 못해.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 나갈 거야!”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아줌마, 아무래도 과보호를 하고 있던 것 같다.

 

 지난 이틀 동안 낮에는 학교 안 가냐고 쫓아오고 밤에는 잘 때까지 침대 옆에서 기다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지해서 그런지 더 소름 돋았다.

 

 “정안이도 이런 관심을 받았던 거겠지?”

 

 이런 게 엄마의 의무라고 한다면 정말 잘하는 거겠지만.

 

 그 때문에 빠져나갈 틈을 도무지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

 저 아줌마가 쉽게 와서 제재할 수가 없지.”

 

 어른들에게는 없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있는 휴일.

 

 이곳은 휴일이 나눠지는 방식도 참 특이하다.

 

 왜냐하면 바로 학생의 1년에 맞게 휴일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휴일 중 방학을 제하고도 쉬어야 할 때에는 휴일을 몰아주고.

 

 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기간에는 중간에 휴일 없이 평일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이런 게 또 나름 유용했지.”

 

 책상에는 ‘이루나’라는 존재가 쓴 달력이 만들어져 있었다.

 

 달력이라고 몇 월 며칠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작대기 표시만 잔뜩 해두었다.

 

 작년 달력도 동일하게 그어져 있는 걸 보면.

 

 1년 행사의 기본적인 쉬는 날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년 달력에는 작년 이맘때가 빨간 작대기가 그어져 있는데.

 

 빨간 작대기가 그어져 있다는 것은 오늘은 쉬는 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설마 쉬는 날에는 공부 안 한다고 숙제 검사 같은 거 하는 건 아니겠지?”

 

 끔찍한 상상에 오한과 소름이 올라오자 절로 몸서리를 치며 닭살 돋은 피부를 만졌다.

 

 “일단 밥부터 먹자. 뭐든 배가 빵빵한 다음 생각해야지.”

 

 방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로 직행했다.

 

 덜컥. 문을 열자 보이는 색깔에 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전체적으로 붉은빛이 나는 하얀 벽부터 붉은색 손잡이 칫솔까지.

 

 “색깔 참 튄다.”

 

 조금 전 아줌마의 원피스와 입술 색이 빨간 색이 겹쳐 보여서 그런 걸까?

 

 들어가자마자 역한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온통 빨간색…낯설긴 한데 누구 취향인지 알 것 같아.”

 

 가까스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하고 칫솔에 치약을 쭉 짰다.

 

 그리곤 이빨을 닦으면서 거울을 쳐다봤는데 웬 추레한 옷차림의 여자가 보였다.

 

 사흘간 빗지 않아 제 멋대로 뻗은 중단발에 먹는 둥 마는 둥 사는 탓에 홀쭉해진 두 볼.

 

 반쯤 시체처럼 초췌해진 갈색 머리에 앞머리가 날리는 모습.

 

 초점 없는 눈으로 입꼬리가 축 처진 채 이쪽을 노려봤다.

 

 “진짜 못생겼다. 세수해서 싹 지워버려야지.”

 

 입안에 가득 문 치약을 뱉으며 저도 모르게 웅얼거린 거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재미없는 개그를 던진 것 같아 헛웃음을 지었다.

 

 개그도 아닌 말에 웃음이 나오다니. 정말 정신이 나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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